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3. 09:3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당신을 통해 내 삶이 변했습니다'라는 말이
내 삶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들리고 있는 지금도 사람을 찾기보다 다시 중심을 잡기위해 혼자 아등바등 힘쓰는 현실에서 '당신'은 없다. 생각의 정립과 옳고 그름의 판단과 나아감과 물러남밖에 없다. 나의 문제를 타자에게 확장하지 않는다.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대감의 상실'인가. 당신의 불행이 나를 행복을 침해하지 못하는 그 개인들의 보이지 않는 벽들. 맞기도 하다. 어설픈 위로는 위선이라 명명하고 타인의 개입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당신이 어떻게 알겠는가...
모순되지만, 타인의 개입을 배제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여기 있다고 할 수 있다. 치열하게 홀로 고민한 결과가 내 삶이지 않은가. 스스로 세운 가치관을 토대로 상황에 흔들리되 타협하지 않으며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현재의 확고한 가치관 아닌가. 다만, 다시 가치관의 옳고 그름은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2008년 가을, 그해에도 홀로 힘든 시간을 잘 버텨냈다. 그리고 성장했다. 2010년 겨울, 살을 에는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표류하는 삶의 바다에서 홀로 견뎠다. 그래, 그렇게 한번 더 성장했다. 2014년 겨울, 성경적 기준을 가지고 2년 6개월의 삶을 내던질 각오로 성경책만 읽으며 버티고 버텼다. 그러고나서 더욱 단단해졌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고 하나님을 절실하게 붙잡았다.
2018년 여름, 지금 나는 다시 성장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분명 성장을 위한 과정이라 믿는다.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되 물러섬이 실패가 아님을 알기를 바란다. 때론 물러서야 할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아감을 위한 1보 후퇴라면 그건 찬성이다. 조금만 더 견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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