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해서 아름답게 강물은 흐르고 _ 신경림

2015. 8. 15. 20:4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담담해서 아름답게 강물은 흐르고 


                                          신경림                                                     


폭풍이 덤벼들어 뒤집어놓기도 하고

짐승들이 들이닥쳐 오물로 흐려놓기도 하는 

강물이 어찌 늘 푸르기만 하랴

산자락에 막혀 수없는 세월 제자리를 맴돌고

매몰찬 둑에 뎅겅 허리를 잘리기도 하는

강물이 어찌 늘 도도하기만 하랴

제 속에 수많은 사연과 수많은 아픔과 

수많은 눈물을 안고 흐르는 강물이 어찌 늘

이슬처럼 수정처럼 맑기만 하랴

그래도 강물은 흐르니 세상에 

마실 것도 주고 먹을 것도 주면서 

노래가 되고 얘기가 되면서 

강물이 어찌 늘 고요하기만 하랴 

자잘한 노여움과 하찮은 시새움에 휘말려 

싸움과 죽음까지도 때로는 안고 흐르는 

강물이 어찌 늘 넓기만 하랴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하늘의 힘을 빌려다 마을과 들판을

눈물로 쓸어버리기도 하는 강물이 

제 몸까지 내던지며 하늘과 

땅을 한바탕 뒤집어놓는 강물이 

어찌 늘 편하기만 하랴 


강물이 어찌 유유하기만 하랴 

강물이 어찌 도도하기만 하랴 

그래도 강물은 흐르고

담담해서 아름답게 강물은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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