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30. 14:3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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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를 꿈꾸며
마종기
그랬지. 나는 늘 떠나고 싶었다. 가난도 무질서도
싫었고 무리지어 고함치는 획일성도 싫었다. 떠나
고 또 떠나다 보니 여기에 서 있다. 낡고 빈 바닷가,
잡음의 파도 소리를 보내고 산티아고 노인을 기다리
고 싶다. 남은 생명을 한 판에 다 걸고 집채만 한 고
기를 잡았던 헤밍웨이의 어부를 만나고 싶다. 그 쿠
바 나라 노인은 나를 기다리며 감추어둔 회심의 미
소를 그때 보여줄 것이다. 해변에 눕는다. 해변이 천
천히 그림자를 옮기면서 나를 치며 가라고 할 때까
지 계획 없이 떠나니던 내 생을 후회하지 않겠다. 내
가 무리를 떠나온 것은 비열해서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 아직도 말할 수 있다. 노을이 키웨스
트 해변에 피를 흘리고 흘려 모든 바다가 다시 무서
워질 때까지, 그리고 그 바다의 자식들이 몰려나와
신나는 한 판 춤을 즐길 때까지.
마흔두 개의 섬을 연결한 마흔두 개의 다리를 건
너며 차를 달려 네 시간 만에 도착한 섬. 어느 다리
는 길이가 30리 정도까지 되어 가늘게 흔들리며 망
망 바다에 떠 있어 어지러웠지만, 헤밍웨이는 야자
수밖에 없는 그 마지막 섬에 프랑스 미녀를 데려와
넷째 부인으로 살림을 차리고 말술을 마셨다. 그 중
간에는 사람 열 배 크기의 상어를 잡고 거대 다랑어
를 잡고 아프리카에 가서는 사자와 표범과 코뿔소를
피투성이로 죽이고 종국에는 그 총으로 더 늙기 전
에 미리 죽어버린 남자. 그가 쓴 통 크고 시야 넓은
은유의 글을 읽다가 나도 통 큰시를 꿈꾸며 모든 의
심과 열등감을 밟고 방을 뛰쳐나온다. 갈 곳은 없지
만 눈은 크게 뜨고 아직은 갈기 사나운 수사자를 꿈
꾸며, 가슴을 펴고 바다같이 넓은 시를 꿈꾸며, 다시
한 번 키웨스트의 헤밍웨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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