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_ 황동규

2017. 10. 4. 22:48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사랑을 한없이 잇닿는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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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_ 백석

2017. 10. 4. 12:43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으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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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_ 김종삼

2017. 10. 3. 00:12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민간인 



                                                      김종삼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 해주(海州)의 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境界線) 용당포(浦)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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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季節)의 오행(五行) _ 이육사

2017. 9. 13. 00:5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내가 들개에게 길을 비켜줄 수 있는 겸양(謙讓)을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정면으로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서는 한 발자욱이라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내 길을 사랑할 뿐이오. 그렇소이다.

내 길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내 자신에

희생을 요구하는 노력이오.

이래서 나는 내 기백을 키우고 길러서

금강심에서 나오는 내 시를 쓸지언정

유언은 쓰지 않겠소.

다만 나에게는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따름이오.

행동은 말이 아니고,

나에게는 시를 생각한다는 것도

행동이 되는 까닭이오.

 

 

- 이육사, <계절(季節)의 오행(五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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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보았습니다 _ 한용운

2017. 9. 10. 21:41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人格)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生命)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罪惡)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者)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 하고 능욕하려는 장군(將軍)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化)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倫理), 도덕(道德), 법률(法律)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人間歷史)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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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나무 _ 나희덕

2017. 8. 26. 14:49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쓰러진 나무

 

                                    나희덕

 

 

저 아카시아 나무는

쓰러진 채로 십 년을 견뎠다

 

몇 번은 쓰러지면서

잡목 숲에 돌아온 나는 이제

쓰러진 나무의 향기와

살아 있는 나무의 향기를 함께 맡는다

 

쓰러진 아카시아를

제 몸으로 받아 낸 떡갈나무,

사람이 사람을

그처럼 오래 껴안을수 있으랴

 

잡목 숲이 아름다운 건

두 나무가 기대어 선 각도 때문이다

아카시아에게로 굽어져 간 곡선 때문이다

 

아카시아의 죽음과

떡갈나무의 삶이 함께 피워 낸

저 연초록빛 소름,

십 년 전처럼 내 팔에도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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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조나단 에드워즈 저) - 죄인들을 향한 경고와 은혜의 메시지

2017. 2. 4. 22:05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진노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조나단 에드워즈 저) - 죄인들을 향한 경고와 은혜의 메시지]







하나님의 진노는 곧 '그분의 거룩함에 반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이다. 

― 제임스 패커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 중 하나는 '의'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준, 즉 '하나님의 의'에 근거하여 인간을 판단하시고, 그에 따른 보응을 하신다. 하나님의 의에 합당하게 사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합당하게 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왜냐면 인간은 아담의 죄로 인해 본성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하게 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고로,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진노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인 죄인들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은혜의 메시지이다. 책은 신명기와 에스겔의 본문을 설교한 내용이다. 저자는 '죄인들은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다(13쪽)'고 강조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죄인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자 하나님의 자비라는 것이다.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아직까지 인내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에 죄인을 벌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손에 붙잡고 있는 그들을 놓아버리는 순간, 그때부터 죄인들에게 영원한 형벌이 시작될 것이다.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가 영원토록 죄인에게 부어지는데, 너무나 안타깝게, 지옥에서 죽음은 없다. '억겁의 세월동안(50쪽)' 고통을 계속 느껴야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절망스럽게도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저자는 죄인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완고한 '고집'과 '오만'을 버리고,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라! 

   


 
 

 그러나 하나님의 방편에서 마련하신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저자도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그 큰 긍휼, 사랑, 은혜는 번 말해서 무엇하랴! 저자가 말하듯이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 맹렬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이 진리는 저자가 말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일관되게 제시하는 은혜의 메시지다. 믿음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공로는 전혀 없다.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가 은혜이자 복음이다. 


 책을 통해 죄인이 받아야 할 형벌의 무서움을 실제적으로 깨닫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의 통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 책속의 문장들 


p. 13

악인은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합니다. (중략) 그런데 그 칼이 그들을 내리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뜻이요 하나님의 전적인 자비의 손길 때문입니다. 


p. 27

간단히 말해 그들에게는 피난처도, 붙잡고 매달릴 만한 지푸라기도 전혀 없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오직 대노하신 하나님의 전적인 뜻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언약으로 맺어진 것도 아니요 어떤 의무에서 나온 것도 아닌, 오직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p. 33

하나님께서 그 손을 놓으시는 날이면, 즉시 수문이 열리며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물결이 순식간에 우리를 덮치고 말 것입니다. 그 물결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맹렬한 기세로, 그 어떤 것으로도 저지할 수 없을 만큼 전능한 세력으로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p. 43

하나님은 여러분이 지옥에 떨어져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래서 여러분의 불쌍한 영혼이 그 고통에 못 이겨 끝없이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을 때, 여러분을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진노를 조금도 늦추지 않으실 것이며 그 진노를 조금도 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p. 50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맹렬한 진노는 한 순간만 당해도 끔찍한 일일텐데, 회심치 않은 자들이 당해야 할 그 무서운 비참함은 끝이 없습니다. (중략) 그때 여러분은 이제 억겁의 세월 동안 전능하신 분의 무자비한 보복과 싸우며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처럼 오랜 세월 싸우며 지낸 후에도 남는 것은 오직 하나, 즉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그 형벌은 정말 무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뿐입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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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는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2017. 1. 27. 00:42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는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며칠 전 잠실역에서 잠실새내역으로 향하던 지하철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차내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불안감을 느낀 시민들은 스스로 지하철 문을 열고 긴급 대피했다. 차내 방송이 그 당시 상황에 적절했느냐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사태를 초래한 논리는 하나다.  "가만히 있으면 다 죽는다.' 세월호 사건이 국민들에게 남긴 트라우마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여러 가지 시선이 담긴 책이다. 자기만 살겠 다고 뛰쳐나간 인간쓰레기 같은 선장과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국가 때문에 순진무구한 어린 생명들은 차가운 바닷물에 서서히 숨을 잠식당했다. 박민규 작가는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56쪽)이라 정의한다. 그러하다. 사고는 우연에 의해 자주 발생한다면, 사건은 의도적으로 발생한다는 차이가 있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가 무엇을 했는지 정치 공방이 치열하다. 내용이 어떠하든 박근혜는 확실히 무능했고, 국가는 철저히 무책임했다. 아직도 박근혜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미안해하지 않는 것 같고 부끄러워하지 않는(25쪽) 그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 박근혜 정부를 대표하는 두 가지 단어, '무능'과 '오만', 역시 맞는 말이었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고,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지 약 3년이 지났건만, 세월호 선박은 여전히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 있다. 세월호 인양은 계속 미뤄지기만 한다. 행동 없는 말들만 무성하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를 믿으며, 무엇을 바라며 살아가야 하는가. 정유년에도 헬조선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으라'는 기득권의 거짓말에 놀아 나서는 안 된다.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주체성을 가지고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 책속의 문장들


p. 10

사고 첫날, 외국 언론에서 조난자의 수온별 생존시간을 따져보는 사이 한국에서는 사망시 보험금을 계산했다. 사람들은 권력이 생명을 숫자로 다루는 방식에 분개했다. 


p. 25

 미안해하지 않는 것 같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은 그 맨얼굴은 그 자체로 폭력과 상처가 되었습니다. 


p. 205

 세월호 참사와 신자유주의 사이에는 분명 눈에 보이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세월호처럼 낡고 구조상 전혀 안전하지 않는 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운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과 같은 규제 완화의 정책기조나, 해경이 실질적인 구조활동을 포기하면서까지 사기업에 자신들의 공권력과 임무를 이전한 것과 같은 공공 부분의 민영화는 신자유의적 사유화의 가장 잘 보이는 표면을 이룬다. 


p. 207

 사적으로 극히 유능하도록 요구받지만 공적인 능력은 완전히 결여된 주체성을 생산하고 그에 고유한 사회적 관계를 산출한다는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란 '정치'가 '경제'에 의해 대체되는 기획일 뿐만 아니라 보다 본질적으로는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통치의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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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한강 저) -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2017. 1. 25. 12:04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그러나 희망은 병균 같았다" 한 강 시인의 「유월」의 첫 글귀다. 희망이 병균이라면 우리는 삶을 비관하며 살아야 하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시는 희망이 병균과 같다며 시작하지만, 홀씨 흔들리는 핀 꽃을 보며 "살아라, 살아서 살아 있음을 말하라" 끝을 맺는다. 한 강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라면, 아픔과 고통을 솔직하게 직면하면서 담담하게 뱉어내는 언어가 어둡지만 힘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음산하고, 침울하고, 어둡다. 그러함에도, 지리멸렬할지라도 끈질기게 삶을 붙들라고 당부한다. 그녀의 언어를 이해하면 할수록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왜냐면 내가 글을 뱉어내는 방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글들을 읽는다. 


 
 

그녀의 소설 『흰』을 읽은 이유도 이해받고 싶어서였다. 소설이긴 하지만, 시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글을 읽다가 자주 멈춰선다. 멈춰선 탓에 글의 흐름을 놓치곤 한다. 한 단어에 매여 다음 단어를 읽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말일게다. 음산한 언어들 속에서 결국, 그녀는 어떻게든 살라고 매달린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제발 죽지마. 한 시간쯤 더 흘러 아기는 죽었다. 

죽은 아기를 가슴에 품고 모로 누워 그 몸이 점점 싸늘해지는 걸 견뎠다.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 한 강, 『』, 2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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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엔도 슈사쿠 저) - 하나님의 침묵과 그리스도, 그리고 신부의 신념.

2017. 1. 25. 11:26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침묵(엔도 슈사쿠) - 하나님의 침묵과 그리스도, 그리고 신부의 신념] 






"인간은 가장 경솔한 신념의 동물이며 반드시 뭔가를 믿어야만 한다. 

신념에 대한 좋은 토대가 없을 때에는 나쁜 것이라도 일단 믿고 만족해 할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



 인간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이도 있다. 영화 『헝거』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고, 결국 죽음으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드러낸다. 더욱이,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자에게 신념의 문제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그리스도의 침묵과 신자의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종교 박해가 심한 17세기 일본이다.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에 잠입한다. 종교적 박해가 극에 달했지만, 아직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발각되어 관리들에게 쫓기게 되고, 결국 배교자 기치지로에 의해 잡힌다. 하지만 더 절망적인 것은 그곳에서 배교한 페라이라 신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는 일본 이름을 부여받았다. 사와노 추우안. 그는 하나님의 침묵때문에 배교했다는 변명을 내뱉는다. 로드리고는 배교 신부의 변명이 패배자의 자기기만이라 단정 지었다(231쪽). 하지만, 결국 그도 자신 때문에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고 있는 농민들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서 성화를 밟는다. 배교 신부가 된 것이다. 


 
 

 저자의 서사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소설에 담긴 사상, 즉 배교에 대한 합리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이해의 결핍,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는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아래의 주관적인 의견을 참고하기 바란다. 

 먼저 배교에 대한 합리화다. 신념은 행위로 드러난다. 배교를 강요하는 일본 관리들은 로드리고에게 성화를 밟는 그 자체가 형식적이라며 그를 회유한다. 형식적이라면 왜 그에게 성화를 강요하겠는가. 그는 성직자로서 마땅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본이 되어야 한다. 그가 배교하면 신부들이 전한 복음을 의지하고 따랐던 농민들은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신부가 전한 복음과 그 행위가 다르다... 아니 이면적 이유는 있을 수 없다. 진리는 명확하고 그에 따른 행위는 모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다. 로드리고가 성화를 밟기 전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267쪽)" 문맥상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은 우리(신자)에게 밟히기 위해서 태어나신 것도 아니고 우리가 배교하면서 겪는 아픔을 나누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원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가 십자가를 지신 것은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의 죄를 대신하기 위함이요, 신자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살 때 고난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침묵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이사야 55:9).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떠한 상황에 침묵하시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저 우리 인생 가운데 밀접하게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며 그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기도할 수도 있고, 금식할 수도 있으며, 원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즉, 하나님은 만물의 주권자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책에 대한 신학적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신자라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잘 분별하길 바라는 바이다.  



# 책 속 문장들


p. 861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들 비참한 농민들에게, 이 일본인들에게 박해와 고문이라는 시련을 주시는지요? 아니, 기치지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박해가 시작되고 오늘까지 20년, 여기 어두운 일본의 땅에 많은 신도들의 신음이 가득 차고 사제의 붉은 피가 흐르고 교회의 탑이 붕괴되어 가는데, 하나님은 자신에게 바쳐진 너무나도 참혹한 희생을 보면서도 아직 침묵하고 계십니다. 기치지로의 어리석은 원망에 그러한 물음이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p. 112

그가 관리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배교한 자들이 관리의 앞잡이로 이용된다는 것은 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배교자는 자신의 비참함과 상처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동료를 한 사람이라도 더 자신과 같은 운명 속으로 끌러넣으려고 합니다. 


p. 157

"가라, 가서 너희가 이룰 일을 이루어라." 그리스도조차 자신을 배신한 유다에게 이와 같은 분노의 말을 던졌다. 신부에게는 오랫동안 그 말의 의미가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모순된 것처럼 생각되어 왔지만, 웅크리고 앉아서 지금 개처럼 겁먹은 표정을 가끔 드러내고 있는 이 남자를 보자 전신에서 잔혹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가라, 가서 네가 행할 일을 하라'라고 그는 마음에서부터 격렬하게 꾸짖었다. 


p. 162

강한 햇빛이 우묵한 눈꺼풀에 예리한 칼처럼 와서 꽂혔다. 


p. 180

인간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인간까지 그리스도는 찾아 구원하셨던 것일까? 문득 신부는 이렇게 생각했다. 악인에게는 또한 악인으로서의 강함과 아름다움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기치지로는 악인의 가치도 없다. 


p. 181

성경에 나오는 인간들 중 그리스도가 찾아 다녔던 것은, 사람들에게 돌을 맞은 창녀나 가버나움의 혈루병 여인처럼 매력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존재들이었다. 매력이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p. 182

다만 밟기만 하면 그것으로 좋다, 밟았다 해서 마음속의 신앙이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쪽도 거기까지 나무랄 생각은 없다, 우리의 명령에 따라서 성화에 가볍게 발을 얹어 놓으면 즉시 여기서 나가게 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p. 186

이윽고 내가 죽임을 당하는 날도 여전히 바깥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갈 것인가. 내가 죽임을 당한 뒤에도 매미는 여전히 울고 파리는 졸음을 재촉하는 날개 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닐 것인가. 그렇게까지 영웅이 되고 싶은가. 네가 바라고 있는 것은 남모르게 죽는 참된 순교가 아니라 허영을 위한 죽음인가. 신도들에게 칭송받고 기도받고, 그리고 저 신부는 성자였다는 말을 듣고 싶기 때문인가.'


p. 212

나는 저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끌려서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연민은 결코 행위가 아니었다. 사랑도 아니었다. 연민은 정욕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본능에 지나지 않았다. 


p. 261

"내가 배교한 것으 말야, 듣고 있나? 들어 주게나. 그 뒤, 여기 구덩이에 넣어진 뒤 들렸던 저 소리에, 하나님이 무엇 하나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필사적으로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p. 267

 신부는 발을 들었다. 발이 저린 듯한 무거운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형식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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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존재만으로 힘이 됩니다.

2017. 1. 21. 22:22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지나간 날들이 있습니다. 타인의 삶 따위는 관심이 없었고, 나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과 연민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해란 위선으로 들이닥치는 당신들에게 대체 무엇을 아느냐, 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는 내가 아닙니다' 면전에 정확한 발음으로 지껄이고 싶었지만, 그저 쓴웃음만 보여줬습니다. 당신이 나이기를 바랄 때 나는 당신들을 거부했습니다. 

  


무료한 일상을 지내다 부모님을 뵈러 경주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집에서 부모님을 뵙고, 또 며칠은 누나 집에서 지냈습니다. 일주일간 그들은 무엇을 이해하려고도,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 존재 자체에 반응한다고 해야할까요. 나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아버지, 엄마, 누나가 새삼 눈물나게 고마웠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바라볼 때 마음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에 많이 지쳐 있었나봅니다. 주변인들의 잦은 간섭에 짜증 났었나 봅니다.  나이에 따라 갖춰야 할 정형화된 규칙이 존재하는 사회니까요. 그렇다고 사회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시 힘을 얻었으니 서서히 나아가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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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_ 한 강

2017. 1. 10. 17:58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https://brunch.co.kr/@starfirm/18]




괜찮아



                       한  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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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편의 겨울 12 ― 여름 천변, 서울 _ 한 강

2017. 1. 9. 22:49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거울 저편의 겨울 12

― 여름 천변, 서울



                            한 강



저녁에 

우는 새를 보았어. 


어스름에 젖은 나무 벤치에서 울고 있더군. 


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아서,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어도 

날아가지 않아서, 


내가 허깨비가 되었을까 

문득 생각했어


무엇도 해칠 수 없는 혼령

같은 게 마침내 된 걸까, 하고


그래서 말해보았지, 저녁에 

우는 새에게 


스물네 시간을 느슨히 접어 

돌아온 나의 

비밀을, (차갑게)

피 흘리는 정적을, 얼음이 

덜 녹은 목구멍으로 


내 눈을 보지 않고 우는 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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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독서목록

2017. 1. 9. 22:34 책과 글, 그리고 시/독서 목록

 

 

 

[인문]

1.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재원 역, 이후.

 

[문학]

1. 한 강, 『흰』, 난다.

2.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3.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김욱동 역, 민음사.

4. 모리 히로시, 『모든 것이 F가 된다』, 박춘상 역, 한스미디어. 

5. 최은영,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6.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송병선 역, 민음사. 

7.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2』, 송병선 역, 민음사. 

8.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송무 역, 민음사. 

9.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지옥편』, 박상진 역, 민음사.

10. 프레드릭 배크만,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이은선 역, 다산책방.

 

11.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 역, 열린책들.

12. 김  훈, 『공터에서』, 해냄출판사.

 

[에세이] 

1. 김애란 외, 『눈먼 자들의 국가: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문학동네. 

2. 강세형,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김영사.  

3. 손  현,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미메시스.  

 

 

[경제] 

1. 정대영,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 한울.

 

[자기계발]

1. 맥스 베이저만,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김태훈 역, 청림출판.

 

[심리]

1. 디어드리 배릿, 『인간은 왜 위험한 자극에 끌리는가』, 김한영 역, 이순.

 

[예술]

1. 허문영,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 강.

2. 로이스 타이슨, 『비평 이론의 모든 것』, 윤동구 역, 앨피.

 

 

[종교]

1. 엔도 슈사쿠, 『침묵』, 공문혜 역, 홍성사.

2. 이진오 외 7명, 『숨바꼭질』, 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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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가을이 _ 최승자

2017. 1. 3. 14:38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개 같은 가을이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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