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절규

2015. 3. 8. 19:22 신앙/말씀 묵상(默想)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마태복음 27장 46절 중에서-







십자가상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절규하면서까지, 그리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대답이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고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각주:1]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신 것이다. 그가 이루어야 할 사명을 위해서.



그러한데 난 여기서 고통의 문제 앞에 있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인간적인 고통 앞에서 하나님께 탄식과 원망의 기도를 쏟아내는 것이, 어찌 신앙의 기준으로 미성숙하다고만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상황 앞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지 않은가. 지속적으로 그러한 방식을 기도의 자리에 나아간다면 그 사람의 믿음을 살펴볼 수 있겠지만, 고통의 문제 앞에서 감정을 억누르고, 무조건 하나님은 선하시다, 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참된 신자가 행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모습이란 말인가. 분명히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지만 고통 앞에서 인간인,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절규할 수 있지 않은가. 울 수 있지 않은가. 아픔 속에 휩싸일 수 있지 않은가. 아프지 않은 척, 슬프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웃고 있어야만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위선적인 신자가 되는 것이 더 나쁘지 않을까. 하나님 앞에서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부르짖는 것도 자녀된 자로서 하나님 앞에 행할 수 있는 태도라고 본다. 고통과 슬픔 앞에서 솔직해지자.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니 말이다.  





  1. 히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은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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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자, 그리고 남은 자.

2015. 3. 2. 21:38 삶을 살아내다



떠나는 자, 그리고 남은 자.



서로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봤다. 그들이 떠나갈 때, 이번이 마지막이 아님을 스스로 다짐하며, 그들의 허전함과 아쉬움이 조금이나마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아픔은 너무나 뚜렷하게 개별적이라, 어설픈 위로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또 봅시다, 그들에게 마지막 던진 말, 빈말은 아니었으니, 꼭 다시 보리라. 그리고 담담했다. 난, 다시 무리로 돌아가서, 떠나버린 그들을 잊어버렸으며, 환하게 웃었다.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이. 




무리들과 어울리다 그 자리를 떠날 때 공허했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짓누르는 것도 있었지만,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게, 무엇도 말하고 싶지 않도록 했다. 감정의 출처를 찾아, 마음의 길들을 따라갔다. 그 감정들은 떠나버린 자들을 잊고 있었던, 까맣게 잊고 무리 속에서 환히 웃고 떠들었던 나와 동시에 두 명을 잃은 아픔의 간극 속에서 혼란스러운 또 다른 나에서 온 정신적 균열이었다. 아픈이들과 약자들의 친구가 되고 싶었건만, 그들을 지켜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노여움이랄까. 저녁내내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떠나는 자들을 바라보면서, 아파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남은 자들도 생각해야지. 그렇다고 또 즐겁게 웃을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알 수 없는 질문들만, 맴맴.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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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라.

2015. 2. 28. 17:13 삶을 살아내다



삶의 길을 결정하는데 있어 말씀을 온전히 따라간다는 것, 신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지만, 그 때마다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따라붙게 된다. 하지만, 말씀은 명료하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후 10:2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후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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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3장 - 믿음은 순종의 행위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2015. 2. 25. 12:43 신앙/여호수아 묵상




출처: www.champyungan.com







여호수아 3: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3:14-17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앞에서 나아가니라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맨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믿음의 순종)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언약의 성취)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화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이신칭의', 오직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 행위로써는 의를 성취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바를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무엇을 믿고 있다고 하나, 그것을 위해 살아내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다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참된 믿음은 실제 삶에서 순종의 행위로써 드러나게 마련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 또는 빛의 열매들을 맺게 되어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그에 대한 순종으로써 요단강에 발을 내딛는 행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언덕에 넘치는 요단강물을 겁내서 강에 발을 내딛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하신 언약은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다. 성경전체에서 말하듯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순종을 원하시며, 그들의 순종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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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버리다.

2015. 2. 21. 11:20 삶을 살아내다






생각하는 바를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는 고집때문에 다시 관계의 끈을 잘라버렸다. 늘 그랬듯 혼자 결정한 다음, 새벽녘 감상에 젖은 채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통보 후 상대방은 별다른 반응은 보이진 않았지만, 예상하건대 당혹스러웠으리라. 뭐, 이런 놈이 있지, 라고.  









실낱같이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 김경미 시인의 <비망록> 중에서 








10년간 유지해 온 관계라, ''이라는 질기고도 아린 것이 내 옷깃을 잡기도 하지만. '원칙'과 '가치관'이라는 칼로 단호하게 잘라버리고,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네가 언제 사람을 찾았더냐' 


여하튼,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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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가벼움', 그리도 단칼의 '차가움'

2015. 2. 20. 23:29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관계의 '가벼움', 그리도 단칼의 '차가움




2년간 군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연락하는 사람은 동기 단 한 명뿐이고, 

- 그 때는 사회성이 너무나 부족해서, 군대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고등학교 때 친했던 10여명 친구들 중 그나마 연락을 유지하고 있는친구도 한 명뿐이고, 

- 방황하던 시절 세상의 것들이 좋아 만난 친구들이니, 이젠 관심사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하고-

1년간 아프리카 선교를 다녀와서 연락하고 있는 선교사님은 두명 뿐이고.

- 음...




위의 사례들을 제외하고도 오랜시간 함께 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이유는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하고.

 



지난 세월간 인간관계가 더 확장되지 못한 더 큰 이유는 관계를 단칼에 자르고 뒤를 다시 돌아보지 않는 차가움에 있을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너무 쉽게 버리는 성향은 나의 삶 어떤 부분에서 비롯된 것일까. 삶의 흔적들을 되 짚어 보지만, 관계의 차가움을 일으키게 한 사건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하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일까. 





연구실 후배들과 이성친구과의 인간관계를 너무나 쉽게,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내 옛적 모습들로 인해 진짜 '나쁜놈'이 되어버렸다,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나쁜남자' 말고. 그래도 연구실 후배들은 내가 선배인지라, 예의상 '나쁜남자'라고 이야기한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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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2월 3째주)

2015. 2. 20. 22:39 신앙/기도(祈禱)





1. 한달 간 쉬다가 연구실로 복귀했습니다. 다시 마음을 잡고 연구주제에 대해서 실험을 하면서 기존의 것을 진전시켜야 하는데,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하게 시간을 보낼 때가 많습니다. 목표를 명확이 세워서 의지를 가지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2. 연구를 위해 목포대학교에 약 두달정도 가 있을 예정입니다. 먼저는 숙소문제가 잘 해결되고, 두달간 목포대학교에 계신 교수님께 조언을 잘 받으면서 연구를 진척시킬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3. 두달 간 목포로 가게 되면, 주일에 어느 교회를 다녀야 할 지 결정해야 합니다. 첫번째 방법은 주일마다 서울에 올라와서 주님의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서울에 왔다가 다시 내려가면, 시간과 교통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교회 공동체에서 교제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두번째 방법은 목포 근처에 있는 광주 주님의 교회에 다니느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좀 더 에너지가 더 소모되기는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척교회라서 지금 도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것 같기 때문에, 제가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지혜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기도제목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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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주권자

2015. 2. 19. 23:48 신앙/말씀 묵상(默想)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엡 1:20-23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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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먼저 안 자의 의무.

2015. 2. 18. 15:00 신앙/말씀 묵상(默想)







간혹 세상의 것들을 좋아라 하며, 그것을 권하는 이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난, 관심없다고. 나는 당신이 모르는 것을 엄청난 것을 알고 있다, 구원의 비밀을.






근데 그 사람이 구원을 풍성한 비밀을 몰라서 구제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과 구원받지 못한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보다는, 나만 그 구원을 비밀[각주:1]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마음이 먼저 앞서는데, 이거 참 곤란하다. 복음을 먼저 안 자가, 복음을 전하는데 앞장서야 함은 당연한 것인데, 어찌 나만 아는 것에 안도하는 것인지. 정신차려, 임마. 








  1. 네가 만일 네 입으로 1)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2)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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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일정, 그리고 말의 지혜.

2015. 2. 18. 12:59 삶을 살아내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 10:19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니라 

잠 17:27-28







 요즘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약속을 잡아 사람을 만나곤 했지만, 최근 들어 일주일에 두, 세번 정도 약속을 잡는 것 같다. 그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만나야 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의도적인 행동이다. 그러다보니, 난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가 소모되는 사람인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방전된 느낌이다. 또한 사람들을 만나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쓸데없는 말들도 많아지게 되는 듯. 해야할 말은 분명하게 하되, 하지 말아야 할 쓸데없는, 것들은 더 생각해보고 말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말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2월 일정


9일

레몬 유자티 with 호식, 상범 in A Twosome Place


10일

with 금진, 성민, 은혜, 명숙, 정규 in 형은 & 형권's apartment


12일 

돈까스, 라볶이, 김밤 with 인태, 상범 in 김밥천국


15일 

with 학영, 지은 in 사리원 of dcubecity


16일

with 현주, 종우, 지영 in bibigo of SNU


17일 

with 은혜, 한영(?) in Meat house


with 상범, 민주, 소영 in 설빙 near 서울대 입구역 2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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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과 새사람.

2015. 2. 14. 21:26 신앙/말씀 묵상(默想)


에베소서 4:17-24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여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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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인간과 신을 바라보는 시선.

2015. 2. 11. 20:34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타락한 자아가, 인간의 본성이 스스로의 욕구를 채우기에 위해 무한질주 한다. 본래 인간은 자신을 위해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는데, 어찌 이 불행이 인간에게 닥친 것인지. 한명의 인간, 아담이 죄악을 범함으로써 인간는 타락한다. 하지만 이 시대의 인간들은 스스로 타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존귀한 존재이며, 마땅히 사랑받아야 한다, 강조한다. 그러니 사회의 흐름에 편승한 왜곡된 기독교는 그저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는 그럴듯 하지만 아주 중요한 기독교의 핵심 - 십자가 죽음과 부활 - 이 빠진 사탕발린 소리만 하는 것이다. 왜냐면 성도가 곧 소비자이며, 소비자의 구매욕구(교회등록)을 맞추려면 그에 맞는 소리를 해야 하니까. 개혁주의에서 강조하는 전적타락을 생략하고 이야기하는 복음은 참된 복음이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기독교의 복음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기독교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이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주의''사상'들을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이 세대의 흐름이 한 몫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은 그대가 되고자하는 인물을 창조해낼 수 있는 조각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미국 자연주의 작가)-








이전 시대에도,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자연주의. 자연주의에서 말하는 바는, 모든 만물의 근원이 자연이며, 인간은 자연의 산물 중 하나 일 뿐이다. 신은 무엇이냐. 인간의 본질을 인간 밖에 투영한 하나의 허구적인 존재 일 뿐이다. 결국, 사람이 신을 만들었다는 소리다. 즉, 자연주의가 말하는 것은 모든 존재하는 것이 자연이고 모든 것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다. '자연'을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장프랑수아 밀레(대표적인 사실자연주의 작가)이삭 줍는 여인들 (1857). Musée d'Orsay, 파리.

출처: http://blog.naver.com







그리고 자연주의는 현실 세계를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을 나눈다. 이성적으로 설명되어 질 수 있는 부분을 과학의 범주라고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부분은 종교의 범주로 넣는다. 초자연적인 힘이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자연주의에서는 종교인 기독교를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세대의 흐름 속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지향하는 이 시대의 인간들은 기독교를 더욱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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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

2015. 2. 9. 13:37 삶을 살아내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불어오는 찬 바람에 옷깃을 더 여미었다. 조금은 낡았고, 조금은 더럽다고 생각되는 옷을 입은 사내가 손에 쓰레기 더미를 가지고 정류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걸음은 바람에 휘청거렸다, 기우뚱.






'저 아저씨 어디서 술 한잔 하시고 오시는건가...' 






그가 걸어오는 길에 스웨터가 하나 떨어져 있었고, 그는 그것을 주워 앞뒤를 살펴보았다. 그러고선 그 옷을 손목에 둘둘 감고서 다시 길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옷을 주워서 자신이 필요할 때 입겠거니 생각했다.








"노숙자인가 보..."







그 사내는 길을 걸어오다 버스정류장 옆 쓰레기통 앞에 멈춰섰다. 나는 이 사내를 아무런 생각없이 바라봤다. 그런데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길에서 주운 스웨터는 쓰레기통 옆에 가진런히 정리해서 두었고, 손에 들려있던 쓰레기는 용도에 맞게 잘 분리수거를 해서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주 꼼꼼하게 말이다.  




'나'란 사람, 다른 사람을 너무나 쉽게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그저 그 사람의 외모만으로 말이다. 나도 '속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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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예의 _ 인생에 대한 책임

2015. 2. 6. 17:33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인생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 지 몰라 고민할 때 누군가에게 조언을 받을 수도 있고 자신이 신뢰하는 책을 읽으면서 삶을 방향을 다시 확인할 수도 있다. 그 고민의 순간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겠지만 그에 대한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이어야 한다선택 이후의 모든 삶과 선택에 따른 결과는 자신이 떠 안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이지 않을까 싶다. 

혹여나, 그 선택의 결과로 인해 그 선택을 권했던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진다면, 그 말을 따라갔던 너의 우둔함을 욕하면 되는 것이다. 그 선택을 하게끔 나를 불리한 상황으로 몰고 간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다 그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 나수동적인 태도를 꾸짖으면 될 터. 

여하튼, 명심해라, 나의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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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충고.

2015. 2. 3. 21:32 삶을 살아내다


맡은 바 자리에서 요구되는 업무가 있다면, 실력이 뛰어나든, 아니면 그렇지 않든, 

맡은 일을 마무리 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욕 처먹는거야, 뭐, 고이 잡숴주지, 그 따위것들. 하하하.  



근데 하루는 24시간인데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16시간 정도 남는다는 말인데.

이 16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중요하단 말이지, 이 잡놈아. 

정신차려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경고하는데, 고독, 감정따위에 매몰되어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바보가 되지는 말아야 할 터. 그리고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먹고 못하겠다 물러서는 겁쟁이는 더 더욱 되지 않도록 해야겠지. 안 그러냐, 으이.




현실을 직시하라고, 너 31살이야. 징징거릴때가 아니란 말이지. 

"여기가 로도스야, 여기서 춤추라고" 



아, 참.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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