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2. 23:5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아버님 말씀
정희성
학생들은 돌을 던지고
무장경찰은 최루탄을 쏘아대고
옥신각신 밀리다가 관악에서도
안암동에서도 신촌에서도 광주에서도
수백 명 학생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피묻은 작업복으로 밤늦게
술취해 돌아온 너를 보고 애비는
말 못하고 문간에 서서 눈시울만 뜨겁구나
반갑고 서럽구나
평생을 발붙이고 살아온 터전에서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
애비는 입을 다물었다마는
이렇다 하게 사는 애비 친구들도
평생을 살 붙이고 살아온 늙은 네 어미까지도
이젠 이 애비의 무능한 경제를
대놓고 비웃을 줄 알고 더 이상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구나
그렇다 아들아, 실패한 애비로서
다 늙어 여기저기 공사판을 기웃대며
자식새끼들 벌어 먹이느라 눈치보는
이 땅의 가난한 백성으로서
그래도 나는 할말을 해야겠다
아들아, 행여 가난에 주눅들지 말고
미운 놈 미워할 줄 알고
부디 네 불행을 운명으로 알지 마라
가난하고 떳떳하게 사는 이웃과
네가 언제나 한몸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힘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나라임을 잊지 말아라
아직도 돌을 들고 피흘리는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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