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11. 21:0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첫날밤
마종기
일시 귀국을 마치고 돌아온 첫날밤,
지구 반바퀴의 시차 때문이었겠지만
새벽 세시에 잠이 깨었다.
밖에는 늦봄의 빗소리 들리고
다시 잠들지 못 하는 몇 시간,
밤이 어둡고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내일 당장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이제는 그만 끝내고 싶다는,
늙어가는 내 희망을 짓눌렀다.
그랬었다, 내가 처음 외국에 도착했던
삼십 년 전 밤에도 비가 왔었다.
사정 없는 외국의 폭우가 무서워
젊은 서글픔들이 오금도 펴보지 못하고
어두운 진창 속에 던져 버려졌었다.
그렇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당신을 포기하던 첫날밤에도
나는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술을 마셨다.
시간이 타고 있는 불 속에 뛰어들어야
내 불을 끌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화상의 상처를 다 가릴 수는 없었지만
이제는 맨 마지막 장을 뒤집어야 할 때,
푸르던 희망은 창밖으로 날아가고
시차를 넘어서는 한 사내의 행방을 찾아서-
# 단돈 90만원 들고 대구로 올라갔다. 월 15만원인 첫 자취방에서 첫 날밤, 가을 스산함이 꺼질 수 없었던 외로움을 불태워 홀로 울음을 삼켰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그 때의 아픔들이 되살아나 시에서 한 동안 눈을 뗄수 없었다. 첫 날밤, 나 또한 잠들었다 깨기를 몇 번, 다시 잠들지 못하는 시간, 모든 것이 멈춘 듯 했고 그 모를 무거움이 내 몸을 짓눌렀다.
# 탄자니아, 먼 이국땅에서 사역의 고단함과 일상의 무료함이 엄습했을 때, 이 시를 꺼내들어 읊조렸다. 내일 당장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이제는 그만 끝내고 싶다는. 단어 하나 하나가 가슴팍을 쳤고, 그 울림은 날 잠 못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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