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 00:24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트라우마 극복기
# 정신적 고통
싸움의 패배와 코뼈의 부러짐으로 인해 형성된 트라우마는 약 4년간 지속되었다. 꿈속에서 누군가와 싸우는 꿈을 많이 꿨다. 꿈에서 내 주먹은 고무처럼 물렁거려서 상대방에게 충격을 주지 못했고, 나는 계속 맞기만 했다. 잠에서 깼을 때 기분은 더러웠다. 또 졌다는 '패배'의 굴욕감이 나를 휘감았다.
누군가가 코에 대한 이야기만 꺼내도 움찔거렸다. 남들이 내 코뼈 부러진 것을 알까봐 두려웠다. 슬쩍 자리를 피하곤 했다. 매체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장면이나 소리를 들으면 그 때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코뼈 골절로 인한 외관상 휘어짐은 거울을 보지 못하게 했다.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 때의 사건으로 돌아가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책하며 스스로 고립됐다. 코 가운데 연골(비중격)이 휘어서 비염이 심해졌을 때, 한쪽 코는 완전 막혔고, 그로 인한 두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한참을 헤맸다. 자초한 일이기에, 나 혼자 짊어져야 한다 생각했다. 그리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4년을 버텼다. 결국,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때, 다시 일어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평생 트라우마에 갇혀 살 순 없잖아. 넘어서야 해.”
첫번째 단계: 과거를 버렸다. 그리고 현실을 인정했다.
"그 날 화장실에서 녀석과 마주치지만 않았다면……."
"그 녀석이 시비만 먼저 안 걸었더라면……."
"그 때 그 주먹을 피했더라면 코뼈는 부러지지 않았을 텐데……."
무수한 후회와 미련들이 현재를 과거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과거의 일들에 매여 후회만 할 순 없었다. 먼저 매여 있던 과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미 모든 상황은 벌어졌다는 것과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스스로 연민하며 자책하고 있음 또한.
두번째 단계: 먼저 그 녀석을 용서했고, 나를 껴안았다.
Forgive him
녀석에 대한 미움은 커져 증오로 발전한 상태였고, 그 증오감은 사회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로 표출됐다. 녀석을 용서하기로 했다. 용서하겠다고 다짐한다 해서 바로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적인 어떤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그를 놓고 기도했다. 녀석의 안녕(安寧)과 행복을 위해서. 차츰 증오의 족쇄가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녀석을 용서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Don't beat yourself.
한 번의 패배가 인생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갔다. 한 번 싸움에 졌을 뿐인데, 삶의 모든 부분에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스스로 껴안아야 했다.
"넌 단지 그 싸움에서 졌을 뿐이지, 네 인생에서 실패한 게 아니야."
"넌 괜찮은 녀석이야"
계속 토닥였다. 추상적이긴 했지만, 회복하는데 꽤 도움이 됐다.
세번째 단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다
심적인 고통도 상당했지만, 코막힘에 의한 두통도 그에 못지않았다. 두통으로 인해 하루 일과가 흐트러졌고 집중도는 현격하게 떨어졌다.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지만 모든 행동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는 가치관이 날 꼼짝못하게 했다. 그래서 조금 융통성을 가져보기로 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아픔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다.
휘어진 비중격으로 인해 코막힘이 점점 심해지는 것이 확실했으니, 비중격 만곡증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수술 당일, 심적으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술에 의해 코막힘 증상이 완전히 해소될 지 확신하지 못했다. 수술 내내,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떨었고, 의사는 재차 나의 심리상태를 확인했다. 뻔뻔하게 괜찮다고 했다. 재발의 두려움이 떨림에 한 몫 한 것 같다. 수술 2 주후, 코막힘이 점차 사라지면서 두통에 시달리는 날도 줄어들었다. 차츰 마음도 안정을 찾았다.
# 거울을 보다.
수술이 끝나고 정신적 고통이 사라지면서 거울을 볼 수 있었다. 분명, 내 눈에는 코뼈가 조금 휘었다는 것이 인식되지만, 남들은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코뼈가 휘어졌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타인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또한 이목구비에 따라 외모의 우열이 결정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는 외모란 이목구비와 함께 좋은 인상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거울 앞에 서서 머쓱하게 웃기도 하고, 미친 척 크게 웃기도 했다. 연습할수록, 웃는 것이 익숙해졌다. 치켜 올라가서 매섭게만 보이던 눈매가 조금씩 내려오면서 인상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계속 방치하면 곪는다. 더욱 아프다.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처 난 부위를 정확히 바라보고 소독약을 이용해 세균을 죽여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해야 한다. 찢어졌으면 꿰매야 하고, 부러졌으면 뼈를 제대로 맞춰서 고정시켜야 한다. 치료에 따른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 한 번의 치료로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여러 번의 치료를 거쳐야 상처는 완전히 아문다.
그렇게 해서 남은 흉터는 아프지 않다. 단지 기억될 뿐이다.
트라우마는 내게 마음 속 흉터 하나를 남겻다. 누가 건드려도 이제는 아프지 않다. 아팠었노라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다. 아픔이 날 단단하게 만들었기에, 난 지금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에 감사하고 있다. 또한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을 위로해 줄 수 있음에 더욱 감사하다.
트라우마는 극복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처절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치료는 고통을 수반한다.
회복이 더딜 수도 있겠으나,
언젠가 반드시 치료된다는 것만 믿으면 된다.
그러면 내가 그러했듯,
당신도 극복 할 수 있으리라 난 확실히 믿는다.
You can do it.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과 소통 & 공유 할 수 있습니다.
동문서답. (4) | 2014.07.23 |
---|---|
가여워라, Copycat. (0) | 2014.07.21 |
삶에 대처하는 자세. (0) | 2013.02.28 |
블로그를, 예찬하다. (4) | 2013.01.22 |
독서장려금, 획득하다. (2) | 2012.11.30 |
2013. 2. 28. 13:0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출처: http://blog.joinsmsn.com/media/index.asp?uid=bmpark01
삶의 여러 길목에서 무수한 일들을 만난다. 직면하는 대부분의 일들은(모두 문제가 그런 건 아니다) 회피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도망 칠 기회도 있다. 한 번 회피하기 시작하면 일들을 맡아 해결해야 할 책임감은 점점 잃게 되고, 도망쳐야 할 변명거리만 더욱 늘어가게 된다.
이와 반대로 벌어진 일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 따라 태도는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소극적으로 방관하면서 그저 일을 끝내는 것에 만족 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인 태도로 확실하게 일을 매듭지을 것인가. 어떠한 자세로 문제들을 처리하는가에 따라 결과의 질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방 청소하라고 시켰다고 하자. 첫째 아들은 청소는 하기 싫지만 하지 않았을 때에 벌어질 상황이 더 싫어서 궁시렁 거리며 소극적인 태도로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지시에 따라 청소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방일지라도 구석구석 하지 않고 대충 겉보기만 깨끗하게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청소를 대충해놓고 자신은 일을 마무리 지었다고 말할 것이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지시를 받고 방을 살펴보니 자신도 청소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해서 자신의 건강과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 적극적인 자세로 방 곳곳을 깔끔하게 청소했다. 타인의 지시로 시작된 일이지만 그 일은 자신의 임무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일의 효율성은 당연히 첫째보다 높을 것이고 결과 또한 좋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두 가지 태도로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결과는 크게 차이난다.
일을 맡아 처리함에 있어, 타의에 의해 일을 떠맡는 수가 많다. 그러면 마음속에서 불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내가 도대체 왜 이걸 해야 하나?’ 여기에 대한 대답에 따라 차후 내 행동의 방향은 결정된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회피 할 수 없으니 대충 맡아서 빨리 끝내 버리자’ 이거나 ‘내가 맡지 않으면 또 누군가가 맡아 처리 할 건데 기왕에 내가 맡았으니 내 일이라 생각하고 확실히 처리하자. 분명 이 일로부터 배울 점이 있을 거야’ 중에 하나 일 것이다. 많은 일들 앞에서 전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다 보니 일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그저 일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이제 후자의 태도로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
내 삶의 태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았다면 그 다음은 문제점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사람의 습관은 단 한 번에 변하지 않는다. 실수하고 또 깨닫고 또 실수하고 다시 깨달아서 하나의 행동이 습관이 될 때가지 의식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리해야 변한다. 그래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 할 수 있다.
공감하신다면, 아래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과 소통 & 공유 할 수 있습니다.
가여워라, Copycat. (0) | 2014.07.21 |
---|---|
트라우마를 극복하다 - 현실을 직시하고, 남과 나를 용서한 다음, 실제적 행동을 하라. (0) | 2013.06.01 |
블로그를, 예찬하다. (4) | 2013.01.22 |
독서장려금, 획득하다. (2) | 2012.11.30 |
권리 되찾기 (0) | 2012.04.30 |
2013. 1. 22. 22:1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블로그 예찬
# 블로그 역사
2012년 4월 29일, 블로그를 개설했다. 블로그를 통해 내가 가진 유용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정보공유를 통해 많은 이들과 소통하길 원했다. 블로그 첫 제목은 '소통 & 공유' 였다. 4월부터 8월까지 약 4달간 블로그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나 자신과 약속했다. 한 주에 최소 한 개의 주제로 블로그에 글을 쓰겠노라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소 억지스런 주제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어떤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은 참, 귀찮고 버거운 작업이다. 포스팅 한 개를 하는데 약 1시간이 소요된다. 허나, 그 때의 수고로움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것이다. 차곡차곡 쌓여진 나만의 스토리로 인해 블로그를 활성화 할 수 있었다. 하루 방문자 수가 300명을 넘어섰을 즈음, 블로그의 방향을 조금 틀고 싶었다. 나의 비전과 연관지어 블로그를 운영하고자 했다.
나의 비전은 "모든 사람에게 물의 확보할 권리를 되찾아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블로그 제목을 'Water as a fundamental human right'로 변경했다.
2012년, 블로그 운영을 통해 '소통'하고자 했던 목표는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통은 나만의 목표가 아닐 것이다. 블로그를 하는 많은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소통'일 것이다. 더욱이, 인생 스토리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어, 블로그를 보고 있으면 참, 뿌듯하다. 이렇듯, 블로그 운영을 통해 얻은것들이 많으니 간략하게나마 정리하고자 한다.
1. 인생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진다.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인생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다. 소소한 일상은 잘 기록하진 않지만, 기억될 만한 사건들을 기록중이다. 기억의 부재로, 블로그 개설 이전의 삶을 다 기록하진 못한다. 하지만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진 인생의 큼직한 사건들은 기록해 놓았다. 인생을 곰곰히 돌아봐서, 기록이 필요한 사건들은 생각의 정리를 통해 글로 옮길 예정이다.
2. 소통하기 시작하다.
텝스 공부 방법에 관한 블로그를 통해 첫 소통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블로그 글을 보고 내게 도움을 요청해 왔고, 나는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렸다. 보잘 것 없는 내가 누군가에게 정보를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그리고 나서 더 많은 분들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차츰 소통이 원활해졌다. 소통의 물꼬를 튼것이, 서울대학교 지원과 면접에 관한 포스팅이었다. 대학원 지원자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라 더욱 그러했다. 처음에는 블로그 댓글을 통해서 소통을 했고, 시간이 지나자 메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익명으로 도움을 요청한 분들이 많았지만, 나는 정중히 그들을 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소 도전적인 말로 그들을 자극시키기도 했고, 진심어린 위로로 그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내 메일 답장을 받고, 감사의 인사를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블로그를 통해 소통함으로써 진심을 드렸고, 진심을 얻었다.
블로그를 통해 나만의 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블로그를 통한 소통은 즐겁다. 지인들에게 블로그를 예찬하지만, 다들 들은척도 안 하며, 이렇게 애기한다.
"알았으니까, 너나 열심히 해!"
블로그를 예찬하는 자로서, 지인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자신의 손때가 고스란이 남겨진 블로그를 가진다는 이 기쁨을 어찌 전할 수 있을까.
늘 고민이다.
공감하신다면, 아래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과 소통 & 공유 할 수 있습니다.
가여워라, Copycat. (0) | 2014.07.21 |
---|---|
트라우마를 극복하다 - 현실을 직시하고, 남과 나를 용서한 다음, 실제적 행동을 하라. (0) | 2013.06.01 |
삶에 대처하는 자세. (0) | 2013.02.28 |
독서장려금, 획득하다. (2) | 2012.11.30 |
권리 되찾기 (0) | 2012.04.30 |
2012. 11. 30. 12:59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내가 수학하고 있는 대학교에서는 '천마독서장학생'이라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학교에서 이 제도를 통해 창의성과 진취성을 겸비한 Y형 인재를 육성하고자 한다 했다. 독서장학생 선발조건은 먼저 학부 재학생이야하며, 학교에서 선정한 도서목록 중에서 매 달 최소 1권을 읽어야 한다. 그런 다음, 책에 대한 줄거리와 감상평을 제출기한에 맞게 제출해야한다. 기간은 2012년 5월에서 9월까지 총 5달간이었다.
기회구나, 자발적 구속력으로 독서를 하게 할 수 있는. 훗
나도, 장학금을 준다는 것에 혹하여 천마독서장학생에 신청했다. 순전히 돈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간 처음 접하는 타 전공을 공부하느라 독서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말이다. 어째든, 독서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고 싶었다. 또한 서평을 통해 머릿속에 책을 읽은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책을 읽고나서 스스로 그 내용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읽을 당시의 큰 깨달음은 시간과 함께 저 멀리 사라져버린다. 나의 성격상, 나 자신과 한 약속은 강제적 구속력을 함께 수반한다.
굳은 다짐으로 시작했지만, 매 달말 제출기한에 쫓겼다. 도서목록 중에 양서를 고를 틈 없이, 끌리는 제목의 책 한권을 선정해 밤 새워가며 읽었다. 하루가 지나면, 읽었던 내용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까봐 몇 시간을 들여 서평을 작성했다. 나약한 의지와 게으른 탓에, 매 달마다 하나의 서평밖에 작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천마독서장학생을 지원할 때 목표는 한 달에 하나의 서평을 적자는 것이었으니, 목표 달성은 한 셈이다.
총 다섯편의 서평을 올리고서, 그저 자족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선발된 천마독서장학생이 공개되었고, 그 아래에 독서 장려금 명단이 있었다. 그 곳에 참 기쁘게도, 내 이름 석자가 써 있었다. 오호라! 돈 벌었다.
결론적으로, 매 달마다 꾸역꾸역 적었던 서평을 통해 책 5권을 내 것으로 소화했다. 책을 소화한다는 것의 범위가 어디까지라고 명확히 정의하기는 어려우나, 타인에게 책 5권을 부담없이 소개해주고 추천해줄 수 있는 정도라 하면, 소화했다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라. 부수적으로 문화상품권 5만원도 받았으니, 더할나위 없이 만족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김훈 작가가 "책을 읽기 전이나 읽은 후나 그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독서을 통한 긍정적인 변화나 성장을 강조한 바 있다. 책 한 권을 읽고 그냥 책장에 꽂아두면 머릿속에 그 내용이 오래가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사람의 단기 기억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억력을 향상시키려면 읽은 내용을 반복해서 보면 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읽었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다. 서평이나 독후감을 통해 읽은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정리하다면 그 기억력은 오래갈 것이다. 더욱 좋은 것은 읽었던 책의 내용을 지인에게 설명하면서 소개해주는 것이다. 입으로 내 뱉은 것은 더욱 선명히 우리의 것이 될 확률이 높다.
오늘부터라도 책을 읽고나서 느낀점들을 간단하게 적어보는건 어떨런지.
부담이 된다면, 큰 감동을 준 구절들이라도 공책에 꾹꾹 눌러 써 보지 않겠는가.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더욱 하기 어려워진다.
'나중'이라는 단어는 잊어버려라.
지금이, 바로 실천할 때다.
공감하신다면, 아래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과 소통 & 공유 할 수 있습니다.
가여워라, Copycat. (0) | 2014.07.21 |
---|---|
트라우마를 극복하다 - 현실을 직시하고, 남과 나를 용서한 다음, 실제적 행동을 하라. (0) | 2013.06.01 |
삶에 대처하는 자세. (0) | 2013.02.28 |
블로그를, 예찬하다. (4) | 2013.01.22 |
권리 되찾기 (0) | 2012.04.30 |
2012. 4. 30. 15:4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2년만에 돌아온 대학교정은 낯설다. 저마다 무리지어 다니는 곳곳에서 홀로 다시 교정을 걷고 있다. 밥도 혼자 먹은지 3달이 넘었다. 뭐, 그리, 나쁘진 않다. 견딜만 하다.
내가 애용하는 과학도서관 4층에 화장실이 있다. 각층마다 다 있긴 하다. 그런데 대변을 볼 수 있는 4곳중 한 곳은 누수로 사용을 금지 시켜놨고, 또 다른 한 곳은 손잡이가 고장나서 사용할 수가 없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두 곳 뿐이다. 식사시간 전후로 화장실에 대변을 보려는 학생들이 몰리면 화장실 두칸은 턱없이 부족하다.
4월 초순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내 옆에 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도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이야기 중에 고장난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친구 1 왈: 어제 똥 누러 왔는데 4층에 사람 다 차서 3층갔는데, 또 다 차서 2층, 1층까지 내려갔다 아이가.
친구 2 왈: 나도 그런 적 많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왜 저학생들이 1층까지 내려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고장난 두칸을 1달 반이 넘도록 그대로 방치했던 학교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리고 1층까지 내려가야 하는 불편을 그냥 감수하고 있는 공대생들의 태도에 할말이 없었다. 자신들이 누려야 하는 권리를 잃어버렸는데,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학교 어느 부서에 전화해서 고쳐달라고 하면 될까?' 머리를 스치는 한 곳이 있었다. 총학생회를 통해 학교에 내 의사를 전달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홈페이지를 통해 총학 연락처를 찾아냈고, 바로 전화해서 4층 화장실 수리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수리 요청한 것을 깜박잊은 채 1주일이 지나갔다. 그리고서 다시 화장실의 고장난 두칸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 안 고쳐졌잖아!', 순간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바로 총학에 전화를 걸어 따질까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얻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성적인 글로 건의 하기로 했다. 아래는 내가 올린 전문의 일부다.
4층 제 3열람실 화장실
현재 과학도서관 4층 남자 화장실에 대변을 볼 수 있는 4곳중 한 곳은 누수로 사용금지 시켜놨고, 또 한 곳은 문 손잡이가 고장나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4층 제 3열람실 총 인원수가 505명인데, 공대생중에 남학생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300명이상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식사시간 전후로 화장실에 학생들이 몰리게 되면 대변을 볼 수 있는 곳을 사용하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대변 한 번 볼려고 4층에서 3층, 3층에서 2층, 2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지난주에 전화상으로 건의를 드렸었는데 아무조치가 없어서 글로 올립니다. 빠른 조치 부탁드립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있으나 일단 이것만 적도록 하겠습니다. 총학생회에서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소홀히 듣지 말아주시고, 학생으로서의 권리를 당당하게 찾을 수있도록 저희를 대변하며 학교측에 의사를 전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낮에 글을 올리고 저녁에 홈피에 다시 들어가서 확인했다. '집행위원장'이란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내 건의글에 여러 댓글을 달았다. 건의사항에 대해 빠른 조치하겠다는 것이었다. 글투를 봐서는 나름 차분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났다. 그 날 저녁, 문고리가 고장났던 화장실 한 칸은 수리 되어 있었다. 잃어버린 권리를 다시 되찾았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에, 혼자 수리된 문고리를 보고 한참 서 있었다. 시험기간이 다가와서 누수에 대한 것은 시험끝나고 고쳐준다고 했는데 두고 볼일이다.
공대생들은 학생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는 데 적극적이지 못한 것 같다. 아니, 아예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알고도 모른체 할 수도 있다.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난 마지막 1년동안 공대생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 볼 참이다. 조금 번거롭겠지만 말이다.
공감하신다면, 아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공유할 수 있습니다.
가여워라, Copycat. (0) | 2014.07.21 |
---|---|
트라우마를 극복하다 - 현실을 직시하고, 남과 나를 용서한 다음, 실제적 행동을 하라. (0) | 2013.06.01 |
삶에 대처하는 자세. (0) | 2013.02.28 |
블로그를, 예찬하다. (4) | 2013.01.22 |
독서장려금, 획득하다. (2) | 2012.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