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감사(3월 중순)

2021. 3. 16. 23:18 신앙/감사(感謝)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말이 있듯이, 

은혜를 상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게 마련이다. 

 

 

 

1. 공시송달 고시를 잘 할 수 있게 하심에

2. 새로운 만남을 허락하심에 

3. 공탁처리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하시고, 법무사님의 도움을 받게 하심에 

4. 법무사님께서 흔쾌히 일을 처리해주시기로 하고 걱정하지 않게 말을 해 주심에 

5. 맡은 업무를 성실하게 할 수 있음에

6. 내 일 외에 다른 일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게 하심에 

7. 매일 뛸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을 허락하심에 

8. 뛸 수 있는 좋은 환경을 허락하심에 

9. 지인에게 책을 선물하게 하심에 

10. 글을 쓸 소재를 생각나게 하심에 

11. 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하심에

12. 더욱 기도하게 하심에 

13. 더욱 말씀보게 하심에 

14. 공동체에 대한 기도를 하게 하심에 

15. 하나님의 임재를 묵상하게 하심에 

 

반응형

'신앙 > 감사(感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의 감사(4월초)  (0) 2021.04.10
일상의 감사(3월말)  (0) 2021.03.30
일상의 감사(1월)  (0) 2021.01.25
일상의 감사(9~12월)  (0) 2020.12.26
일상의 감사(8월)  (0) 2020.10.01

어떻게 살 것인가

2018. 1. 2. 21:18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육적으로나, 심적으로 아팠던 날들이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점철된 날들의 연속이었다. 과거의 삶에 대해 의구심이 들면서 지난 선택에 대한 확신도 흔들리고 있었다. 땅을 딛고 있다는 확실함 외에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불확실함으로 연명하는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실감했다. 그마나 다행인 것은 그 시간들로 인해 불확실함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의 무수한 청년들을 이해하는 생각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긴 인내의 시간을 지나, 결국 바라던 것을 얻었다. 근데 일련의 과정들을 되돌아보면, 많은 것들이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기대하지 않고 친 필기시험, 동문서답했다고 생각했던 면접, 그리고 자신있었던 또 다른 면접. 내 예상은 자주 빗나갔다. 여러가지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나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이 자리에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근데, 나는 마냥 내가 다 이룬 것처럼 교만해져 있고,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를 상기하지 않는다. 문둥병이 나은 것을 알고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그 사람들처럼 말이다.  



다시 그 과정들을 되짚어봐야 한다. 어떻게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신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대로 생각하기 마련이. 하던 일을 멈추고 진지하게 삶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한다. 단지 아팠던 시간들이 지나갔을 뿐이다. 다시 내가 있어야할 자리를 묻자.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다시 무너지는건 시간문제니까. 




 


반응형

'삶을 살아내다 > 일상(日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년, 1월_일상의 기록  (0) 2018.01.10
당신이 없어도 나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0) 2018.01.07
괜찮아, 다시 하면 돼!  (0) 2017.11.15
It's time to leave  (0) 2017.11.01
You were on the list.  (0) 2017.10.29

신자의 근본적인 밑바탕 - 은혜의식

2016. 10. 26. 23:36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대학원 시절, 논문의 주제를 전개할 수 없을 때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했다. 하지만 나의 간구에 하나님은 아주 오랫 동안 침묵하셨고, 스스로 발버둥쳐야 겠다는 내안의 오기가 생겼다. 하나님은 그 문제는 개입하시지 않는다고 단정지었고, 버림받은 자로서 아침마다 절규했다. 그 시간들속에서 창조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했지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믿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신자로서 이신론의 입장을 취하면서 삶을 살아갈때 가장 위함한 것 같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매일마다 부어주시는 은혜를 깨달을수도, 깨달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인생은 고통이다'는 전제하에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그저 받아들이며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분리하고 각자의 아픔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자부한다. 왜냐면 고통과 아픔은 철저히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타인과 나의 분리는 고독한 자아를 더욱 애처롭게 바라보는 원천이며, 고통속에서 나 자신을 스스로 껴안으며 자위하는 것이 삶의 최선인 것이다. 



하지만 신자로서 분명하게 깨달아야 하는 것은, 신자의 근본적인 밑바탕은 철저한 은혜의식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구원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은 그저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해진 것을 믿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예수그리스도처럼 여겨진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고로,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여부가 아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근원적인 복을 생각하라. 그 복은 재력이 아니며, 권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 복이 얼마나 복되고 감격할 일인지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러하기에 진짜 구원받은 자라면, 참된 신자라면, 인생의 굴곡과 어려움에 상관없이 그분의 은혜에 온전히 감사하여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이 우리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반응형

'삶을 살아내다 > 일상(日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이 차갑다  (0) 2016.11.02
잠결에 끄적이다  (0) 2016.10.30
인생의 짐  (0) 2016.10.25
원칙과 상식을 저버린 사회 _ 대한민국  (0) 2016.10.25
미련 없이  (0) 2016.10.16

창세기 19장 1~38절 _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인간의 죄악

2016. 7. 25. 14:11 신앙/창세기 묵상

본문 : 창 19 : 1~38

 

[하나님의 은혜]

 

1. 본문은 창 19 : 1~38 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면, 하나님이 소돔 땅을 멸하시기전에 그 땅에 있는 롯의 가족을 먼저 구하고 소돔땅을 멸망시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 즉 두딸은 다시 악을 범하게 됩니다.

 

<출처: https://namu.wiki/w/%EC%86%8C%EB%8F%94>

 

2. 본문을 읽으면서 크게 두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첫째, '롯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았는가 아니면 의인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는가 ' 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둘다인것 같습니다. 성경을 볼때 '가정'은 좋지 않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의 간구가 없었다면 롯은 의인과 상관없이 죽었을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소돔땅을 쓸어버리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간구를 듣고, 그를 생각하사(29절) 롯을 살려줍니다.  죽었어야 하는 롯이 살았으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은 롯을 의인(벧후 2 : 7~8)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롯은 의인으로서 아브라함의 조건부 간구(의인과 악인을 함께 벌할수 없다)에 충족되는 인물이었고, 살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 본문을 구원과 직접적으로 연관시켜 생각한다면 인간의 행위가 강조된다고 볼수 있지만, 그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믿음의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원받은 자도 날마다 하나님을 닮기 위해 성화의 삶을 살듯이 말입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duaworld/2239070>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다시 세상의 것들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롯의 두딸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죄로 인해 멸망하는 소돔땅을 두눈으로 목격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그들의 손을 잡고 소돔땅에서 구해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현실의 상황(31절, 배우자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범죄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후에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압과 암몬 자손이 태어나게 됩니다.

 

3. 적용하자면 신약의 신자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 근본적인 은혜를 망각되거나 약화되기 시작하면, 세상의 것들에 관심이 더 가고 걱정과 두려움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신자는 구원의 은혜를 더욱 묵상하고 되새겨야 하며, 상황에 의해 타협하는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Soli Deo Gloria

반응형

에베소서 2장 -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2015. 8. 6. 23:14 신앙/말씀 묵상(默想)



엡 2:1-10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1)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2)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Like the rest, we were by nature objects of wrath.)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 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Soli Deo Gloria




반응형

'신앙 > 말씀 묵상(默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과 행함.  (0) 2015.10.20
로마서 10장 _ 하나님의 의, 자기 의  (0) 2015.09.24
하나님의 명령, 그리고 순종  (0) 2015.07.28
토기장이와 토기  (0) 2015.06.25
Say "Thank God for everything"  (0) 2015.06.22

인생 가운데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2015. 7. 20. 00:13 삶을 살아내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니이다





2009년

- 비중격 교정수술을 할 결단을 하게 하시고, 수술을 잘 되게 하셔서 코막힘으로 인한 두통이 사라지게 하심 



2010년

- 대학교를 휴학하고 방황하던 시기에, 성경을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의지와 시간을 허락하셔서 성경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심 

- 인도단기 선교의 팀장으로 선교팀을 맡아 단기선교를 준비하는 시기를 통해 선교에 대한 마음을 확고하게 하시고, 1년 단기선교를 떠날 수 있는 기회와 재정을 마련해주심 



2011년 

- 1년 아프리카 선교를 통해, 선교의 현장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선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게 하심 



2012년

- 1년간 새벽예배를 통해 새벽을 깨우게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고요하게 교제하게 하심

- 다시 공부할 마음을 주시고 대학교 4학년에 복학하여 열심히 공부하게 하심 



2013-2014년 

- 목표를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하셔서 여러가지 경험을 하게 하시고, 공부할 수 있게 하심

- 설교를 통해 구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시고, 믿음을 점검하게 하심에 





Soli Deo Gloria











  

반응형

'삶을 살아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I'm ready to come home  (0) 2015.07.23
Anyway, done.  (0) 2015.07.23
피상적 인간관계 -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인연들  (0) 2015.07.18
인생의 무게.  (0) 2015.07.09
기억의 위대함.  (0) 2015.07.09

디모데전서

2014. 12. 16. 21:34 신앙/말씀 묵상(默想)


# 하나님의 은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 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흉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12-16







# 말씀과 경건에 대한 교훈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6:3-8







반응형

'신앙 > 말씀 묵상(默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Lean on me  (0) 2014.12.24
디모데후서  (0) 2014.12.17
빌립보서  (0) 2014.12.10
고린도후서 11-13장  (0) 2014.12.05
질그릇 속의 보배_모든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0) 2014.12.04

새벽을, 깨우다.

2012. 12. 26. 16:48 신앙/기도(祈禱)

 

 

 

#1 새벽을, 깨우다.

 

 2012년을 거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새벽기도다. 종교를 떠나 이른 새벽 4:40분에 일어난다는 것은 나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며, 잠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본디 잠이 많은 사람인데, 인생의 앞 길을 열기 위해서 기도가 더욱 필요한 것 같았고,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 잠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5월 초부터 시작된 새벽녘 나 자신과의 싸움은 학기 내내 계속되었다. 특히, 추운 겨울엔 포근한 이불을 박차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지독한 게으름의 습관은 좀처럼 버리기 어려웠기에, 새벽녘 비몽사몽간 새벽기도 가야 하는 동기를 부여해야 했다. 이러한 스스로와의 긴 사투 과정을 통해 변화했다, 고 감히 말하겠다. 이젠, 무익한 종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적막한 새벽길을 투덜거리면서 걷지 않는다. 정말 감사하게도, 새벽기도는 내 삶의 일부이기에 찬양을 부르며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간다

 

 

 

 

 

 

 

 

 

 

 

 

#2 새벽기도를, 예찬하다

 

 

 새벽기도를 통해 스스로 삶의 변화를 느끼며,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만나는 많은 이들에게 새벽기도를 예찬하며, 권한다. 내가 그토록 새벽기도를 권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다.

 

  내겐 잠을 자는 시간에 대한 상한선이 있었다. 다음 날 일정에 지장받지 않을 만큼의 시간, 최소 6시간은 꼭 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했기에, 마무리 하지 못한 일 앞에서 다음 날 일정도 중요하다고 스스로 설득하며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학기에 5시 새벽기도를 다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이, 대학년 마지막 일년은 지독하게 살아야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학기를 시작했기에, 일찍 잠을 들 여유가 없었다. 밀려오는 과제와 스스로 부여한 일정량의 몫들을 마무리하면 거의 자정이거나, 자정을 넘겨야 했다. 내가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4시간 30분, 적으면 3~4시간이었다.

 

 

 

 

 

 

 

 

 

 

 

 

 

 

 

 

 

 

 

 

 

 

 

 

 

 

 

 

 

 

 

한계에 봉착했다.

 

 

 

 

 

 

 

 

 

 

 

 

 

 

 

 

 

 

 

 

 

 

 

 

 

 

 

 

 

 

 

 

 

 

 

 

 

 

 

 

 

 

 

 

 

 

 하지만 새벽기도, 공부 둘 다 포기 할 수 없었다.

 

한계를 넘어서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몸이 하나의 행동을 기억하여 하나의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21이 필요하다. 그리하며, 21일간 시간 효율성은 무시하기로 했다. 근 한달간 병든 닭처럼 조는 건 예삿일이었다. 한달이 지날 무렵, 중간고사를 준비할 때 2시간 잠을 자고 새벽기도를 가야 했다. 잠들기 전, 어떻게 2시간 자고 새벽기도를 가며, 2시간 자고서 내일 생활이 엉망이 될거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가지 말자고 되뇌며 잠들었다.

 

 

 

 

 

 

 

 

 

 

 

 

 

 

 

 

 

 

 

 

 

 

 

 

 

 

 

 

 

 

 

 

 

 

 

 

 

 

 

 

 

 

 

 

 

 

 나, 몸은 4시 40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잠에서 깼고, 짧은 시간 치열한 고민을 했다. 갈까, 말까. 한 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고, 반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옷을 챙겨입고 새벽기도를 갔다. 그 날, 하나님은 말씀 가운데 예상치 못한 은혜를 주셨고, 어느 때보다 뜨겁게 기도할 수 있었다. 또한 새벽기도 이후의 일정도 제정신으로 감당하였다. 

 

 

 

 

 

 

 

 

 

 

 

 

 

 

 

 

 

 

 

 

 

 

 

 

 

 

 

 

 

 

 

 

 

 

 

 

 

 

 

 

 

 

 

 

  그 날부로, 일정시간 잠을 자야 한다는 나만의 한계를 넘어섰다.

 

 

 

 

 

 

 

 

 

 

 

 

 

 

 

 

 

 

 

 

 

 

 

 

 

 

 

 

 

 

 

 둘째, 사용할 시간이 많아진다.  

 

  모든 사람에게 24시간은 주어지지만, 우리가 사용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자고 밥먹는 시간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잔일을 처리하는 시간을 빼면 실제 사용할 시간은 생각보다 적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시간이 많고 적음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은 잘 활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내게 절대적으로 주어지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 수록, 내가 사용하는 시간은 많아진다. 

 

 

 

 

 

 

 새벽기도를 다녀오면 오전 6시 30분에서 7시 사이다.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도서관에 도착하는 시간은 7시 30분 정도다. 첫 수업이 있다 하더라도 최소 1시간 20분 정도를 활용할 수 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직 1시간 20분을 잘 활용하진 못한다. 2013년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통해 활용해 볼 참이다.

 

 

 

 

 

 

 

 

 

 

 

 

 

 

 

 

 

 

 

 

 

 

 

 

 

 

 

 

 

 

 

 

 

 

 

 

 

 

 

 

 

 

 

 

 

 

 

 

 

 

 

 

 

 

 

 

 

 

 

 

 

 

 

 

 

 

 

 

 

 

 

 

 

 

 

 

 

 무엇보다,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명확하게 체험했다. 그 받은 은혜를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새벽녁, 간절히 부르짖었던 기도제목들 가운데 응답받는 횟수가 점점 늘어갔고, 기도할 제목들도 동시에 더 생겨났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게 되었다.

 

 


 또한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던 것이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 어떠한 육체적 한계, 능력의 한계에 대해 부딪혔을 때, 예전같으면 스스로를 비하하며 포기했겠지만 지금은 마음 속에서 한계를 극복하자는 의지오기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때때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다. 다시 해서 극복하면 되리라, 당차게 다짐한다.     

  

 

 

 

 

 

 

 

 

 

 

 

 

 

 

 

 

 

 

 

 

 

 

 

 

 

 

 

 

 

 

 

 

 

 

 

 

 

 

 

 

 

 

 

 

 

 

 

 

 

 

 

 

 

 

 

 

 

 

 

 

 

 

그리하여, 묻고 싶다.

 

 

 

 

 

 

 

 

 

 

 

 

 

 

 

 

 

 

 

 

 

 

 

 

 

 

 

 

 

 

 

 

 

 

 

 

 

 

 

 

 

 

 

 

 

 

 

 

 

 

 

 

 

 

 

 

 

 

 

 

 

 

 

 

새벽을 깨워 하루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 

 

감당할 수 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누리지 않으실련지요.

 

 

 

 

 

 

 

 

 

 

 

 

 

 

 

 

 

 

 

 

 

 

 

 

 

 

 

 

 

 

 

 

 

 

 

 

 

 

공감하신다면, 아래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과 소통 & 공유 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L'Étranger by kangsy85

Notices

Search

Category

First scene (1189)
프로필 (19)
삶을 살아내다 (407)
산업단지 (13)
도시재생 (4)
토목직 7급 수리수문학 (8)
토목직 7급 토질역학 (8)
자료공유 (106)
편집 프로그램 (8)
신앙 (285)
책과 글, 그리고 시 (252)
초대장 배포 (55)

Statistics

  • Total :
  • Today :
  • Yesterday :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Recent Trackbacks

Copyright © Nothing, Everything _ Soli Deo Gloria All Rights Reserved | JB All In One Version 0.1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