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0. 01:31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정경희, 마주하다, 2006.
그녀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몇 달 전, 그녀는 내게 남자친구를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은 때가 아닌것 같다며 만남을 미뤘다. 며칠 전 그녀는 내게 다시 한 번 더 물어봤다.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꺼려하지만, 그래도 그를 한번 보고 싶었다. 6년 전에도 그녀의 권유로 전 남자친구를 카페에서 잠깐 만나 인사했다. 그는 그녀보다 4살 많았고, 인상도 좋아 보였다.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그녀는 평안해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행복을 원하기에 기꺼이 그가 보고 싶은 것이다.
그녀와 나는 미리 만나 약속된 장소에 앉아있었다. 그녀에게 괜히 긴장된다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그녀는 네가 왜 긴장하냐며, 어이가 없는듯 소녀처럼 깔깔 웃었다. 5분이 지났을까. 그가 식당 문을 지나쳐 테이블로 오고 있었다. 생각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고,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본래 까탈스럽게 행동하지만 이번만큼은 최대한 친절하게 행동했다. 내 언행으로 그녀가 불편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인도 카레를 먹고, 간략한 호구조사를 하고, 일상을 나누고, 침묵이 흘렀다가, 다시 서로를 탐색했다. 사람은 좋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웠고 그는 취업과 신앙에 대한 가치관을 내비쳤다. 다름을 지적해주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무수한 질문과 차가운 언어들이 불쑥 말로 튀어나갈 것 같았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뜨겁기만 한 카푸치노를 연거푸 마셨다. 첫 만남이지 않은가. 지금은 아닌것 같았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 진중한 대화를 나누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녀가 돌아왔고, 그녀가 회사갈 시간이 다다랐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녀와 그와, 나의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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