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5. 21:16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www.badaklee.com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삶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 왜냐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온 인생이 당신의 삶이라는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지리멸렬한 삶도 오랜 세월 봐왔습니다. 그러함에도 당신의 삶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이 분한 마음은 어찌된 것일까요. 마음 속 울분이 자꾸 치밀어 오릅니다.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당신의 모습은 늘 두렵고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리고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한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아니, 소리치고 싶기도 합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 하겠습니까..."
"꼭 그렇게 말해야 속이 후련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말이죠. 내가 더 힘든 건...삶 가운데 부정하고 싶은 당신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다시 그러지 말아야지 각오하지만, 자주, 그리고 아주 쉽게 내뱉어지는 말과 몸에 밴 행동은 당신의 삶을 너무 닮아있습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당신의 삶을 내가 고스란히 살아낼까봐... 당신의 삶에 할 말을 잃고, 그 삶에 전이된 나의 삶에 숨이 막혔습니다. 이렇게 나는 또 다시 아픕니다.
삶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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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 22:46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www.quotehd.com
말을 잃어버린 어느 저녁밤에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글을 쓴다...악한 본성과 마주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며, 화를 참지 못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며, 뜻대로 안되면 말을 하지 않고, 상당히 많은면에서 아주 이기적인, 하찮은 막돼먹은 인간임을. 이 모습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지 않을까, 너무나 아찔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데, 당신은 어제의 나를 이야기 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 간극속에서 멀어진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이 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성숙한 나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아닌 듯 하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형편없다는 것을 직시하게 되는 새해 첫날이다. 한해 한해를 살아간다는 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이 성숙해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애써왔건만...지금 나는 실망했고 실망하며 아프다. 마음도 몸도 쓸쓸히 아프다. 웃지 못하고 쓸쓸하게 시작하는 병신년에는 무슨일이 일어날까, 기대하기보다는 걱정되는 밤이다. 말을 잃다.
Lost for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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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22. 23:2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darkgreysoul.blogspot.com
요즘 자주 누군가를 만났으며, 무리에 오랫동안 속해 있었으며, 나보다는 다른 뭔가에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나와 내가 아닌것 같은 나에게로 이어진 연장선의 불분명한 지점에서 외줄타기를 하듯 휘청거리고 있다. 지금 나에게로 향하려는 자아에 대한 욕구가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흐름에 따라 정해진 나이에 걸맞는 경제활동과 능력을 가져야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고, 31살이라는 삶의 무게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기에 내 자리를 묻고 있는것이다.
헬조선에서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열심히 하는것으로 부족하다. 잘해야한다. 누가 모르냐. 헬조선에서 정의는 불법과 싸워 이길 힘을 잃었고, 일개 국민의 소리는 개짖는 소리보다 더 하찮게 여기는 근혜누나의 독재정치는 아버지의 정치를 꼭 빼닮았다. 안철수 아저씨는 괜히 정치판에 끼여 안개속을 거닐고 있고, 가끔 횡설수설 하기도 하며, 국민의 기대를 처참히 저버렸다. 정치는 삼류개그며, 개그콘서트에는 '개그'가 실종되었다고 생각하며, TV를 끈다
유투브의 '철구'를 보며 석사학위는 일찍이 개나 주는게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헬조선에서는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논리에 어느정도 수긍하며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을 조금씩 읽는다. 그렇고, 그러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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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22. 21:5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이른아침 역할분배와 책임에 대하여 질문을 던졌고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일으킵니다. 늘, 이런식입니다. 비가 내리려나 봅니다. 빗방울 하나가 볼을 스칩니다. 차갑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한 방울, 두 방울, 겨울비가 오려나 봅니다. 몸은 피곤합니다. 입은 굳게 닫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지껄였던 탓에 더이상 말을 하기가 싫습니다. 늦은 저녁 역할의 분배와 책임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역할이 주어지면,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하고, 책임져야 하면, 다시 갇혀버릴것 같다, 두 발이 묶여 버릴것 같다, 고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배가 고픕니다. 입맛은 없는데, 배는 고픕니다. 취사실에 올라가서 라면을 끓입니다. MSG와 면이 물에서 요란하게 끓습니다. 끓인 라면을 식탁에 가지고 와서, 살기 위해 먹습니다. 누군가 취사실에 들어옵니다. 몇번 본 적은 있으나, 그에 대해 아는건 없습니다. 다만, 좁디 좁은 한평 남짓한 고시원에 산다는 사실밖에는. 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온 반찬을 식탁에 놓습니다. 밥통에서 따뜻한 밥을 퍼서 식탁에 놓습니다. 아무 말없이 각자의 식사를 합니다. 젓가락과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와 쩝쩝거리는 소리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적막함이 취사실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적막함 가운데 스며든 어쭙잖은 쓸쓸함이, 나와 만나 온전해집니다. 그와 나는 같은 공간에 마주하고 있지만, 어차피 우리는 서로 아무것도 모르니, 진정 내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존재하는 '쓸쓸함'입니다. 그 쓸쓸함은 나를 안정시키고, 나는 그 쓸쓸함을 사랑합니다. 조금 울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혼자인데.
"나 카페가는데, 잠깐 나올래요?"
"아니, 나 할일이 있어서...못 나갈 것 같아"
"알았어요..."
내가 먼저 다가갔는데 이렇게 다시 물러섭니다. 당신의 삶에 개입하려 했다가 당신이 가진 삶의 무게에 겁이 나서 다시 도망쳤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늘 이런식입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내가 싫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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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16. 16:4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 황인숙 <강> 중에서 -
당신과 내가 서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도 나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서로 말하진 않지만, 당신이 내게 바라는 것이 있고 나도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서로의 눈빛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만났으니까요.
당신의 필요는 나의 노력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나의 필요를 당신이 채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난, 상당히 까다롭거든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을 생각입니다. 굳이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귀찮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쿨해야 하니까요.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예의와 적당한 배려로 일관하는 것은 당신의 필요만을 채워주고 미련없이 떠나려는 나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굳이 나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더라도 말이죠. 몹쓸 미련과 애정때문에 구차하게, 질척거리지 않겠다는 나의 단호한 의지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곧 멀어질거니까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거니, 걱정따위는 하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생각의 편린들. (0) | 2015.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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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14. 20:1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www.hanoibethel.com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비가와서 날씨가 제법 춥다. 두꺼운 겨울 옷을 입고 나왔으니 다행이다. 앞에 여자는 우산을 못 챙겨왔는지, 비를 그대도 맞고 간다. 비가 제법 내리는데, 뛰지 않고 걷는다. 우산을 씌워줄까 고민한다. 아니, 무슨 오지랖이냐. 다시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내 길을 걷는다.
나에게는 '호의'란 것이, 상대방에게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특히, 상대방이 이성이라면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호의적인 행동, 그 자체만으로 부담을 줄 수도 있고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나름대로의 이해, 어쩌냐.
습관적인 행동과 말이 아니라면, 행동과 말은 의미와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하기에 단순한 말이나 행동이라도 그 사람의 처지와 상황을 배제한 나름대로의 이해는 오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추측, 짐작, 추정. 이러한 우리 나름대로의 이해가 다른 사람과 멀어지게 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쌀쌀한 바람을 동반한 겨울 비와 약간의 쓸쓸함이 싫지 않은, 토요일 저녁에 혼자 멀뚱히 생각한다.
Understanding, and Misunderst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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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0) | 2015.08.18 |
2015. 10. 24. 13:49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blogs.sap.com
불은 껐다. 눈은 멀뚱멀뚱, 정신도 또렷하다. 배는 고프다. 입은 심심하다. 잘 시간인데, 어쩌냐. 다시 불을 켰다. 취사실에 가서 삼양라면 하나를 꺼낸다. 생라면을 한 입에 넣기에 알맞은 크기로 부수고, 겉봉지를 뜯고, 새빨간 스프를 뜯어 다시 라면봉지에 다 털어넣고, 봉지 입구를 잘 틀어막고 위아래도 10번, 좌우로 10번 흔든다. 스프가 잘 섞였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힘껏 흔든다. 스프가 잘 섞인 생라면 한 조각을 어기적거리다. 고시원에서 생라면을 밥처럼 많이, 자주 먹는다. 잘게 부순 생라면을 한 조각씩 먹을수록 몸이 나빠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생라면과 이별할 수 없다. 너무 열심히 먹은 탓인지 잠이 완전 달아났다.
새로 산 책을 편다. 새 책이라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빳빳한 종이가 그 다음장 종이를 핥으며 부드럽게 넘어간다. 읽다가 줄을 긋고, 또 읽다가 줄을 긋거나 페이지 상단 모서리를 약 2 센티미터를 안쪽으로 접는다. 넘기는 장수가 많아진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책은 나를 잠들게 한다. 불을 껐다.
Light on and off
우리는 필요에 의해 만났을 뿐입니다. (0) | 2015.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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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새벽의 기억 1 _ Light on and off (0) | 2015.10.22 |
생각정리. (0) | 2015.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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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22. 12:17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www.shutterstock.com
불을 껐다. 눈은 뜨고 있다. 컴컴한 방안에 눈꺼풀만 내렸다 올렸다... 눈꺼풀이 너무 가볍다. 눈은 뜨고 싶다. 아무렴, 어떠냐. 적막한 새벽인데, 다시 불을 켰다.
마트에서 산 김 한 봉지를 꺼낸다. 겉봉지를 뜯고, 각진 투명 플라스틱에 고이 포개어진 김을 한장씩 씹어먹는다. 고소한것이, 짭짜름하기도 하다. 아, 이 새벽에 무슨짓인가. 그래도 맛있긴 하다.
미세먼지가 대기중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뉴스에, 너도나도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린다. 멀뚱멀뚱 눈만 끔벅인다. 적막한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고 싶지만, 미세먼지를 대처하는 방법은 그저 창문을 꼭꼭 처닫고 있으라는 보건당국의 지시에, 어린아이도 알법한 당연한 이야기를 지껄이는 바람에, 31살의 어린아이는 고시원의 자그마한 창문을 꼭꼭 닫고 있다. 적막한 새벽이다. 눈만 껌벅이다.
Light on and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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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18. 23:04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비판을 위한 비판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피해야 한다. 나의 입장을 제 3자가 납득할만큼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한 근거와 이유도 타당해야 함은 당연지사. 다름을 이해시키기 위한, 아니,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른건지 틀린건지 구분하기 위하여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차근차근, 정리해보자.
Let me think about it.
지난 새벽의 기억 2 _ 생라면 (0) | 2015.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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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새벽의 기억 1 _ Light on and off (0) | 2015.10.22 |
관계의 '가벼움', 그리도 단칼의 '차가움' (0) | 2015.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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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무엇을 위한 삶이었던가. (0) | 2014.03.05 |
2015. 2. 20. 23:29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관계의 '가벼움', 그리도 단칼의 '차가움'
2년간 군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연락하는 사람은 동기 단 한 명뿐이고,
- 그 때는 사회성이 너무나 부족해서, 군대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고등학교 때 친했던 10여명 친구들 중 그나마 연락을 유지하고 있는친구도 한 명뿐이고,
- 방황하던 시절 세상의 것들이 좋아 만난 친구들이니, 이젠 관심사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하고-
1년간 아프리카 선교를 다녀와서 연락하고 있는 선교사님은 두명 뿐이고.
- 음...
위의 사례들을 제외하고도 오랜시간 함께 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이유는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하고.
지난 세월간 인간관계가 더 확장되지 못한 더 큰 이유는 관계를 단칼에 자르고 뒤를 다시 돌아보지 않는 차가움에 있을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너무 쉽게 버리는 성향은 나의 삶 어떤 부분에서 비롯된 것일까. 삶의 흔적들을 되 짚어 보지만, 관계의 차가움을 일으키게 한 사건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하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일까.
연구실 후배들과 이성친구과의 인간관계를 너무나 쉽게,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내 옛적 모습들로 인해 진짜 '나쁜놈'이 되어버렸다,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나쁜남자' 말고. 그래도 연구실 후배들은 내가 선배인지라, 예의상 '나쁜남자'라고 이야기한 것 같다는.
지난 새벽의 기억 1 _ Light on and off (0) | 2015.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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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0) | 2015.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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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개발론 수업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섭리, 그저 놀라울 뿐이다. (3) | 2013.09.02 |
2015. 2. 6. 17:33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인생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 지 몰라 고민할 때 누군가에게 조언을 받을 수도 있고 자신이 신뢰하는 책을 읽으면서 삶을 방향을 다시 확인할 수도 있다. 그 고민의 순간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겠지만 그에 대한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어야 한다. 선택 이후의 모든 삶과 선택에 따른 결과는 자신이 떠 안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이지 않을까 싶다.
혹여나, 그 선택의 결과로 인해 그 선택을 권했던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진다면, 그 말을 따라갔던 너의 우둔함을 욕하면 되는 것이다. 그 선택을 하게끔 나를 불리한 상황으로 몰고 간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다면 그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 나의 수동적인 태도를 꾸짖으면 될 터.
여하튼, 명심해라, 나의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사실.
생각정리. (0) | 2015.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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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5. 22:5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작년 2013년, 홀로 쉼 없이 달렸다.
나가야 할 전체거리를 재지 않고, 무작정 내달렸다.
체력안배, 호흡조절, 보폭,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헉, 헉... 숨이 찼다. 이러다가 쓰러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잠시 숨을 고르긴 했지만,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다른 것들을 볼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누구를 위한 삶이었던가. 묻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초, 하나의 사건이 1년의 삶을 흔들었다. 쿵! 쾅!
다음 발을 디뎌야 할 곳을 찾지 못했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채 무기력해졌다.
한 곳에 오랫동안 멍하니 머물렀다.
그러면서 앞으로만 향해있던 두 눈이, 옆과 뒤를 살피기 시작했다.
옆은 허전했고, 뒤는 쓸쓸했다.
다시 물었다. 무엇을 위한 삶이었던가.
관계의 '가벼움', 그리도 단칼의 '차가움' (0) | 2015.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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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무료함, 그리고 관계의 상실. (4) | 2013.06.29 |
2013. 9. 2. 23:5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2010년 학부 시절, 국제개발협력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국제관련학과 교수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그 교수님은 나의 무모한 열정을 좋게 봐주시면서,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정답은 아니었지만, 장황한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셨다.
그렇게 상담을 끝내고 교수님 방을 떠날 때, 코이카로부터 받은 '국제개발협력의 이해'란 책을 내게 선물로 주셨다. 국제개발협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말과 함께. 시간날 때 읽어야지, 하면서 아직까지 내 책장에 장식처럼 꽂혀있다.
4년이 지난, 오늘 사회복지학과의 '국제사회개발론' 수업을 들으러 갔다. 수업실에 들어가니, 담당강사님은 먼저 와서 조교랑 이야기하고 계셨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분이었다. 갑자기 떠올랐다. 그 분은 코이카 제안서를 준비할 때, 내가 찾던 주제와 관련된 것이 많아서 한참을 살펴보았던 블로그의 주인, 전 네팔외교관이자, 코이카 이사 홍승목씨였다. 그때 국제개발협력에 관해 조언을 구하기 위해 메일을 보내볼까 고민했다가, 내 생각이 정리가 안돼서 보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분이 지금 내 앞에 있다. 느낌이 이상했다. 신기하기고 했고, 조금 벅차기도 했다. 그보다 더 날 가슴벅차게 했던 것은, 수업 주 교재가 4년 전에 국제학과 교수님한테 받았던 '국제개발협력의 이해' 란 것이었다.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시간의 타이밍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퍼즐의 조각처럼, 딱 맞아 떨어졌다. 순간, 너무나 벅찼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너무 놀랐다.
첫 수업에 들어가서, 수강할지 말지 결정하려고 했는데, 이제 고민할 이유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다시, 내게 기회가 주어졌으니,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다해야 겠다.
삶에 대한 예의 _ 인생에 대한 책임 (0) | 2015.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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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에 대한 트라우마 _ 머리에 피가 나다, 그리고 계속된 두통 (2) | 2013.08.03 |
토요일의 무료함, 그리고 관계의 상실. (4) | 2013.06.29 |
[칼의노래]_ 김훈작가의 글이, 날 글 쓰게 했다. (2) | 2013.06.29 |
2013. 8. 3. 01:21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책상 서랍의 모서리에, 머리를 찍혔다. 상처를 직접보진 못하였고, 음푹 패였다는 말만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거니, 하고 편하게 맘을 먹었다. 피는 시간이 지나 멎었고, 상처부위도 만지지만 않으면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룻밤 자고 일어났다. 머리가 약간 아팠다. 경미하긴 했지만, 간간히 계속 아팠다. 지끈거리기도 했다. 뇌출혈에 대한 무서움을, 눈으로 직접 본지라,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뇌에 출혈이 생기면 사람이 순식간에 죽는다고, 누군가의 그 의미심장한 말이 계속 메아리 쳤다. 하지만, 아닐거야, 계속 내 상태를 부인하며,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라, 스스로 위로했다. 다시 잠들었다.
이틀이 지났다. 다시 눈을 깼을 때, 머리가 짜증나게 지끈거렸다. 이상한데, 아닐거야. 허나,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계속되는 두통에 걱정은 점점 더해갔다. 박사님들께서, 머리를 다쳤을 때는 경과를 지켜보는게 아니라고, 빨리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 확인해보라고 강권했다. 괜찮다고, 참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는, 뇌출혈에 대한 그 무서움을 알기에, 고집피우지 않았다.
응급실로 바로 갔다. 모서리에 머리를 찍혔는데, 피가 났고, 계속 두통이 있어서 CT를 찍으러 왔다고 간호사에게 말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내 의식상태를 점검하는 몇 가지 테스트가 있었고, 나는 무사히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CT를 찍었다.
검사결과, 사진상으론 아무 이상이 없다고, 의사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보지 않고선 못믿겠더라. 의사에게 사진을 보고 싶다, 이야기했다. 눈으로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될 듯 했다. 사진을 봐도 잘 알진 못하지만, 의심가는 곳이 있으면 왜 그런지 물어봤고, 의사는 부딪힌 것과는 상관없다, 다시 무덤덤하게 말했다.
참, 다행이다. 계속 두통이 있긴 했지만, 두통을 대하는 내 태도는 달라졌다. 뭐, 두통 그까짓거 사라지겠지라고. 아무튼,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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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9. 23:04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브뤼겔의 회화 <게으름뱅이의 천국>
# 1
바빴던 몇 주간의 일정이 끝났으니, 잠시 게을러지겠다는 나태함과 토요일의 무료함이 이성적인 사고를 감상적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한 때의 무료함이, 배움의 궤도에 충실히 순행하고 있는 구심력을 약화시키고, 소위 '일탈'을 시도하게 만드는 원심력을 가중시킨다.
# 2
사람과의 관계에 충실하지 못하고 진실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문제점을 나에게서 찾으려하지 않고 괜한 피해의식으로 타인의 무정함을 탓하고 있다. 관계의 상실은 남을 이해해서 받아들이려 하기보다 나와 너의 명확한 경계선을 그어서 들어옴과 나감이 없는 소통의 단절로 인한 것이다. 또한 관용의 미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은 개인을 더 개인화시키고, 버려야 할 '우월감'과 '거만'을 키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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