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자

2013. 10. 26. 21:44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법대로 하자라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 글을 쓰라.




<조건>

1. “자체에 대한 신뢰의 여부를 전제 내용으로 기술할 것.

2. “법대로 하자을 절대적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도구적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지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

3. 이때 발화자는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지, 아니면 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보일 것.

4. 글의 형식은 중수필(칼럼, 비평문 등)로 쓰되, 분량은 1,200(±150)자 내외로 할 것.



 

 고 3시절, 친구가 시비를 걸어 말다툼 끝에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홧김에 먼저 주먹을 휘두르긴 했지만, 별로 때리진 못했고, 많이 맞기만 했다. 코뼈까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집에서 내 몰골을 보고 화가 나신 부모님께서는 친구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법대로 하자고 말씀 하셨다. 법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당연히 내가 피해자가 되고, 충분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방 부모님도 법대로 해라고 당당히 맞서는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슨, 내가 먼저 주먹으로 자기 아들을 때렸기 때문에 법적으로 처리해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법에 의하면 많이 맞았다 하더라도 먼저 주먹을 휘둘렀을 경우에는 쌍방 폭행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나는 코뼈가 골절된 실제적 피해자로서 법을 통해 보상 받고 싶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 부모님께서 말한 대로 법대로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한국사회의 법 집행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법치국가이다. 법의 원칙에 따라 갖가지 문제들이 중재되거나 해결되어야 한다. 법을 통해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법적 근거 외에 다른 요소가 개입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권력과 부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인들이나 대기업 총수들이 수천억의 돈을 횡령, 탈세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다시 사회로 진출한다.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법 집행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다. 법이 국민들에게 폭력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무력(無力)한 법은 더 큰 문제다. 국민들에게 법을 준수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해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위험이 크다. 법대로 살면 손해 보는데, 누가 법을 지키겠는가?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 김명호 교수는 대 입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학내에서 징계 및 재임용 거부를 당해 퇴출당했다. 검찰부에 소송을 걸었으나 교수로 복직하지 못했다. 판결에 부당함을 느낀 김명호 교수는 법대로 하자고 검찰부와 맞섰다. 그가 법대로 하자고 한 것은 법치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국가가 법의 원칙에 근거해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패소했다. 검찰부란 권력을 상대로 한 싸움이었으니 법의 공정성이 그대로 지켰는지는 의문이다.


 법치국가에서 법대로 살면 이득을 봐야 한다. 아니,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한다. 자식들에게 법대로 살아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법의 원칙이 살아있는 사회가 구현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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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yota recall crisis

2013. 10. 26. 21:36 책과 글, 그리고 시/영작(英作)

Toyota Motor Co. is recalling 885,000 vehicles worldwide over electrical problems that could prevent airbags from deploying in a crash, the latest in a series of major safety-related actions for the carmaker


Oct. 17, 2013 ,NBC NEWS -


This is not the first time Toyota recall defective cars. I think, Toyota seems not to learn lesson form the mistakes. 



The source of image : http://www.theguardian.com



In February 2010, there were a lot of recalls about Toyota's car in the United States because of gas pedal defects. The situation was unprecedented in modern times.

Recall is the system by which the product already sold is defective, and the company of the product replaces it with a new one or they should check it thoroughly free of charge. Recall is usually divided into compulsory and spontaneous. At that time, Toyota announced that they would recall spontaneously all of the defective cars, but actually Media force in the United Stated had forced them to recall. Recall is a signal that they admit the defect. Then, the reason why the situation happened is mainly because of two problems

 

The first thing is Toyota’s difference to raising the question about the gas pedal defect to customers. 3 years ago, and they said "There is no defect". Toyota had been known for high quality cars and security, and they were proud of them. Some people died because of the groundless confidence After that accident, situation got worse and worse and led to a lack of confidence.

The second thing is Toyota used the specific components for all of the Toyota' cars. Initially, Toyota had used separate components depending on the model. Since they launched a branch In the US, there had been considerable rise in demand. To meet the demands, they had to produce in large quantities. And they decided to use the same component for all models and expected cost-benefits by using them. Media consider this a cause for the situation, Toyota said "Almost all of the components that caused error were made by subcontractors in the US. The subcontractors didn't admit the problem. Even though they made the component poorly, Toyota must have done the final inspection of all parts. I think that is Toyota's fault.

 

Toyota is an icon in Japan. Toyota is the best selling company in the world. Due to this kind of situation, their reputation has fallen fast and their income has dropped considerably. In November 2010, the media reported Toyota announced that they would recall spontaneously IQ models in Europe and Japan due to a handle defect. As Toyota’s nightmare keeps going on, I wonder when the situation will re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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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_우리 모두 묻자. 이 사회에서 진정 정의가 승리할 수 있는가.

2013. 7. 10. 22:26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공지영 지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정의를 위해서 싸워야만 하는 경우라면, 나는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 마땅히 내가 감당해야 하지만 선택에 따른 책임의 무게가, 결과가 내 삶을 끌어내린다면 말이지... 



 도시에서 사업을 망하고 마지막 보루로 무진시에서 계약직 교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무진시로 내려가던 날, 자욱한 안개 때문에 앞을 알 수 없었던 것처럼, 강인호의 삶도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계약직으로 간, 첫 근무날부터 강인호는 몸서리칠만큼의 치욕과 수치심을 겪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헤쳐지는 자애학원의 폐단과 문제들. 그 상황속에서 강인호는 정의의 편에 서서 약자을 편을 지지하고 돕는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자들과 악을 서슴없이 일삼는 자들의 싸움은 절정으로 치닫고, 결국 법원까지 가게된다. 아니, 법이 개입하지 않으면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는 악의 세력을 제지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약자들의 최후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법이라는 것이 약자를 위한 것이어야 하나, 법 위에 지역주의물질주의가 군림하고 법 아래에서는 기본적인 권리마저 빼앗긴 약자들이 헐벗은 채 엄격한 법에 의해 재단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강인호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벽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나아가지 않는다. 더러운 청춘의 죄와 피붙이들 발목을 잡고 있어, 나아가지 못한다 이야기 하지만, 그건, 단지 변명일 뿐이다. 



 공권력에 의해 자애학원 대책위의 천막이 가차없이 짓밟히던 새벽녘, 강인호는 현실을 직시했다. '정의'라는 이상만을 바라보면서 '가족'이라는 현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소리없이, 흔적없이 무진시를 급히 떠난다. 어찌, 강인호를 비겁하다, 욕할 수 있겠는가. 현실과 이상,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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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 _ 무의식의 의식화과정에서 만나는 놀라운 은총

2013. 7. 1. 00:07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M.스캇 펙 지음 / 최미양 옮김

 

 

 

 

삶은 고해(苦海).

 

 

 

 우리 사회에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중 정신과를 찾는 대부분이 신경증이나 성격장애를 겪는다. 이 증상은 책임감과 관련이 있다. 신경증은 과도하게 책임을 지려하고, 성격장애는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면 문제에서 도피하려 한다. 치료의 용이성에 본다면, 신경증인 사람들이 성경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보다 치료가 비교적 쉽다. 왜냐면 신경증인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책임지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격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당연히 감당해야 할 책임조차 피하려하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문제를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증상이 심해질수록 책임감을 지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증상들이 어린 시절에 부모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데서 비롯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부모의 잘못된 역할이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늘 문제를 회피하려고만 했는데, 갑자기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당하게 바꿀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오랜 시간 훈육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에 대한 헌신, 균형 잡기의 네 가지를 통해 문제에 직접 맞닥뜨려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와 그로 인한 고통을 감당하려는 자세와 의지를 가지고 성공적인 문제해결능력까지 말이다.

 

 

 훈육의 과정은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무작정 몰아붙여서는 치료대상자의 성장을 기대할 순수 없다. 따라서 이 과정은 사랑을 전제로 진행되어야 한다. 저자는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한다. 사랑은 의지의 문제지, 단순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노력 없인 안 되는 것이다.

 

 

 부모가 진정한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자녀를 책임질 줄 알고, 자신과 남을 사랑하는 존재로 양육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의 역할 만으로 부족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능력은, 성장하려는 의지는 삶 전체에 미치는 하느님의 사랑인 은총에 의해 생겨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은총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힌다.

 

 

 그러면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훈육의 과정은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감을 가지게 하는, 정신적인 것을 인지하게 능력을 키우게 하는 것이다. 이 능력을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의식은 자아로 정의하면 무의식은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이야기 한다. 무의식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의 의식화되는 과정이다. 그 무의식은 곧 하느님(하나님)이고, 그 곳에서 은총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은총을 정신적 질환이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한 개인의 의식적 의지보다 훨씬 강렬한 것으로 강조한다. 은총의 실재함을 깨닫기만 한다면, 자신의 존재와 가치의 재인식이 가능할 것이고, 하느님(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과 세상이 줄수 없는 지혜로 성장과 진보의 길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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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에 갇히다 - [트라우마;신체적, 정신적 충격 경험 후 발생하는 정신적 질병]

2013. 5. 22. 01:11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트라우마란

 

 트라우마는 특정적인 사건이나 사고를 통해 신제적,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아주 밀폐된 공간에 갇혀서 숨이 막혀 죽을 경험을 한 사람이 훗날, 다시 그 상황에 맞닥드리게 되면 정신적으로 상당히 불안해지면서 특이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어릴 때 눈 앞에서 목 매달고 죽은 사람을 봤다면 목을 조르는 옷을 입거나 넥타이를 매게 되면 실제적으로 숨이 막히지 않지만 정작 본인은 옷이나 넥타이가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러한 정신적 충격에 의해 생긴 트라우마에 한 번 갇히게 되면, 스스로 헤어나오기란 쉽지 않다.

 

 

 

 

 

# 트라우마에 갇히다; 싸움, 패배 그리고 부러짐. 

 

20039월 수능 100일전 전국수능모의고사가 치뤄지던 날, 1교시 언어영역을 끝마치고 흐트러진 정신을 깨우러 화장실로 갔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바라본 불투명한 거울에 그 녀석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던 녀석이었는데, 그 날 거울을 통해 자존심을 건 신경전이 벌어졌다. 신경전이 말싸움으로 이어졌다. 둘만의 싸움을 위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싸우기로 합의한 다음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도중에도 잦은 욕설과 몸싸움이 있었지만 둘 다 계단에서 싸울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마지막 계단에서 그녀석이 내 팔을 잡았고, 그 건들림이 짜증나게 느껴졌던 나는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싸움에서 선방하면 질 경우는 별로 없는데... 선방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끄러 졌는 것 같기도 하고, 엄청 맞은 것 같기도 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난 넘어져서 달려드는 녀석에게 발발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한 명의 친구가 와서 싸움을 말렸고, 코에서는 벌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두려웠다. 뜨거운 그 무언가가 내 몸을 흐르고 있을 때 패배라는 것이 사실로 다가왔다.

 

 

 

 

 

3자의 개입으로 싸움은 잠시 멈춰졌지만 아직 서로 분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피에 흥건히 젖은 흰 티셔츠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멈추지 않는 피를 찬물로 지혈했다. 그러고 나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올라간 3층 교실 앞에 그 녀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덤빌 기세였다. 아래층에서의 '패배'가 날 움츠리게 했다. '또 맞을 것 같아...그런데 여기서 물러서면 쪽팔리잖아!'

 

 

영화의 한 장면 처럼 복도 중앙에서 다시 엉켜붙어 싸웠다. 아니, 다시 난 알 수 없는 싸움에 휘말렸다. 그 때 마침 2교시 수리영역 시작 종이 울렸고, 우리는 싸움은 끝낼 수 밖에 없었다. 녀석은 꽤 멀쩡했고, 난 누가봐도 흠씬 두둘겨 맞았음을 알 수 있을 만큼 눈덩이와 코 주변이 부어 있었다.

 


싸움이 끝난 후, 교복 셔츠에 바싹 말라버린 핏자국이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내게 일깨웠고, 부러진 코뼈의 쓰라린 아픔이 몸서리치게 내게 밀려왔을 때 난 다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웠다.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내가 왜 싸웠을까?' 그러나 상황은 이미 벌어진 상태였으니, 어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코뼈의 부러짐에 대한 트라우마는 형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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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al Thinking; 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2013. 4. 6. 22:28 책과 글, 그리고 시/영작(英作)

 

 

 

Soli Deo Gloria 

 

 

Since many companies have reduced a number of employees and have fired employees a lot because of the economic crisis. In these circumstances, there are many university students who are trying to improve abilities which are said "Spec", new term in Korea like TOEIC, language training, certificate of blood donation, volunteer activity to enter the better company. That skill they got is only used for entering company, I think. They want to enter the good company and earn a lot of money. They are not concerned about real life things like; "how should I live?", "what is right?", "what is wrong?" They don’t ask question about real life thing anymore like this. But the most serious problem is that they couldn’t think critically. Then, how can they improve thinking power? The answer is to read a book. 

 

 

 

 

 

 A book is a complete product that includes the author's thoughts and beliefs. By reading a book, we can meet an author indirectly. We also can experience different thoughts between us and the author. Due to different thoughts, we will try to understand why the author thinks and writes what he wrote. We will try to get an answer; the answer will be your own thought. But if you read the same kinds of books, which insist their opinion is correct to the exclusion of opposing opinions, you could get a one-sided or a partial understanding of the thoughts.

   

 To avoid these things, you must read the book which describes the opposite opinions, you will get a balanced viewpoint. It is also good to read a variety of books on society, science, art, and other topics. There is a lot of new and interesting information that we don't know. By knowing these things, we can broaden our knowledge

 

 If we read just one book,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both sides of the issue. But I am sure that if you keep reading a book and organize your thoughts; someday you will have your own value that makes you stand firm in wisdom which distinguish between wrong and right. A person who always tries to think sensibly about the problem that he is facing, wherever he is, will live a better life.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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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n observer

2013. 4. 6. 22:09 책과 글, 그리고 시/영작(英作)

 

 

 

 

 

 A month ago, a student from Taiwan came our lab to do experiment for last semester of master course. When I met him, I felt he was so shy. And also It takes me a while to warm up stangers. I talked to him with few words for about 2 weeks. Since I had a supper with him several times, I have gotten along with him well. As time goes by, it was time for him to leave.

 

 The day before he leave, he asked "why is your nose crooked?" I was suprised that he noticed my broken nose. That's why nobody in my lab realized that at all !!

 

 

 

Let me tell you my sad story.

 

 

When I was high school student, I went toilet during break time. I met the guy whom I didn’t get along with well since first year. I argued with such petty matters. He spoke to me loudly with his anger, which irritated me. I had my right hand clutched into a fist. And then I shook my fist to that guy. after first punch, I didn’t exactly know what happen. oh no... Anyway, at that time, even my nose bone was broken. 

 

 

 I think he has a special talent for Picking things up quickly. 

 

 

 Hope he com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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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를 분석하지 않는다. 다만 읽을 뿐이다.

2013. 3. 20. 21:12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들은 시를 읽지 않았다. 시에 숨겨진 비유와 대조, 은유와 같은 법칙을 발견하고 분석했으며, 한 단어에 특정 의미를 부여했다.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시를 음미하는지, 아무도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난, 단지 시는 구절에 부여된 특정한 의미들을 외워야만 이해되는 이상한 나라의 글이라 생각했다.

 

 

 25살, 실연을 당하고서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때야 비로소 시가 읽혀지기 시작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내 가슴팍에 와 닿았고, 하루종일 읊조리기도 했다. 간혹 시를 읽다가 뜨거운 눈물이 뺨을 따라 흐르기도 했다. 아픔을 통해 시를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좋은 시들을 찾아다니면서 읽었다. 시를 읽으면서 몽상가 기질이 늘긴 했지만, 삶의 소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몇 주전,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내려가는 길 벽면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적혔있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이 구절이 그냥 가슴 한켠에 고이 들어왔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가슴 속 소외받는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나를 흔들었다. 하염없이 지하철 보호유리에 비쳐진 나를 바라봤다.

 

 

 

난, 아직도 시를 알지 못한다. 잘 이해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시를 읽는다. 왜냐고, 그냥 좋으니까. 바쁘단 핑계로 시를 읽지 않았는데, 주말에 서점 가서 시집이나 한 권 사야겠다. 서서히 다가오는 포근한 봄과 함께, 시 한편 읽으며 잠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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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멘토(mentor)의 역할은 무엇인가.

2013. 3. 12. 19:24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출처: http://cfs14.tistory.com/

 

 

 

 

 인생의 많은 선배들이 요즘 청년들은 생각하는 이 부족하다고 한다.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 중에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인터넷스마트폰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 지식인에게 물어보면 큰 노력 들이지 않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스마트 폰이 대중에게 많이 보급되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의 무선인터넷을 이용해 터치 몇 번으로 원하는 정보를 손 쉽게 얻을 수 있다. 정보의 접근이 쉬워지고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스스로 그 정보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착각 때문에 스스로 어떤 현안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는다. 손에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만약 그 스마트폰이 사라진다면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청년들이 삶의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에도 대처하는 방법은 그리 다르지 않다. 스스로 고민해 볼 생각은 않고, 분별력 있는 멘토에게 결정권을 넘겨버린다. 그러고서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멘토에게 어떠한 문제의 해결책을 얻었다고 하자. 그러다 또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고서 바로 멘토에게 달려가서 정답을 구할 것이다. 왜냐고? 그 방법이 쉽고 편하니까. 이러한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면, 결국엔 생각할 수 없는 바보가 되고 만다.

 

 

 

 각박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멘토가 필요한 존재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멘토의 역할에 대해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멘토는 삶의 정답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점쟁이가 아니란 말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다.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이 시대 청년들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많은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그 정보를 습득해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사고력이다. 따라서, 멘토는 청년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사고하여 역경의 길들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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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 마타타 _ 여행자로서의 시선이 거북하다

2013. 3. 9. 20:14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작가는 오소희다. 동아프리카를 여행한 흔적들을 책으로 엮어냈다. 한 달의 시간동안 그녀와 그의 아들이 낯선 풍경들 속에서  바라본 본 것들은 사실일까? 거짓일까? 정처 없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그 곳을 바라보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감상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진 않았을까.

 

 

 

 내가 아프리카에 가 보지 않고서, 색감이 잘 조화된 사진들이 곁들어진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하진 않았을까. 하지만 난 지금 동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약 1년간 생활했었다. 그곳에서 현지인들의 시선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순 없었지만, 동네 한 주민으로 주위의 환경들이 익숙해 졌었고 그들의 생활환경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생각했다. 허나, 그 익숙함이 아프리카를 신선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떠나보지 않고 여행을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다. 이에 덧붙여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살아보지 않고 어떤 도시의 어떠한 것도 사실화 시키지 말라고. 한 달이란 시간은 아프리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 짧다. 탄자니아는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고 그 엇갈림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짧은 시간동안 보이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 들리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무작정 믿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 의심 없이 마냥 받아들이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솔직히, 책에 대한 감흥이 없다. 책의 첫장을 넘겼을 때, 생겼던 기대감이 점차 사라진다. 구속되지 않은 여행자의 자유와 나태함, 그리고 여유사이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그 심적 상태가 그리 반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 자신의 이야기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 남의 이야기라서 별 흥미가 가지 않는 것일 수도.

 

 

 

 내가 보고, 듣고, 부딪히리라. 내가 직접 느끼지 않고서 무엇을 안다고도, 이해한다고도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 생각한다. 작가의 모든 말이 진실이라 생각지 말길 바란다. 단지 한 개인이 바라본 아주 주관적인 팩트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느끼고 싶으면 직접 떠나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바라보고 느끼고 적어라.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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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Leap Over a Wall)_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노력했던 사람.

2013. 2. 28. 10:47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유진 피터슨 지음 / 이종태 옮김

 

 

 

 

 

 

 

 다윗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전쟁터에 형들에게 안부를 전하러 갑니다. 그곳에서 블레셋이 여호와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을 듣고 화가 납니다. 의분에 막대기와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맨몸으로 전쟁터로 나갑니다. 다윗에게서 거인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당당히 전쟁터로 걸어 나가 물맷돌 하나로 거구 골리앗을 보기 좋게 쓰러뜨립니다. 가히 소설에 나올 만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다윗을 예수의 조상,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설명합니다. 설교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인물로써, 진부하다면 아주 진부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을 거론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아주 치명적 인물입니다.

 

 

 

 

 

 다윗은 목동시절이나 왕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나, 부인 할 수 없는 한 간지 사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하나님 뜻에 순복했다는 것입니다. , 철저히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밧세바를 범하고 나서 나단이 죄를 지적했을 때, 죄를 바로 인정하는 용기가 있었고, 자신의 죄 때문에 아들이 죽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했습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바라며 철저히 금식 기도 했다. 항상 주님의 도우심을 바랐던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두 번이나 살려준 이유도, 사울이 자신의 대적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께 기름 부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대적을 직접 처리하지 않아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맡아 해결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증오보다도 더 중요한 뭔가가 있었다.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하신 일이 사울이 다윗에게 한 어떤 일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다윗은 바로 이것을 인정했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로 선택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좌우되고 움직이기로 선택했던 것이다. 다윗은, 자신에 대한 사울의 증오가 아니라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에 입각하여 기도하고 결단했다."  P180

 

 

 

 

 

 

 

 다윗의 위대함은 사울에 쫓기며 광야를 전전하던 시절에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광야 시절 초반,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척 하고 아둘람 굴로 도망쳤을 때, 환난당한자, 빚진자, 마음에 고통있는자가 다 모였습니다. 그 공동체에서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됩니다. 자신이 사울에 손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음에 상처입는 400명 가량을 품는 지도자로서 면모는 아무나 따라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다윗의 광야 시절를 언급하면서 상황적인 광야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의 한다.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광야에 혼자 좌초되어서 오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지내고 생활하지만 누구도 그 사람의 상황을 도와줄 수 없고, 자신도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의 광야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완전히 문명화된 곳에 살고 있다 하더라고, 갑자기 광야로 내던져지는 때가 있다. 이는 지리적인 광야가 아니라 내가 상황적인 광야라고 부르는 광야다” p 117

 

 

 

 

 

 

 

 저자 유진 피터슨의 예리한 통찰력을 통해 그간 성경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다윗의 진가들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성경을 묵상하면서, “왜 하필 다윗인가?라는 저자의 질문에 대해 각각의 독자가 스스로 답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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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자반 _ 이재철 목사님의 지성을 통해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2013. 2. 27. 22:29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이재철 지음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적어도 3주-4주동안(매주 한번씩 만난다고 하면) 교제를 해야 그 사람의 성격정도는 파악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몇 번 만나보고 그 사람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안다는 것'은 각자 나름대로의 이해일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인격을 사람에게도 주셨습니다. 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인격적인 소통을 통해 그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할 지 고민해야 합니다. 여러가지 질문들과 그에 대한 설명으로 조금씩 알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이가 도대체 누구인가?', '어떻게 날 구원하셨는가?' 등과 같은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서부터 '기도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과 같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들 말입니다


 

 새신자반은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저자 이재철 목사님은 교계에서도 지성적인 분으로 저명하십니다. 그래서 초신자들이 궁금해 할 부분에 대해 논리 정연하면서도 쉽게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책 내용 중에 초신자가 받아들이기엔 모호한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성이란 부분이 하나님 어머니로 이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기도를 설명하면서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봉사함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기신자인 저는 저자의 의도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초신자들에게는 기도에 대해 혼란을 야기 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기도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개인적 교제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 중 가장 좋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공감 되었던 부분은 레위기 말씀을 통해 예배를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인스턴트 예배, 예배의 무대화, 대형화로 인해 예배가 중심은 사라지고 그저 즐기는 분위기로 흘러가면서 예배를 위한 겉치레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너진 예배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이가 예배를 사모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예배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누구를 예배하러 왔고,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는가에 대한 묵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렸던가. 성경에서 아브라함, 이삭 요셉, 야곱의 예배장면들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들은 직접 제단을 쌓고 전심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하나의 쇼가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새신자반'을 읽음으로써, 초신자뿐 아니라 기신자도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책을 통해 이재철 목사님의 지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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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다. 그래서 손길이 필요하다.

2013. 2. 23. 15:08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니면 물건이든지 간에 아름다운 것은 눈을 즐겁게 한다. 아름다운 것에 시선이 가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에 넋 놓고 있어서는 아니 되며, 아름답지 않은 것들에게 시선을 돌릴 줄도 알아야 한다 겉이 아름답다고 해서 속도 아름답다고 장담할 순 없다. 요즘 시대는 더더욱 그렇다. 겉을 까봐야 속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아름다움은 그 자체, 아름다움으로만 보아야한다. 그것이 전부인양, 신봉해서도 절대 믿어서도 아니 된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외형상 아름답지 않다. 또한 다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불완전해 보인다. 늘 소외받기 쉽다. 늘 외로울 수 있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의 사상이 관통하는 이 시대에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다수의 따돌림에, 사회적 무관심으로 더욱 움츠러 들어 있는 이들이 있다. 링컨 대통령이나 마틴 루터킹 목사님처럼, 뚜렷한 개혁의 정신을 가지고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워 불합리한 제도와 법을 바꿔서 소외된 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선사해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허나, 지금은 무리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넋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다.

 

 

 

 하나의 기억이 나를 스친다. 군 복무시절, 한창 추울 때 외박을 신청해 서울구경을 갔었다. 1박 2일의 짧은 서울구경을 마치고 복귀하러 지하철을 타러가는 길에서, 저 구석진 곳에 한명의 아저씨가 웅크려 자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얇은 겉옷가지로 추위를 감당할 수 없어 떨고 있었고, 허기져 보였다. 나는 그 곳을 떠나지 못했다. 그저 응시했다. 그 아저씨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사회에 대해 분노했고, 출처모를 눈물을 흘렸다. 단지, 그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빵과 음료수를 사서 아저씨 머리맡에 두면서 "배고플때 드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아저씨는 말할 기운도 없어보였다. 다시 쭈그려 한참을 바라보다 지하철을 떠났다.

 

 

 

 

 

 

 

 

 

 

 

 지금 나의 자리에서 약자들과 함께 하면 된다. 단지, 한 순간의 '동정'이 아닌, 함께 삶을 살아가는 한 명의 인생 동반자로서 따뜻한 손길이고 싶다. 그 손길 중 하나가 나 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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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_ 성공에 대한 통념을 깨다.

2013. 2. 17. 20:45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말콤 글래드웰 지음 / 노정태 옮김 / 최인철 감수

 

 

 

 

 

 

 

 

 

스티븐 잡스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독선적이며, 외톨이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약을 경험한 적이 있고 대학교를 중퇴한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 태아났다면 문제아로 찍혀서 사회에서 퇴출당했을 것이다. 한국이란 환경에서 스티브 잡스란 자유분방한 인재가 발굴되어 성잘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가 성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부 틀렸다"

 

 

 

 

 

  

 

 흔히, 한 개인의 성공은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한 피나는 노력과 자기계발로 되었다고 간주한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다. 성공에 대한 이러한 통념과 법칙에 반박하며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웃라이더' 책이다. 저자는 말콤 글래드웰이다. 그는 시대를 읽은 탁월한 분석력과 감각으로 21세기 가장 저명한 저널리스트 반열에 올랐다. 그는, 예시에서 드러나듯이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해서 안 된다 말한다. 이외에도 특별한 기회의 획득여부, 시대의 상황, 개인의 노력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야 한 개인의 '성공'이 비로소 완성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을 여러분야에서 분석했다. 스포츠의 경우, 선수선발하는 시기에 따라 어느 특정한 달에 태어난 학생들이 큰 이득을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된다. 캐나다 청소년 하키를 예로 들자면, 1월 1일 기준으로 선수를 헤아리고 기량에 따라 클래스를 짜게 된다. 열살을 기준으로 했을때 1월 2일에 열살이 되는 선수는 그 해 말까지 만으로 열살이 되지 못한 학생과 함께 하키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청소년기에 약 열두달의 기간은 신체와 기량 발달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수명단을 보면 1월생들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2월생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록밴드 비틀스와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 빌게이츠를 통해서 여러가지 요소들이 복학적으로 결합되어야 '성공'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설명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대략 1만시간 이상의 연습시간, 특별한 기회획득, 시대 상황, 집안환경 등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하키선수, 빌게이츠, 비틀스는 자신들의 성공에 대해 "나(우리)는 이 모든 것을 내(우리)힘으로 말했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 유전적 재능을 이어받았고, 여러가지 상황적 조건들이 맞았고, 그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가 그들을 고지를 점령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탁월한 감각을 바탕으로한 뛰어난 분석 결과는 아주 흥미롭다. 책에서 제시하는 모든 이론들이 다 맞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떠한 사실이나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도는 본받아야 마땅하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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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진정성에 대하여.

2013. 2. 16. 15:59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프라이버시

개인의 사생활이나 집안의 사적인 일. 또는 그것을 남에게 간섭받지 않을 권리.

 

  삶을 살아가면서 유익한 정보와 인생의 사건들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블로그의 주된 목적이다. 현재,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보다 서평이나 일반적인 사실에 대한 글들이 많다. 간혹 사적인 사건들을 기록하긴 했지만, 공개를 목적으로 썼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블로그 방문자의 대부분은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독자가 누구냐에 따라 글의 성격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고로, 글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공개를 위한 글로 편집된다. 가령, 어려운 단어는 대중이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단어로 바뀌고, 범접하기 어려운 독특한 가치관은 이해와 접근성이 용이하게 순화된다. 요즘 고민한다.

 

 

인생 각각의 사건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자 했던 목표,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가.

 

 

 글을 씀에 있어 응당히 지켜져야 할 것은 글과 삶의 일치다. 글이 내 삶을 대변하지  못하면, 내뱉어진 글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면, 어떠한 종류의 글이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글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고백하건대, 삶의 대부분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긴 하지만 보여주기 싫은 부분은 의도적으로 가리곤 한다. 흔히, 어떠한 사실을 비틀거나 조작하는 것을 왜곡이라 한다. 더 무서운 왜곡은 사실 자체를 가려버리는 것이다.

 

 

다시 자문한다.

편집된 글로써 드러난 나는, 과연 내가 맞는가.

그렇다면 치부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나의 치부를 드러내야 블로그의 진정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나의 사실로 정의되는 치부라면, 쪽팔리긴 하지만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있다. 내 몸무게를 예로 들 수 있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20살 초반에는 52kg 전후반을 오갔다. 그 시절, 사내로서 자존심이 상당했기에 52kg이라고 정직히 말하지 않았다. 3kg을 더하여 55kg이라 말하곤 했다. 그 순간의 쪽팔림을 면하고자 말이다. 다른사람이 보기에 남자로서 55kg도 마른 것이었지만, 난 그정도는 괜찮다 생각했다. 어쨌든, 사람들앞에서는 당당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거짓을 내뱉고 나서 스스로에겐 부끄러웠고, '어떠한 경우에도 정직해야 한다'는 가치관 앞에서는 부스러졌다. 이중적 모습이 싫었다. 쪽팔림을 면하는 것과 '정직'의 가치관중 과감히 하나는 버리고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스스로 떳떳해지고자 '정직'을 택했다.

 

고백하건대, 현재 내 몸무게는 49.5kg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드러내기 힘든 몇 가지 사실들과 사건들이 있다. 다 드러나야만 진정성 있는 삶을 보여주는 블로그가 되는 것일까. 아직 잘 모르겠다. 그 동안 쌓여만 가던 생각의 편린들을 글로 풀어내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대중을 위한 것이기보다, 오롯이 나를 위한 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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