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과 가져온 것 - 곽효환

2014. 7. 20. 21:00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잃어버린 것과 가져온 것

- 곽효환 - 



 늦가을 지중해 서쪽 휴양도시 안탈리아는 드문드문 들고나는 게르만 노인들로 철 지난 황량함을 위로받습니다 

국경일 펼쳐진 도심을 가득 메운 군악대와 카퍼레이드, 거리에 도열한 갖춘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소년 소녀들의 얼굴엔 긴긴 세월 동서를 넘나든 혹은 떠나고 머문 수많은 사람들의 유전자가 곳곳에 드리워 있습니다 아득한 시절 로마황제의 이름을 딴 세 개의 아치로 된 히드리아누스 문에서 만난 상인들은 하나같이 곤니치와라고 인사를 건넸다가 이내 자신의 친척 누군가가 한국전쟁에 다녀왔다고 말을 바꿉니다


 예서 한 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점심을 먹기 위해 강변 작은 마을에 일행을 부려놓습니다 차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일행에게 땀에 전 남루한 옷차림의 한 작은 소녀가 수줍게 들꽃 한 송이를 내밉니다 갑작스러워 구걸행위가 아닌가 하는 당혹감에 잔뜩 경계심을 풀지 못한 낯선 동양인 사내에게 자신을 닮은 꽃을 건넨 소녀는 이내 등을 돌려 저만치 있는 할머니 품에 몸을 숨기고 파란 눈망울을 껌벅거리며 슬며시 눈길을 보냅니다

 소녀가 건넨 들꽃 한 송이와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내가 잠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주머니 속 10유로 짜리지폐를 만지작거리다가 끝내 어린 소녀의 얼굴만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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