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1. 00:23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감독: 안나 무이라에르트
출연: 헤지나 카제(발), 카르마 마르질라(제시카), 미셰스 조에우사스(파빙요)
애증관계란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관계를 일컫는다. 특히 엄마와 딸이 애증관계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딸은 나이가 들면서, 엄마가 겪었던 삶의 여정을 따라간다. 여자가 아닌 그 누군가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 과정이 모든 사람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한 아이의 엄마로서 느끼는 감정과 어려움들은 동일선상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하기에 서로 더 간섭하고, 더 사랑하며, 더 끌어안는 것이다.
세컨드 마더(The Second Mother)는 부유한 가정의 식모인 발과, 그녀의 딸 제시카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려낸 영화로써, 제시카가 대입시험을 치르기 위해 발이 살고 있는 집에 와서 살게됨으로써 생기는 사건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발은 제시카의 엄마로서 딸을 더 위해주고 싶지만, 그녀는 그 부유한 집에서는 엄마이기 이전에 식모다. 그렇다. 그녀는 집주인의 눈치를 봐야하는, 집을 모든 허드렛일을 맡아서 해야 하는 식모다.
하지만 제시카는 엄마와 달리, 다른 사람의 눈치를 잘 보지 않으며, 자기 주장이 확고한 이 시대의 여성이라고 할까. 암튼 둘은 엄격하게 다르다. 그러하기에 두 여성사이에서 긴장감이 유발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벌어진다. 그 긴장감은 절정에 치닫고, 결국 제시카는 대입전날 그 집을 뛰쳐나간다. 제시카가 가장 화가 났던건, 발이 자신의 엄마의 입장에서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해서 뭐할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 집에서 엄마이기 이전에, 식모이어야 했음을, 제시카는 알았을까. 그렇게 엄마와 딸은 애증관계에서 헤맨다. 결국, 어쨌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궁금하면 직접보라.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장면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첫번째는 발이 제시카의 대입시험성적 점수를 듣고 너무 기쁜 나머지, 집주인 여자와 그녀의 아들 파빙요가 함께 앉아 있는 방으로 뛰쳐들어가는 장면이다. 제시카는 경제사정이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 혼자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입시험에서 당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파빙요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대입시험을 망쳤다.
발은 침울해 하고 있는 모자앞에서 제시카가 대입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소리를 치며 좋아한다. 발의 그 행동은 그 집에서 천대받았던 딸의 억울함과 아픔들을 해소한 통쾌한 항변이었으리라. 그렇게 큰 소리치며 자기 딸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 발은 딸앞에서 엄마이기 이전에 식모였던 자신의 한탄스러웠던 모습을 떨쳐버렸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발이 파빙요 식구가 잠든 밤에 혼자 수영장에 들어가 제시카에 전화를 하며 물장구를 치는 장면이다. 제시카가 파빙요의 권유와 짖궂은 강요에 못이겨 수영장에 들어갔을 때, 발은 제시카를 아주 혼냈다. 왜냐면 그 수영장은 사모님의 것이기에 허락없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했던 발이 수영장에 들어간다. 그녀는 물장구를 치면서 아이처럼 웃었고, 때론 통쾌하게 소리없이 웃었다. 그녀의 소심한 반항이자 일탈이라고 할까. 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딸 제시카의 모습을 봤다. 엄마는 그렇게 딸을 닮아갔다.
영화를 보면서 모녀간의 애증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했으며, 우리 '엄마'를 한동안 떠올렸으며, 나도 엄마랑 애증관계가 아닌가, 자문했다.
The Second Moth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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