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5. 23:3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장염때문에 며칠간 앓아 누웠다. 의도치 않게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불쑥 다가온 36살을 생각했다. 나이의 무게에 걸맞는 삶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와 함께 떠올랐던 단어는 '어른'이었다. 나이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좋은 어른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격렬히 다투는 어른들 틈에 끼여 그들이 과연 어른이 맞는지 의구심을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 먼 발치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당신처럼 살지는 않겠습니다' 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좋은 어른에 대해 생각했다. 먼저 떠오른 것은 좋은 어른이 가진 언어의 무게였다. 말의 힘이 있으려면 말의 근거가 되는 행동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 다시 말하면, 좋은 어른이란 어른으로서 언어의 무게를 감당할 줄 아는 사람이다. 불현듯 떠오른 것은 지난 세월 낭비된 나의 언어였다. 장난이란 명목하에 내버려진 언어들이 눈에 밟혔다. 좋은 어른이 되려면 먼저 언어를 낭비하지 않아야 되겠다는 결단이 약 기운과 함께 몸 전체에 퍼져갔다. 흐릿해져가는 의식 속에 아스라이 낭비된 언어들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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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27. 22:4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 뙤약볕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뭐 어쩌겠어"
몇 가지만 간단하게 확인하고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상대방과 대화하면서 이전 대화 때와는 다른 뉘앙스를 감지했다. 순간 하나의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언어의 일관성이 없다'. 미묘하게 달라진 부분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꽤 깔끔한 성격 탓에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넘어갈 수가 없다. 나도 피곤하지만, 나를 대하는 상대방의 피곤함도 만만치 않으리라. 몇 번의 질문과 대답이 오갔지만 결국, 서로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다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놈의 생각을 또 한다고', 마음의 소리가 나를 비난하는 듯했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례한 듯 보이지만 마지막까지 친절해야 한다.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피차 기분이 상하면 아니되지 않은가.
돌아오는 길에 예민하게 반응한 내게 "왜 그랬어?"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뭐, 그럴 수도 있잖아. 괜찮아." 그래,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의 건투를 빕니다.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친절함을 잃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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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23. 09:3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당신을 통해 내 삶이 변했습니다'라는 말이
내 삶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들리고 있는 지금도 사람을 찾기보다 다시 중심을 잡기위해 혼자 아등바등 힘쓰는 현실에서 '당신'은 없다. 생각의 정립과 옳고 그름의 판단과 나아감과 물러남밖에 없다. 나의 문제를 타자에게 확장하지 않는다.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대감의 상실'인가. 당신의 불행이 나를 행복을 침해하지 못하는 그 개인들의 보이지 않는 벽들. 맞기도 하다. 어설픈 위로는 위선이라 명명하고 타인의 개입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당신이 어떻게 알겠는가...
모순되지만, 타인의 개입을 배제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여기 있다고 할 수 있다. 치열하게 홀로 고민한 결과가 내 삶이지 않은가. 스스로 세운 가치관을 토대로 상황에 흔들리되 타협하지 않으며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현재의 확고한 가치관 아닌가. 다만, 다시 가치관의 옳고 그름은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2008년 가을, 그해에도 홀로 힘든 시간을 잘 버텨냈다. 그리고 성장했다. 2010년 겨울, 살을 에는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표류하는 삶의 바다에서 홀로 견뎠다. 그래, 그렇게 한번 더 성장했다. 2014년 겨울, 성경적 기준을 가지고 2년 6개월의 삶을 내던질 각오로 성경책만 읽으며 버티고 버텼다. 그러고나서 더욱 단단해졌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고 하나님을 절실하게 붙잡았다.
2018년 여름, 지금 나는 다시 성장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분명 성장을 위한 과정이라 믿는다.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되 물러섬이 실패가 아님을 알기를 바란다. 때론 물러서야 할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아감을 위한 1보 후퇴라면 그건 찬성이다. 조금만 더 견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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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0. 01:31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정경희, 마주하다, 2006.
그녀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몇 달 전, 그녀는 내게 남자친구를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은 때가 아닌것 같다며 만남을 미뤘다. 며칠 전 그녀는 내게 다시 한 번 더 물어봤다.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꺼려하지만, 그래도 그를 한번 보고 싶었다. 6년 전에도 그녀의 권유로 전 남자친구를 카페에서 잠깐 만나 인사했다. 그는 그녀보다 4살 많았고, 인상도 좋아 보였다.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그녀는 평안해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행복을 원하기에 기꺼이 그가 보고 싶은 것이다.
그녀와 나는 미리 만나 약속된 장소에 앉아있었다. 그녀에게 괜히 긴장된다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그녀는 네가 왜 긴장하냐며, 어이가 없는듯 소녀처럼 깔깔 웃었다. 5분이 지났을까. 그가 식당 문을 지나쳐 테이블로 오고 있었다. 생각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고,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본래 까탈스럽게 행동하지만 이번만큼은 최대한 친절하게 행동했다. 내 언행으로 그녀가 불편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인도 카레를 먹고, 간략한 호구조사를 하고, 일상을 나누고, 침묵이 흘렀다가, 다시 서로를 탐색했다. 사람은 좋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웠고 그는 취업과 신앙에 대한 가치관을 내비쳤다. 다름을 지적해주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무수한 질문과 차가운 언어들이 불쑥 말로 튀어나갈 것 같았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뜨겁기만 한 카푸치노를 연거푸 마셨다. 첫 만남이지 않은가. 지금은 아닌것 같았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 진중한 대화를 나누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녀가 돌아왔고, 그녀가 회사갈 시간이 다다랐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녀와 그와, 나의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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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8. 20:38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갑자기 왜 화가 났을까.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시스템을 무력하게 만든 사람들로부터 발생한 감정일까. 어찌됐든, 화가 난 상태였다. 격양된 목소리로 말이 짧고 세게 나갔다. 노기 띤 목소리에 다들 놀란 눈치였다. 나도 놀랐으니까 말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에 뛰어들어야 한다만 나아갈 의지가 없다.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우리는 정말 '우리'일까. 타자가 '우리'의 문제를 다룬다. 어찌 그게 말이 되느냐고, 자문한다. 그들과 나 사이에 '우리'라는 연대를 뭉개버리고, 홀로 우두커니 서 있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제3자로 방관하는 것보다 차라리 떠나는게 낫지 않을까, 하루종일 생각했다. 지리멸렬(支離滅裂)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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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5. 00:29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은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사실 나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다. 하지만 '왜 그 책이 200만부 넘게 팔렸는가?'라는 질문이 머릿 속에 계속 맴돌았다.
사람들은 정의에 목말라있다. 잃어버린 정의에 대한 갈망인 것이다. 이 사회에서 '정의'를 외치면 자칫하다 왕따를 당하고, 자칫하다 곤경에 처한다. 왜냐면 한국은 '정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재력이 '정의'이고, 권력이 '정의'이다. 정의와 불의가 동의어가 돼버린 사회다. 일국의 수장인 박근혜는 시도때로 없이 낙하산을 투하하고, 낙하산을 바라는 간신들은 입에 발린 소리만 한다. 박근혜는 국가와 결혼한다고 했는데 이미 국민들이 모르는 가족이 있었다. 정치를 모른다만, 정치가 개판인건 안다. 그렇다. 개천에서 용은 나지 못하며, 개천에서는 미꾸라지만 모여선 산다. 원칙과 상식을 무참하게 저버린 사회가, 바로 한국의 현주소다.
상식과 원칙을 바라는 것이 그토록 어렵단 말인가. 그러하기에, 오늘도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영상을 보고 또 본다. 그가 바라는 사회를 진정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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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6. 00:49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공기업 계약직 제안. 일하는 환경, 하는 업무, 사람들, 다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정한 근거는 세가지다
첫째, 영적으로 분별력이 흐리다. 오랜 취업 준비로 인해 영육간에 많이 지쳐있던 터라 영적으로 분별력있는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사님들의 의견을 여쭈었다. 교회적으로, 상황적으로, 가지 않는게 좋겠다고 말씀해주셨고 그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교회와 함께 인생의 문제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무척 낯설었고, 결정에 순종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았다.
둘째, '누구를 위한 유익인가, 덕인가'를 생각해봤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이 나의 경험을 쌓는 측면에서는 분명 유익할수도 있다. 그러나 한 몸된 교회의 측면에서 바라봤을때 상황에 쫓겨 교회를 떠나는 것은 교회에 유익한 일도, 덕을 세우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 맡고 있는 지역장, 학습법, 예배팀 역할의 위치와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일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전 10:23-24)
셋째, 현재 있는 지역교회에서 제대로 살지 못하면 다른 지역교회에서도 제대로 살수 없다. 지금 등록된 교회에서 한 몸됨의 '삶'을 살지 못하면, 어디를 가도 똑같다. 늘 이방인처럼 겉돌뿐이다. 선교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겉도는 삶은 다르다. 회피하지 말고, 일단 여기서 제대로 살자. 제대로 살면 어디를 가든, 상관없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
어찌됐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 옳다. 내가 짊어져야 할 개인의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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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2. 22:0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최종면접을 치른 다음날, 경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면접을 진행하던 직원은 면접 당일이나 그 다음날 합격자에게 개별통지하겠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보다 선전했다고 자부하던 나를 떠올리며 계속 폰을 어루만졌다. 합격전화가 올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자다가 일어나기를 서너번 반복했다. 동서울에서 경주로 향하는 4시간동안 나는 간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간절히 원했고, 안절부절했다. 이토록 무언가를 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손목시계의 시침이 5시를 넘어설때쯤, 모든 기대를 버려야 할 수도 있다는 실망감이 구체적인 짜증으로 드러났다. 혼자 지껄였다. 'XX, 짜증나게..., 2016년 상반기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건가...' 그리고 한참동안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봤다.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이 앞섰다.
집에 도착해서 바닷가를 거닐었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짠내가 좋았다. 본디 촌놈이라, 빡빡한 서울이랑 어울리지 않는다. 불어오는 바람과,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말을 삼키고 또 삼켰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며, 화내며 속으로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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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30. 22:3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일병 강상율, 2006
군대시절을 되돌아볼때, 고집이 세고 모난 성격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선임한테 한 대도 맞지않고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다르게 말하면 시대적 행운아라고 할 수 있겠다. 훈련병에 입대할 즈음 군내에서는 '녹색병영문화'라는 구호아래 폭력을 근절시키고 병사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군내 높은 지위를 가지신 분들이 하급부대로 녹색병영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명령들을 하달시켰다. 참 운좋게도, 나는 연대 본부에 배치를 받았고, 연대 본부의 특성상 상급자들의 명령에 신속하게 복종해야 했다. 고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녹색 병사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 이등병 강상율은 누워서 TV를 시청했고, 축구할 때 공격수로 뛰었으며, 중대장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가히 군대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군기가 덜 든 이등병은 사고를 치게 된다. 그 첫번째 사건은... 바로, 이등병이 TV 채널을 제멋대로 바꾼것이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나는 1소대 이등병이었으며, 동기를 보기 위해 3소대로 향했다. 동기는 군기가 제법 들어 TV 앞에 각을 잡고 앉아있었다. 내가 3소대로 들어갔을 때, 3소대 선임들은 눈을 감고 자신의 관물대 아래에 누워있었다. 나는 그들이 자고 있을것이라고 '추정'했다. 내무반 턱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동기와 함께 리모콘을 보았고, 나는 리모콘을 얼른 잡아 동기 옆에 앉았으며, 그리고 리모콘의 채널버튼을 재빠르게 눌렀다. 물은 이미 엎어졌다...그 때 자고 있다고 '추정'했던 3소대 선임들의 입에서 욕들이 폭포수처럼 터지기 시작했고, 갈길을 잃은 맹렬한 욕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나는 말그대로 얼어버렸다. 허나, 그날 이등병 강상율은 맞진 않았다. 전방위적이고 무자비한 쌍욕을 듣기 했지만 말이다.
그 사건을 시작점으로 여러가지(?) 사건들을 일으켰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무사히 이등병 시절을 지났다는 것이다. 신의 은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이등병 시절은 하루하루가 '은혜'의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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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7. 19:04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이 두 조각 났습니다. 금이 가있었나봅니다. 나도 모르게 엄지와 검지로 날선 유리를 붙들고 말았습니다. 뭔가 깊숙히 들어오는 느낌이 들긴했습니다만, 놀라지 않았습니다. 혼자 있을때 무덤덤해야 합니다. 야단법석 떨어봤자 남는건 피로함뿐입니다. 다행히 상처가 그리 깊진 않습니다. 흐르는 피를 보고 몰려오던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피가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반창고라도 붙여야했기에 고시원 앞 편의점에 갔습니다. 피가난 손가락으로 반창고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합니다. 점원은 피가 흐르다 말라버린 검지와 반창고를 번갈아 봅니다. 그리고 나를 힐끗 쳐다봅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라고 대꾸라도 해줘야 하나 했지만, 그냥 카드를 건냅니다. 무덤덤하게 아픔을 직면하고 대수롭지 않게 반창고를 붙히는 나는 아무래도, '고통'과 '아픔'이란 언어와 닮아있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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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자 _ 복제(copy)된 인간들 (0) | 2015.12.05 |
2016. 4. 21. 19:23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출처: www.factoll.com
중학교 동창를 만나러 가기위해 용인행 좌석버스를 탔다. 한번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말은, 그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없는 하나의 인사이겠지만 내게는 '밥을 먹는' 하나의 목적을 가진 의미있는 말이다. 그러기하기에 함부로 내뱉지 않으며, 말을 내뱉으면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 말 때문에 나는 용인으로 갔다고 하는것이 맞을것 같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밥을 사기 위해' 용인행 버스를 탔다.
약 1시간 버스를 타고 용인에 도착했다. 친구를 만나, 근황을 묻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곧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는 여자친구가 있냐는, 요즘 '밥먹었냐' 만큼 많이 듣는 질문에, 아직 없다며 멋쩍게 웃었다. 할일없이 멍하니 야구 중계를 보다가, 플레이스테이션이 있다는 말에, 위닝도 있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오랜시간 조작패드를 바쁘게 두드렸다.
꽤 시간이 흘렀고, 배가 고팠다. 나는 삼겹살을 먹고 싶었고, 친구도 동의했으며, 우리는 근처 삼겹살 집으로 향했다. 삼겹살을 노릇노릇하게 굽고, 먹고, 또 굽고 먹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기만 씹었다. 배가 불렀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친구가 들고있던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내가 사겠노라고." 지난 번 친구가 밥을 살 때, 생색내듯 웃으면서 다음에는 꼭 니가 사라고 했다. 밥을 샀다고 그렇게 티를 내야만했는지... 심기가 불편했고, 짜증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내가 사겠노라고,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었던 빚을 청산했다.
친구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카푸치노를 마셨고, 일본의 지진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흘리듯 말했다. 하지만, 친구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에서 자연재해나 재난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를 하지 않았어도 된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껄이는 바람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친구집에 돌아가 짐을 챙겼고, 버스정류장로 향했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나야 할 목적을 달성했다. 다시 이곳에 오지 않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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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자 _ 복제(copy)된 인간들 (0) | 2015.1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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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9. 13:2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출처: blog.ohmynews.com
한 명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 아버지의 아들은 그의 삶의 굴곡을 두 눈으로 지켜봤으며, 그가 얼마나 진실되게 삶을 살아갔는지 알고 있습니다. 다른사람은 몰라도 그는 압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그는 아버지가 밉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온종일 흘리시던 그 굵은 땀방울을 간과했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가 겪는 삶의 무게를 그는 몰랐습니다. 32살의 아들은 이제야, 남자의 이름으로 그 아버지의 삶을 투영합니다.
"열심히 공부해라...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네 공부는 시켜주마..." 라는 아버지의 말이 하나의 진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그렇게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가을이었죠. 그는 경주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아버지와 마주쳤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 땀과 먼지로 찌들어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순간, 그는 으스러져야 마땅했습니다. 아들이란 이름으로 아버지의 삶을 갉아먹고 있음을 직시했기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너무나 처참한 하루였습니다.
당신이 아니고서야, 아버지란 이름이 짊어져야하는 삶의 무게를...어찌 알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당신은 어떠신지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0) | 2016.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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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5. 12:56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출처: news.joins.com
면접장에 네이비톤 정장을 입은, 머리스타일만 조금씩 다른 복제한듯한 청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었다. 사회가 규정해놓은 틀에 대다수가 갇혀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앉아 면접자들을 바라봤다. 무엇을 그리 열심히 외우고 있는건지. 한참을 바라봤고, 한참을 생각했다. 기업이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지 않을까...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에 적합한 사람임을 드러내야 하고... 아, 싫다.
면접실에서 국정화 교과서의 찬반에 대하여 묻는 질문에 나는 다른 면접자들과 다른 의견을 내비쳤고, 면접관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노조는 반드시 존재해야 된다고 표명했으며, 당신은 왜 그것을 묻느냐고 되묻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묻는말에, 어처구니 없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서글픈 현실앞에서, 애석하게도 웃었다.
어쩌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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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3. 22:1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출처: www.segye.com
동문서답.
교수님과 대화하면서 교수님께서 내게 자주 지적하는 말이다. "너는 질문하면 왜 딴소리를 하냐!"고. 사무실에서 교수님과 함께있으면 그 팍팍한 분위기에 눌려 올바른 사고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향도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질문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면 교수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도 동문서답하는 경우가 여러번 있었기 때문이다. 왜 동문서답하는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첫번째로 상대방의 질문을 전체적으로 듣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들어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화를 들으면서 대답할 내용을 생각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생각하느라 전체 질문을 다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질문을 제대로 모르는데, 어떻게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는 나의 조급한 성격으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두번째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상대방 질문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질문을 다 듣긴 했으나,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지않고 무작정 이야기하는 것이다. 생각 좀 하고 살자.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질문의 요지를 파악도 하고 머리속에 정리도 할겸, 질문한 상대방에게 재차 물으면서 질문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교수님과의 대화에서는 다시 물었다가, 혼이 날 수도 있긴 하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다시 질문을 물어 확인하는 태도는 대화의 몰입도를 높여줄 것 같다.
먼저 잘 듣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남의 이야기를 대충대충 흘려듣는 삶의 태도를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익힌다면, 어떤 사람과 대화하더라도 제대로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고 짧은 시간에 생각들을 정리하는 연습도 필요할 듯 하다.
실수에서 배우지 못하면,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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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1. 22:41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계속되는 실수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앞에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늘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 왔는데, 이번 일은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듯 하다. 그간 살아오면서 직면한 문제를, 삶의 문제건 시험이건, 풀어오는 방식이 틀렸음을 깨닫고 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나의 문제점을 크게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어떻게 풀지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았다. 전체 글을 쓰려면 개요가 필요하듯,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풀 것인지, 어떤 전략으로 나갈 것인지를 선택하기 위해서 전체 그림을 먼저 그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무작정 문제를 풀기위해 부딪혔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불안했고, 뭔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조바심도 낫고, 자리에 잠자코 앉아 있을 인내심도 부족했다.
둘째, 스스로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주어진 문제 앞에서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답 만을 찾으려 했다. 누가 풀어놓은 해설집을 따라 정답을 베끼듯, 인생도 남의 그럴듯한 인생을 베껴왔다. Copycat. 초등학교 때 매 방학이 끝날 때 즈음 누나가 방학 동안 잘 정리해 놓은 탐구 생활을 그대로 베끼는 일에서부터, 대학생 시절 시험공부를 하면서 족보만 달달 외웠던 일까지.
암튼, 난, 생각하지 않는, 주어진 뇌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바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비판적인 사고를 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착각하고 있었음을. 이제는 정확히 안다. 나는 일정한 생각의 틀 안에 갇혀버린 바보라는 것을. 경직된 사고를 확장시키고 싶으나, 단기간 내에는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 확장시키는 방법도 모르겠다. 답답한 노릇이다.
Creative, 내게는 절실한, thinking, 하지만 너무나 어려운, 삶의 과제이다.
면접자 _ 복제(copy)된 인간들 (0) | 2015.1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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