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8. 12:37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필자가 작성한 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http://kangsy85.tistory.com/590)"의 문장이나 단어에 대한 질문이 있어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출처: http://m.blog.daum.net/apologist/13
1.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갈수 있는 가능성'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스스로 구원받을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사건이며, 절대로 우리의 공로나 행위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주의자들과 성경은 인간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일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성을 사용하여 '종교적 진리'는 물론 역사와 우주를 취급하는 성경을
탐구할 수는 있다"
- 프란시스 쉐퍼, 《이성에서의 도피》, p. 67 -
필자가 작성한 '가능성'이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본래의 속성들을 아직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 타락, 구속은 각각 불연속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연관성이 있는 연속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타락'이라 단어를 전체적인 틀에 초점을 두고 생각해야한다.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전적타락(total depravity)은 인간이 절망적으로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부분을 포함한 인간 본성의 모든 측면이 타락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인간성이 왜곡되었긴 하지만, 동물이 아니라 여전히 인간이다. 손상된 관계도 여전히 하나의 관계이고, 잘못된 사고과정도 하나의 사고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타락한 창조 속에 선한 어떤것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1
"창조는 어떤 결정적인 의미에서는 말살되지 않는다"
-알버트 윌터스, 《창조, 타락, 구속》, p. 100 -
2.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부활로 인한 '어느정도' 회복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부활로 말미암아 존재론적 관점에서 완전 회복되었다. 그런데 필자가 왜 '완전한 회복'이란 단어를 쓰지 않은 이유는 '자유의지'란 주제와 함께 썼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완전 회복하지 않았다. 만약 인간의 자유의지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모두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음은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는 아직 연약한 육신의 옷을 입고 있기에, 항상 올바른 선택만은 할 수 없는것이다.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9~20
그러므로 이미(초림으로 이루어진)와 아직(재림으로 완성될)사이에 살아가는 신자는 연약한 육신을 입은 존재이기에 날마다 악과 단호히 맞서서 싸우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결론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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