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라

2023. 12. 2. 21:38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https://m.blog.naver.com/seungmiart/221192843862

 

 어젯밤 저녁 아내의 소변에서 핏빛이 비쳤다. 내심 두려웠다. 아직 태중에 있는 자그마한 생명체의 심장박동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쩌면, 아니야..."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생각하는 건 불안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이순간 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욥기의 고백이 떠올랐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기 1:21)

 

 10월까지 자연 임신이 되지 않으면 시험관을 시도하려고 했다. 근데 때마침 조그마한 생명체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때에 아이를 보내주신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우리가정에 새생명을 보내주신 하나님을 그저 믿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음파로 아기의 집을 실제로 보고나서 혹시나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생길까봐 두려워했다. 불신앙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창조자이자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게 우연이란 없다. 그러니,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선하신 것을 베푸신다는 그저 믿으면 되는 것이다.

  이른 아침,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마음 속 불안함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다시 하나님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기억하며 별일 아닐 거라고 속으로 되뇠다. 다행히, 아내의 상태도 크게 나쁘진 않았다. 병원에 진료 접수를 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만을 기다렸다. 20분쯤 지났을까, 아내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아내를 따라 진료실에 들어갔다. 선생님께 지난밤 소변에서 핏빛이 비쳤다고 말씀을 드렸고, 선생님께서는 초음파로 한번 검사해보자고 말씀하셨다. 아내와 함께 초음파 화면을 응시했다. 선생님께서 초음파 장치로 이곳 저곳을 만지니까 서서히 아기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번때 보이지 않았던 난황과 아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다행이다. 선생님께서는 심장박동 소리도 들을 수 있겠다면서 아기쪽으로 초음파 장비를 가지고 가셨다. "쿵쾅쿵쾅" 조그마한 생명체의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불안이 절정의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면서 다시 생각한 것은 나의 연약함이었다. 나의 마음이 얼마나 빨리 두려움과 불안에 빠지는지, 얼마나 자주 불신앙의 모습을 드러내는지, 신앙의 불편한 민낯을 직면했다. 다시 소망하는 것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마다 나의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의 위대함과 전능하심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다. 욥의 고백이 나의 진정한 고백이 되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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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면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청춘의 삶이 안쓰러웠다

2023. 9. 29. 16:03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지난 목요일부터 왼쪽 눈썹 옆에 조그마한 두드러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포진으로만 생각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의 두통과 함께 얼굴 한쪽 면이 화끈거렸다. 인터넷에 증상을 검색해보니 대상포진의 초기 증상과 비슷해 보였다. 대상포진은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생긴다는 네이버 글에 덜컥 겁이 났다. 퇴근하고 급히 마취통증의학과 병원을 방문했다. 늦은 시간이라 병원은 한산했고 환자는 나 혼자였다. 

 의사 선생님은 내 증상을 보고 현재로선 띠 모양의 포진이 아니라서 대상포진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대상포진의 가능성이 있으니 예방 차원에서 치료를 잘 해보자고 나를 안심시켰다. 주된 치료은 근육 주사 치료였다. 주사를 맞기 전에 근육을 풀어주기 위한 초음파 치료와 물리 치료를 병행했다. 물리치료사가 몸의 근육을 풀어주면서 목 근육이 일반 사람보다 매우 딱딱하다고 말했다. 손가락으로 근육을 누르는데 근육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등과 목 근육이 많이 경직되어 있으며 몸 전체 근육의 긴장도가 높다고 말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물리치료사의 말에 나는 궁금했다. 내 근육은 평상시에도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것일까.

 지나간 세월을 떠올렸다. 제대하고 나서 인생의 올바른 방향을 찾던 시절, 삶의 여러 부분에서 경직되어 있던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실수가 잦았던 스무살 청년의 때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실수를 할 때마다 자책하면서 말과 행동을 점검했고, 다시 실수하지 않을 때까지 스스로 몰아 붙였다. 스무살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 그 불안감이 엄습해 잠 못드는 날이 많았다. 스스로 내 삶을 지키지 않으면 이대로 무너져 버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마음 저변에 깔려있었다. 불확실한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나를 항상 긴장하게 하지 않았을까. 긴장하면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청춘의 삶이 안쓰러웠다.  

 이제는 몸에 힘을 빼는 연습도 조금씩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확실했던 20대와 고되었던 30대를 지나 불혹(不惑)의 40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적절한 에너지의 안배가 중요하다. 모든 곳에 에너지를 쓸 수도 없다. 평소에 힘을 좀 빼고 살아야 다시 힘을 줘야할 때 힘차게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그동안 각박한 삶을 사느라 몸에 온 힘을 주고 살아온 나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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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속에서 맞이하는 한 줄기의 이파리처럼

2023. 6. 11. 21:3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비극으로 마무리될 뻔한 우리의 여행이 희극으로 바뀌면서 낯설던 집안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한동안 방치되었던 반려 식물이었다. 몬스테라의 한 줄기에서 새로운 이파리가 눈에 띄게 자라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줄기 사이로 자그마한 이파리가 비집고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곧 자라겠구나' 생각하며 집을 떠났었다. 집을 비운 며칠 새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성큼 자라버린 새로운 이파리를 보면서 비극 속에서 희극을 꿈꾸던 나를 생각했다. 

 지난 여름, 몬스테라는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여러가지 일에 치여 몬스테라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저러다가 곧 죽는 게 아닐까' 라는 비관적인 물음이 내 마음을 붙잡기도 했지만 이내 모른척 하고 쌓인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바쁜 일이 끝나고 숨쉴 틈이 생겼을 때 메말라가는 몬스테라를 발견했다. 기어코 죽지만은 않겠다는 몬스테라의 자그마한 줄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죽어가는 몬스테라를 살려보겠다고 분갈이를 하고 주기적으로 물을 주면서 온갖 애정을 다 쏟아 부었다. 몬스테라도 나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다시 힘을 내어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나의 줄기에서 조그마한 이파리가 생겨나 점차 컸고 뿌리에서 또 다른 줄기가 생겨났다. 시간이 지나 한 개의 이파리에서 두 개의 이파리가 되었고, 다시 세 개의 이파리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 이파리가 자라나고 있다. 몬스테라도 죽어가는 비극 속에서 자신이 살아날 희극을 꿈꾸었을 것이다.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말이다. 마침, 나도 몬스테라의 비극 속에서 소망을 꿈꾸었다. 비극은 희극으로 전환되었다. 생각해보건대, 몬스테라가 다시 희극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비극을 겪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비극 속에서 희극을 꿈꾸지만, 그렇다고 희극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원래 인생이라는 것이 비극과 희극의 총집합이 아니던가. 비극도, 희극도 다 극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러함에도 몬스테라와 나의 삶이 희극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은 기쁜 일이기도 하다. 비극 속에서 맞이하는 한 줄기의 이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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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미루어두었던 일은 다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2022. 9. 29. 23:03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우리해리와 함께 떠난 첫 파주 헤이리 마을 여행.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여행 일정을 갑자기 정한 탓인지, 미뤄두었던 일들이 눈에 밟히었다. 늦잠을 잔 탓도 한몫했다. 부리나케 온라인 위탁 교육을 듣고, 서둘러 전세보증금 대출 여부도 확인하고, 미루어두었던 혼인신고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바쁘다. 마음은 바쁜데 시간이 없다. 떠나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아무래도 미루어두었던 일은 다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채 집을 나섰다. 파주로 향하는 차안에 무거운 침묵만이 우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도착한 헤이리 마을. 마을로 들어서자 차를 타고 지나온 파주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 나무와 가지, 예쁜 건물, 그리고 여유로운 사람들. 예약한 모티프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맘은 한결 가벼웠다. 떠나는 자의 자유와 낯선 곳의 새로움이 기분을 다시 좋게 만들었다. 

 모티프원 안내 직원을 도움을 받아 suite-black 방으로 올라갔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가을 햇살이 우리를 맞아주었고, 싱그러운 녹색의 식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어쩜 이렇게 예쁜 것인지.

 분주했고, 서둘렀던 모든 마음들이 다시 평안을 되찾았다. 망설였던 마음도 이제는 지나간 일이다. 잔잔하게 흘러 퍼지는 음악과 따스히 내리쬐는 햇볕이 이 공간을 꽉 채운다.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온라인 교육을 듣게 해주려는 우리해리의 따뜻하고 예쁜 마음이 더 고마웠다. 우리해리가 아니었다면 나 혼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툴툴거리는 나를 이곳까지 데려와 준 우리해리의 손을 잡고 다시 이곳을 방문해야겠다는 마음도 슬며시 맘 한켠 자리 잡았다. 

 방 중간에 가만히 앉아 오랜만에 집어든 시집을 찬찬히 읽었다. 다시 시집을 집어 들었다는 것이 기쁜 일이었고, 가을의 한 지점에서 시를 읽고 있다는 것은 더욱이 기쁜 일이다. 

 일상을 분주함을 내려놓고 찾아온 헤이리 모티프원. 아마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추억될 것이다. 우리해리와 함께 보냈기에 더 행복했고 더 따스했던 어느 가을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다. 

 

 "암술에 도착한 꽃가루란 하나의 기적이다 / 다시 해볼 것도 없이"

- 이현승, <은유로서의 질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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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억] 2022년 2~3월

2022. 3. 15. 22:16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2월 9일
- 수원을 떠나 연천으로 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분주히 짐을 정리하고 이삿짐센터 트럭에 끼여 탔다. 연천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많이 막혔다. 연천까지 가는 데 무려 2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의정부 본사에 인사 드리러 급하게 집을 나섰다.

2월 11일
- 연천에 아직 적응도 못 했다. 하지만 경주에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5시쯤 사무실을 나와 동두천 역으로 향했다. 동두천역에서 서울역까지 한 자리에 앉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서울역에 내려 2층 식당 밀본에서 비빔국수와 군만두를 시켜 배부르게 먹었다. 경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밤 공기가 생각보다 찼다. 그래도 잠자리는 맘에 들었다.


2월 14일
- 처음으로 공용차량에 소장님과 과장님을 태우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운전이 미숙해서 조금 긴장하긴 했지만 식당으로 가는 길은 별탈없이 잘 운전했다. 하지만 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옆에 오는 차를 보지 못하고 부딪힐뻔 했다. 아아... 다행히 조수석에 타고 있던 소장님이 "차! 차!"라고 크게 말씀해주셔서 부딪히지 않았다. 다만, 내 마음이 조금 위축되었을뿐이다.

2월 17일
- 쏘렌토에 처장님, 부장님, 소장님, 과장님을 태우고 안전하게 사무실에 도착했다(운전스킬 1+)

2월 18일
- 사무실에서 5시에 나와 경주에 도착하면 10시가 넘는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1시간 더 빨리 나왔다. 이번에는 소요산역에서 서울역으로 향했고, 서울역에서 경주로 가는 기차를 바로 탔다.

2월 19일
- 웨딩박람회(포항)

2월 25일
- 웨딩홀 투어(포항)

2월 26일
- 우리 해리가 부모님께 인사드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3월 5일
- 스튜디오 상담(경주), 예물 투어 1(포항)

3월 12일
- 우리해리 생일파티 / 예물 투어 2(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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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숙제가 아닌 축제로 생각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2021. 9. 5. 19:1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 Pinterest

 

"삶을 숙제가 아닌 축제로 생각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밀라논나라는 예명을 가지고 활동하는 장명숙씨가 방송에서 한 말이다. 정확한 문장을 생각나진 않지만, 요지는 삶을 즐기면서 살라는 것이다. 그 방송을 보면서 언제가 삶을 숙제로만 생각하며 살았던 나를 생각했다. 매번 무언가를 해내야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사면 고단하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삶을 숙제처럼 여기고 살고 있다.

이 시대의 현실이 나를 비롯한 젊은이들에게 삶을 숙제처럼 의식하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해서 환경만을 탓할 수만 없는 것이고 또 모든 젊은이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한번의 인생, 매일마다 주어지는 하루라는 선물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참 아쉽게 느껴졌다. 인생이 고단할 때가 많은 건 사실이다.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사회는 점점 서로에게 예민해지고, 각자 처한 상황에서 스트레스와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 그러함에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는 값지다고 생각한다. 잠에서 깨어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그 축복된 삶 가운데 맡은 바 일을 감당하며 다시 살아가는 것도 은혜이다. 일상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요즘, 이미 오랜 세월을 살아간 어른의 말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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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2021. 8. 28. 22:1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 JTBC 뉴스

 1년의 해외 선교를 다녀와서 무기력한 상태로 몇달간 지냈다. 선교에 대한 회의와 의문만 남긴채 현실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다시 남은 대학생활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한국에 2월에 입국했고, 3월에 대학생으로서 새학기를 시작했다. 2년간 휴학하고 다시 복학하니까 대학교 동기들은 대부분 졸업하고 학교를 떠난 상황이었다. 전공공부를 하려면 동기가 있어야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는데 아는 친구들이 없으니 스스로 더 공부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년간 전공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다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감도 컸다. 

 두렵고 떨리는 상황에서 먼저 기도하기 시작했다. 새벽기도에 나가서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모든 두려움과 걱정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면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기도만 열심히 한다고해서 내가 해야할 공부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와서 바로 김밥 한줄을 후다닥 먹고 바로 학교 도서실로 향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오전시간을 이용해서 배워야 할 공부를 예습하고 못했던 전공 레포트를 작성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몸이 피곤했던 탓에 도서실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적도 많긴하다. 그때는 꾸준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그냥 목표였다. 4학년 1학기에 새벽기도를 하고 학교에 가는 생활 습관을 어렵게 지키냈고, 열심히 공부한 덕에 4년 대학생 기간 중 가장 좋은 학점을 얻을 수 있었다. 스스로도 놀랐지만 심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거둔 나 자신이 기특했다.

 다시 캠퍼스 생활을 시작하면서 힘들때마다 마음 속으로 되뇌였던 문구가 있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이솝우화에 나오는 문장인데, 이 말의 요지는 상황을 탓하지 말고 지금 내가 처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마다 내가 맞닥뜨린 상황을 탓하지 않고 어떻게 이겨내서 앞으로 나아갈까 생각했다. 결국 이러한 태도가 내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누구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삶에서 힘든 일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 자체에 매몰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처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와 나를 딛고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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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고작 그 정도일 뿐이다

2021. 8. 24. 21:4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성난 목소리로 나를 위협했던 민원인이 다시 찾아온다는 전화를 받고나서 마음이 불안해졌다.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염려하며 내심 마음 졸이고 있었다. 지난번 민원인과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던 후에 목소리를 높이는 민원인을 만나면 마음이 불안해지는건 사실이다. 다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봐 지레 겁먹는다. 겁먹은 탓에 상스러운 말로서 나를 몰아부치는 민원인에게 굳이 맞대응하지 않는다. 근데 알량한 자존심일까. 물러서지 않고 굳이 버티고 앉아있는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아닐까'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 어쩔 수 없는 겁쟁이인가 보다.


 혼자서 불안해하는 나를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굳이 그래봤자 민원인한테 멱살 잡히기밖에 더하겠어?' 그래, 막연하게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그 상황이 발생하면 정신적으로 좀 힘들 수 있겠지만, 그 상황이 아주 최악은 아니다. 불안한 마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마음은 한결 편해진다. 그래, 고작 그 정도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볼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내게 해를 가한 민원인을 완전히 용서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맞대응하지 않았고 분내지 않았다. 당황해서 아무런 대응도 못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성적으로 잘 대처했다. 이번 일을 통해서도 신자로서의 삶을 조금 더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내하고 견디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십자가로 인한 고난은 아니지만, 충분히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갈 좋은 기회이긴 하다. 잘 헤쳐나가기를 스스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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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에 대한 불편함도 한몫한 것 같다

2021. 8. 13. 16:4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버스를 오랜시간 탔기 때문일까. 경주 집에 도착했을 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3개월만에 부모님을 뵈었지만 내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아버지는 저녁식사를 하고 계셨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반찬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큰 방에 앉은 뒤 계속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부모님과 별 대화도 하지 않고 바닥에 누워서 TV 화면만 응시했다.


 경주 집에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내 방이 없다. 주로 어머니가 계시는 방에서 쉬긴하는데 뭔가 편안하지는 않다. 낡은 집에 대한 불편함도 한몫한 것 같다. 몇해전 돈을 보태줄테니 좀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라고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냈으나, 그날 대화는 결국 내 결혼 이야기로 점철되었다. 부모님 걱정하지 말고 나부터 먼저 결혼하라는 것이다. 그 뒤로는 이사에 대해 한번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몇개월 전 아버지는 갑자기 전화오셔서 무작정 몇백만원을 빌려달라고 말씀하셨다. 돈의 용도를 물었으나 아버지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고 돈이 있으면 빨리 빌려달라고 재촉하였다. 자다 일어난 탓에 돈의 용도와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고, 피곤해지기 싫어서 아버지에게 돈을 보냈다. 며칠 뒤 안 것이지만 결국 그 돈은 아무 쓸모 없는 데 사용되었다. 아버지가 돈을 어디에 쓰는 지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고 돈을 빌려준 내가 어머니와 누나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웃긴(?) 상황도 발생했다. 그 뒤로 아버지에게 그 돈에 대해 묻지 않았다.


 집이란 본래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본가를 떠난 지 오래된 탓인지 경주에 가면 언제나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내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다가 집 근처 바닷가에 바람을 쐬러 외출했다. 밖에 나와서 책을 읽고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지만, 몇시간동안 연락되지 않는 엄마와 외출하기 전에 본 아버지의 굽은 등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예민한 탓일까, 부모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것일까. 자꾸 쓸데없는 질문이 떠오르지만, 답이 없는 질문은 결국 머리만 아프게 할뿐이다. 본가에서 지낸 며칠동안 불만과 짜증만 가득 쌓인채 결국 개운하지 않은 감정만 남기고 다시 떠나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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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목표(8월)

2021. 8. 11. 16:1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1. 경건생활

 - 기도 : 20분/일, 오후 9:30~10:00

 - 말씀묵상 : 10분/일, 일어나자마자 

 

2. 자기계발 

 - 독서 : 30분/일, 오후 9:00~9:30

 - 서평 : 1개/주

 - 달리기 : 30분(1회/주), 목표 : 15km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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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보지 않기 위하여 살아온 여러 세월이 있었다

2021. 8. 8. 20:21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피해 보지 않기 위하여 살아온 여러 세월이 있었다. 나라도 내삶을 지키기 위해 힘쓰지 않는다면 스스로 무너질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더 몰아세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20대에 '인생은 혼자'라는 가슴 아픈 명제를 삶으로 확인하고 나서 스스로 살기위해 발버둥치지 않았나싶다. 그때의 나도 안쓰럽지만, 개인주의로 점철되어 기대어 살지 못하는 지금의 나도 안쓰럽다. 40살에는 그 사람의 삶의 흔적이 얼굴에 드러난다고 하는데, 내 얼굴이 삭막해진 시대의 모습과 닮아있진 않을까 내심 걱정되기도 하다. 뭐, 벌써 많이 닮아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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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잘 살라는 마지막 선물과 같은 것이다

2021. 4. 16. 21:5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30대 초반부터 여자 사람 친구들이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된 여자를 전처럼 마냥 친구로 대할 수 없었다. 친구라면 일상을 편하게 나눌 수 있어야할텐데 한 남자의 아내가 된 여자 사람 친구에게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왜, 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해야하는가란 질문에 마땅히 대답할 거리가 없다. 우리는 다른 길에 들어섰고 이제 서로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결혼하는 여자 사람 친구와의 관계를 끝내는 시점은 결혼식이다. 서글프긴하지만 그간의 정든 관계를 축의금으로 마무리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물질주의로 환원시키는 우둔함이긴 하나, 어차피 멀어질 관계이니 미리 정리하겠다는 심산이 크다. 코로나시대의 청첩장에는 신랑, 신부의 계좌번호가 선명하게 적혀있다. 결혼하는 여자 사람 친구에게 미리 축의금을 보냈다. 어차피 많이 모일 수 없는 시기이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할 것이니 미리 축의금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애당초 내 손을 떠나버린 축의금을 다시 돌려받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잘 살라는 마지막 선물과 같은 것이다. 그래, 친구야, 네 삶의 길에서 잘 살면 되는거야. 부디, 몸 건강히 잘 지내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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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질 일이 벌어진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2021. 4. 11. 18:11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요즘 생각이 많아지면 바로 신발 끈을 조여매고 안양천을 달린다. 관계든 일이든 일단 생각을 내려놓고 달린다. 달리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아니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기보다 벌어진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이미 물은 엎어졌고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기 때문이다.

 살고싶다는 농담에서 허지웅 작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벌어질 일이 벌어진거다. 그러니까 괜찮다.'며 몇번을 되뇌인다. 누구를 탓하고 싶지도 않고, 자책하고 싶지도 않다. 터질 일이 터진거다. 어쩌면 일종의 회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하지만 누구탓도 하지 않은채 상황을 받아들이면 맘이 편하다. 편한 마음으로 숨이 차오를때까지 달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리면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그래, 벌어질 일이 벌어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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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박넝쿨과 나의 합숙소

2021. 4. 3. 23:07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운좋게 합숙소에서 1년간 혼자 지냈다. 약 25평의 아파트에 혼자 지냈으니 거실과 부엌은 내 공간이었다. 내게 필요한 기구들과 내용물들을 잘 정리해놓고 내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달전 신입이 합숙소에 들어왔다. 혼자 살고 있던터라 신입이 한 공간안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부담되고 불편했다. 굳이 왜 합숙소에 들어오려는 것이냐라는 불만도 내재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원래 합숙소는 내 전용공간이 아니다. 합숙소는 현장으로 발령받은 직원에게 주어진 혜택이며, 모든 직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좋은 기회로 합숙소를 혼자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지, 처음부터 나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집 전체를 혼자 사용하다가 신입사원이 합숙소에 들어오면서 나의 공간이 줄어든 것에 대한 불평을 터트리는 나를 보면서, 요나가 떠올랐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욘 4:9

 

 요나가 니느웨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자 그들은 그 말을 듣고 회개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백성에서 재앙을 내리려고 했던 뜻을 돌이키셨다. 그 상황에 화가 난 요나는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늘 아래 앉아서 니느웨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지켜봤다. 그때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여 그늘을 만들어주어 요나의 머리를 가렸다. 그랬다가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해서 박넝쿨을 다 갉아먹게 하여 박넝쿨이 시들게 되었다. 요나의 머리를 가리던 박넝쿨이 사라졌으니, 해가 뜰때에 강한 햇볕이 요나의 머리를 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상황을 통해 요나에게 니느웨 백성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을 알려주셨다. 하나님의 메시지와는 별개로, 요나에게 거저주신 박넝쿨과 나의 합숙소를 함께 생각했다. 분명히, 합숙소는 처음부터 내게 거저 주어진 공간이었다. 나란 사람이 어찌 이리 간사한지, 새삼 깨닫는다. 어차피 합숙소는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으니 지금 나의 공간에서 감사하게 잘 지내면 되는 것이다. 불만을 가질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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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우울이 나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2021. 3. 25. 19:4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깊은 우울에 빠져본 사람은 안다. 자기연민으로 똘똘 뭉쳐 스스로 껴안고자 하는 그 애처로움 말이다. 길고 길었던 취업준비 기간에 나는 나를 꼭 껴 안아야만 했다. 스스로라도 껴안지 않으면 재처럼 바스러져 버릴 것 같았다. 분명 우울이 삶에 대한 시각을 삐뚤어지게 했으나, 때론 우울이 나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우울의 끝에서 더이상 바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체념의 상태가 편안했다. 어쩌면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이되, 크게 요동치지 않기 위하여 우울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한 감정도 나를 지탱시켜준 고마운 것들 중에 하나다. 역설같은 사실이다. 요즈음 우울과 고독 사이 그 어디 쯤에서 침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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