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복음 앞에

2017. 4. 22. 21:38 신앙/말씀 묵상(默想)






누가복음 14장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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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 시기와 때

2017. 4. 5. 08:12 신앙/말씀 묵상(默想)




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12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I have seen something else under the sun:


The race is not to the swift or the battle to the strong, 

nor does food come to the wise

or wealth to the brilliant 

or favor to the learned;

but time and chance happen to them all. 


Moreover, no one knows when their hour will come:


As fish caught in a cruel net, or birds are taken in a snare, 

so people are trapped by evil times that fall unexpectedly upon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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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장 1~12절 - 신자의 정체성; 형제를 사랑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자,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자

2017. 1. 20. 13:11 신앙/요한일서 묵상

[요한일서 3장 1~12절 - 신자의 정체성; 형제를 사랑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자,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자] 



안녕하세요, Diaspora 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다룰 본문은 요한일서 3장 1~12절입니다.  



1문단(1~3절)


 요한 사도는 서두에서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 받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사랑을 부으셨는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기 때문에,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모르며, 더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1절 하). 앞에서 말했듯이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들의 영향이 미치는 곳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2절 상). 지금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신자는 그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이며, 예수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2절 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을 소망하는 자들은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날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3절). 즉,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신자도 거룩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2문단(4~6절)


 요한 사도는 '죄를 짓는 자는 불법을 행하는 것(4절)'이라고 말합니다.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신자가 죄를 지속적으로 범하는 것이 정당합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5절 상). 그는 아무 죄도 없었습니다(5절 하).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죄를 지고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완전한 의인임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지속적으로 범할 수 없습니다(6절 상). 범죄하는 자는 예수님을 보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6절 하).



 
 

3문단(7~9절)


 신자가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이 맞습니까? 절대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요한 사도는 거짓된 말과 가르침에 미혹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7절 상). 신자는 마땅히 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예수님의 의를 드러내야 합니다(7절 하). 지속적으로 범죄하는 것은 자신이 마귀에게 속하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8절 상).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에 대한 확고한 반대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8절 하). 

 하나님으로터 난 자는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9절 상). 왜냐하면 하나님의 씨(성령, 진리, 말씀으로 번역됨)가 신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9절 하). 



4문단(10~12절)


 그러므로 하나님과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10절). 의를 행하지 않거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습니다(10절). 다시 말하면, 그들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 속하거나 아님 마귀에 속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무슨 죄냐?'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신자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절).

 요한 사도는 가인과 그의 아우,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 마귀의 자녀와 하나님 자녀의 특징을 알려줍니다. 마귀의 자녀의 표상인 가인은 자신의 행위는 악하고 아벨의 행위가 의로웠기 때문에 아벨을 죽였습니다. 얼마나 악합니까? 이 세상에서도 악인은 의인을 핍박합니다. 그저 의롭게 살기 때문에 핍박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인이 있던 시절부터 있었던 일이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요. 신자는 예수님의 의를 덧입었기에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주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범죄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범죄하지 못하게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자녀는 서로 사랑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 본문의 강조점: 반복, 비교 및 대조되는 구절


 본문에서 '~안(속)에 거하다(6, 9절)' 또는 '속한다(8, 10, 12절)'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이를 통해 생각해보면, 2문단과 3문단에서 하나님께 속한자와 마귀에 속한자를 대조해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 속한자는 '의를 행하고(7절)', '범죄하지 아니하고', '형제를 사랑(11절)' 합니다. 마귀에 속한자는 의를 행하지 아니하거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10절). 더욱이, 마귀의 속한자의 표상인 가인은 아우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아우를 죽입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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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2장 15~29절 - 신자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그의 의(뜻)을 행하며 사는 자이다

2017. 1. 19. 13:30 신앙/요한일서 묵상

[요한일서 2장 15~29절 - 신자는 온전히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그의 의(뜻)을 행하며 사는 자이다]








안녕하세요, Diaspora 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다룬 본문은 요한일서 2장 15~29절입니다. 



1문단(15~17절)


 요한 사도는 1절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세상은 사탄이나 마귀가 지배하는 악한 곳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대의 흐름, 정신, 방송매체 등을 다 포함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16절에 설명되어 있듯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습니다(15절 하).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16절 하). 그리고 이 세상과 정욕은 언젠가는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17절).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 문단 요약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는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자입니다. 왜냐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은 순간적이며, 본질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에 머물수 있습니다.  



2문단(18~21절)


 요한 사도는 지금이 마지막 때(18절 상)이며 적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났다(18절 하)고 말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우리(신자)에게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19절 상).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로서 하나님께 속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거룩하신 자(하나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아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아는 자입니다(20절). 요한 사도는 이러한 문맥에서 21절에 다시 한번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이 말은 곧 너희는 진리를 잘 알고 있으니 진리 가운데 거하며 거짓을 잘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 문단요약

마지막 때에 일어난 적그리스도는 거짓된 것을 말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아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진리를 더욱 붙잡아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하십시요.  

 


 
 

3문단(22~25절)


 요한 사도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22절 상)며, 하나님과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22절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이기도 합니다(23절*).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요한은 24절에서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처음부터 들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이야기 합니다. 복음이 온전히 신자 안에 거할 때,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을 온전히 믿을 때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25절)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 문단요약

신자는 처음 들은 것,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 안에 거함으로써 신자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 안에 있어야만 영원한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4문단(26~29절)


 요한 사도는 자신이 앞 문단에서 미혹하는 자들(26절)에 관하여 썼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요한 사도는 본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라고 말합니다. 즉, 너희(신자)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미혹하는 자들에게 속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자에게는 성령님(그의 기름 부음, 27절 중)이 내주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모든 것을 알려주시고, 성령님의 가르침은 참되고 거짓이 없습니다(27절 하).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28절 상). 그래야만 그리스도로 힘입어 담대히 살아갈 수 있으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 앞에 부끄럽지 않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28절 하). 

 신자가 가진 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성취된 의입니다. 즉, 사랑의 절정에서 이루어진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의를 행한다는 것은 지체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9절). 


※ 문단요약

신자는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해야만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습니다. 신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모든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의 가르침은 참되고 거짓이 없습니다. 그의 가르침대로 의를 행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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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2장 1~14절 -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다

2017. 1. 18. 20:27 신앙/요한일서 묵상

[요한일서 2장 1~14절 -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다]





안녕하세요~Dispora 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다룰 본문은 요한일서 2장 1~14절 말씀입니다. 


1문단(1~3절)


 요한 사도는 2장을 쓴 목적이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1절 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죄를 범한 자가 있으면, 그 죄를 담당해주실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짐으로써 온 세상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을 위해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자라면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3절).    



2문단(4~6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노라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거짓말하는 것입니다(4절). 그를 안다는 것은 예수님과 예수님이 한 모든 일을 믿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믿는것입니다. 복음을 아는 자는 죄인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알기에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계명을 크게 두 가지로 말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결국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으로써 신자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드러내게 됩니다(5절 하). 요한은 6절에서 다시 한번 말합니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이 말은 곧,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신 것처럼 너희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3문단(7~11절)


 요한 사도는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7절)"이라고 설명합니다. 위의 문단에서 강조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자 새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신자에게 참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참됩니다(8절). 왜냐면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사랑의 절정을 이루셔서, 신자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둠이 지나가고 빛이 비쳤습니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거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거하는 것(9절)입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빛은 어둠을 물리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빛 가운데 있는 자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어둠에 있다는 것은 반증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 죄가 눈을 가려 자신이 가야 할 곳도 알지 못하게 합니다(11절 하).

  


4문단(12~14절)


 여기서 요한 사도는 "너희 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함 받았다(12절)"고 말합니다. 요한이 교회의 신자들에게 "너희는 어둠에 거하는 자가 아니라 빛 가운데 있는 자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이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단에서는 아비, 청년, 아이들에게 두 번씩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아비와 아이에게는 비슷한 내용을 말합니다. 아비에게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고 있지 않느냐(13절 하)"고 묻고 있고, 아이에게는 "너희가 아버지를 알고 있다(14절 하)"고 말합니다. 태초에 계신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한 아버지도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너희가 빛이신 하나님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빛 가운데 있는 하나님 같이 너희도 빛 가운데 거하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에게는 "너희가 악한 자를 이겼다(13절 하)"고 말합니다. 14절 후반에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기 때문에 흉악한 자를 이겼다고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면서 하나님을 계명을 지키는 삶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즉, 신자는 서로 사랑하는 삶으로 귀결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모든 죄가 사해져서 빛 가운데 거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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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장 1~10절 - 믿음과 신자의 사귐, 그리고 빛이신 하나님.

2017. 1. 18. 15:19 신앙/요한일서 묵상

[요한일서 1장 1~10절 - 믿음과 신자의 사귐, 그리고 빛이신 하나님]






안녕하세요, Diaspora 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묵상할 본문은 요한일서 1장 1∼10절 말씀입니다. 요한일서는 신자의 믿음을 점검하는 성경 중 하나이지요. 본문을 묵상하시면서 각자의 믿음을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1문단(1~2절)


 1절에서 요한사도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생명의 말씀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심으로 사도들은 그를 직접 보고 만질 수 있었습니다(1절 하).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직접 말씀하셨듯이 '생명'이며, 태초부터 계신 영원한 생명입니다(2절 상). 이러한 예수님이 구원사역을 위해서 이 땅에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2절 하).



2문단(3~4절)


 요한은 여기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 즉 사도들이 보고 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합니다(3절 상).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입니다. 그와 그가 하신 모든 일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하는 목적은 너희(믿는자)로 우리(사도)와 사귐이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3절 하).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한 몸으로 엮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의 사귐은 당연한 결과이자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믿는 자들간의 사귐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더욱 충만해지는 것입니다(3절 하). 이와 더불어 요한은 본서를 작성한 목적이 우리(믿는 자들)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 위함(4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문단(5~7절)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소식은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것(5절 하)'입니다. 만약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둠에 행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서 진리에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6절). 여기서 어둠에 행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자는 죄를 지속적으로 범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으며, 빛이 비치면 어둠은 사라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것처럼 믿는 자가 빛 가운데 행하면 믿는 자들간에 서로 사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믿는 자는 죄를 범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날마다 깨끗하게 씻겨질 수 있습니다(7절 하). 



4문단(8~10절)


 이 문단에서 요한 사도는 '우리가 죄가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죄가 없다고 하는 자들은 구원받음으로 현재 자신이 완전무결한 상태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더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신자라고 하더라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신자는 새 마음과 새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연약한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신자는 절대 죄를 즐거워하며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범했을때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9절).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죄를 범하면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는 완악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이와 같이 완악한 자들에게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며 그들 속에 진리가 거하지 않는다(10절)'라고 반박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믿는 자)가 빛(진리) 가운데 거할지라도 완전하게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미워하고 혐오하지만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행하는 모든 것이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참된 신자는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지하여 나아가는 자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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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장 - 남의 유익을 구하라

2017. 1. 4. 13:59 신앙/말씀 묵상(默想)





고린도전서 10장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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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장 1~11절 - 신자, 곧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

2016. 12. 20. 15:25 신앙/로마서 묵상

로마서 6장 1~11절 - 신자, 곧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

 

 

안녕하세요, sharing 입니다.

 

이번에 묵상할 본문은 로마서 6장 1~11절 말씁니다~.

 

 

1문단(1~4절): 연합의 의의


- 5장의 마지막 부분에 율법으로 죄가 더하게 되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으로 죄가 더하게 되는 이유는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는 동시에 스스로 율법을 다 지켜 의인이 될 수 없음을 직시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인됨을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6장 초반에서 바울은 '은혜를 더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당연히 그럴 수 없습니다(2절 상). 왜냐하면 신자는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2절 하). 신자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신자가 그의 죽으심에 동참하여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4절 상). 이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살리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에 우리(신자)도 새생명으로 가운데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4절 하)

 

*교회에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에게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 

 

 

2문단(5~7절): 연합으로 인해 죄에 대한 죽은 자


- 2문단에서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5절에서 "만일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리라"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다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 '연합으로 인한 죄에 대한 죽음'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못박힘으로써 우리가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닙니다. 하지만 이 구절이 신자가 완전히 죄를 짓지 않는 다는 것은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 존재였지만,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7절에서 신자가 더이상 죄의 종이 아님을 증명하는 근거로 '칭의'를 이야기합니다. 죄인은 절대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켜 행할때에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칭함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인정받았습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연합함으로써 하나님은 예수님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3문단(8~11절): 연합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 


- 그리스도의 연합은 그의 죽음과 부활에 모두 다 참여하는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살것입니다(8절)왜냐면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9절 상).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죄를 지고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심(부활생명)으로써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의인됨이 하나님 앞에서 증명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는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었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자로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11절).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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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 12~21절 -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2016. 12. 17. 18:28 신앙/로마서 묵상



로마서 5장 12~21절 -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안녕하세요, sharing 입니다. 


이번에 묵상할 본문은 마서 5장 12~21절입니다. 


1문단(12~14): 아담은 오실자의 모형이라 


- 한 사람(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12절 상). 로마서 6장 23절에 의하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즉, 죄로 인한 타락의 결과로 인해 아담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죄 아래 놓이게 되었고, 죄의 결과로 모든 사람은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12절 하)한 사람의 행위로 인한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기 전에 세상에는 죄에 대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를 죄인이라고 규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죽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사람은 죄의 지배 아래 놓여있으며, 그 결과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죄는 아담의 범죄에서 시작된 것이고, 흔히 말하는 '원죄'입니다. 따라서 아담은 죄인의 대표이자 오실 자의 모형입니다(14절).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하는 것은 아담의 범죄가 모든 사람을 죄의 지배 아래 놓이게 한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가 신자에게 의로 여겨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13절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에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절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생략) 

 

2문단(15~1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와 의의 선물


- 2문단에서는 인류를 대표하는 두 사람의 행위로 인한 결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습니다(15절 상). 그 죄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이르기 위한 첫 시도였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사람에게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타락은 인간의 악한 행위로 인한 결과이지만, 구원은 오직 하나님은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에 있어서 사람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라는 것이 본문에서 강조되는 것이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15절 하)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미쳤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담의 범죄는 심판으로 정죄 당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믿는 신자는 의롭다고 칭함 받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이 두 사람으로 인한 결과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어찌 죽음의 처참함과 생명의 존귀함을 비교하겠습니까!  


 
 

3문단(18~21): 구원의 원리(대표성의 원리)


- 3문단은 순종의 관점에서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였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정죄**받습니다(19절 상). 그러나 다른 한 사람(예수님)은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라 칭함받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19절 하). 

 20절에서 갑자기 율법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제 생각에는 율법의 기능과 한계를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설명하기 위해서 율법을 언급하는 것 같습니다.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는(율법의 기능) 동시에 스스로 율법을 다 지킴으로써 의인이 될 수 없음을 직시합니다(율법의 한계). 왜냐면 선과 악의 기준이 율법이 되며, 자신을 율법의 기준***에 비추어보면 명백한 죄인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율법이 들어옴으로써 율법이 정한 기준이 없던 영역에서도 죄를 알게 됩니다. 러므로 "율법이 들어옴으로 인해 죄를 더하게 한다(20절)"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죄인 됨과 무력함을 더 크게 느낄 것입니다. 죄를 더 크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가 더 클 수밖에 없습니

 이 본문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 대조함으로써 두 사람이 인류의 대표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아담으로 인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의 결과인 사망이 세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신자는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21절). 공통점은 두 사람으로 인해 인류가 어떠한 결과를 나타났다는 것이며, 차이점은 그 결과가 전혀 다른 죽음과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즉, 아담은 많은 사람을 죽게 한자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을 살린 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 앞에 반드시 질문해야 됩니다. 죽음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에 거할 것인가.   

 

**정죄(): 죄가 있다고 공시적으로 선언함

***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함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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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 1~11절 - 믿음으로 신자가 누리는 복(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니라!)

2016. 12. 15. 17:04 신앙/로마서 묵상


로마서 5장 1~11절 - 믿음으로 신자가 누리는 복






안녕하세요, sharing 입니다. 


이번에 묵상할 본문은 로마서 5장 1~11절입니다. 

 

 

1문단(1~4절): 믿음으로 신자가 누리는 복


- 신자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1절 상). 믿는 대상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며, 믿는 내용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감으로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1절 하). 예수 그리스도의 피 외에는 구원받을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으며(2절 상),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2절 하). 그렇기 때문에 환난 중에도 즐겁게 인내할 수 있으며, 더욱 견고해져서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향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신자가 누리는 복들입니다.   

 

 

2문단(5~8절): 믿음으로 인한 소망의 근거 1

 

- 소망이 우리에게 확실한 근거가 되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기 때문입니다(5절). 신자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기 위해서는 먼저 신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면서까지 보여주신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되는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명령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6절), 아직 죄인일 때에(8절) 기꺼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3문단(9~11절): 믿음으로 인한 소망의 근거 2


-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9절 상). 그의 피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님께서 다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피를 믿을 때에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9절 하). 즉,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되었을 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피에 의지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자의 구원은 그의 부활에서도 증명됩니다(10절). 따라서 신자는 거저 받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아니, 마땅히 즐거워해야 합니다 . 이것이야말로 신자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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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13~25절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2

2016. 12. 14. 23:34 신앙/로마서 묵상


로마서 4장 13~25절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2






안녕하세요, sharing 입니다. 


이번에 묵상할 본문은 로마서 4장 13~25절 말씀입니다. 


1문단(13~17): 아브라함은 어떻게 의롭다 여겨졌는가?


- 하나님의 언약(약속)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성취할 수 있다(13절). 만약 율법을 따라 사는 자들에 의해 언약이 이루어진다면,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어지며 언약은 파기됩니다(14절). 다시 설명하자면 율법의 행위(인간의 노력) 언약이 이루어진다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전적인 은혜)가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것이 오직 은혜이기 위해서는 믿음으로만 약속을 받아야합니다(16절 상). 그렇게함으로써 아브라함이 율법을 따라 사는 자들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의 조상이 될 수 있습니다(16절 하).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17절).     


 
 

2문단(18~22절): 어떠한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을 견지하였는가? 


-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고 믿었습니다. 바랄 수 없는 상황이라 함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몸이 죽은 것 같으며, 또한 사라의 태(胎)도 죽은 것 같음(19절 상)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해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고(19절 하), 믿음이 없어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지도 않았다(20절 상). 오히려 믿음이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20절 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 하나님의 아브라함의 견고한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22절).   


3문단(23~24절):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진 것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진 것이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23절). 이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지는 모든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24절 상).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24절 하).  또한 예수가 죽은 이유가 우리의 죄 때문이며, 예수가 다시 살아난 것도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함임을 믿어야 합니다(25절).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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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1~12절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1(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떻게 의로 여겨졌는가?)

2016. 12. 14. 19:46 신앙/로마서 묵상


로마서 4장 1~12절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1






안녕하세요, sharing 입니다. 


이번에 묵상할 본문은 로마서 4장 1~12절 말씀입니다~ 이 본문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떻게 의로 여겨졌는지에 대한 논리를 설명합니다. 


1문단(1~4절):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아브라함 


-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그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실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온전한 믿음을 그의 의로 여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브라함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믿음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자발적으로 믿었다'고 행위를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하나님)를 믿는 자에게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4절)고 설명합니다. 


 
 

2문단(6~8절): 믿음은 값없는 은혜다


- 바울은 믿음을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6절)이라고 설명합니다. 왜냐면 믿음에 있어서 우리가 한 것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구약의 시편을 인용하여 설명함으로써 은혜로 받는 믿음에 대해 부연 설명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주신 유일한 구원의 통로입니다. 


3문단(9~12절): 믿는 자의 조상, 아브라함 


- 바울은 여기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진 것이 행위에 근거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을 때(창 15장)는 할례(창 17장)를 받기 전입니다. 할례는 언약의 증표일 뿐 하나님의 의를 받는 근거가 아닙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할례의 표를 받는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함"(11절)이라고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할례받은 자(유대인)와 무할례시에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이방인)의 조상이 다 되는 것입니다. 즉, 육체적 할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으며, 아브라함은 오직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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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장 19~31절 -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

2016. 12. 14. 18:24 신앙/로마서 묵상

로마서 3장 19~31절 -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




안녕하세요, sharing 입니다. 


이번에 묵상할 본문은 로마서 3장 19~31절 말씀입니다~


1문단(19~20): 율법의 기능과 한계


- 모든 인간들은 율법 아래에 있습니다. 인간은 율법을 통해 선과 악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즉,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20절 하).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19절 하)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을 다 지킨 자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고, 지키지 못한 자는 죄인으로 그에 보응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합니다(20절 상).



 
 

2문단(21~26절): 하나님의 한 의


- 바울은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21절)'가 나타났다고 설명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율법 아래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23절).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값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속량)하여 죽게하게 하심으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됩니다(24절). 믿는 자는 반드시 그의 피를 믿어야 합니다(25절 상).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화목제물을 받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 한번의 피의 제사를 통한 완벽한 구원사역을 위해서 십자가 이전에 지은 죄에 대해 길이 참으신것입니다(25절 하). 하나님은 죄를 대신 받을 화목제물로 예수님을 세우셔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셨습니다(25절 하).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3문단(27~31절):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 그러므로 신자가 믿는 것은 오직 은혜이므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신자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을 때에 가능합니다(28절). 그러므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습니다(29, 30절). 율법 아래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인해 죄를 깨달을 수밖에 없지만,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에게 율법을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나침반입니다(31절).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분명히 알고,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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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장 1~18절 -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2016. 12. 14. 10:10 신앙/로마서 묵상




안녕하세요, sharing입니다. 


이번에 묵상할 본문은 로마서 3장 1~18절입니다. 


1문단(1~4절)


-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유대인의 할례와 율법적인 행위가 의미가 없음을 알려줬습니다. 그런데 3장에서 바울은 다시 유대인의 나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첫째가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것 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언약, 즉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에 대한 신실함을 언급합니다. 제 생각에는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너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에 대해 너희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 반문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2문단(5~8절): 죄가 클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크다!? 


- 로마 교회의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의 복음에 대해 반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택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율법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복음에 따르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전혀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도 받지 않고 율법도 지키지 않는데 그들이 구원을 받는다면, 불의할수록 하나님의 의가 더 크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냐(5절)며 반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적인 행위때문에 이방인보다 더 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7절)"라고 하거나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8절)" 라고 바울을 비방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들이 정죄받아 마땅하다고 일갈했습니다. 


 
 

3문단(9~18절):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 바울은 이방인보다 자신들이 더 의롭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설명합니다. 타락 이후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 아래 묶여 죄의 종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죄악 가운데 거하며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무익하며,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고(12절) 설명하며, 시편 말씀(5:9*; 140:3**)인용합니다. 더욱이 죄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18절)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이 싫어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본성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죄 아래 유대인과 이방인은 모두 다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타락 이후 본질적으로 죄성을 지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는 존재라고 논리정연하게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유대인들에게 우월함에서 비롯된 율법적인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3장 후반절에서 율법 외에 구원을 받는 유일한 방법을 설명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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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17~29절 - 진정한 할례의 의미

2016. 12. 13. 21:16 신앙/로마서 묵상




안녕하세요, sharing입니다. 


이번에 묵상할 본문은 로마서 2장 17~29절 말씀입니다. 


1문단(17~24절): 유대인의 모순된 신앙생활 


- 유대인들은 율법에 있는 지식들을 공부하고 탐구함으로써, 그에 대한 이해가 깊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고 선악을 분별하여 어리석은 자들의 교사라고 스스로 믿고 있었습니다(20절).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이 가르치고 말하는대로 살지 못했습니다(21, 22절). 그들이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했지만(17절), 삶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것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문단(25~29절): 진정한 할례의 의미 


- 대인들은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는 남성 성기의 표피를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살겠다는 약속의 증거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일원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약속한 증거를 몸에 지니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이후 구약시대의 육체적 할례는 더이상 의미가 없으며 구원에 대한 증거도 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율법의 준수 여부에 따라 구원 여부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이며 영에 있고(29절), 그에 대한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여 성령님이 마음안에 거함으로써 옛사람에서 새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진정한 할례)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는 이제 없어졌습니다. 결국, 오직 성령님이 그안에 존재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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