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말씀 _ 정희성

2017. 1. 2. 23:5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아버님 말씀 



                     정희성



학생들은 돌을 던지고 

무장경찰은 최루탄을 쏘아대고

옥신각신 밀리다가 관악에서도 

안암동에서도 신촌에서도 광주에서도

수백 명 학생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피묻은 작업복으로 밤늦게 

술취해 돌아온 너를 보고 애비는 

말 못하고 문간에 서서 눈시울만 뜨겁구나 

반갑고 서럽구나 

평생을 발붙이고 살아온 터전에서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 

애비는 입을 다물었다마는 

이렇다 하게 사는 애비 친구들도

평생을 살 붙이고 살아온 늙은 네 어미까지도

이젠 이 애비의 무능한 경제를 

대놓고 비웃을 줄 알고 더 이상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구나 

그렇다 아들아, 실패한 애비로서 

다 늙어 여기저기 공사판을 기웃대며 

자식새끼들 벌어 먹이느라 눈치보는 

이 땅의 가난한 백성으로서 

그래도 나는 할말을 해야겠다 

아들아, 행여 가난에 주눅들지 말고 

미운 놈 미워할 줄 알고 

부디 네 불행을 운명으로 알지 마라

가난하고 떳떳하게 사는 이웃과 

네가 언제나 한몸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힘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나라임을 잊지 말아라 

아직도 돌을 들고 피흘리는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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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흐르는 눈 4 _ 한 강

2016. 12. 24. 00:27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피 흐르는 눈 4



                       한 강



이 어스름한 저녁을 열고

세상의 뒤편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것이 

등을 돌리고 있다 


고요히 등을 돌린 뒷모습들이 

차라리 나에겐 견딜 만해서 

되도록 오래 

여기 앉아 있고 싶은데 


빛이라곤 

들어와 갇힌 빛뿐


슬픔이라곤 

이미 흘러나간 자국뿐


조용한 내 눈에는 

찔린 자국뿐


피의 그림자뿐


흐르는 족족


재가 되는 

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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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줘, 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

2016. 12. 19. 14:3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차가운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믿지 않는 신을 생각할 떄

살려줘, 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 


- 한 강, 『피 흐르는 눈 3』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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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기 전에 _ 한 강

2016. 12. 11. 00:4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어두워지기 전에 



                             한 강




어두워지기 전에 

그 말을 들었다.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지옥처럼 바싹 마른 눈두덩을 

너는 그림자로도 문지르지 않고 

내 눈을 건너다봤다, 

내 눈 역시 

바싹 마른 지옥인 것처럼.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두려웠다.)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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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소묘 3-유리창 _ 한강

2016. 12. 6. 19:06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저녁의 소묘 3

- 유리창



                             한 강



유리창, 

얼음의 종이를 통과해 

조용한 저녁이 흘러든다


붉은 것 없이 저무는 저녁 


앞집 마당 

나목에 매놓은 빨랫줄에서 

검색 학생코트가 이따금 펄럭인다


(이런 저녁 

내 심장은 서랍 속에 있고)


유리창, 

침묵하는 얼음의 백지 


입술을 열었다가 나는 

단단한 밀봉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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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흐르는 눈 3 _ 한 강

2016. 11. 29. 19:22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피 흐르는 눈 3



  

                       한 강




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초여름 천변 

흔들리는 커다란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그 영혼의 주파수에 맞출

내 영혼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에 대해서 


(정말) 허락된다면 묻고 싶어 


그렇게 부서지고도

나는 살아 있고


살갗이 부드럽고

이가 희고 

아직 머리털이 검고


차가운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믿지 않는 신을 생각할 때

살려줘, 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


눈에서 흐른 끈끈한 건

어떻게 피가 아니라 물이었는지 


부서진 입술


어둠 속의 혀 


(아직) 캄캄하게 부푼 허파로 


더 묻고 싶어 


허락된다면, 

(정말)

허락되지 않는다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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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_ 한 강

2016. 11. 29. 17:5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유월



                      한 강



그러나 희망은 병균 같았다 

유채꽃 만발하던 뒤안길에는 

빗발이 쓰러뜨린 풀잎, 풀잎들 몸

못 일으키고

얼얼한 것은 가슴만이 아니었다

발바닥만이 아니었다 

밤새 앓아 정든 胃장도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걷게 했는가, 무엇이

내 발에 신을 신기고 

등을 떠밀고 

맥없이 엎어진 나를 

일으켜 세웠는가 깨무는 

혀끝을 감싸주었는가 

비틀거리는 것은 햇빛이 아니었다, 

아름다워라 山川, 빛나는

물살도 아니었다

무엇이 내 속에 앓고 있는가, 무엇이 끝끝내 

떠나지 않는가 내 몸은

숙주이니, 병들 대로 병들면

떠나려는가

발을 멈추면

휘청거려도 내 발 대지에 묶어줄

너, 홀씨 흔들리는 꽃들 있었다

거기 피어 있었다

살아라, 살아서

살아 있음을 말하라

나는 귀를 막았지만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었다 귀로 

막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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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들은 노래 3 _ 한 강

2016. 11. 24. 20:4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새벽에 들은 노래 3


                                  한 강


나는 지금 

피지 않아도 좋은 꽃봉오리거나

이미 꽃잎 진

꽃대궁

이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누군가는 

목을 매달았다 하고

누군가는

제 이름을 잊었다 한다

그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새벽은 

푸르고

희끗한 나무들은 

속까지 얼진 않았다 


고개를 들고 나는 

찬 불덩이 같은 해가 

하늘을 다 긋고 지나갈 때까지

두 눈이 채 씻기지 않았다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뜬다 


다시 

아문 데가 

벌어진다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 




한 강 시인의 시는 가슴 아프다 못해 처참하다... 시를 읽고 있으면, 왜 이리 가슴이 아플까. '더 피 흘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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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이야기 12 _ 한 강

2016. 11. 24. 08:1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몇 개의 이야기 12


                                                  한 강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

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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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날들 _ 한 강

2016. 11. 23. 14:01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조용한 날들 



                          한 강



아프다가 


담 밑에서 

하얀 돌을 보았다 


오래 때가 묻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아직 다 둥글어지지 않은 돌 


      좋겠다 너는, 

      생명이 없어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마주 보는 눈이 없다 


어둑어둑 피 흘린 해가 

네 환한 언저리를 에워싸고 


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

무엇에게도 


아프다가 


돌아오다가 


지워지는 길 위에 

쪼그려 앉았다가 


손을 뻗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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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 이상화

2016. 11. 23. 01:2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은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과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루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봄은 왔다. 그리고 봄은 반드시 다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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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상부 선수 출신이다 _ 자주 달렸고, 지금도 달린다.

2016. 11. 19. 19:22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초등학교 시절, 학교로 가는 오르막 길은 가팔랐다. 학교 근처에 살았던 탓에 늦게 일어나기 일쑤였고 오르막 길을 자주 뛰어올랐다. 재미 삼아 시간을 정해놓고 오르막 길을 뛰고 또 뛰었다.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점점 빠져도 오르막 길을 자주 뛰어다녔다. 어릴때부터 뛰고자 하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초등학교 육상부 80m 단거리 선수였다. 친구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때, 나는 스파이크를 신고 흙먼지가 날리는 운동장 트랙을 돌고 또 돌았다. 장거리를 뛰어도 장거리 선수들에게 뒤쳐지지 않았다. 심폐지구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승부욕은 누구 못지않게 강했다. 학교에서 나보다 빠른 사람은 없었다. 선배들은 나와 달리기 시합을 하길 원했고 나이 어린 내가 종종 이겼으며, 선배들은 후배의 빠름에 놀라곤 했다. 운동회에서 항상 반 대표 마지막 주자로 뛰었고, 다른 반 친구들을 가벼이 제치고 1등으로 결승선을 밟은 적이 많았다. 운동회때마다 나는 '영웅'이었다. 



육상부에 전학생이 들어왔다. 나와 같은 학년이었고, 복도에서 몇 번 마주쳤으며, 키는 컸고 체격은 다부졌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전학생은 도 대회 입상 경력이 있다고 했다. 육상부 감독은 전학생과 나의 경쟁 의식을 키웠고, 결국 나는 원하지 않던 시합을 하게 됐다. 리 둘은 출발선에서 준비 자세로 시작 총소리만을 기다렸다. 총소리가 크게 울려퍼졌고 내가 먼저 치고 나갔다. 30m를 지나고 있을 때 전학생은 무서운 속도로 격차를 줄이며 따라왔다. 격차는 점차 좁혀졌고 전학생은 나를 제치고 결승선에 먼저 도착했다. 전학생의 뒷심은 놀라웠다. 도 대회 입상은 소문이 아니었다. 이길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처참한 패배였다. 그뒤로 육상부에서 씁쓸하게 탈퇴했다. 



하지만 혼자, 자주, 달렸다. 수능을 마친 후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자주 동네를 달렸다. 달릴 때 숨 차오르는 쾌감이 좋았다. 달리기 시작하면 달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지금도, 나는 달린다. 화가 날 때, 미치도록 화가 날 때, 미치도록 운동장 트랙을 달린다. 달리는 행위에 모든 것을 맡긴다. 들숨과 날숨 사이의 간격이 좁아질수록 차올랐던 화는 점점 사라진다. 달려야 살기 때문에 달린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오늘도 화가 많이 났고 다시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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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고백 - 왜곡된 성(性)의 관념

2016. 11. 12. 00:10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왜곡된 성(性)의 관념은 어린 시절 접했던 음란물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나와 친구들은 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때마침 친구당시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에로 영화 '물 위의 하룻밤'을 어렵게 구해왔다. 나를 비롯한 친구 열댓명은 학교를 마치자마자 벅차고 들뜨는 마음으로 친구집으로 향했다. 운좋게도, 친구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방을 한 구석에 던져 밀쳐놓고, 비디오 테이프를 아주 조심스럽게 VCR에 넣고 숨죽이며 기다렸다. TV에 영화 제목이 나타나고 영화가 시작될 즈음,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그렇다. 우리의 담대했던 시도는 갑자기 나타난 친구의 누나로 인해 철저히 실패했다. 뻔뻔스럽게 비디오는 계속 재생됐고, 누나는 얼음이 되어버린 우리와 비디오를 번갈아가며 봤다. 친구를 버려두고 우리는 아주 재빠르게 그 집을 탈출했다.때가 음란물을 보려고 했던, 첫 시도였다. 

 

 

 

그 뒤로 중, 고등학교 시절 아무런 제재 없이 음란물을 접했다. 자극적이고 비정상적인 음란물을 시청함으로써 성장기에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할 성에 대한 관념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들은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한 경험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고, 우리는 귀기울여 들었다. 어른에 대한 반항심이 가득했던 그 시절, 금기를 깨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탈이자 잘못된 욕구의 분출이었다. 청소년 시절 자주 접했던 자극적인 음란물의 잔상은 아직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축적된 이미지의 잔상들이 기억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뒤틀려버린 성에 대한 개념으로부터 시작된 생각의 악순환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그러므로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은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 성관계를 통해 자손을 번성하게 하셨다. 즉, 남자와 여자의 성관계는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결혼의 틀안에서 성은 믿음의 자손들을 이어가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창 1:28

 

 

성에 대한 관념을 올바르게 바꾸는 동시에, 나의 기억속에 잔존하는 죄악된 생각의 고리를 끊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잘못된 사고의 과정으로 인식된 기억 체계를 한순간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왜냐면 기억 체계는 하나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방향이 뒤틀리면, 그 상황을 인지하고 뒤틀리기전에 생각을 끊어내야 한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 철저한 회개가 수반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한 자는 영적으로 새로운 존재이나, 아직 육체를 입고 있는 자로서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죄를 지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변명을 하기 위해서 연약한 육체를 근거로 삼는다면, 그 인간은 스스로 죄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죄의 참혹함과, 그리고 죄로 인한 결과의 엄중함을 분명히 깨닫게 해달라고 철저히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주여, 죄인에게 자비은총을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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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고 싶다 _ 신영복

2016. 11. 5. 23:34 책과 글, 그리고 시/좋은 문장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 단상메모

독서는 타인의 사고를 반복함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생각거리를 얻는다는 데에 보다 참된 의의가 있다. 

 

# 독방에 앉아서 

고독하다는 뜻은 한마디로 외롭다는 것, 즉 혼자라는 느낌이다. 이것은 하나의 '느낌'이다. 객관적 상황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주관적 감정의 어떤 상태를 가리킨다. 

 

혼자라는 느낌, 격리감이나 소외감이란 유대감의 상실이며, 유대감과 유대의식이 없다는 것은 '유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독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어차피 인간관계, 사회관계를 분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개인과 개인의 아득한 거리, 너의 불행이 나의 불행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는 벽, 인간관계가 대안의 구경꾼들간의 관계로 싸늘히 식어버린 계절...... 담장과 울타리, 지구의 사유, 불행의 사유, 출세의 사유, 숟갈의 사유......

개미나 꿀벌의 모두살이에는 없는 것이다. 신발이 바뀐 줄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온 밤길의 기억을 나는 갖고 있다. 

 

# 니토위에 쓰는 글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고,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 생각을 높이고자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는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하여야 사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 첩경을 찾는 낭비 

그저 우직하게 외곬으로 읽어나가는 것만 못한 줄 알고 있으면서도, 무슨 편법이나 첩경이 없나 자주 살피게 됩니다. 이것은 관심의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 버림과 키움

지독한 '지식의 사유욕'에, 어설픈 '관념의 야적'에 놀랐습니다. 그것은 늦게 깨달은 저의 치부였습니다. 사물이나 인식을 더 복잡하게 하는 지식, 실천의 지침도,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도 않는 이론은 분명 질곡이었습니다. 

 

# 피서의 계절

비록 여름이 아니더라도 저는 책에서 무슨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설령 책에서 무슨 지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태를 옳게 판단하거나 일머리리를 알아 순서 있게 처리하는 능력과는 무관한 경우가 태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인 특유의 지적 사유욕을 만족시켜 크고 복잡한 머리를 만들어, 사물을 보기 전에 자기의 머리 속을 뒤져 비슷한 지식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만 그것으로 외계의 사물에 대치해버리는 습관을 길러놓거나, 기껏 '촌놈 겁주는' 권위의 전시물로나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그런 것인 줄을 모르는 경우마저 없지 않는 것입니다. 

 

# 저마다의 진실 

경험이 비록 일면적이고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갖는 것이긴 하나, 아직도 가치중립이라는 '인텔리의 안경'을 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공고한 신념이 부러우며, 경험이라는 대지에 튼튼히 발 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추론적 지식과 직관적 예지가 사물의 진상을 드러내는 데 유용한 것이라면, 경험 고집은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소 겪었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확실함과 애착은 어떤 경우에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저마다의 '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 닫힌 공간, 열린 정신 

잠겨 있는 옥방 안에서도 시계는 잘 갑니다. '막힌 공간에 흐르는 시간'......, 흡사 반칙 같습니다. 

 팔목에 시간을 가지고 있더라도 시간에 각박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차피 무기징역은 유유한 자세를 필요로 합니다. 

 

# 장기 망태기 

결벽증과 정돈벽이 남보다 덜하지 않았던 제가, 결코 자발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징역살이라는 '장기 망태기' 속에서 부대끼는 사이에 어느덧 그것을 버리고 난 지금 어느 면에서는 상당한 정신적 여유와 편안함마저 향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등'이 치러야 하는 긴장감, '모범'이 요구하는 타율성에 비해 '중간은 풍요하고' '꼴찌는 편안하고' '쪼다는 즐겁다'는 역설도 그것을 단순한 자기 합리화나 패배주의의 변이라 단정해버릴 수 없는 상당한 양의 진실을 그속에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아픔이 우리들로 하여금 형식을 깨뜨리고 본질에 도달하게 하며 환상을 제거하고 진실을 바라보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여름 징역살이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운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 작은 실패 

도대체 역의 오의를 숙지하기도 쉽지 않고 또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지도 않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소위 가운데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마련인 '작은 실패'를 간과하지 않는 자기비판의 자세입니다. 실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패의 발견이 필요한 것이며, 실패가 값진 것이 아니라 실패의 교훈이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패와 그 실패의 발견, 그것은 산에 나무가 있고 땅 속에 바위가 있듯이 우리의 삶에 튼튼한 뼈대는 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 계수님의 하소연

"Because I really conceived that I could be a better person with him." 

그 여인은 "그이와 함께라면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그와 일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 나는 걷고 싶다 

작년 여름 비로 다 내렸기 때문인지 눈이 인색한 겨울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누 뒤끝의 매서운 추위는 죄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데도 눈 한 번 찐하게 안 오나, 젊은 친구들 기다려쌓더니 얼마 전 사흘 내리 눈 내리는 날 기어이 운동장 구석에 눈사람 하나 세웠습니다. 

옥뜰에 서 있는 눈사람. 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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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희망이다 _ 박노해

2016. 11. 1. 16:03 책과 글, 그리고 시/좋은 문장

 

 

 

 

 

 

길을 잃었다고 자기를 잃어 버리지 마십시오.

무엇이든 쉬이 논하지 마십시오. 쉬이 들뜨지 마십시오.

자기 선 자리에서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모색과 지난날에 대한 정리와

자신을 성찰하는 힘에서 균형감각을 놓치지 마십시오.

상황이 어려울수록 조용한 자신감을 잃지 마십시오.

 

 

 ― 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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