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한 장 _ 안도현

2015. 10. 8. 01:50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 darimsorilog.tistory.com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이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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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Mark _ 하동균

2015. 10. 3. 23:58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www.maniadb.com




From Mark              


                                                        하동균 



남겨진 바다에 버려진 병처럼 

멈출 수가 없어 닿을 수도 없어


차라리 부서져 가라앉는다면 

조금은 편하게 살 수 있을텐데


자꾸 흘러서 점점 멀어져 

힘껏 달려도 또 제자리에 있어 난


I will fly 날 밀어내는 너라는 파도와

날 조여오는 기억의 바람과

날 묶어버릴 남겨진 시간들


모든 건 멈췄어 시간은 닫혔어 

기억이란 감옥 불타버린 희망


추억이 나타나 흔적에 닿으면 

머리칼을 뜯고 소리를 지르다


니가 넘쳐서 숨이 막혀와

힘껏 달려도 늘 닿을 수도 없어 난


I will fly 날 밀어내는 너라는 파도와

날 조여오는 기억의 바람과

널 묶어버릴 남겨진 시간들


I will fly 날 밀어내는 너라는 파도와

날 조여오는 기억의 바람과

널 묶어버릴 남겨진 시간들


I will fly from mark

I will fly from mark





From 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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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해서 아름답게 강물은 흐르고 _ 신경림

2015. 8. 15. 20:4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담담해서 아름답게 강물은 흐르고 


                                          신경림                                                     


폭풍이 덤벼들어 뒤집어놓기도 하고

짐승들이 들이닥쳐 오물로 흐려놓기도 하는 

강물이 어찌 늘 푸르기만 하랴

산자락에 막혀 수없는 세월 제자리를 맴돌고

매몰찬 둑에 뎅겅 허리를 잘리기도 하는

강물이 어찌 늘 도도하기만 하랴

제 속에 수많은 사연과 수많은 아픔과 

수많은 눈물을 안고 흐르는 강물이 어찌 늘

이슬처럼 수정처럼 맑기만 하랴

그래도 강물은 흐르니 세상에 

마실 것도 주고 먹을 것도 주면서 

노래가 되고 얘기가 되면서 

강물이 어찌 늘 고요하기만 하랴 

자잘한 노여움과 하찮은 시새움에 휘말려 

싸움과 죽음까지도 때로는 안고 흐르는 

강물이 어찌 늘 넓기만 하랴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하늘의 힘을 빌려다 마을과 들판을

눈물로 쓸어버리기도 하는 강물이 

제 몸까지 내던지며 하늘과 

땅을 한바탕 뒤집어놓는 강물이 

어찌 늘 편하기만 하랴 


강물이 어찌 유유하기만 하랴 

강물이 어찌 도도하기만 하랴 

그래도 강물은 흐르고

담담해서 아름답게 강물은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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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_ 김경미

2015. 8. 15. 20:37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김경미 



낯선 읍내를 찾아간다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포플러나무가 떠밀고 

시외버스가 부추기는 일이다 


읍내 우체국 옆 철물점 싸리비와 

고무호스를 사고 싶다 

청춘의 그 방과 마당을 다시 청소하고 싶다 

리어카 위 잔뜩 쌓인 붉은 생고기들

그 피가 옆집 화원의 장미꽃을 피운다고 

청춘에 배웠던 관계들 

언제나 들어오지 마시오 써 있던 풀밭들

늘 지나치던 보석상 주인은 두 다리가 없었다

머리 위 구름에서는 언제나 푸성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손목부터 어깨까지 시계를 차도 시간이 가지 않던 

시간이 오지 않던

하늘에 1년 내내 뜯어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건 

좌절과 실패라는 것도 청춘의 짓이었다 


구름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고개가 부러졌던 스물셋

설욕도 못한 스물여섯 살의 9월

새벽 기차에서 내리면 늘 바닷속이었던 

하루에 소매치기를 세 번도 당했던 

일주일 전 함께 갔던 교외 찻집에 각각

새로운 연인과 동행했던 것도 

어색하게 인사하거나 외면했던 것도 언제나 청춘이 시킨 짓이었다 


서른 한 살에도 서른 여섯 살에도 

계속 청춘이라고 청춘이 계속 시키며 

여기까지 오게 한 것도 다 청춘의 짓이다 

어느덧 불 꺼진 낯선 읍내 

밤의 양품점 앞에서 

불 꺼진 진열장 속 어둠 속 마네킹을 구경하다가 

검은 마네킹들에게 도리어 구경 당하는 것도 

낯선 읍내 심야 터미널 시외버스도 

술 취해 옆 건물 계단에 앉아 우는 남학생도 

떨어져 흔들리는 공중전화 수화기도 

다 청춘이 불러낸 짓이다. 


그 수화기 떨어지며 내 청춘 끝났다 절규하던 목소리도 

그 전화 아직 끊기지 않았다는 것도 

지금이라도 얼른 받아보라고 

지금도 시키는 것도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아직도 시킨다고 따라나서는 것도 

아직도 청춘이 시키는 일이라고 믿는 청춘이 

있다는 것도 다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31살, 청춘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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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c.s. Lewis - 마음에 와 닿은 문장들

2015. 5. 5. 10:53 책과 글, 그리고 시/좋은 문장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 c. s. Lewis 

 

 

그렇다면 인간이 빠져 있는 '곤경'이란 어떤 것일까요? 스스로 독립적인 위치에 서려고 한 것, 스스로 자기의 주인인 양 행세하려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타락한 인간은 개선의 필요가 있는 불완전한 피조물이 아니라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아야 하는 반역자입니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면서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 그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 왔음을 깨닫고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것, 이것이 이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분별력Prudence'이란 실생활에 적용되는 양식, common sense을 뜻하는 말로서,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 하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예상치 못하는 곳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방해하는 진짜 문제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바로 그 순간 찾아옵니다. 그 순간 그날의 모든 소원과 희망이 맹수처럼 달려들지요. 따라서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것들을 모조리 밀어내는 것입니다. 다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며, 좀 더 크고 강하고 고요한 생명이 흘러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날마다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안달복달하며 야단법석을 떠는 자연적 자아에서 물러서야 합니다. 그 세찬 바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그분께 자신을 드리면 드릴수록, 그만큼 더 우리는 진정으로 자기다워집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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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 윤리와 도덕의 차이

2015. 3. 19. 00:27 책과 글, 그리고 시/좋은 문장

 

 

 

윤리라는 말은, 한 공동체가 오랜시간에 걸쳐 공동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시간을 두고 형성해 온 삶의 방식을 통해 이룩된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방식을 말한다. 이 말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의 'ethos' 는 삶의 방식이라는 뜻이며, 구체적인 역사적, 지리적 환경과 결부된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도덕은 구체적인 삶의 여건에 대한 고려를 전적으로 고려한 채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주로 이성적 관점에서 정신적으로만 접근해 들어가 얻어낸 답을 말한다. 

 

 

구체적인 삶의 여건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도덕은 처음부터 보편성은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윤리는 구체성을 전적으로 포괄하면서 전개되므로 보편성을 주장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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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인간과 신을 바라보는 시선.

2015. 2. 11. 20:34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타락한 자아가, 인간의 본성이 스스로의 욕구를 채우기에 위해 무한질주 한다. 본래 인간은 자신을 위해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는데, 어찌 이 불행이 인간에게 닥친 것인지. 한명의 인간, 아담이 죄악을 범함으로써 인간는 타락한다. 하지만 이 시대의 인간들은 스스로 타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존귀한 존재이며, 마땅히 사랑받아야 한다, 강조한다. 그러니 사회의 흐름에 편승한 왜곡된 기독교는 그저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는 그럴듯 하지만 아주 중요한 기독교의 핵심 - 십자가 죽음과 부활 - 이 빠진 사탕발린 소리만 하는 것이다. 왜냐면 성도가 곧 소비자이며, 소비자의 구매욕구(교회등록)을 맞추려면 그에 맞는 소리를 해야 하니까. 개혁주의에서 강조하는 전적타락을 생략하고 이야기하는 복음은 참된 복음이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기독교의 복음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기독교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이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주의''사상'들을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이 세대의 흐름이 한 몫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은 그대가 되고자하는 인물을 창조해낼 수 있는 조각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미국 자연주의 작가)-








이전 시대에도,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자연주의. 자연주의에서 말하는 바는, 모든 만물의 근원이 자연이며, 인간은 자연의 산물 중 하나 일 뿐이다. 신은 무엇이냐. 인간의 본질을 인간 밖에 투영한 하나의 허구적인 존재 일 뿐이다. 결국, 사람이 신을 만들었다는 소리다. 즉, 자연주의가 말하는 것은 모든 존재하는 것이 자연이고 모든 것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다. '자연'을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장프랑수아 밀레(대표적인 사실자연주의 작가)이삭 줍는 여인들 (1857). Musée d'Orsay, 파리.

출처: http://blog.naver.com







그리고 자연주의는 현실 세계를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을 나눈다. 이성적으로 설명되어 질 수 있는 부분을 과학의 범주라고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부분은 종교의 범주로 넣는다. 초자연적인 힘이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자연주의에서는 종교인 기독교를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세대의 흐름 속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지향하는 이 시대의 인간들은 기독교를 더욱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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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발췌한 글-2

2015. 1. 28. 14:32 책과 글, 그리고 시/좋은 문장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영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힌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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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_ 알렉산드로 솔제니친

2015. 1. 28. 12:33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알렉산드로 솔제니친 저, 이영의 옮김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갈 때, 그 삶의 환경이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바뀔수 있다. 

그러한 상황을 몇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자연적인 재해나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 아니면 적응하지 못하느냐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두번째는 타자나 한 인간에 의해 좌지우지된 상황이라면, 그 권력에 순응하는가, 아니면 반대하여 타개해나가는가의 문제에 다다를 수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수용소는 지배급과 피지배급이 명확하게 나누어진다. 피지배층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노동의 산물로 얻어진 이익은 지배층들에게 다 돌아간다. 피지배층의 노동의 대가는, 오로지, 한 그릇의 양배춧국과 빵일뿐이다.  

 
  


하지만 이반은 이러한 불합리한 수용소에서 살아갈 방법을 몸에 아주 잘 익혔으며, 매 순간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비열하게 남의 것에 눈독들이지 않으며, 자신의이익을 위해서 치사한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수용소의 상황에 순응하며 몸 상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다. 불합리한 체제에 스스로 순응하여 권리조차 주장하지 못하는 자의 실존에 대한 문제, 내가 처한 문제이기도 하지 않을까, 묻곤한다.







p.73

어림없는 얘기다.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게 하기위해서 반이라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이 아닌가 말이다. 똑같은 반이라도 이반에겐 이반대로, 표트르는 표트르대로 임금을 지불해주는 그런 자유세상에 있는 반하고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 <중략> -

반 전원이 상여 급식을 타먹게 되느냐, 아니면 배를 주리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걸린것이다. 



p. 157

이 한 그릇의 양배춧국이 지금의 그들에겐 자유보다, 지금까지의 전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p. 170

사람들은 점점 맥이 빠지고 숨소리만 거칠어진다. 이 모든 것은 양배춧국 한 대접을 얻기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지급되어야 할 한 그릇의 양배춧국은 얻기 위해서 말이다. 



p.172

그러자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녀석이 달려와서 쟁반을 빼앗으려 한다. 슈호프보다 약골처럼 보인다. 슈호프가 그 녀석쪽으로 쟁반을 홱 밀자, 그 녀석을 뒤로 쿵 넘어져 기둥에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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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_C.S. Lewis

2015. 1. 21. 23:54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C.S. Lewis, 김선형 옮김

 출처 : openuri.tistory.com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신(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시고 그들에게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허락하셨다. 창조주(하나님)가 피조물(인간)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했기 때문에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감수하신 것이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것들을 향유하였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선을 향하게 되어있었다. 안타깝게도, 창세기에 기록되었듯이 간교한 뱀이 하와를 유혹함으로써 아담과 하와는 자유의지를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그들 악을 행하게 됨으로써 인간은 타락한 존재가 된다. 모든 의지와 욕구가 자아를 충족시키는데 몰두하는, 이기적인 존재.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긴 했지만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은 하나님의 지적체계를 이어받은 존재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과 사고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절대 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 -사랑, 온유, 기쁨 등-을 지니고 있다. 물론 아담의 죄 때문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육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달픈 인생이긴 하지만 말이다.

 

만약 인간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들은 창조 때 지음받은 선한 마음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사는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게 방해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사탄(Satan)이다. 사탄은 인간이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만들며, 타락한 인간들은 현재의 모습과 상황이 자신의 최선이라 여기며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이러한 사탄들의 입장에서 인간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라본것이다. 이 책은 선배 사탄이 후배 사탄에게 인간들을 공략할 전략과 그에 대한 내용들을 편지형식으로 묶어 놓은 것이다. 책에서 사탄은 타락한 인간들에게 자신을 지은 존재, 즉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게 만들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도록 인간을 유혹한다. 저자 C.S. Lewis의 발상 자체가 신선하다. 사탄들이 인간들에게 원하는 것 -즉,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이 무엇인지 고찰해야 하는 고단함을 무릅쓰고, 사탄의 입장에서 글을 써 내려 간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책 중간 중간에 사탄의 입장에서 말하는 원수(하나님)의 진리들을 읽을 때면, 짜릿하기도 했도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사탄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또한 각각의 상황에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의 편에서 옳은 것인지 고민해보면 좋을 듯 하다. 






p.23

교인이 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찾아오는 실망감이나 맥 풀리는 느낌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원수는 인간의 노력이 문턱을 넘으려 할 때마다 이런 실망감이 찾아오는 걸 허용하고 있다. 


p.54

원수가 인간을 사랑한다느니 원수를 섬기는 게 외려 완벽한 자유라느니 하는 말들이 단순한 선전문구가 아니라(우리야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만) 소름끼치는 진실이라는 점은 우리도 직시해야 한다.


p.56

인간이 원수(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싶은 갈망을 잃었더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의도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세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원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 같고 왜 그가 자기를 버렸는지 계속 의문이 생기는데도 여전히 순종한다면, 그 때보다 더 우리의 대의가 위협받을 때는 없다. 


p.91

원수의 이상형은 하루종일 후손의 행복의 위해 일한 다음(그 일이 자기 소명이라면), 그 일에 관한 생각을 깨끗이 털고 결과를 하늘에 맡긴 채 그 순간에 필요한 인내감사의 마음으로 즉시 복귀하는 인간이다.


p.168

비겁하게 만들까? 아니면 용감하게 만들어서 교만을 유도해 볼까?


p.186

이 순간 나(스쿠르테이프)를 지탱해 주는 것이라곤 얼빠진 헛소리나 사탕발림을 거부하는(어떠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주의가 끝내 승리하고 말리라는 확신뿐.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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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록_김경미

2015. 1. 20. 00:19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비망록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술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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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발췌한 글-2

2014. 12. 22. 12:58 책과 글, 그리고 시/좋은 문장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날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릴 정도의 극심한 통증을 겪으며 긴 행렬에 끼어서 수용소에서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날은 추웠고,살을 에는 듯한 버람이 우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는 우리의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만약 특별 배급으로...

 

 <중략>

 

그러다가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이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내 앞에는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느 강제수용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  빅터 프랭클의『죽음의 수용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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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하나의 희망

2014. 12. 22. 12:21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몸 하나의 희망



                                                      박노해 



희망찬 얼굴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대안이 없다, 크나큰 위기다, 전망이 안 보인다, 

모두들 길을 잃고 모두들 힘 빠지고

모두들 춥고 쓸쓸한 날들입니다

우리,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자기를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무엇이든 쉬이 논하지 마십시오 쉬이 뜰뜨지 마십시오 

자기 선 자리에서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모색과 지난날에 대한 정리와 

자신을 성찰하는 힘에서 균형감각을 놓치지 마십시오

상황이 어려울수록 조용한 자신감을 잃지 마십시오 



<생략>


- 박노해, 람만이 희망이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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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_김춘성

2014. 11. 24. 02:40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풍경소리   


                                           김춘성




어느 때 가장 가까운 것이 

어느 때 가장 먼 것이 되고,

어느 때 충만했던 것이 

어느 때 빈 그릇이었다.


어느 때 가장 슬펐던 순간이 

어느 때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오고

어느 때 미워하는 사람이 

어느 때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은 어느 때 무엇으로 내게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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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_옹졸함과 비굴함에 대하여

2014. 9. 1. 19:28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을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이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 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퀵배달 직원에게 예상된 배송시간보다 오래 걸렸다고 배상을 촉구하고, 

직원말고 사장과 이야기 하고 싶다며, 핏대 세우며 고객의 권리를 찾으려는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전화상으로 비웃은 이에게, 

전화를 다시 걸어 내 질문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꼼꼼하게 증명한 뒤, 

그 때 왜 웃었냐고, 당신 이름이 뭐냐고, 매섭게 쏘아붙이는. 


권리와 자존심을 그리도 내세우는 자가, 

어찌 을의 입장에 있을 때는 그리고 처절하게 아무소리 못하는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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