2016. 4. 21. 23:35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감독: 미셸 프랑코
출연: 팀 로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없다. 삶의 마지막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가진 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을 아주 실제적으로 그려낸 영화가 크로닉(Chronic)이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죽음을 앞에 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간호사다. 영화에서 데이비드가 돌보는 첫 번째 환자는 사라이다. 그녀는 그와 모든 일상을 함께 살아간다. 사라가 데이비드 앞에서 벗은 몸을 드러내고, 데이비드가 그녀의 몸을 아주 세밀하게 씻겨주는 장면이 몇 번 등장한다. 여자로서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광경이지만, 그녀는 온전히 그를 의지하는 것 같았다. 사라가 데이비드의 도움 없이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기에 전적으로 그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배제하더라도 둘의 사이는 그저 환자와 간호사의 관계로서 지탱되고 있지는 않은 듯 했다.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몇번의 장면이 흘러가고, 그녀는 예정된 죽음을 맞이한다. 데이비드는 사라의 장례식에 찾아가고, 드러나지 않게 그녀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리고 화면은 술집에 있는 데이비드에 집중한다. 약혼한 남녀가 술집에 앉아있는 데이비드에게 약혼한 기념으로 술을 대접하고, 자신들의 약혼사실을 자랑한다. 그리고 데이비드에게 결혼여부를 묻고, 데이비드는 결혼하였다고 말하다. 그리고나서 그는 자신의 아내가 죽었다고 이야기하며, 그녀의 이름이 ‘사라’라고 말한다.
‘아내의 이름이 ‘사라’라고... 좀 전에 죽은 환자의 이름이잖아... 뭐지...‘
혼자 궁금증을 안고, 계속 영화를 지켜봤다. 데이비드는 두 번째 환자는 존이다. 존은 쓰러진지 며칠 되지 않았으며 건장한 체격을 가진 노인이다. 존이 데이비드를 간호하고 나서, 그는 서점에 들러 자신이 건축과 관련 책을 사고, 서점 주인에게 자신을 건축가라고 소개하며 실용적이고 작은 건물들을 설계한다고 말한다.
‘뭐야? 데이비드는 간호사잖아...’
데이비드가 서점 주인에게 한 말은 그가 서점이 오기 며칠 전 존이 데이비드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렇다. 데이비드는 그들의 삶에 깊숙하게 개입하여 자신의 삶을 환자의 삶과 동일시하거나 그들의 시선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는 간호사로서 온전히 환자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다. 타인으로서 한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헌신의 삶임은 분명했다. 어찌됐든, 데이비드, 그의 삶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비드가 존의 삶과 일치하여 살아가는 모습은 존의 가족들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데이비드의 헌신과 희생을 ‘성추행’으로 오인하고 그를 고소한다. 그는 그 가족들에게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지만, 가족들은 그와 대화하고 싶지 않는다. 그렇게 그는 쫓겨난다.
데이비드가 맡은 세 번째 환자는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과부다. 그녀는 데이비드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며, 일정한 선 밖에 서 있다. 그녀는 병세가 악화되면서 자신이 추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호전되지 않는 병을 위해서 화학적 치료를 받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안락하게 약물로 죽는 방법이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데이비드가 자신의 아들에게 행했던 것이다.
그녀는 데이비드가 이전 환자의 가족으로부터 고소를 당했기 때문에 그의 이력들을 조사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그가 그의 아들을 안락사 시킨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그녀는 데이비드도 자신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데이비는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결국 그녀의 요청을 들어준다.
다시 데이비드는 네 번째 환자를 맡게 되는데, 평상시 하던 조깅을 하다가 달려오는 차에 치인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그가 죽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죽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세명의 환자들을 위해 자신을 삶을 내던지고, 오로지 환자들을 위한, 환자들에 의한 삶을 살다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전시회]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 _ (#1 프리다 칼로 작품) (0) | 2016.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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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A MAN AND A WOMAN, 2016) _ 결핍에 대처하는 자세: 불륜 (0) | 2016.03.08 |
세컨드 마더(The Second Mother, 2015)_엄마와 딸의 애증관계 (0) | 2016.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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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21. 22:07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파도의 말 2
마종기
답답해 바다에 나왔다.
서글픔으로 감싸인 연약한 해안을
파도가 대신해 몸 풀어준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다.
해방된 빈 배도 떠나고
시들어가는 바다의 파도만 남았다.
해안을 조심해 걸으며
작은 파도를 하나씩 줍는다.
한기와 체념으로 말라버린
바다의 말을 줍는다.
내 파도여,
말하는 바다의 잎이여,
이렇게 쉽게 사는 것이
죄는 짓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파도의 여러 음성은 내내
이승의 아쉬움을 말하고 있지만
저녁은 우리 사이를 막고 덮어서
내게 오던 파도가
돌아서기 시작한다.
헤밍웨이를 꿈꾸며 _ 마종기 (0) | 2016.0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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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 평원 _ 마종기 (0) | 2016.04.23 |
도마뱀 _ 마종기 (0) | 2016.0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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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_ 넬(Nell) (0) | 2015.10.20 |
2016. 4. 21. 19:23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출처: www.factoll.com
중학교 동창를 만나러 가기위해 용인행 좌석버스를 탔다. 한번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말은, 그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없는 하나의 인사이겠지만 내게는 '밥을 먹는' 하나의 목적을 가진 의미있는 말이다. 그러기하기에 함부로 내뱉지 않으며, 말을 내뱉으면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 말 때문에 나는 용인으로 갔다고 하는것이 맞을것 같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밥을 사기 위해' 용인행 버스를 탔다.
약 1시간 버스를 타고 용인에 도착했다. 친구를 만나, 근황을 묻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곧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는 여자친구가 있냐는, 요즘 '밥먹었냐' 만큼 많이 듣는 질문에, 아직 없다며 멋쩍게 웃었다. 할일없이 멍하니 야구 중계를 보다가, 플레이스테이션이 있다는 말에, 위닝도 있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오랜시간 조작패드를 바쁘게 두드렸다.
꽤 시간이 흘렀고, 배가 고팠다. 나는 삼겹살을 먹고 싶었고, 친구도 동의했으며, 우리는 근처 삼겹살 집으로 향했다. 삼겹살을 노릇노릇하게 굽고, 먹고, 또 굽고 먹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기만 씹었다. 배가 불렀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친구가 들고있던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내가 사겠노라고." 지난 번 친구가 밥을 살 때, 생색내듯 웃으면서 다음에는 꼭 니가 사라고 했다. 밥을 샀다고 그렇게 티를 내야만했는지... 심기가 불편했고, 짜증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내가 사겠노라고,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었던 빚을 청산했다.
친구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카푸치노를 마셨고, 일본의 지진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흘리듯 말했다. 하지만, 친구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에서 자연재해나 재난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를 하지 않았어도 된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껄이는 바람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친구집에 돌아가 짐을 챙겼고, 버스정류장로 향했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나야 할 목적을 달성했다. 다시 이곳에 오지 않을것 같다.
나도, 한때 군인이었다. (0) | 2016.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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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0) | 2016.05.17 |
아버지, 나의 아버지. (0) | 2016.03.29 |
면접자 _ 복제(copy)된 인간들 (0) | 2015.12.05 |
동문서답. (4) | 2014.07.23 |
2016. 4. 21. 10:27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kr.clipart.me
도마뱀
마종기
내가 사는 외국의 동네에는 도마뱀이 많이 산다.
10센티 정도의 길이가 동작 재빠르고 눈치도 빠르다.
가끔은 죽은 듯 오래 움직이지 않는 재주도 있다.
영리한 이 도마뱀을 잡으면 잡힌 부분을 스스로 쉽게
끊어버리고 도망간다. 짧게 꼬리는 잡으면 그 꼬리를 버리고,
길게 잡아도 몸의 반쯤만 한 꼬리까리 포기하고 도망쳐버린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꼬리 잘린 도마뱀을 본 적이 없다.
그런 도마뱀은 숨어서만 사는 것일까.
아니면 요술같이 새 꼬리가 금세 자라나는 것일까.
내가 도마뱀의 끊어진 꼬리를 두 개나 가지게 된 날 밤,
나는 내 머리가 없는 것을 알았다.
처음 가졌던, 내 아버지가 주신 머리가 없는 것을 알았다.
고국의 친구가 그랬을까, 하느님같이 큰 손이 그랬을까.
머리를 잘 세워 생각을 옳게 고쳐주려고 내 머리를 잡았던 것인가.
나는 귀찮은 참견이 싫어 내 머리를 끊어주고 도망치고 말았던가.
머리 없는 몸뚱이와 사지만으로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숨어사는 도마뱀. 가끔은 내 머리가 그리워진다.
잘려나간 내 머리는 지금쯤,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몬태나 평원 _ 마종기 (0) | 2016.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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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말 2 _ 마종기 (0) | 2016.04.21 |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_ 마종기 (0) | 2016.04.19 |
Thank You _ 넬(Nell) (0) | 2015.10.20 |
연탄 한 장 _ 안도현 (0) | 2015.10.08 |
2016. 4. 19. 12:0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brunch.co.kr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마종기
오랫동안 별을 싫어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지
너무나 멀리 있는 현실의 바깥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안쓰러움이 싫었다
외로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북부 산맥의 높은
한밤에 만난 별들은 밝고 크고 수려했다
손이 담길 것 같이 가까운 은하수 속에서 편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 맑은 별들의 숨소리도 정다웠다
사람만이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별을 볼 수 있었던 옛날에는 아무데서나
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더 이상 별을 믿지 않고
희망에서도 등을 돌리고 산다
그 여름 얼마 동안 밤새껏
착하고 신기한 별밭을 보다가 나는 문득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파도의 말 2 _ 마종기 (0) | 2016.0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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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_ 마종기 (0) | 2016.04.21 |
Thank You _ 넬(Nell) (0) | 2015.10.20 |
연탄 한 장 _ 안도현 (0) | 2015.10.08 |
From Mark _ 하동균 (0) | 2015.10.03 |
2016. 4. 4. 13:53 신앙/감사(感謝)
출처:
1. 지체와의 대화를 통해 나의 완고함을 직시하게 하심에
2. 교만함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심에
3. 리더로서 말씀을 더욱 분명하게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심에
4.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하심에
5. 지체들을 통해 경제적인 후원을 받게 하심에
6. 묵묵히 맡은바 일을 섬길 수 있게 하심에
7. 시험공부를 꾸준하게 할 수 있게 하심에
8. 둘째 큰아버지 장례를 잘 치를 수 있게 하심에
9. 불규칙했던 삶을 타파하고, 규칙적인 생활로 복귀하게 하심에
10. 행동의 지혜를 허락하심에
11. 교회 지체들을 더욱 만나야겠다는 마음을 주시고, 행동에 옮기게 하심에
12.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서 교제를 하게 하심에
13. 친구가 잘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할 수 있게 하심에
14. 일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허락하심에
15. 늘 옆에서 기도하고 돌봐주시는 믿음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게 하심에
16. 주원이가 건강하게 자라게 하심에
일상의 감사(8.21-8.25) (0) | 2016.0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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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감사(7.29~8.8) (0) | 2016.08.08 |
2015년 마지막날 감사 (12.31) (0) | 2015.12.31 |
감사제목 (11.11-14) (0) | 2015.11.14 |
감사제목(9.19-9.22) (0) | 2015.09.22 |
2016. 4. 4. 13:41 삶을 살아내다/실수(失手)
실수 하나. 넓은 오지랖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고전 10:23
부부사이의 일에 괜히 끼어들어 헛된 말을 해버렸다. 오지랖이 넓었다는거지...그 둘 사이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건 올바른 행동이 아니었다 생각되며, 더욱이 제 3자인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었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행동의 가벼움은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에 신중하게 고려하지 못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고로 행동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수 둘. 하늘을 찌르는 교만함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
지체와의 대화에서 교만함이 하늘을 찔렀다. 누가 누구를 판단한단 말이냐. 교만함으로 교회의 지체들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는가. 무슨명목으로 남을 그리 재단하다니...너는 무엇이 그리 잘났다고. 참 어이가 없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테스와 다를바 없었다. 프로쿠르테스는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아 집으로 데리고 가서 자신의 철제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나서 침대보다 크면 몸을 잘라버렸고 침대보다 작으면 몸을 잡아 늘여서 죽였다 하지 않았는가.
많은 은혜를 받은자일수록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더욱 깨닫는다 하였다. 오직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 의를 그렇게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대화의 끝에서 내 뒤통수를 쳤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어찌 이리 악한가. 어찌 이리 자기 의로 똘똘 뭉쳐 있는가. 나는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나 한 자일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게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몇가지 말씀이 나를 책망했고, 그릇된 생각과 말을 다시 되새기면서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직 내 안에 성령님이 살아계셔서 말씀으로 책망하시여 바른 길로 이끄신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고, 하나님께 구할 것은 오직 은혜뿐임을 알아 바짝 엎드려야 했다.
"주여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My lord, have mercy on me!"
일상의 실수(10.17-10.31) (0) | 2016.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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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에서 저지른 실수들 (10.29) (0) | 2016.10.31 |
크나큰 실수(2015.12.29-2016.1.6) (0) | 2016.01.12 |
일상의 실수(10.4-10.6) (0) | 2015.10.07 |
일상의 실수들 (9.20-9.21) (0) | 2015.09.21 |
2016. 3. 29. 13:2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출처: blog.ohmynews.com
한 명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 아버지의 아들은 그의 삶의 굴곡을 두 눈으로 지켜봤으며, 그가 얼마나 진실되게 삶을 살아갔는지 알고 있습니다. 다른사람은 몰라도 그는 압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그는 아버지가 밉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온종일 흘리시던 그 굵은 땀방울을 간과했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가 겪는 삶의 무게를 그는 몰랐습니다. 32살의 아들은 이제야, 남자의 이름으로 그 아버지의 삶을 투영합니다.
"열심히 공부해라...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네 공부는 시켜주마..." 라는 아버지의 말이 하나의 진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그렇게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가을이었죠. 그는 경주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아버지와 마주쳤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 땀과 먼지로 찌들어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순간, 그는 으스러져야 마땅했습니다. 아들이란 이름으로 아버지의 삶을 갉아먹고 있음을 직시했기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너무나 처참한 하루였습니다.
당신이 아니고서야, 아버지란 이름이 짊어져야하는 삶의 무게를...어찌 알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당신은 어떠신지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0) | 2016.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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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빚을 청산하다 (0) | 2016.04.21 |
면접자 _ 복제(copy)된 인간들 (0) | 2015.12.05 |
동문서답. (4) | 2014.07.23 |
가여워라, Copycat. (0) | 2014.07.21 |
2016. 3. 26. 01:16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넓은 오지랖은 정신건강에 해롭다
부단히 내민손을 거두며,
스스로에게 외치길.
"너나 잘 하세요"
Lenovo Ideapad z585, 자결하다. (0) | 2016.0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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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시집을 사다 (0) | 2016.04.28 |
책임감의 족쇄 (0) | 2016.01.18 |
균열 (0) | 2016.01.05 |
말을 잃다 _ At a loss for words (0) | 2016.01.01 |
2016. 3. 24. 13:44 책과 글, 그리고 시/시를 쓰다
출처: holemess221.tistory.com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한치 앞을 알 수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지난 월요일 새벽에 둘째 큰아버지는 갑작스레 숨을 거두셨다. 예견치 못한 모든 것들은 당혹스럽다.
작년 말 장례식이 잦았고 장례식장에 자주 들락거렸지만, 타인의 '죽음'앞에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죽음과 나는 별개였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처럼 '개인과 개인의 아득한 거리'의 사이에서 타인의 죽음을 아무런 초점없이 바라봤다.
이번에는 달랐다. 장례식장에서 자주 휘청거리는 둘째 큰어머니의 모습에서 죽음이 불러온 충격를 보았으며, 둘째 큰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촌형과 사촌누나의 충혈된 눈 속에서 죽음이 드리운 이별의 아픔을 체감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대면했다. 형님을 먼저 보낸 아버지는 몰래 눈물을 훔치셨고, 안경에 눈물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셨다. 아버지는 얼룩진 안경알을 장례식 내내 닦지 않으셨다.
의도치않게 맨 앞에서 큰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가장 앞선 자리에서 장례행렬을 이끌었고, 가장 처음 화장(火葬)실에 들어갔고, 잘게 빻은 뼛가루가 담긴 유골함을 든 첫째 큰아버지를 모시고 가장 먼저 묘에 도착했다. 남은 자가 감당해야 할 슬픔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그 아픔을 받아냈다. 연로한 아버지와 마시마로처럼 귀엽게 웃는 엄마를 한참동안 바라봤다. 단 몇시간 만에 뼛가루가 되어 땅속에 고이 묻힌 둘째 큰아버지를 생각했다. 혼자 되뇌었다.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세기 3: 19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살아있을 때 잘 살자..." 그리고 아무 말이 없으셨다.
언어의 무게 (0) | 2018.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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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間隙) (0) | 2017.11.04 |
2016. 3. 15. 22:41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출처: leroy7.com
개인과 개인의 아득한 거리,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는 벽,
인간관계가 대안의 구경꾼들간의 관계로 식어버린 계절...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 28. -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다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싶었다. 그 분이 돌아가신 다음 날 책을 주문했다. 요즘 자주 책을 들춰보고, 한참을 읽다가 생각하고, 다시 읽다가 필사한다. 20대에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글의 깊이에 놀랐고, 그리고 글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 감격했다. 30대에 다시 그의 글을 읽으면서 사고의 깊이에 감탄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지나온 시간속에서 나는 인생에 대하여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왔던가. 그 고민과 사유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수확하였는가. 그 물음앞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나날들이다.
아주 사적인, 긴만남 _ 마종기, 루시드폴 (0) | 2016.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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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The Call) _ 오스 기니스 (0) | 2016.10.10 |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2012) _ 이병률 여행산문집 (0) | 2015.10.29 |
내 옆에 있는 사람(2015) _ 이병률 여행 산문집 (0) | 2015.10.28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_ 알렉산드로 솔제니친 (0) | 2015.01.28 |
2016. 3. 8. 12:37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필자가 작성한 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http://kangsy85.tistory.com/590)"의 문장이나 단어에 대한 질문이 있어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출처: http://m.blog.daum.net/apologist/13
1.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갈수 있는 가능성'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스스로 구원받을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사건이며, 절대로 우리의 공로나 행위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주의자들과 성경은 인간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일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성을 사용하여 '종교적 진리'는 물론 역사와 우주를 취급하는 성경을
탐구할 수는 있다"
- 프란시스 쉐퍼, 《이성에서의 도피》, p. 67 -
필자가 작성한 '가능성'이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본래의 속성들을 아직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 타락, 구속은 각각 불연속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연관성이 있는 연속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타락'이라 단어를 전체적인 틀에 초점을 두고 생각해야한다.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전적타락(total depravity)은 인간이 절망적으로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부분을 포함한 인간 본성의 모든 측면이 타락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인간성이 왜곡되었긴 하지만, 동물이 아니라 여전히 인간이다. 손상된 관계도 여전히 하나의 관계이고, 잘못된 사고과정도 하나의 사고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타락한 창조 속에 선한 어떤것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1
"창조는 어떤 결정적인 의미에서는 말살되지 않는다"
-알버트 윌터스, 《창조, 타락, 구속》, p. 100 -
2.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부활로 인한 '어느정도' 회복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부활로 말미암아 존재론적 관점에서 완전 회복되었다. 그런데 필자가 왜 '완전한 회복'이란 단어를 쓰지 않은 이유는 '자유의지'란 주제와 함께 썼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완전 회복하지 않았다. 만약 인간의 자유의지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모두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음은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는 아직 연약한 육신의 옷을 입고 있기에, 항상 올바른 선택만은 할 수 없는것이다.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9~20
그러므로 이미(초림으로 이루어진)와 아직(재림으로 완성될)사이에 살아가는 신자는 연약한 육신을 입은 존재이기에 날마다 악과 단호히 맞서서 싸우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결론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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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8. 12:15 초대장 배포
Soli Deo Gloria
티스토리 블로그를 개설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께.
안녕하세요. 티스토리 블로그(kangsy85.tistory.com) 운영자 Sharing입니다. 벌써 블로그를 운영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블로그에 써 내려온 제 삶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아봅니다. 매 번 포스팅 할 때마다 적잖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지만, 그 하나 하나의 글들이 모여 지금 제 블로그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습니다.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가거나 갑자기 떠오른 생각들은 시간이 지나면 쉬이 사라지지만, 구체적인 글로써 기록하면 하나의 자산이 됩니다. 기록의 중요성, 블로그 운영을 통해 한번 더 깨닫습니다. 기록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알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블로그 운영을 권해드립니다.
저는, 블로그 예찬론자 입니다. 예찬글(http://kangsy85.tistory.com/75)을 한 번 읽어보시면 블로그 운영을 통해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아시게 될것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티스토리 초대장을 배포 하도록 하겠습니다.
티스토리 초대장: 7장
신청 기간: 2016/03/08~2016/03/09(13:00 PM)
신청시 아래 사항을 참고하여 작성 부탁드립니다.
※경 고
다른 블로그에 초대장을 신청하신 분은 제발 신청하지 마십시오.
1. 초대 신청은 비밀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2. 블로그 개설 이유와 앞으로 운영해나가실 방향에 대해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3.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 초대장은 이메일을 통해 발송되므로, 이메일 주소를 적지 않으시면 초대장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신청기간이 끝나고 나서, 운영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7명을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7명보다 신청자가 적으면, 선정자 공지 후 바로 이메일로 초대장 배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당첨되지 않으시더라도, 맘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와 함께 하시고자 하시는 분들, 신청 해주십시요.
그럼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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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8. 12:08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감독: 이윤기
출연: 공유, 전도연
우울증에 걸린 아내를 둔 김홍기. 정신지체아들을 가진 이상민. 그들은 누군가를 지켜줘야만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내와 남편간, 자식과 부모간에 쌍방향의 공급과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어주기만 한다. 그러하기에 감정도, 체력도 고갈된다. 결핍된 그들은 이국땅에서 우연히 만났고, 빠르게 사랑에 빠져들었고, 서로를 탐닉한다. 두 사람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아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를 더 품지 않았을까. 결핍에 대한 이해라...그리고 서로의 결핍에 대처하는 남녀의 자세라고 해야할까...시작은 육체적 탐닉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남자와 여자는 달랐다. 핀란드에서 처음 만났을때부터 여자는 솔직하고 당돌했으며, 남자는 주저하며 애매했다.
"여긴 어때요?"
"뭐, 살기 좋아요.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죠..."
"대답이 뭐 그래요? 무성의하고 애매하게..."
그리고 서울에서 재회했을때도 남자는 애매했다.
"서울에 완전 들어오신거예요?
"그렇기도 하구, 아니기도 하구요."
여자는 솔직했다. 김홍기가 보고싶어 새벽녘에 그를 보려고 현관문으로 향하는데, 남편과 마주친다.
"이 시간에 어딜 가? (장난섞인 투로)남자라도 있나보지?"
"응...나 그 사람 없으면 안 되거든."
그렇게 이상민은 남편을 버려두고 김홍기를 보기위해 호텔로 가지만, 결국엔 김홍기를 나타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홍기는 이상민이 있는 호텔방 앞까지 갔다. 그 앞에서 가정에 대한 본연의 '책임'과 본능적인 사랑의 '욕구'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서 "1년 후"라는 문구와 함께 파경한 이상민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상민은 김홍기가 있는 핀란드로 찾아간다. 이상민은 아내, 그리고 딸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홍기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식당 안까지 쫓아가지만, 결국... 이상민은 김홍기를 보지 않고 그곳을 떠난다. 식당안에 앉아있던 김홍기는 그렇게 식당 문을 열고 떠나는 이상민을 우연찮게 보게되지만, 한 발 늦었다. 이미 차는 떠났다. 김홍기가 자신의 차를 타고 따라가려는 순간, 식당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딸과 눈이 마주친다.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 김홍기... 역시 그는 본능을 따라가지 않았으며, 결국 가정을 택한다.
영화는 남자와 여자의 미묘한 감정에 집중하며, 간간히 우울증에 걸린 김홍기의 아내와 이상민의 정신지체 아이를 소재로 긴장감을 유발한다. 영화가 절정에 치닫고 나서, 극의 전개는 앞뒤의 연계성을 찾아볼 수 없을만틈 급하게 반전되고, 마무리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기대했던 여운은 남지 않았고...'이 영화 뭐야..' 라는 공허한 말만 연신 내뱉었다.
한 가정을 가진 남녀의 사랑을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도 결국엔 불륜이다. 황혼의 이혼률이 신혼부부의 이혼율을 앞서가는 이 시대이기 때문에 '불륜'이 미화될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한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는 절대로 옳지 않다. 그 누구에게도. 그게 아무리 애틋하고 애잔한 사랑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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