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1. 00:23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감독: 안나 무이라에르트
출연: 헤지나 카제(발), 카르마 마르질라(제시카), 미셰스 조에우사스(파빙요)
애증관계란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관계를 일컫는다. 특히 엄마와 딸이 애증관계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딸은 나이가 들면서, 엄마가 겪었던 삶의 여정을 따라간다. 여자가 아닌 그 누군가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 과정이 모든 사람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한 아이의 엄마로서 느끼는 감정과 어려움들은 동일선상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하기에 서로 더 간섭하고, 더 사랑하며, 더 끌어안는 것이다.
세컨드 마더(The Second Mother)는 부유한 가정의 식모인 발과, 그녀의 딸 제시카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려낸 영화로써, 제시카가 대입시험을 치르기 위해 발이 살고 있는 집에 와서 살게됨으로써 생기는 사건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발은 제시카의 엄마로서 딸을 더 위해주고 싶지만, 그녀는 그 부유한 집에서는 엄마이기 이전에 식모다. 그렇다. 그녀는 집주인의 눈치를 봐야하는, 집을 모든 허드렛일을 맡아서 해야 하는 식모다.
하지만 제시카는 엄마와 달리, 다른 사람의 눈치를 잘 보지 않으며, 자기 주장이 확고한 이 시대의 여성이라고 할까. 암튼 둘은 엄격하게 다르다. 그러하기에 두 여성사이에서 긴장감이 유발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벌어진다. 그 긴장감은 절정에 치닫고, 결국 제시카는 대입전날 그 집을 뛰쳐나간다. 제시카가 가장 화가 났던건, 발이 자신의 엄마의 입장에서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해서 뭐할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 집에서 엄마이기 이전에, 식모이어야 했음을, 제시카는 알았을까. 그렇게 엄마와 딸은 애증관계에서 헤맨다. 결국, 어쨌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궁금하면 직접보라.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장면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첫번째는 발이 제시카의 대입시험성적 점수를 듣고 너무 기쁜 나머지, 집주인 여자와 그녀의 아들 파빙요가 함께 앉아 있는 방으로 뛰쳐들어가는 장면이다. 제시카는 경제사정이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 혼자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입시험에서 당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파빙요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대입시험을 망쳤다.
발은 침울해 하고 있는 모자앞에서 제시카가 대입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소리를 치며 좋아한다. 발의 그 행동은 그 집에서 천대받았던 딸의 억울함과 아픔들을 해소한 통쾌한 항변이었으리라. 그렇게 큰 소리치며 자기 딸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 발은 딸앞에서 엄마이기 이전에 식모였던 자신의 한탄스러웠던 모습을 떨쳐버렸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발이 파빙요 식구가 잠든 밤에 혼자 수영장에 들어가 제시카에 전화를 하며 물장구를 치는 장면이다. 제시카가 파빙요의 권유와 짖궂은 강요에 못이겨 수영장에 들어갔을 때, 발은 제시카를 아주 혼냈다. 왜냐면 그 수영장은 사모님의 것이기에 허락없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했던 발이 수영장에 들어간다. 그녀는 물장구를 치면서 아이처럼 웃었고, 때론 통쾌하게 소리없이 웃었다. 그녀의 소심한 반항이자 일탈이라고 할까. 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딸 제시카의 모습을 봤다. 엄마는 그렇게 딸을 닮아갔다.
영화를 보면서 모녀간의 애증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했으며, 우리 '엄마'를 한동안 떠올렸으며, 나도 엄마랑 애증관계가 아닌가, 자문했다.
The Second Moth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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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20. 23:14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출처: freeview.org
인간의 자유의지를 논하려면 먼저, 성경의 창조, 타락, 구속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아래 본문 중 서론의 내용은 필자가 썼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서평(http://kangsy85.tistory.com/357)의 내용에서 발췌했다. 그럼 시작해보자.
1. 창조, 타락, 구속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신(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시고 그들에게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 창조주(하나님)가 피조물(인간)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했기 때문에,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감수하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것들을 향유하였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선을 향하게 되어있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딤전 4:4
안타깝게도, 창세기에 기록되었듯이, 간교한 뱀이 하와를 유혹하여 인간들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게 한다. 그렇게 그들(아담과 하와)이 악을 행하게 됨으로써, 인간은 타락한 존재가 된다. 모든 의지와 욕구가 자아를 충족시키는데 몰두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인간이 타락하긴 했지만,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은, 하나님의 지적체계를 이어받은 존재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과 사고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하나님의 절대 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 -사랑, 온유, 기쁨 등-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가능성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부활로 인해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그리스도가 행하신 모든 일들을 믿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존재로서 살아가는 기회가 부여된 것이다. 즉, 본질적으로 신자는 생각하는 방향이 불신자와는 다르게 작동된다는 것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2. 신자와 자유의지
새롭게 된 신자는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통해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근원적인 죄악(아담의 죄)을 행함으로써 선과 악이 공존하는 육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달픈 인생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하기에 신자도 이기적이고 올바르지 못한 생각과 죄의 유혹 때문에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분명한 것은 신자는 불신자와 시작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죄를 단호히 거부하고, 의지적으로 싸우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창조시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선을 행하게 하기위함이었지, 악을 위한 도구로 만드신 것이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유의지의 창조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
그러면 우리는 ‘신자가 자유의지를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하나의 전제가 필요하다. 그 신자가 참된 신자라고 전제한다면, 참된 신자안에는 성령님이 계시고, 그분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이끌어주시며 그 가운데 지혜를 주신다. 또한 참된 신자는 자신의 삶을 항상 성경에 비추어 볼 것이기 때문에, 그 신자는 자신의 행동이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 의지적으로 애쓸 것이다. 이부분은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의 잘못한 것을 제대로 깨닫고, 그 부분을 고치려고 노력하였는가 또는 순종하였는가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섭리측면에서 문제의 대답을 이어갈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사역의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우리의 모든 것에 개입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선한방향으로 이끌어 가실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우리를 선한 방향으로 질질 끌고 가시진 않는다. 그리고 그 선한방향이라는 것은 우리의 측면에서 선하지 않은 방향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1) 우리가 인생전체를 알지 못한다는 것과 2) 결국에는 하나님이 우리는 선한 길로 이끄신다는 믿음안에 거하며 그분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선하게 창조되었고, 죄로 인한 타락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 그 방향이 왜곡되었으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이뤄진 구속사역으로 선한방향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은 창조와 타락은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구속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자들에게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라 하더라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아직 연약한 육체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죄와 싸워야 하는 존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신자는 의지를 사용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이 더해졌음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Free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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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8. 22:05 신앙/창세기 묵상
출처: blog.daum.net
참된 성경적 신학은 창조, 타락, 구속 세가지 원리를 균형있게 견지해야 한다.
창조된 모든 실재가 하나님의 손에서부터 왔고 본래부터 선했다는 것,
죄로 인해 모든것이 손상되고 오염되었다는 것,
그러나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되고 회복되고 변혁될수 있다는 원리다.
- 낸시 피어시, 《완전한 진리》, p. 187-
여기서 좀 더 생각해볼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하나님의 걸작품이 한순간에 타락하게 만든건 바로 죄라는 것이다. 죄의 파괴성과 그로 인한 절망과 슬픔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창세기 3장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난 다음, 완전한 선이신 하나님이 나타났을 때 타락한 그들은 숨어버렸다. 어둠은 빛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결국, 그들은 악한 행위에 대한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지음받은 존재로 회복할 수 있는 복음을 제시하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원시복음(창 3:15)이다. 원시복음에서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서 뱀(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나타난다고 이야기 하는데, '여자의 후손'이란 남자의 씨를 통한 자연적인 잉태과정을 거치지 않은 동정녀 탄생 1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하는 것이다. 그 당시에 아담과 하와는 깨닫지 못했겠지만, 하나님의 그들을 위한 구속의 역사를 미리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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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8. 21:4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뜻하지 않게 여러번 리더의 자리에 있었다. 그 자리는 언제나 책임감이 부여된 자리였으며,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했기에 사익보다는 공익을 택한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 개인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익과 공익이 충돌하면 공익을 우선시하게 된다. 성향과 맞지 않지만, 그 어색함을 무릅쓰는 것은 올바른 방향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내안에 '옳다'고 정의된 가치관과 삶에서 행해지는 행동의 괴리감에서 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보다, 차라리 책임감에서 부여된 삶의 무거움을 견디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맡은 바를 즐거이 하고 싶으나, 역할에 대한 책임감에 매여 경직되어 십상이다. 그렇게 '책임감'이란 것에 질질 끌려다니다 보면, 지치는건 시간문제이며, 다시 책임감이란 족쇄가 풀리면 어디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일이다. 그저, 은혜를 구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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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2. 00:33 삶을 살아내다/실수(失手)
1. 아버지께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
자식된 입장에서 부모님의 선택과 행동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한동안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고심끝에 부모님이 선택한 방향은 선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그리고 나는 몰아부쳤다. 그 결정은 옳았다고 생각되나, 그것을 행하는 과정이 올바르지 않았다. 아버지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와 말투에 나는 화가났고, 분을 삭히다가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당신이 그러시니 내가 그러는거 아니냐고... 부모님에게 나의 의견을 차분하고 조리있게 말했으면 좋았으렸만... 감정을 앞세워 결론만을 내세웠고, 다그쳤다. 어찌 그리했는가... 가슴이 미여진다.
2. 엄마가 내 눈치를 봤다.
아버지께 언성을 높이고 나서, 엄마와 단 둘이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갔다. 아버지와의 일 때문에 나의 표정은 굳었으며, 말을 나오지 않았다. 뼈다귀 해장국을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엄마는 아무 말없이 밥만 먹는 내게 인상 좀 펴라고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그 때 나는 엄마의 표정을 봤다... 우리 엄마가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하...이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난 의식적으로 엄마에게 몇마디 말을 건네면서 말문을 열었다. 무엇을 그리 잘했다고 엄마가 내 눈치를 보게 해야 했는지...이 빌어먹을 자식아.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지... 얼마나 파렴치한 인간인지... 얼마나 은혜를 모르는 인간인지... 적나라하게 나를 직시하는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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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5. 21:16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www.badaklee.com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삶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 왜냐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온 인생이 당신의 삶이라는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지리멸렬한 삶도 오랜 세월 봐왔습니다. 그러함에도 당신의 삶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이 분한 마음은 어찌된 것일까요. 마음 속 울분이 자꾸 치밀어 오릅니다.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당신의 모습은 늘 두렵고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리고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한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아니, 소리치고 싶기도 합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 하겠습니까..."
"꼭 그렇게 말해야 속이 후련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말이죠. 내가 더 힘든 건...삶 가운데 부정하고 싶은 당신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다시 그러지 말아야지 각오하지만, 자주, 그리고 아주 쉽게 내뱉어지는 말과 몸에 밴 행동은 당신의 삶을 너무 닮아있습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당신의 삶을 내가 고스란히 살아낼까봐... 당신의 삶에 할 말을 잃고, 그 삶에 전이된 나의 삶에 숨이 막혔습니다. 이렇게 나는 또 다시 아픕니다.
삶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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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 22:46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www.quotehd.com
말을 잃어버린 어느 저녁밤에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글을 쓴다...악한 본성과 마주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며, 화를 참지 못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며, 뜻대로 안되면 말을 하지 않고, 상당히 많은면에서 아주 이기적인, 하찮은 막돼먹은 인간임을. 이 모습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지 않을까, 너무나 아찔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데, 당신은 어제의 나를 이야기 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 간극속에서 멀어진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이 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성숙한 나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아닌 듯 하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형편없다는 것을 직시하게 되는 새해 첫날이다. 한해 한해를 살아간다는 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이 성숙해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애써왔건만...지금 나는 실망했고 실망하며 아프다. 마음도 몸도 쓸쓸히 아프다. 웃지 못하고 쓸쓸하게 시작하는 병신년에는 무슨일이 일어날까, 기대하기보다는 걱정되는 밤이다. 말을 잃다.
Lost for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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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31. 23:57 신앙/감사(感謝)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감사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 칼 바르트, 《교회 교의학》
1. 연말에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음에
2. 말의 지혜가 더욱 필요함을 느끼게 하심에
3. 지체들과 교제의 폭이 넓어지게 하심에
4. 두통이 나을 수 있게 하심에
5. 토익 목표점수를 달성하게 하심에
6. 교회의 일원으로서 여러가지 분야에서 섬길 수 있게 하심에
7. 성탄절 이브행사의 연극에서 역활을 잘 감당하고 무사히 마치게 하심에
8. 책모임을 통해 공동체의 실제적인 모습들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게 하심에
9. 더욱 기도에 힘쓰게 하심에
10. 새벽기도에 다시 나갈 수 있게 하심에
11. 로마서 말씀을 밀도있게 공부할 수 있게 하심에
12. 2015년을 잘 마무리 하게 하심에
13. 가진 것들에 만족하게 하심에
14. 하반기에 블로그 운영에 더 집중함으로써, 블로그를 성장시킬 수 있었음에
15.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심에
16. 스스로 공부법을 점검할 수 있게 하심에
17. 소개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심에
18. 가진 것을 나누게 하심에
19. 취업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심에
20.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시고, 차근차근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의지를 허락하심에
실제적인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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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제목(9.19-9.22) (0) | 2015.09.22 |
일상의 감사(8.24) (0) | 2015.08.24 |
2015. 12. 31. 23:30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출처: iamkorean.com
이병헌이 배우로서의 실력과 공인으로서 책임져야 할 도덕성의 문제를 어떻게 연관지어 생각해야 하는가. 파렴치한 인간이었던 '이병헌'은 「내부자들」을 통해 연기로서 다시 한번 인정을 받으면서, 배우 이병헌으로 탈바꿈했다. 네이버에서 이병헌의 연관검색어는 내부자들과 관련된 단어로 거의 바꼈고, 구글(Google) 이미지에서 이병헌을 검색하면 이병헌과 다희, 그리고 이지연을 함께 볼 수 없다. 이병헌은 이미지 변신에 보란듯이 성공했다. 배우가 연기로 승부해야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나, 공인으로서의 도덕성과 배우로서의 연기를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출처: calfocus.com
이병헌을 보면서 삼성을 생각했다. 삼성은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성이 결여된 여러가지 사건들과 연루되어 있다. 특히, 삼성반도체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백혈병 사태에 대하여 방관하며 문제를 회피하려고만 한다. 2007년 삼성업체 노동자가 죽었을 때 삼성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 공화국의 일원임을 고백한다. 삼성 제품은 타사에 비해 가성비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a/s 체계도 잘 되어있어서, 제품을 고를때 고민없이 삼성을 선택한다. 기업의 도덕성과 그 기업 제품의 우수성은 별개이어야 한다는 논리하에 말이다.
삼성의 도덕성을 비난하긴 하지만, 그 파렴치한 행위가 나의 권리와 행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면 나는 행동하지 않는다. 행동이 없는 지식은 죽은 것인데 말이다. 사회에서 개인을 먼저 분리하고, 그 다음 기업에서 도덕성과 그 기업이 만들어낸 제품을 따로 떼어 생각한다. 그리하며 삼성의 제품을 고르는 것은 사회의 악을 저지르는 한 기업의 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개인의 기호에 따라 하나의 상품을 구매한 것 뿐이다, 라는 결론을 맺게된다.
그러하다면, 나는 이병헌이 열연한 내부자들을 볼 것인가, 2015년이 저물어가는 마지막 날에 다시 묻고 있다.
모순: 창과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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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22. 23:2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darkgreysoul.blogspot.com
요즘 자주 누군가를 만났으며, 무리에 오랫동안 속해 있었으며, 나보다는 다른 뭔가에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나와 내가 아닌것 같은 나에게로 이어진 연장선의 불분명한 지점에서 외줄타기를 하듯 휘청거리고 있다. 지금 나에게로 향하려는 자아에 대한 욕구가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흐름에 따라 정해진 나이에 걸맞는 경제활동과 능력을 가져야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고, 31살이라는 삶의 무게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기에 내 자리를 묻고 있는것이다.
헬조선에서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열심히 하는것으로 부족하다. 잘해야한다. 누가 모르냐. 헬조선에서 정의는 불법과 싸워 이길 힘을 잃었고, 일개 국민의 소리는 개짖는 소리보다 더 하찮게 여기는 근혜누나의 독재정치는 아버지의 정치를 꼭 빼닮았다. 안철수 아저씨는 괜히 정치판에 끼여 안개속을 거닐고 있고, 가끔 횡설수설 하기도 하며, 국민의 기대를 처참히 저버렸다. 정치는 삼류개그며, 개그콘서트에는 '개그'가 실종되었다고 생각하며, TV를 끈다
유투브의 '철구'를 보며 석사학위는 일찍이 개나 주는게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헬조선에서는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논리에 어느정도 수긍하며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을 조금씩 읽는다. 그렇고, 그러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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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5. 12:56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출처: news.joins.com
면접장에 네이비톤 정장을 입은, 머리스타일만 조금씩 다른 복제한듯한 청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었다. 사회가 규정해놓은 틀에 대다수가 갇혀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앉아 면접자들을 바라봤다. 무엇을 그리 열심히 외우고 있는건지. 한참을 바라봤고, 한참을 생각했다. 기업이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지 않을까...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에 적합한 사람임을 드러내야 하고... 아, 싫다.
면접실에서 국정화 교과서의 찬반에 대하여 묻는 질문에 나는 다른 면접자들과 다른 의견을 내비쳤고, 면접관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노조는 반드시 존재해야 된다고 표명했으며, 당신은 왜 그것을 묻느냐고 되묻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묻는말에, 어처구니 없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서글픈 현실앞에서, 애석하게도 웃었다.
어쩌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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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30. 16:59 삶을 살아내다
최근 한국인 고등학생이 불러 더 유명해진 곡, Adele의 'Hello'.
Adele의 풍부한 성량과 독보적인 가창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번곡만은 Leroy Sanchez가 부른 Hello가 더 와닿았음을 알리며.
Leroy Sanchez는 youtube에서 유명한듯.
Hello, it's me
I was wondering if after all these days you'd like to meet
To go over everything
They say that time's supposed to heal ya
But I ain't done much healing
Hello, can you hear me?
I'm in California dreaming about who we used to be
When we were younger and free
I've forgotten how it felt before the world fell at our feet
There's such a difference between us
And a million miles
Hello from the other side
I must've called a thousand times
To tell you I' sorry, for everything that I've done
But when I call you never seem to be home
Hello from the outside
At least I can say that I've tried
To tell you I'm sorry, for breaking your heart
But it don't matter, it clearly doesn't tear you apart anymore
Hello, how are you?
It's so typical of me to talk about myself, I'm sorry
I hope that you're well
Did you ever make it out of that town
Where nothing ever happened?
It's no secret
That the both out us are running out of time
Hello from the other side
I must've called a thousand times
To tell you I' sorry, for everything that I've done
But when I call you never seem to be home
Hello from the outside
At least I can say that I've tried
To tell you I'm sorry, for breaking your heart
But it don't matter, it clearly doesn't tear you apart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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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22. 21:5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이른아침 역할분배와 책임에 대하여 질문을 던졌고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일으킵니다. 늘, 이런식입니다. 비가 내리려나 봅니다. 빗방울 하나가 볼을 스칩니다. 차갑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한 방울, 두 방울, 겨울비가 오려나 봅니다. 몸은 피곤합니다. 입은 굳게 닫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지껄였던 탓에 더이상 말을 하기가 싫습니다. 늦은 저녁 역할의 분배와 책임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역할이 주어지면,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하고, 책임져야 하면, 다시 갇혀버릴것 같다, 두 발이 묶여 버릴것 같다, 고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배가 고픕니다. 입맛은 없는데, 배는 고픕니다. 취사실에 올라가서 라면을 끓입니다. MSG와 면이 물에서 요란하게 끓습니다. 끓인 라면을 식탁에 가지고 와서, 살기 위해 먹습니다. 누군가 취사실에 들어옵니다. 몇번 본 적은 있으나, 그에 대해 아는건 없습니다. 다만, 좁디 좁은 한평 남짓한 고시원에 산다는 사실밖에는. 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온 반찬을 식탁에 놓습니다. 밥통에서 따뜻한 밥을 퍼서 식탁에 놓습니다. 아무 말없이 각자의 식사를 합니다. 젓가락과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와 쩝쩝거리는 소리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적막함이 취사실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적막함 가운데 스며든 어쭙잖은 쓸쓸함이, 나와 만나 온전해집니다. 그와 나는 같은 공간에 마주하고 있지만, 어차피 우리는 서로 아무것도 모르니, 진정 내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존재하는 '쓸쓸함'입니다. 그 쓸쓸함은 나를 안정시키고, 나는 그 쓸쓸함을 사랑합니다. 조금 울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혼자인데.
"나 카페가는데, 잠깐 나올래요?"
"아니, 나 할일이 있어서...못 나갈 것 같아"
"알았어요..."
내가 먼저 다가갔는데 이렇게 다시 물러섭니다. 당신의 삶에 개입하려 했다가 당신이 가진 삶의 무게에 겁이 나서 다시 도망쳤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늘 이런식입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내가 싫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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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16. 16:4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 황인숙 <강> 중에서 -
당신과 내가 서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도 나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서로 말하진 않지만, 당신이 내게 바라는 것이 있고 나도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서로의 눈빛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만났으니까요.
당신의 필요는 나의 노력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나의 필요를 당신이 채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난, 상당히 까다롭거든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을 생각입니다. 굳이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귀찮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쿨해야 하니까요.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예의와 적당한 배려로 일관하는 것은 당신의 필요만을 채워주고 미련없이 떠나려는 나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굳이 나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더라도 말이죠. 몹쓸 미련과 애정때문에 구차하게, 질척거리지 않겠다는 나의 단호한 의지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곧 멀어질거니까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거니, 걱정따위는 하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생각의 편린들. (0) | 2015.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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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14. 20:49 신앙/감사(感謝)
1. 시험 시간에 집중해서 문제를 풀 수 있었음에
2. 부모님을 재정적으로 조금 도울 수 있음에
3. 스스로의 죄인됨에 다시 자각하게 하심에
4. 삶을 다시 되돌아 보게 하심에
5.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게 하심에
6. 나의 가진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게 하심에
7. 블로그 운영을 꾸준하게 할 수 있게 하심에
8. 아버지 치과 수술이 진행되게 하심에
9. 이어폰 덮개를 찾을 수 있게 하심에
10. 매주 교회 주방봉사에 늦지 않게 하심에
11. 월요 복음강좌를 준비하는데 도울 수 있게 하심에
12.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주심에
13. 시간내서 운동을 하게 하심에
14. 금요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게 하심에
15. 다른 것에 신경쓰지 않고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하심에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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