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6. 23:36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대학원 시절, 논문의 주제를 전개할 수 없을 때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했다. 하지만 나의 간구에 하나님은 아주 오랫 동안 침묵하셨고, 스스로 발버둥쳐야 겠다는 내안의 오기가 생겼다. 하나님은 그 문제는 개입하시지 않는다고 단정지었고, 버림받은 자로서 아침마다 절규했다. 그 시간들속에서 창조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했지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믿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신자로서 이신론의 입장을 취하면서 삶을 살아갈때 가장 위함한 것 같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매일마다 부어주시는 은혜를 깨달을수도, 깨달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인생은 고통이다'는 전제하에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그저 받아들이며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분리하고 각자의 아픔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자부한다. 왜냐면 고통과 아픔은 철저히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타인과 나의 분리는 고독한 자아를 더욱 애처롭게 바라보는 원천이며, 고통속에서 나 자신을 스스로 껴안으며 자위하는 것이 삶의 최선인 것이다.
하지만 신자로서 분명하게 깨달아야 하는 것은, 신자의 근본적인 밑바탕은 철저한 은혜의식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구원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은 그저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해진 것을 믿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예수그리스도처럼 여겨진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고로,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여부가 아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근원적인 복을 생각하라. 그 복은 재력이 아니며, 권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 복이 얼마나 복되고 감격할 일인지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러하기에 진짜 구원받은 자라면, 참된 신자라면, 인생의 굴곡과 어려움에 상관없이 그분의 은혜에 온전히 감사하여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이 우리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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