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31. 13:08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2024년 12월 3일 22시 28분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국회와 선관위에 무장 군인들이 대거 투입되었고 군용차와 장갑차가 서울 도심으로 진격했다. 맨손의 시민들과 무장 군인들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대치하였고 맨몸의 시민들은 장갑차를 막아섰다. 7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은 21세기에 사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만, 윤석열과 그를 따르는 비정상적인 군을 빼고.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했다.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정부 아래서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악의 평범성(banai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은 예루살렘의 재판장에서 자신의 죄에 대해 자각하지 못했고, 자신의 행동은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라며 자신이 무죄라고 항변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악은 악한 마음에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관점에서 사유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고 말하였다. 즉, 악은 무사유(thoughtlessness)로부터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한나 아렌트와 기독교의 악의 개념의 차이다. 기독교에서 악은 인간이 거듭나지 않은 이상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본성이다. 기독교에서 인간을 바라는 관점은 두 가지뿐이다. 첫번째 관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거듭난 의인, 두번째 관점은 자신의 의로 구원받으려는 죄인 또는 자신밖에 모르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인간이 착하게 살려고 노력할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기독교의 선(善,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모든 인간은 "악"한 존재일뿐이다. 결국, 한나아렌트의 "악"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악"은 시작점부터 다르기 때문에 서로 비교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생각할 때 어떠한 사안에 대해 사유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악한 행동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윤석열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위법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 명령에 대하여 그 부하들이 적절한 사유의 과정없이 그 명령을 그대로 따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이다. 그나마 그 당시 부당한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은 "사유"하는 군인들이 있었기에 대규모 유혈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시민을 향해 겨누었던 총구에서 한발의 탄알이라도 발사되기 시작했다면, 군부독재 이후에 대한민국이 쌓아 온 민주주의는 싸그리 무너졌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구원받지 않는 이상 본성이 "악"한 존재이다. 다만, 기독교에서 말한 타락은 창조 때의 선이 완전 말살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타락했으나 창조 때의 선의 모양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나마 선한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 선한 방향의 증거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이고, 선한 생각들이다. 지적 능력을 가지고 타인의 관점에서 유익한 방법을 찾는 것도 선의 한 방향성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비상계엄은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여 타인, 즉 국민의 관점에서 사유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악"의 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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