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_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역사의 물줄기

2012. 8. 31. 12:43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Edward Hallett Carr 지음, 권오석 옮김, 홍신문화사

 

 

 역사는 역사가가 선택한 사실을 자기가 가진 도구에 의해 해석된 결과물이다.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라 하더라도 그 역사는 한 사회에 종속된 하나의 소산물이다. 왜냐하면 역사상의 사실은 여러 개인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며, 사회적 여러 힘에 관련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위인도 사회의 산물이자 반영이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전제하에 역사 속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도 원인을 가지게 된다. 역사가는 자신이 선택한 사실들을 잘 나열시킨 다음, 사건을 발생시킨 여러 원인의 상호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어떠한 질서나 체계를 잡아야 한다. 탤콧 파슨스의 말을 빌리면, 역사란 실재에 대한 단순한 지적인 태도라기보다는 인과적인 태도의 ‘선택적 체계’이다. 또한 역사 기술을 그 자체가 진보하는 것이고, 그것이 여러 사건의 진로에 대한 끊임없는 통찰로 넓이와 깊이를 마련하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진보하는 과학이다.

 

 

 결국, 역사는 사실과 역사가 사이의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시대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만을 놓고 과거의 문제들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려면 과거의 어떤 시점부터 현재까지 흐르고 있는 역사의 줄기를 면밀하게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는 위안부, 독도문제 등의 민감한 역사문제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온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맞물려 있다. 역사적 문제들을 논하기 위해서는 일제강점기에의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는 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학교에서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한국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하다. 그래서 ‘독도는 우리 땅이다’라는 사실 하나 만을 놓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더욱이 교육과학기술부가 한국 정규 교육과정에서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지정해 버린 웃지 못 할 상황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선정해서 미래를 짊어지고 갈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어야 한다.

 

 역사를 알아 가는 것이 지루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사(國史)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함은 마땅하다.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통해 역사의 중요성과 의미를 깨달았으니, 나 또한 역사에 대해 더욱 깊이 공부하여 대학민국의 한 국민으로 부끄럽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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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2012. 8. 6. 17:00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복지는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20,30대 자살률 1, 출산율 최저,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 한국의 자화상이다. 10년 동안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사회 양극화 되고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불평등이 극심한 나라로 변했다. 또한 경제위기가 가족해체, 아동빈곤, 자살증가와 같은 사회위기로 이어졌다. 한국은 점점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이젠 나라 경제의 성장보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바로 복지가 그 대안이다. 정치권도 20116.2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성장이라는 의제에서 복지라는 의제로 노선을 바꿨다. ·야 정당들은 시대와 국민적 요구에 부합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복지 공약들을 내놓고 있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복지 포퓰리즘을 막겠다며 여·야당들이 내 놓은 복지공약 65개를 검토했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기획재정부는 5년간 220조에서 340조원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은 이런 공약들이 다 받아들여지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기획 재정부는 소요재원 파악에 대한 아무런 산출근거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복지=포퓰리즘이란 인식을 토대로 무턱대로 부정확한 자료를 발표해서 국민들의 혼란을 가중시켜서는 안 된다.

 

 한겨레가 실시한 2010년 조사에서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모든 국민에게 복지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좋다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72.1%였다. 세금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만 돕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22.7%에 그쳤다.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들은 현 시행하고 선별적 복지보다 보편적 복지를 더 선호하고 있다.

또한 남찬성 동아대 교수의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과 조망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 진입한 1990년대 초반 공공사회지출이 국내총생산의 3%정도였다. OECD 선진국들은 국내 총생산의 18% 이상을 복지에 투자하고 있는 것을 감안했을 때, 한국은 복지에 대한 투자가 너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복지정책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복지 지출 확대를 생각할 때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재정문제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지나치게 적은 조세수입에 있다.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 대비 복지 지출은 20097.5%OECD 평균 20.6%에 크게 못 미친다. 현 정부 들어 조세부담률은 200820.7%에서 201019.3%f 되레 줄었다. 법인·소득세율 인하 등 부자감세 조처로 연 20조에 가까운 재정수입을 돌려준 셈이다.

 복지 지출을 늘리다 보면 국가 재정지수가 나빠지고 이는 결국 경제 파탄으로 이어진다는 게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쪽은 단골논리다. <한겨례>가 국제통화기금의 2007~2011년 통계 자료를 토대로 15개 선진국을 세 유형으로 나눠 비교한 결과 보편적 복지국가의 재정이 가장 탄탄하고, 이어 보수·조합주의형, 선별적 복지 국가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편적 복지형 5개국의 평균 재정수지는 5년간 2.15%로 가장 우수 했고 보수·조합 주의형은 3.55%, 선택적 복지형 3.9%이다.

(*재정 수지는 정부 수입에서 지출을 뺀 금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값으로 한나라의 재정 건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값이다. 대체도 재정지수가 4%를 넘어서면 금융시장에서 요주의 국가로 지목해 투자를 꺼린다.)

 

 따라서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로 제안될 수 있다. 먼저, 부자감세를 철회해서 연간 20조원의 수입을 도로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 부유층에게 세 부담을 증가시키고,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신구간 신설하여 조세수입을 늘려야 한다.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분야에 치중되었던 예산을 주여 복지예산을 늘린다면 보편적 복지는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사회에 점점 넓게 드리워지는 사회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 앞에서 정치권은 복지정책을 왜 해야 하나를 논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 복지정책을 실현해서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 주는냐가 관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편적 복지를 통한 안전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국민들을 사회적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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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가 되려면_선교는 선택이 아닌 의무다.

2012. 7. 26. 14:03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J. Smith) 지음

 

 

 

 

 

당신이 직접 가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보내야 한다.

 

 

 

 ‘사탄의 패배’라는 우화로 책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화에서 사탄들은 선교사들이 알래스카, 티베트, 아프가니스탄에 복음 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쓴다. 그로 인해 복음을 전하러 가는 선교사들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여러 날을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몇 명의 선교사들은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 후 50년이 지났을 때, 알래스카, 티베트와 아프가니스탄은 복음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회심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탄은 패배한 것이다. 복음 전파가 사람의 노력과 힘으로만 되는 것이었다면, 사탄이 이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몫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원대한 선교사역은 항상 성공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세계복음화는 이루어 질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니까 우리는 제 삼자로서 방관하고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상명령을 주셨다. 저자는 지상명령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교사를 보내든지 아니면 가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나가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소명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소명을 확인하는 방법은 첫째, 사역에 대해서 기도하기를 시작하고, 둘째 선교사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확신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소명을 확인한 다음에는 그에 맞는 실제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선교사가 실제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그 동안 선교사역을 감당하면서 정립해온 자신만의 원칙들은 소개한다. 선교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선교가치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소개한 선교사 중에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기억에 남는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아직도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로 가서 뒤에 따라올 선교사들을 위해 길을 만들라고 우리들에게 요구 한다. 개척자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많은 선교사 지망생들이 복음화가 많이 진행된 곳에 선교를 나가려고 하고 있고, 또 나가고 있다. 그래서 현재 선교사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은 줄어들고 있지 않다. 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변화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선교사역이 현지인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 한다. 선교사는 스스로 청지기라고 생각하면서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현지인을 영적 지도자로 키우고 세운 다음, 뒤 돌아 보지 말고 선교지를 떠나거나 중심적인 위치에서 물러나야 한다. 현지 지도자와 동역자의 자세로서 하나님의 일을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아직도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곳이 무수히 많이 남아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세계복음화의 명령을 몸소 실천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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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_교육을 말하다

2012. 7. 25. 02:00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장 자크 루소 지음 / 강도은 옮김

 

 

 176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에밀'이 발표되자마자 사회에 큰 물의와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분서령과 체포령이 내려져 그는 파리를 탈출 해야만 한다. 루소의 교육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그 당시 사회을 혼란에 빠뜨릴 만큼 개혁적인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저자 루소는 자연 상태의 것이 가장 선한 것이라 여기며, 자연성의 회복이 교육의 목표이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 지식과 교훈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인 실천에 있음을 강조한다. 루소는'에밀'이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신체적 발달 과정에 따라 5부로 나누어 교육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 1부는 출생에서 5세까지의 유년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아이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되 지배욕을 줄임으로써 독립적인 행동을 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때 남에게 의지하지는 말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 2부는 5세에서 12세까지의  소년기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사물에 대한 관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때문에 역사나 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다. 무조건적으로 관념이나 사상을 주입시키려 하지말고 스스로 배우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라고 말한다. 지력과 함께 체력도 함께 기를것을 권유한다.  

 

 제 3부는 12세에서 15세까지 소년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떤 학문에 알려줄 때 명료한 관념들만 알려주어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무엇을 배우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왜 배우는지 배움의 효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 4부는 15세부터 20세까지 청년기에 대해 다룬다. 청년기는 이전까지의 교육보다 더욱 아이에게 신중을 가해야 할 시기다. 이 시기부터 정념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일정한 조절능력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한 개인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알려주어야 한다. 또한 관계에 따라 적절하게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도 훈련 시켜야 한다.

 

 제 5부는 결혼기다. 아이는 이제 성인이므로 그에게 맞는 배우자는 찾아야 한다. 아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우자 상을 그리게 하고 만날 날을 꿈꾸게 해야 한다. 그리고 직접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루소는 12세전까지는 아이들에게 관념이 이론들을 주입하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의 정확하게 관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암기를 위한 공부를 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무조건 어릴 때부터 많이 배워야 한다. 조기교육은 한국의 지나친 교육열을 보여준다. 어려서부터 교육이란 굴레에 짓눌려 다람쥐 쳇바퀴 도는삶을 살아가고 있다. 학생들은 교육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육 당하고 있다. 학생들은 오직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한 기계적인 학습만을 강요받고 있다.

 


 교육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루소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배우는가가 아니라 배운 것을 이해하고 그 배움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따져 물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한국 교육은 전형적으로 주입식이다. 교사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쌍방 간 소통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함은 마땅하다. 루소가 에밀에게 물에 들어있는 막대기가 왜 굴절되어 보이는지를 가르칠 때 과학적 근거로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몇 가지 단계에 걸쳐 다각적 방면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한 사건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된다.

 

 

 교육관계자들은 한국교육의 방향을 다시 재정립해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런 능력을 기른 학생들은 훗날 단지 명문대 진학만을 위해 살지 않을 것이며, 진지하게 자신의 길을 모색하며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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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눈에는 희망만 보였다_관점의 중요성

2012. 7. 24. 15:06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믿음의 눈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을 정복한 분이 있다. 그는 장애를 축복이라 말한다. 그는, 바로 강영우 박사님이다. 강영우 박사님께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시면서 책 한권을 쓰셨다. 제목은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그는 소학교 다니던 시절에 축구를 하다가 눈에 공을 맞았다. 공에 맞은 후 눈에 무수한 점들이 보였지만, 며칠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시야에서 그 점들이 계속 사라지지 않아 어머니께 알리고 병원에 찾았다. 그러나 그 당시 안과의사는 그가 어떤 병의 증상을 보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명의 안과의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망막박리'라는 진단을 받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흘러갔다. '망막박리' 진단을 받았을 때는 병세가 많이 진행되어 당시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상태였다. 졸지에 그는 시각 장애인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성경말씀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장애를 극복하기로 결심한다.  

 

 

"여러 계시는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여 자랑하니지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의 눈으로 자신의 장애를 바라보는 순간,

장애는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강영우 박사님이 장애를 극복하기로 결심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장애인에 대한 처우가 열악했으며,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연세대학 입학시험에서 10등으로 교육학교에 입학하여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렸다. 그리고 한 학기를 공부하면서 전 과목 A학점을 받아 자신의 장애가 학업을 수행하는데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음을 증명해 보였다.

 

 연세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하고 피츠버그대학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문교부의 불합리한 법조항때문에 출국할 수 없었다. 그는 법조항의 부당함을 느끼고 교수님과 총장님의 도움을 받아 법조항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결국, 법조항은 없어지게 되었고, 그는 한국 최초 장애인 유학생이 되었다.

 

  그는 미국에 가서도 시각장애인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만들어 가며 하나님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시각'을 잃게 하셨지만, 그로 인해 꿈을 꾸게 하셨고, 결국엔 세계 장애인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게 하셨다.

 

 

 

 그는 이야기 한다.

 

 

 

 

 

 

 

 

"장애는 누군가의 죄로 인한 형벌이 아니다. 장애는 수치스러움이 아니다. 장애를 통해 이루어진 아름다운 역사는 더 이상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강영우 박사님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자신앞에 주어진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누구의 시각으로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 방향과 질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또한 강영우 박사님께서 부당한 대우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노력과,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려는 의지와 열정에 감탄했다. 편견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그의 인생을 본받고 싶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상황은 그리 중요하지 않구나. 나를 이끄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눈으로 나아간다면 그리 두려울 것도 없겠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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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2012. 7. 3. 14:17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이명준은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교 3학년이다. 빨갱이를 아버지로 둔 자식이며, 부르주아 가정에 얹혀살고 있다. 그의 일상은 평범하고 무의미하다. 그러던 중 주인집 딸 영미가 여자 한 명을 소개시켜준다. 그 여자의 이름은 윤애다. 명준은 그녀에게 점점 호감을 가지게 된다. 한 해 동안 만난 횟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둘은 매우 빠르게 가까워진다.
그럴 즈음 명준의 아버지는 대남 비난 방송에 자주 얼굴을 드러낸다. 주인집 아저씨로부터 부친(명준아버지)때문에 경찰서에 불려 갈 수도 있으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을 듣는다. 애써 지우려 했던 아버지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이틀 후, 명준은 경찰서로 불려가 취조실에 형사와 마주앉는다. 형사는 일방적으로 질문해댄다. 명준은 사실을 말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되 돌아오는 건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발길 짓뿐이다. 수치스러울 만큼 흠씬 두들겨 맞는다. 명준은 처절하게 남한사회를 직시한다. 그렇게 경찰서를 몇번 왔다 갔다 하면서 꿈꾸던 밀실의 삶은 실현하기 힘듦을 깨닫는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윤애와 육체적 관계를 맺기를 원하지만, 그 때마다 윤애는거부한다.


남한사회에서 불만들이 하나 둘씩 쌓이고 결국 그는 자신을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북한으로 간다. 하지만 북한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그가 일하는 노동신문에서도 진실을 말할 수 없다. 명준은 점점 현실과 타협해간다. 그 즈음에 또다른 사랑, 은혜를 만난다. 그리고서 6.25전쟁이 터지고 군관신분으로 참전하여 서울로 가게 되면서 은혜와 헤어지게 된다. 전쟁터에서 은혜를 다시 만나지만 그녀는 죽음으로써 그를 떠난다. 그의 삶은 얽히고설키어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포로로 잡힌다. 그는 남한도 싫고 북한도 싫다. 그저 "중립국"만 외칠 뿐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중립국에 가는 배에 몸을 싣게 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사랑도 사상도 깡그리 잃어버려 그를 붙잡을 것이 없다. 그는 갑판에서 보이지 않은 것들과 씨름하다 바다에 몸을 던진다.

 책에서 대립되는 두 개념은 '밀실'과 '광장'이다. 남한사회가 밀실을, 북한사회가 광장을 대표한다. 그러나 두 사회 다 온전하지 못하다. 남한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던 명준의 삶을 흔들어 놓았던 건 폭력과 무력이 난무하는 정치권력이었다. 빨갱이의 자식이었기에 그도 빨갱일 수 밖에 없는 현실앞에서 분하고 서러웠지만, 남한사회에는 그을 위로할만한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사상과 이념을 키우고, 연인과 사랑하고 싶었지만 남한의 현실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남한에서 명준의 밀실은 처절하게 짓밟힌다. '밀실'에 대한 실망감이 '광장'에 대한 이상을 꿈꾸게 했다. 이상향을 가지고 북한으로 간다. 하지만 북한이라고 다를 것이 있겠는가. 진실을 말할 수 없으며, 권력의 힘에 무릎꿇고 같은 말만 되풀이 해야 하는 현실은 남한과 다를 바 없었다. 사랑의 실패,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또 다른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앞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살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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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_전통문화에서 나아갈 방법을 찾다

2012. 7. 2. 14:51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급변하고 있는 사회와 획일화된 세계 경제, 문화의 구조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문제점을 극복할 방안으로 지역경제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 라다크를 제시하고 있다. 라다크는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그 곳 사람들은 강한 자립심과 검소한 생활을 바탕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 또한 전통문화를 존중하며 서로를 깊이 존중하며 배려한다. 옛것이라 생각되어 질 수 있는 '전통문화'를 토대로 지역경제를 발전시켜 나가는 사례와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농경을 자립화 시켜 경제체제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가족과 공동체의 유대관계를 통해 '경쟁'이 아닌 협력적인 경제가 형성될 수 있도록 돕는다. 궁극적으로 지역경제의 부활을 통해 경제, 문화, 생태의 다양성 회복을 꾀한다.

 

   통신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도 가까워지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몇 초 안에 알 수 있다. 세계경제에서도 국가 간의 경계는 무의미 해지고 있다. 시장경제체를 기반으로한 무역에서는 자유무역 조약 강화로 거래 장벽은 허물어 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 간의 무역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의 무역은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다국적 기업들은 거대한 자본과 개발도상국의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경제를 잠식해가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수출위주의 품종을 단작으로 생산하고 있고, 용이한 유통을 위해 품목을 제한 하고 있다. 지역별 품종의 다양성이 파괴되었다. 경제구조뿐 아니라 문화, 자연의 다양성도 파괴되고 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은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제시하는 지역화는 실현 가능한 대책이라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독자들에게 알림으로써 직접 지역중심의 경제를 실현해 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영향력'으로 인해 경제, 문화, 자연의 다양성이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날로 발전하는 기술로 '새로운 것'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대에 '전통문화'는 옛것이라는 이유로 도태되고 있다. 우리의 사고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 '전통'은 본질적인 정신이므로,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세워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온고이지신'이란 말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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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이다.

2012. 7. 2. 14:44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프랑스의 문학 사회학자 로베스 에스카르피는 번역은 반역이다라고 말했다. 한 언어로 표현된 글이 다른 언어로 제대로 번역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나타내는 말이다. 번역가가 원문의 모든 단어를 직역한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번역했다고 할 수 없다. 원천 언어[각주:1]를 목표 언어[각주:2]로 바꾸었을 뿐 원문 저자의 의도와 생각이 제대로 번역됐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완벽한 번역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번역가가 직역에만 너무 집중하게 되면 원문 저자의 의도와 표현방법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독일 언어학자 훔볼트는 원문에 충실하려고 하면 할수록 궁극적으로 원문에서 점점 벗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번역본에서 원문 저자의 의도와 중심사상이 독자에게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되는가’ 이다.

 원천언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언어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자자체가 전부가 아니다. 한 언어는 한 나라의 문화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를 옮기는 일이다.

“Man does not live by bread alone"는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bread’라는 단어는 개역개정판에서는 으로,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모세나 예수그리스도 살았던 지역에서는 'bread'는 그들의 주식이었다. 그러므로 이 ‘bread’를 단지 이나 으로 번역하게 되면 원문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렇듯 번역가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의미전달에 실패하게 된다. 좋은 번역을 위해서는 원천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문화적 요소들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언어마다 각각의 문법이 있다. 번역할 때는 목표 언어의 문법을 적용해야 한다. 가령 한국어에서는 상황에 따라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격에 따라 동사 형태가 달라지는 라틴어 계열의 언어를 제외하고는 주어가 생략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I don’t think that it will rain tomorrow”의 문장을 번역하면, “내일은 비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해로 번역해 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국어에서는 라는 주어를 잘 생략하기 때문이다.

 번역본은 번역가가 다른 언어로 해석한 하나의 글이다. 번역가가 원문의 틀을 벗어나 번역해서는 안 되지만, 허용되는 일정한 틀 안에서 쉽게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렵게 번역해서 독자들의 가독성을 떨어뜨린다면, 좋은 번역본이라고 할 수 없다. 불필요한 수식어 사용을 자제하고, 적절한 접속어를 사용해서 문장 간 연결이 자연스럽도록 해야 한다. 글을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번역가가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글 쓰는 실력도 밑바탕이 돼야 한다.

 

 번역가는 원문의 저자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언어의 밑바탕에 깔린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뛰어난 글 실력으로 번역해도, 번역본이 원문의 핵심을 잃어버렸다면 번역본으로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번역가가 원문 저자의 의도를 고스란히 번역본에 담는다면, 번역본의 독자도 원문의 독자가 누리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김욱동(2007), 번역인가 반역인가, 문학수첩

 

2. 이종인(2009), 번역은 글쓰기다, 즐거운 상상

 

 

 

 

  1. 원문의 언어 [본문으로]
  2. 번역본의 언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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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2012. 5. 17. 12:00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_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것이다.




  

#1  빗장을 열어 마음 한 켠 고이 내주었던 녀석에게 속내를 비췄을 때, '지금은 아니예요'란 말이 내게 정면으로 들이쳤다. 난 울지 않았다. 그저 내 서투름을 책망했었다. 섣부른 나의 행동을 몹시 후회했었다.

 


2 '거절'당했다는 현실을 직면했을 때, 난 과감히 감정의 문을 열어 젖혔다. 허나, 남자이기에 꺼이꺼이 목을 놓을 수만은 없었다. 그저 몇 방울의 눈물만 뜨겁게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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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가졌는가

2012. 5. 11. 19:32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그대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하며

 방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

 "아니"라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군 시절  상명하복만이 존재하는 더러운 곳에서 지독한 고독이 날 엄습해 올 때, 모든 것들에 반기를 들며저항하고 싶었다. 고립된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평안을 얻고자 시를 읽었다.  

나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내가 붙들 그 사람들은 존재하는가. 가슴 속 깊이 '가족'이란 두글자가 떠올랐다.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혼자 끙끙 앓아도 도와달라고 절대 말 못하는 자존심 강한 나를 묵묵히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는 맘 따뜻한 누나.그들이 있어 난, 행복했다1년의 타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아둥바둥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내게 큰 힘이 되어주는 것 또한 가족이다. 우리 가족을 만난 것이 축복이다.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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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선교 간증문

2012. 5. 8. 19:02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무익한 종의 고백

 

선교는 누가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특별한 몇몇 사람들만 선교를 하는 것일까요? 아님 똑똑한 사람이 선교를 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이 선교를 하는 것일까요? 선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자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종이 시킨 일을 하고 있는데 주인이 그에게 사례 하겠느냐?”며 종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 하십니다. 당연히 종의 역할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주인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탄자니아 선교를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고, 제 호칭을 스스로 ‘무익한 종’이라 불렀습니다. 맡은바 역할을 감당하면서 하나님과 발 맞추어 함께 걷는 법도 배우고 싶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과 동행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고자 탄자니아로 떠났습니다. 머리로는 ‘동행’이란 두 글자를 떠올렸지만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갓난아이가 걸음마가 익숙해질 때까지 자주 넘어지듯이,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머릿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의식적인 노력 없이 그 분의 뜻을 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건축사역이 시작되면서 건축현장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제게 맡겨진 잡일들을 담당하면서 마음속에 불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들 듯 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 이런 잡일 하러 탄자니아에 온 것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대답은 않으시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나를 섬기면서 살라 하면 그리 할 수 있겠니?저 또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질문을 계속 던지셨고, 하나님의 따뜻한 손으로 제 지친 마음을 만지시던 날, 전 거실땅바닥에 무릎 꿇어 그리하겠다면서 그저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교현장도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예수님처럼 모든 이들을 포용하면 좋겠지만, 저 또한 본성이 악한 사람인지라 맘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현지인들에게 불만을 표하면서 언성을 높였던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제가 감당치 못할 만한 일들이 밀려왔을 때, 그 일을 맞닥뜨려야 하는 고단함이 싫어서 한 발짝 물러서서 방관한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제멋대로인 저를 나무라지 아니하시고 그 넓은 마음으로 그저 지켜 봐주셨습니다. 1년의 사역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지 못했던 부분들 때문에 마음 한 켠이 많이 무겁습니다. 특히, 제가 맡겨주신 영혼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울 뿐 입니다. 요즘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써 일하고 계신 탄자니아 선교사님들을 자꾸 떠오르게 하십니다. 그분들의 사역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제 삶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선교 1년은 하나님의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탄자니아에서의 실질적인 선교는 끝났지만 제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상명령을 위해 다시 힘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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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손'의 개입이 필요하다

2012. 4. 30. 14:58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관계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소비자의 수요에 대한 공급은 기업들이 담당한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상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기업들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유발시켜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의 상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시장경제는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는 집권초기에 경제성장를 목표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대기업들은 신규 설립과 인수합병을 하면서 거대한 자본을 확보해나갔다. 현재 그 자본을 가지고 골목시장까지 점령해 나가고 있다. 문구점, 동네 빵집과 커피점은 물론 심지어 떡볶이, 순대까지, 대기업 계열사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골목 시장에서 영세업자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호텔신라가 운영해오다 최근 사업철수를 발표한 베이커리 카페 '아티제' 청계광장점 모습

 또한 대기업은 수요독점을 기반으로 하청 중소기업들에게 납품단가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중소기업들 간에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하청기업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대기업과 거래를 하는 것이다.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현상과 독과점은 한국경제의 가장 극적인 시장실패이다. 제 시장경제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길 것이 아니라 '보이는 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첫째,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규제는 정부가 특정 분야에 대해 확장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확보해놓은 거대한 자본이 있기 때문에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점포를 확장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자들은 처지가 다르다. 일정기간 동안의 판매 매출을 통해 기술을 개발할 것이냐 아니면 점포를 확장할 것인가 등을 결정할 것이다.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영세업자들이 경쟁하는 것은 권투에서 라이트급과 헤비급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대기업의 점포 확장 개수를 제한하거나 빵집이나 문구점 같은 특정 분야에 대해 진입하지 못하도록 법적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현실에게 점점 커져만 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문제는 실제적인 제도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공정거래 위워회 등 정부기관의 독점 제소권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의 확대, 조사방해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처벌 강화 등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가 중소기업에게만 적용되는 저금리 대출 정책을 마련해줌으로써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정부의 개입을 통한 양극화 해소 정책의 핵심은 중소기업이 스스로 이룩한 정당한 성과를 공정한 거래를 통해 중소기업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대기업 수요독점에 따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와 경제력 집중현상은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대기업들이 수출을 주도하면서 이끌어 온 한국경제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정부는 단기적인 관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들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할 거이다. 그리고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과 수요독점을 규제함과 동시에 중소기업과 영세업자들이 대기업과 동등한 조건에서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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