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e it your way

2020. 4. 19. 16:37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구속받는 것을 싫어한다.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고 설명해야 되나. 신앙심이 두터워지기 시작하면서 세워놓은 삶은 목표와 기준치는 꽤 높았다. 신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측면에서 꽤 높은 기준을 세웠다. 목표 지향적인 인간인지라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해진 목표를 향해서 나아간다. 그러하다 보니 '높은 신앙심을 가진 좋은 사람'이라는 틀에 나 자신을 구겨 넣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나를 옥죈 탓도 있으리라.

 모든 것에 이유는 있을 수 있다만, 이유를 명확하게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구속받으면 되레 틀을 부수고 나오려는 성향은 권위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가지고 있던 자유분방함 때문이지 잘 분간이 되진 않는다. 삶을 되돌아보건대 기본적으로 개인으로서의 자유는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자유분방하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 자유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삶의 주체로서의 자유다. 아마도, 개인의 선택과, 그에 따른 자유와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주의가 내게 미친 영향이지 않을까, 잡념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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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내게 참 고마운 존재다

2020. 4. 8. 23:0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누나는 내게 참 고마운 존재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분명 부모님의 보살핌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누나의 든든한 후원과 보살핌이 있었다. 삶에서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다른 사람보다 우리 누나가 먼저 떠오른다. 늘 책을 붙들고 있는 누나를 따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누나의 노트에 적힌 시를 보면서 시를 읽는 재미를 깨달았다. 누나가 쓴 수려한 글을 보고 글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어줍잖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영어에 재미를 붙이게 된 것도 누나가 다니던 영어 학원을 소개해줬기 때문이다. 대학교 신문사도 누나의 권유로 시작했고, 선교단체로 누나가 하라고 해서 잠시 참석했던 것이다. 삶의 여정을 되새겨보면 누나가 했던 것을 거의 그대로 따라 하면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새삼 느끼는 건 누나가 내게 끼친 영향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늦은 나이까지 맘 놓고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누나가 사회인으로서 일찍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우리집안 형편상 누나의 학비까지 마련해야하는 상황이었다면 대학원 공부는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누나는 좋지 않는 집안 형편에도 바르게 잘 컸다. 내가 사고를 쳐서 집안을 시끄럽게 한 적은 많지만 누나가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일은 없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도 공부를 곧 잘했고, 아니, 공부를 엄청 잘했고, 다른 방면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때가 많았다. 음악, 미술, 운동,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학창 시절부터 여러 방면에서 뛰어났고 대학생이 되어 직장인이 될 때까지 한번도 어그러지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재다능한 누나를 시기하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어렸을 때는 무엇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별로 없었던 터라 누나는 나와 다른 유형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원래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이지, 전혀 다른 수준의 사람에게는 그런 감정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누나는 내가 비교할 대상 자체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우리 누나'와 같은 누나를 보지 못했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허튼소리가 아니다. 정말 우리 누나처럼 동생을 잘 챙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세월이 지나 누나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누나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줄었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져서 왕래가 더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누나의 존재가 내게 미치는 영향은 아직도 유효하다. 누나한테 받은 것이 많은데 아직 제대로 해준 게 별로 없다. 기회가 될때마다 조금씩 더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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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2020. 4. 6. 23:2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한번 휘청거리고 나서 제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담담해지는 시간이 있다. 지나온 시간에 대해 누구도, 어떤 환경도 탓하지 않고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단단해지는 기분이기도 하다. 정말 단단해졌는지는 다시 어려운 일을 만나봐야 알겠지만, 이번 일은 잘 거쳐왔다는 생각이 크다. 아팠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지나온 시간을 누가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나 자신이 잘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정말 그뿐이었다. 지난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넘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야 하고 신념을 흩트리지는 말아야 한다, 고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그게, 나다운 모습이란 걸 새삼 다시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Good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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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2020. 3. 11. 22:08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지독한 어려움을 겪고 나면 웬만한 어려움은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다.

 

 지난 며칠간 골머리를 앓게 했던 일이 하나 있었다. 시간을 내어 생각하고 정리하면 끝나는 일이긴 했는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맘이 내키지 않았다. 시작하면 나름대로 세워둔 기준을 맞추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내심 싫었다. 깐깐한 나를 알지 않은가. 어떤 면에서는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는 그 고단함 말이다.

 

 마냥 내버려 둘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자의 반 타의 반 일을 시작했고 일이 잘 진척되지 않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오면서 문득 대학원 시절이 떠올랐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발발 동동 구르다가 새벽 공기를 맞으며 기숙사로 힘없이 되돌아갔던 무의미한 날들이 있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 인생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했던, 그 고달팠던 연구원 시절에 비하면 지금 상황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고 일이 같잖아 보이기도 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지나왔던 고단한 시절에 비하면 지금 이따위 어려움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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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2020. 2. 27. 20:18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생각한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버릴 생각만 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 박준, <당신이라는 세상> 중에서 -

 

 

 신천지 교인들이 경북 지방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아래 지방에 살고 있는 동생의 안부가 궁금했다. 걱정 담긴 카톡 문자를 보냈는데 맥락 없는 답장이 되돌아왔다. "형 신천지 아니야?"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함께 지내온 세월의 무게만큼 나를 알아줄 거라는 기대는 애당초 없었다. 다만, 우리의 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밑받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니는 교회를 신천지라고 생각한다면, 뭐, 장난이라고 해도, 그 녀석에 대한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다. 답장에 대한 반감이 컸던 탓에 신천지가 맞냐는 질문에 그러하다고 대답했고, 녀석은 재차 추궁했다. "신천지 어디 지파야?" 나는 말해줄 수 없다고 답장을 했고, 녀석은 그러면 이제 차단하겠다며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어이없는 일이었다. 멍하게 앉아 있었다. 장난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이대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관계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 지속되는 법이다. 녀석에 대한 이해 기반이 흔들렸고, '우리 사이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는가'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떠나는 사람을 굳이 잡지 않는다. 더욱이 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함께 길을 갈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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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2019. 12. 25. 23:3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굳게 닫고 있었는데, 왜 늦게 왔냐는 날 선 질문에 송곳 같은 대답이 나와버렸다. 당신이 무엇이관대 나의 삶에 관여하려고 하는가. 개인주의의 끝단에서 타인의 개입이 불쾌했다. 나의 삶에 대해 당신은 알 권리가 없다는 전제하에 내뱉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발언이었다. 타인의 행복과 불행이 나의 삶을 침범하지 못하는 그 지점에서 타인을 멍하니 바라본다. 타자와 나의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각자 삶에 대한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은 온전히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는 뿌리 깊게 박힌 개인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다시 묻게 된다. 

 

 

"우리...  "

 

타인과 돈독한 관계임을 드러낼때 '우리'라는 단어로 친밀함을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누구나 각자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버린 자매에게 '우리'란 단어를 이름 앞에 붙여 불렀다. 그 '단어'는 좀 삼가달라는 말과 함께 자매의 표정은 꽤 낯설고 차가웠다.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의례적인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 의례적으로 미안하다는 것은 단어의 부적절성은 이해하겠으나 당신의 태도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언어이다. 당신과의 관계에서 한발 뒤로 물러서겠다는 결단이기도 하다. 물러선 지점에서 완전히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물러난 지점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인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쓸데 없는 생각만 자꾸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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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각자의 입장이 있다

2019. 11. 23. 00:43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당신은 어찌해서 나한테 그러시는지요."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나와 같은 행동으로 일관하는 당신을 보면서, 당신은 그러지 않아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과 함께 화가 조금씩 치밀어 올랐다. 복잡한 감정 사이에서 어쩔줄 몰라했다. 화가 났고 말이 나오지 않았으며 생각은 쳇바퀴처럼 돌고 또 돌아 한 곳을 맴돌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녁 끼니를 챙겨먹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나의 잘못이기도 했다. 어리석은 짐승이여.  

 

 

"나를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누구나 각자의 입장이 있다. 입장의 온도차로 인해 가끔 오해, 아니 다름을 확인하고 뒤로 물러서기도 한다. 물러선 지점에서 무엇보다 두려운 건 나 자신이다. 10년지기 친구를 처음 만난 사람보다 더 못하게 대하며 모질게 밀어내려고 했던 나를 기억한다. 차갑다못해 얼어버린 냉랭한 가슴으로 일관했던 나를 기억한다. 다시 차가워진 모습으로 이번에도 사랑했던 이들을 등질까봐 내심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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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인가, 아니면 진보인가

2019. 10. 5. 10:25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불명확한 것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명확한 기준과 정해진 규칙이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며, 변화보다는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한다. 법과 전통을 고수한다는 측면에서 나는 보수적이다. 그러나 기득권의 뻔뻔함과 무례함을 싫어하며, 기득권의 논리가 부당하다면 모든 절차에 이해와 설명을 요구한다. 해당 지위에 따른 권위는 인정하나, 그 권위로부터 행사되는 부당한 권력은 단호히 거부한다. 납득되지 않는 권위와 부당한 권력과 상당히 예민하다는 측면에서 나는 진보적이다. 결국, 말이 통하는 합리적 보수를 선호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위계질서 체계가 확립된 투명한 진보를 지향한다. 나는 뚜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20대 초반부터 중도를 자처했다. 그러한데, 지금 나의 말과 행동을 보자면 과연 정치적 성향에서 중도에 있는가, 라는 질문을 다시 해볼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 보수인가, 아니면 진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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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편들(2019년 8월)

2019. 8. 11. 21:11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1 실수에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매사에 실수가 많아진 것일까, 아니면 실수에 다시 민감해진 것일까. 며칠 전부터 말과 행동의 실수를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실수하고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넘기면 가장 좋다만, 실수하고 나서 스스로 말과 행동을 규제하려는 시도가 나의 정서에 좋은 것인지 묻게 된다. 단, 나의 실수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다면 당연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늘의 실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 반성하고 고칠 필요가 있긴 하다. 성격상 사람과의 관계의 깊이가 극단을 치닫는다. 친하거나 아님 안 친하거나. 친한 사람을 골려주려고 장난으로 존댓말을 한 것이 실수의 발단이었다. 내게 있어 장난은 소통의 수단이긴 하지만, 장난의 정도가 지나치면 피차 곤란하다. 여러 번의 경험을 알고 있지만 요즘 정신을 놓고 살았던지라 무디게 반응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장난으로 시작된 말의 실수, 어차피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되돌릴 수 없기에 더 찝찝했고, 아침부터 계속 마음에 쓰였다. 

 

 

#2 쿨하게, 찌질하게.

엎어진 물이 아니었다. 외부의 약한 충격으로 조금 흔들렸을뿐이다. 요즘 말대로 '쿨'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간혹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있단 말이다. 어떤 행동과 말에 신경이 쓰인다거나 그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한다거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현재 시점으로는 상황 종료라고 하는 것이 맞을게다. 깔끔하게 미련을 버리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하다. 하나님은 내게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분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3 Never Do That Again!

지난날의 어두운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좋다. 감정을 정직하게 표출하는 것은 좋지만, 침울한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켜 주위 분위기를 경직시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답이 없는 질문을 생각하지 말 것. 둘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되 문제의 모든 책임을 본인에게 돌리지 말 것. 셋째,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개입과 섭리를 인정할 것. 나는 분명 약점이 있다. 약점을 인정하는 것은 좋지만 취약한 환경에 내 약점을 노출시킬 필요는 없다. 모든 상황에 잘 대처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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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더 내딛습니다

2019. 8. 5. 23:59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따로 시간을 내어 교회 지체를 만나러 가기는 오래만이었다. 뙤약볕 탓에 등줄기에 땀이 자주 흘렀고 숨 막히는 더위를 피해 그늘로 걸어 다녔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초행길이라 자주 길을 헤맸고 멍하니 지도를 들여다보곤 했다.  

 

지인 부부를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일상의 수다를 떠는, 다른 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의 연속이었다. 2살 배기 아이의 징징거림도 낯설지 않았다. 자주 일상의 특별함을 잊어버린다. 일상의 기억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진다면 삶은 충분히 더 아름다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함께하기에, 더 좋은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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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m down!

2019. 7. 29. 23:3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그건 아니죠"

 

불쑥 치고 들어갔다. 굳이 과장님의 말을 자를 필요까진 없었다. 몇 번의 말을 더 내뱉고 나서 아차 싶었다. 너무 진지하게 생각했던 탓일까, 꽤 날카로워졌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토론의 기본이거늘, 기본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많은 언어를 낭비했다. 아니, 언어의 낭비라기보다 날 선 언어의 향연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게다.

 

"Calm down!"

 

비판적인 시각과 날카로운 지적질. 오랜만에 마주한 본연의 내 모습에 새삼 놀랐다. '아, 나 이런 사람이었지.' 놀라기도 했지만, 모든 대화가 끝난 후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쓸데없이 날카로워진 내 모습이 마냥 웃겼다. 한동안 장난만 치던 삶에 예기치 못했던 날카로움은 일상의 작은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작은 파장이 참된 나를 찾아가는 좋은 계기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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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살, 인생에 대하여

2019. 3. 10. 22:01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35살, 인생에 대하여

 

 

 

 

20대 후반, 아프리카에서 전문인 선교사로 사역을 하겠다는 인생 계획을 세웠다. 20대 후반부터 전문인 선교사 파송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서 35살에는 선교사로 나의 삶을 헌신하겠다는 큰 포부(?)을 가지고 있었다.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몇 가지 질문들이 생긴다. 나는 왜 그런 결심을 하고 선교사의 꿈을 꾸었을까? 그 마음의 중심이 무엇이었으며, 꿈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과연 누구를 위한 꿈이었는가? 나 아님 하나님?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1절 후반~4절

 

 

나는 현재 35살이고, 경기도 소재 공기업에 취업해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인생 계획과는 무관한 삶이다. 여유와 나태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지독한 개인주의에 빠져산다. '당신은 나와 다르다'는 명제를 자명한 진리로 믿으며 타인의 삶에 개입하기를 극도로 꺼린다. 결국 내가 원하던 것을 얻고 난 후에 신앙의 방향을 잃었다. 무엇을 위한 열심이었는가...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은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눅 17 : 10

 

 

아프리카에서 1년동안 지낼 때 '무익한 종'이 되길 원했다. 맡겨진 일이 어떠하든 마땅히 감당해야 할 종의 모습으로 묵묵히 일만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을 원했던 것 같다. 제2 언어의 진보, 전문 선교사로서의 경력, 외국 경험... 불순한 동기로 시작된 선교사의 삶. 결국 1년만에 무너졌다.

 

1년의 선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동안 방황했고, 다시 삶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거쳐 다시 목표를 잡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생활도 만만치 않았고, 마지막 학기에는 하나님의 침묵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며 반문했고, 인생은 제 힘으로 발버둥쳐야 한다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결론에 이른다. 꾸역꾸역 졸업했지만, 암흑 같았던 취업 준비 기간들. 하나님을 찾기는 했지만, 그저 하소연 하기위한 대상이 필요했다. 자기연민에 빠진 수많은 날들.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지나간 삶에서 하나님은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그저 하나의 수단이었을까... 

 

과거에 매이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자리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보기 위함이다. 하나님 섭리의 측면에서 나는 왜 여기 있는지, 하나님은 지금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작년 한 번의 큰 위기에 봉착했고,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궤도를 이탈할 뻔 했는데 다행히 하나님은 한 번 더 내게 기회를 허락하셨다.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살아보니 나름 일리있는 일다. 그래서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남은 인생을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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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목표 설정

2019. 2. 7. 10:27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2019년 목표 설정]

 

 

 

 

나는 목표지향적 인간이라 매번 계획을 세워야한다. 으하하하

 


1. 체중 증가

년 6월까지 58kg(2월 : 55, 3월 56, 4월 57, 5월 58)

- 주 4회 운동(월, 화, 목, 토) 

*현재기준(2019.02.07.) 54kg

 

2. 여자친구 만들기

소개팅 분기별 1회 +@

 

3. 블로그 운영

일 방문자 500명

- 포스팅 월 4회(1주 1포스팅 실천) 

 

4. 저축

목표 금액 : 900만원/연(75만원/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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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흔적 -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2019. 1. 14. 14:07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 http://www.dotomari.com/618

 

 

어제 지인 부부를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들의 근본적인 연결 고리는 기독교이었다. 만남의 시작은 그랬다. 그런데 어제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대부분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다루는 주제이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주제의 흐름을 바꾸고 싶었지만, 결국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의 관심사가 나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기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아니 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신자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관한 모든 행위를 그만두고 신자로서만 살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살 용기도 없다. 집도 돈도 다 포기하고 예수님만 따를 용기가 없다.

 

신자는 분명히 자신만을 위해 사는 존재는 아니다. 자신의 삶의 규모를 정하고 삶의 올바른 방향성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삶를 위해 100의 100을 다 쓰는 것은 불신자와 다를바 없는 삶이다.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되돌아보고 있다. 최근에는 여행준비에 정신을 뺏겨 다른 것에 신경쓰지 못했고, 그전에는 또 다른 것들로 인해 정신이 팔려 있었다. 대부분이 다 나를 위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근데 여기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방향인가"란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이분법적인 사고이다. A가 아니면 B라는 논리 구조로 생각하게 되면 결국 또 율법적인 행위의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성경에 근거하되,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 타당한 근거들을 마련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사고하고 올바른 방향성을 생각하는 것이 옳다. 다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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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nothing

2018. 6. 30. 15:44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생각을 거듭할수록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아무 의미 없다'


Nothing, nothing, nothing. 



그래, 정말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다. 웃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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