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반역이다.

2012. 7. 2. 14:44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프랑스의 문학 사회학자 로베스 에스카르피는 번역은 반역이다라고 말했다. 한 언어로 표현된 글이 다른 언어로 제대로 번역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나타내는 말이다. 번역가가 원문의 모든 단어를 직역한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번역했다고 할 수 없다. 원천 언어[각주:1]를 목표 언어[각주:2]로 바꾸었을 뿐 원문 저자의 의도와 생각이 제대로 번역됐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완벽한 번역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번역가가 직역에만 너무 집중하게 되면 원문 저자의 의도와 표현방법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독일 언어학자 훔볼트는 원문에 충실하려고 하면 할수록 궁극적으로 원문에서 점점 벗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번역본에서 원문 저자의 의도와 중심사상이 독자에게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되는가’ 이다.

 원천언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언어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자자체가 전부가 아니다. 한 언어는 한 나라의 문화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를 옮기는 일이다.

“Man does not live by bread alone"는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bread’라는 단어는 개역개정판에서는 으로,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모세나 예수그리스도 살았던 지역에서는 'bread'는 그들의 주식이었다. 그러므로 이 ‘bread’를 단지 이나 으로 번역하게 되면 원문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렇듯 번역가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의미전달에 실패하게 된다. 좋은 번역을 위해서는 원천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문화적 요소들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언어마다 각각의 문법이 있다. 번역할 때는 목표 언어의 문법을 적용해야 한다. 가령 한국어에서는 상황에 따라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격에 따라 동사 형태가 달라지는 라틴어 계열의 언어를 제외하고는 주어가 생략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I don’t think that it will rain tomorrow”의 문장을 번역하면, “내일은 비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해로 번역해 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국어에서는 라는 주어를 잘 생략하기 때문이다.

 번역본은 번역가가 다른 언어로 해석한 하나의 글이다. 번역가가 원문의 틀을 벗어나 번역해서는 안 되지만, 허용되는 일정한 틀 안에서 쉽게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렵게 번역해서 독자들의 가독성을 떨어뜨린다면, 좋은 번역본이라고 할 수 없다. 불필요한 수식어 사용을 자제하고, 적절한 접속어를 사용해서 문장 간 연결이 자연스럽도록 해야 한다. 글을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번역가가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글 쓰는 실력도 밑바탕이 돼야 한다.

 

 번역가는 원문의 저자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언어의 밑바탕에 깔린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뛰어난 글 실력으로 번역해도, 번역본이 원문의 핵심을 잃어버렸다면 번역본으로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번역가가 원문 저자의 의도를 고스란히 번역본에 담는다면, 번역본의 독자도 원문의 독자가 누리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김욱동(2007), 번역인가 반역인가, 문학수첩

 

2. 이종인(2009), 번역은 글쓰기다, 즐거운 상상

 

 

 

 

  1. 원문의 언어 [본문으로]
  2. 번역본의 언어 [본문으로]
반응형

Classic. MOZART vs BEETHOVEN

2012. 6. 23. 23:39 삶을 살아내다

 기말고사 시작하기 일주일 전, 시험이 끝나면 스스로에게 선물 하나 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2년만에 다시 돌아와, 혼자 아둥바둥거리며 한 학기를 잘 견뎌준 나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고민끝에 공연이나 전시회를 가기로 결정했다. 기왕에 가는거, 돈을 조금 더 투자해서 품격있는 공연이나 전시로 가고 싶었다.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인데, 돈 따위에 절절매서 되겠는가. 과감히 투자하기로 했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검색했다. 그러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클래식 공연을 발견했다. 공연날짜는 시험이 끝나는 주 금요일이라 아주 적절했는데, 클래식이라 조금 망설였다. 클래식이라...내겐 낯설다. 하지만 창조적 사고를 위해서는 접해보지 못한 분야도 과감히 발을 디뎌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난, 겁도 없이 티켓링크에서 VIP석을 예매했다!

 두둥! 기말시험이 끝났다. 금요일만 손꼽아 기다린다.

 금요일이다. 맘도 가뿐, 몸도 가뿐, 버스를 타고 수성아트피아로 향했다.

참고로, 경산, 시지, 남부정류장 근처 사시는 분을 위해 수성피아 가는 길을 안내하면, 

이 지역내에 사시는 분들은 449번 버스를 타면 수성아트피아로 한번에 갈 수 있다. 교통연수원 정류장에서 내려서 40미터정도 직진하면 좌측 대각선 맞은편에 수성아트피아가 보인다. 횡단보도는 하나 건너야 한다.

 드디어, 수성아트피아 도착!

 

건물은 태권브이를 연상시킨다. 나만 그런가. 암튼, 건물은 아주 깔끔했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해서 건물 안을 둘러봤다.

이층에 머리가 심히 크고, 눈도 커다란 이상한 녀석들이 있었다. 

 

 

 젤 마지막 녀석을 계속 보고 있으면, 저 눈 속에 심취해버릴 것 같아 얼른 자리를 피했다는.

 

 

 

이층 좌측공간에는 그 동안 수성아트피아에서 공연을 했던 국내,외 예술가들을 기념하고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봐서,

공연은 MOZART vs BEETHOVEN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을 비교해서 들어보자는 취지다.

 

 

 

공연 시작 10분 전에 들어가서, 공연 팜플렛을 꼼꼼히 읽었다.  

 

Intro. 공연을 위해 무대조명을 제외한 객석의 모든 조명은 꺼졌다.

#1

악기 단원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단원 대표인듯한 남자가 홀로 무대로 들어선다.

전체 단원을 통솔하는 역할인 것 같다. 

 

 

#2

MBC 아나운서가 무대로 나와 공연 진행의 전체적인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무대뒤로 사라진다.

 

#3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무대 좌측에서 지휘자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발수갈채가 이어진다.

단원들은 전원 기립상태다.

다시 정적.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지휘자의 손짓에 첫번째 곡이 울려퍼진다.

Der Schauspieldirektor - W.A.Mozart

생애 첫 클래식은 꽤 들을만하다. 음이 단조롭지 않아 다행히 졸진 않았다.

지휘가 끝나고 지휘자는 다시 무대뒤로 사라진다. 

 

#4

한 동안 정적이 공연장을 휘감았다.

지휘자가 다시 무대로 들어서고 바이올린 솔로이스트도 뒤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서 곡이 연주된다.

Violin Concerto No.5 - W.A.Mozart  

좀 지루했다. 중간 중간 졸았는지, 기억의 틈이 생겼다.

귀에 거슬리는 음 이탈이 두 세번 있었다.

음이 높아져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것인지, 아님 솔로이스트의 실수였는지,

 처음 듣는 나로선 분간할 수 없었다.  

3악장이었는지, 4악장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질 않는다.

 

#5

15분 Break Time

 

#6

마지막 연주곡이다.

Symphony No.5 - L.V.Beethoven

빠빠빠빰~!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운명'교향곡이다. 웅장하다.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된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열정'이 눈에 들어온다. 지휘자의 격한 몸짓이 무대를 휘젓는다.

 찌릿. 전율이 흐른다. 이 맛에 클래식을 듣는구나.

 

지휘자의 마지막 손짓이 멈추었다.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박수소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지휘자는 무대뒤로 사라졌다 나타났기를 세번가량 반복하고 나서 공연은 막을 내린다.

 

 

 

생애 첫 클래식 공연이 끝나고, 난 잠시 자리에 앉아 모두가 떠나간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흘려놓고 간 땀들을, 열정을 잠시나마 더 느끼고 싶었다. 이러다 클래식에 빠지는 건 아닌지. 암튼, 좋은 경험이었다.  

 

 

 

 

 

 

 

반응형

무지막지한.

2012. 6. 19. 17:39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시험기간에 공부를 하다가 잠이 오면 습관처럼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하나 뽑는다. 그리고 홀짝 홀짝 마신다. 그렇게 하루에 세 캔은 먹는 것 같다. 나만 그렇겠는가. 목적이 어찌됐든, 음료수 종류가 어찌됐든, 각자의 책상캔 하나씩은 올려져 있다.

 나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이 하루에 두 캔을 마신다 치면, 하루에 배출되는 깡통의 수는 어마어마 하리라. 이 날은 토요일 이었다. 학생들이 온종일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러니 입도 심심하니,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은 상상 이상이다. 나도 그러니 말이다. 








 

  그런데, 쓰레기를 치우시는 아주머니는 아침과 저녁에 두번 쓰레기를 정리하신다.

 












약 350명이 쏟아내는 쓰레기를 가냘픈 쓰레기 통이 어찌 감당하리요. 공부하다가 화장실 간다고 나왔는데 참 가관이라 한 컷 찍었다. 

  

 버리는 사람은 자꾸 늘어나는데, 치우는 사람은 없으니, 감당 불감당이다. 쓰레기 치우는 것은 당연히, 쓰레기 치우시는 아주머니의 몫이라 생각했다. 

 














 

'레기 더럽게도 많이 나오는구나' 쓴소리만 내 뱉었을 뿐.

 















 그런데 학생 한 분이 쓰레기 봉투를 들고와서 빈 깡통들을 정리하고 계신게 아닌가. 아! 요즘 이런 청년도 있구나. 개념없는 인간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올바른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구나.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든지, 나도 돕겠다 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할 점을 찾은 뒤, 행동해야 한다.

오늘 하나 배웠구나.

 

 

 

 

 

 

 

 

 



 

 

공감하신다면, 아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공유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

'삶을 살아내다 > 일상(日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 무엇을 꿈꾸는가?  (0) 2012.07.20
Copy writer 되다, 카피를 쓰다  (0) 2012.07.19
의식 개선을 위한 배너 설치  (0) 2012.05.13
New shoes_Nike Cortez  (0) 2012.05.12
Brand-new glasses_ULTEM  (2) 2012.05.12

About a boy_"No man is island"

2012. 6. 19. 16:50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감독 : 크리스 웨이츠, 폴웨이츠

출연 : 휴 그랜드(윌 프리먼), 니콜라스 홀트(마커스), 토니 콜렛(피오나)

 

 영화는 TV 퀴즈쇼에서 진행자가 출연자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 '인간은 섬이 아니다' 라고 말한 사람은?”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가? 틀려도 상관없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에 포함되어 있는 문장이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주인공 ‘윌’은 모든 사람은 섬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간편하고 편리한 기계들로 인해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삶아갈 수 있으며, 바야흐로 섬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섬에서 모든 것을 지휘 감독 한다. 윌은 ‘이비자’ 섬에 살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 마커스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중학생이다.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과 옷차림 때문에 동기생들로부터 늘 놀림을 받으며, 가끔 자신도 모르게 수업시간에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마커스 엄마, 피오나, 이혼해서 혼자 애를 키우는 싱글맘, 수지, 엄마의 남자친구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 등 해체된 가족 구성원들이 많다. 감독은 현 사회에서 개인주의의 심화에 따른 관계의 단절, 가정 붕괴에 인해 가족 구성원들이 겪는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 같다.

 

  윌과 마커스가 만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 곳은 'SPAT(Single Parent Alone Together)'. 윌이 우연찮게 유부녀와 사귀게 된다. 유부녀와 사귀면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그녀와 헤어지긴 하지만 유부녀에 대한 미련은 못 버린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SPAT' 전단지를 발견하게 된다. 윌은 'Ned'라는 상상의 아들를 만들어 SPAT 모임에서 싱글 파파인 척 한다.

 

 

 

 

 운좋게 'SPAT'에서 아리따운 싱글맘 수지를 만나게 되고, 윌의 우여곡절 삶은 시작된다. 윌과 수지, 그리고 마커스가 처음 만난 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마커스 엄마가 자살시도를 한 것이다.

 

 

 

 

 

 

 

 

 

 

 

'Bang!' 

 

 

 

 

 

 

 

 

 

 

 

A new part of his life started.

 

 이 사건을 통해 마커스는 엄마가 죽으면 혼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둘은 충분치 않다는 결론은 내린다. 누군가가 필요함을 느낀다. 엄마의 남자친구로 윌이 적당하다 생각하고 윌의 삶에 끼어들게 된다. 감독은 어쩌면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과 두려움에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는 마커스의 모습을 통해 이 시대에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더욱 필요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결국, 윌과 피오나가 같이 밥을 먹는다. 이 만남을 통해 서로가 안 맞다는 사실만 명확히 알려준다. 하지만 마커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윌을 몰래 쫓아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윌은 아이가 없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빌미로 마커스는 윌의 집에 드나들게 된다. 

 

 윌과 마커스는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사이가 된다. 10대 소년과 30대 후반의 남자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영화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마커스가 장난감 손가락으로 과자를 집어 윌의 입에 집어넣어주는 장면이나 둘이 똑같은 모습으로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장면들을 보면, 둘은 십년지기 친구처럼 보인다. 억지스럽지도 않고, 과장되지도 않다.

 

그럴 즈음에 윌은 정말로 맘에 드는 여자, 레이첼을 만난다. 레이첼은 싱글맘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싱글파파인 척하면서 다가간다. 그래서 마커스를 자기 아들인 척 하면서 그녀와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마커스는 윌과 레이첼의 관계는 진실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그도 동의한다. 그래서 윌은 레이첼에게 진실을 말한다. 그 진실로 인해 사실상 둘은 갈라지게 된다.

 

 윌은 낙담하게 되고 자신의 문제에만 빠지게 되어, 남의 상황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한편, 피요나의 정신 상태는 더욱 안 좋아진다. 마커스는 악화되는 상황을 윌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윌의 집에 온다.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 하지만 윌은 무덤덤하다. 오히려 역정까지 낸다.

 

 

 "내가 누군데? 난 너의 삼촌고 아니고, 큰 형도 아니야!"

 

마커스는 순간 당황한다. 그리고 체념하 듯 말한다.

 

"그래요! 당신은 날 도울 수 없어요. 당신이 어떻게 날 돕겠어요?

당신은 맨날 TV만 보는 멍청한 사람이니까요!"

 

 

 

 

마커스도 빈정 상했다.

마커스는 윌의 태도에 상처를 받고 윌의 집을 휙 나가 버린다. 이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깨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윌은 삶이 공허해짐을 느낀다. 결국 마커스가 자신의 삶을 의미였음을 깨닫는다. 마커스도 친구가 필요했지만 ‘인간은 섬이다’라고 주장하는 윌 또한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단지, 윌은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윌과 같이 관계의 내적 공허함을 느끼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며 흥미로운 장면은 마커스가 학교 락 콘서트 무대에서 엄마를 위해 무반주로 노래하고 있을 때, 윌이 마커스를 돕기 위해 기타를 메고 무대로 들어서는 장면이다.

 

 

 

 

윌은 마커스와 함께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마커스가 노래를 끝내고 무대를 내려가려고 한다. 하지만 윌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윌은 혼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눈까지 감고서 말이다. 결국,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학생이 던진 사과를 머리에 맡고서 노래를 끝낸다.

 

 

 

 

이 장면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윌이 살고 있던 자신만의 ‘이비자’ 섬에서 완전히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는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마커스의 삶에 뛰어들었고, 그리고 기꺼이 그를 도우면서 즐겼으니 말이다.

 

 

 

 

 

 

 

 

이제 그는 섬이 아니다.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면 부끄러운 일 같은 건 절대 없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어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에 윌의 집에 마커스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모인다. 함께 모여 식사 준비를 한다. 윌은 스스로 이야기 한다.

 

 

 

“우리는 모두 섬이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부의 섬들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섬들은 바다 밑에선 서로 연결돼 있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은 한 소년의 개입으로 인해 완전 바뀌었다. 

마커스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 한다.

 

 

 

 

 

 

 

 

 

 

 

 

"No man is island."

 

 

 

 

 

 

 

 

 

 

 내가 말한 '부끄러움'은 남을 위해 내것에 대한 권리를 잠시 포기한 상태. '함께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 3자로 방관하면서 '다 알아'라고 말하는 위선자들이 많은 이 세상에, 누군가의 삶에 깊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by yul

 

 

 

 

 

 

 

 

 

 

 

 

 

 

공감하신다면, 아래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과 소통 & 공유 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2012. 5. 17. 12:00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_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것이다.




  

#1  빗장을 열어 마음 한 켠 고이 내주었던 녀석에게 속내를 비췄을 때, '지금은 아니예요'란 말이 내게 정면으로 들이쳤다. 난 울지 않았다. 그저 내 서투름을 책망했었다. 섣부른 나의 행동을 몹시 후회했었다.

 


2 '거절'당했다는 현실을 직면했을 때, 난 과감히 감정의 문을 열어 젖혔다. 허나, 남자이기에 꺼이꺼이 목을 놓을 수만은 없었다. 그저 몇 방울의 눈물만 뜨겁게 흘려보냈다.  









반응형

'책과 글, 그리고 시 > 시에 울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_황인숙  (0) 2014.03.29
난, 시를 분석하지 않는다. 다만 읽을 뿐이다.  (0) 2013.03.20
깊은 물_도종환  (0) 2012.10.27
첫날밤_마종기  (0) 2012.09.11
그 사람을 가졌는가  (0) 2012.05.11

의식 개선을 위한 배너 설치

2012. 5. 13. 20:23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딸깍...  딸깍.... 

귀에 거슬린다.

 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

 귀에 심히 거슬린다. 귀마개를 꽂고 있지만 마우스 클릭 소리는 더욱 명확하게 들리니, 책에 집중할 수가 없다. 내가 예민한 탓도 크다. 결국, 도서관의 무법자(?)에게 다가가서 마우스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다. 근데 이 녀석 표정이 떨떠름하다. '이 사람 참, 예민하네!'라는 태도로, 마우스 사용을 자제하겠다고 억지로 고개 끄덕인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열람실에서 많은 학생들이 키패드 없이 키보드를 사용하거나 마우스사용해서 소음을 일으킨다. 이 학생들에게 키보드와 마우스 사용을 자제 해달라고 요청하더라도 그때 뿐이다. 그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도서관의 무법자가 돼버린다. 한탄할 일이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는데, 어찌 그들에게 행동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먼저, 학생들의 의식이 올바르게 개선되어야 행동이 바뀔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각인 시켜 주면 의식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고, 결국엔 행동자체가 고쳐질 수 있다. 그러하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한 동안 고심했다. 다시 한번 총학생회 홈페이지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총학 홈페이지에 도서관 사용 예절에 대한 배너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별히, 키보드와 마우스 사용에 관한 예절에 대해서 말이다. 배너를 출입문에 설치해 놓으면, 학생들이 도서관을 출입하면서 배너를 통해 지켜야 할 예절을 계속 보게 된다면 도서관을 사용하는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무의식적으로 깨닫을 수 있으리라 하는 생각에서였다.

 며칠 전, 과학도서관 각 열람실 앞에 도서관 사용 예절에 관한 배너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특별히 건의한 키보드와 마우스 사용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그저 노트북을 지정된 자리에서만 사용하자는 말 밖에는 없었다. 이런! 일단, 배너가 설치 되었으니 학생들의 의식이 개선될 지는 지켜볼 일이다.  

 

 

 

 

 

 

 

공감하신다면, 아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공유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

'삶을 살아내다 > 일상(日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py writer 되다, 카피를 쓰다  (0) 2012.07.19
무지막지한.  (0) 2012.06.19
New shoes_Nike Cortez  (0) 2012.05.12
Brand-new glasses_ULTEM  (2) 2012.05.12
권리 되찾기  (0) 2012.04.30

New shoes_Nike Cortez

2012. 5. 12. 10:47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한국 입국 후, 두 달동안 Bought in Tanzania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아마 제조국가는 중국 아니면 동아시아 어는 국가중 하나일 것이다. 운동화를 포함한 탄자니아는 의류제품들은는 90%가 외국에서 유입되므로, 내수 시장규모는 상당히 작고, 또한 내수 제품들은 가격경쟁성이 없어서 성장하기도 쉽지 않다.

 어쨌든, 누님이 너무 투박하다고 핀잔을 주긴 했지만, 한국에 없는 독특한 신발이라 나는, 좋아라 했다. 그런데 신은지 한달이 채 못 지났을 때, 운동화 겉면 실선이 터져 버렸다. 구멍은 보란듯이 점점 커져갔다. 그리하며 비가 오면 신발 서서히 물에 잠겨간다. 그 질퍽함이란..,

 음.음! 운동화를 하나 장만해야한다는 변명거리가, 생겨버렸다. 그런데 요즘 운동화 가격도 만만치 않다. 무슨 운동화가 이렇게 비싼지. 

 그러다 나이키 매장에서 쏙 맘에 드는 세일 제품을 발견했다. 한 번 신어보니, 더 맘에 든다. 그려 이것이여!  가격도 참 착하다. 69,000 --- 59,000

                 구입처 : 나이키 (대구 수성구 시지점)

                      NIKE CORTEZ BASIC NYLON '06

                      MIDNIGHT NAVY/WHITE

                      MADE IN VIETNAM

반응형

'삶을 살아내다 > 일상(日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py writer 되다, 카피를 쓰다  (0) 2012.07.19
무지막지한.  (0) 2012.06.19
의식 개선을 위한 배너 설치  (0) 2012.05.13
Brand-new glasses_ULTEM  (2) 2012.05.12
권리 되찾기  (0) 2012.04.30

Brand-new glasses_ULTEM

2012. 5. 12. 10:2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칠판의 글씨가 흐릿하다. 뿌연 안경 알 탓인가. 천으로 안경 알을 빡빡 문지른다. 잘 안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두 눈을 가늘게 떠 초점을 모아보지만 역부족이다. 이런, 된장!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꼼꼼히 살펴본다. 아프리카의 비,바람을 오롯이 견뎌낸 안경테에 여기 저기 상흔들이 보인다. 이미 코팅은 많이 벗겨져있다. 콧 받침대의 실리콘은 없어진지 오래다. 안경알은 기스가 꽤 많다. 교체 할 시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안경 알 도수도 한 단계 높이고, 안경테도 바꾸기로 결심한다. 울 누님의 안목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동행한다. 누님은 내 강한인상을 부드럽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안경테를 찾고 있다. 요리조리 살표보던 누님이 한 안경테를 집어 들었다. 원형 안경테다. 점원이 신소재, Ultem(울템)으로 만든 안경테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게 뭔데.

 

.여기서 잠깐, Ultem에 대해 설명하면,

 

 Ultem(울템)의 정확한 명칭은 폴리에테르이미드(PEI)로 미국 GE가 개발해 전기, 우주선, 항공기 내장 부품등에 사용되는 열가공성 특수소재로 120도 정도의 온도에서도 약 7시간을 버틸 수 있을 뿐 아니라 충격에도 비교적 강한 업그레이드 신소재이다.


안경테에 아래와 같은 것들이 표시되어 있으니 꼭 확인 하시도록! 


  

내 안경테에도 요렇게 표시되어 있다.  


신소재라 가격이 꽤 세다. 머뭇머뭇. 그 때를 틈타 안경 점원이 혹할 만한 할인 가격을 제시한다. 무려 40%! 누님 왈 "안경은 오래 사용할 거니까 사는 김에 좋은 것 사!", 그러지요, 누님!  

여기서 다시 잠깐!

안경점에서 정상 판매가격120,000~125,000 원이다.  나는 40%할인을 받아 72,000원에 구입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결과:

http://coney.co.kr/shop/goods/goods_view.php?inflow=naver&goodsno=1423&nv_pchs=k9E05IrG%2BTdLx5kAFfgUiw%3D%3D 

에서 48,000 원에 판매하고 있다. 내 안경테와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50,000 미만은 2,500원의 운송료가 붙으니까 결국 50,500 원인셈이다.

 

안경테를 샀으니, 안경알을 맞춰야지. 

 예민한 탓에, 안경알 도수를 내 시력에 딱 맞게 맞추면 종종 어지러움을 느끼곤 한다. 초큼 잘 안 보이더라도 눈이 편한 것이 좋다. 도수를 두 단계 높일 걸, 한 단계만 높였다. 안경점원이 한 마디 덧 붙인다. "간혹 예민하신 손님들은 이렇게 맞추세요."

안경알은 한 번 압축해서 28,000 원

                  

그리하여 나는 초큼 비싼 안경테를 쓰게 되었다.

구입처 : 수성구 시지광장 옆 Eye Click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과 소통 & 공유 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

'삶을 살아내다 > 일상(日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py writer 되다, 카피를 쓰다  (0) 2012.07.19
무지막지한.  (0) 2012.06.19
의식 개선을 위한 배너 설치  (0) 2012.05.13
New shoes_Nike Cortez  (0) 2012.05.12
권리 되찾기  (0) 2012.04.30

그 사람을 가졌는가

2012. 5. 11. 19:32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그대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하며

 방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

 "아니"라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군 시절  상명하복만이 존재하는 더러운 곳에서 지독한 고독이 날 엄습해 올 때, 모든 것들에 반기를 들며저항하고 싶었다. 고립된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평안을 얻고자 시를 읽었다.  

나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내가 붙들 그 사람들은 존재하는가. 가슴 속 깊이 '가족'이란 두글자가 떠올랐다.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혼자 끙끙 앓아도 도와달라고 절대 말 못하는 자존심 강한 나를 묵묵히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는 맘 따뜻한 누나.그들이 있어 난, 행복했다1년의 타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아둥바둥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내게 큰 힘이 되어주는 것 또한 가족이다. 우리 가족을 만난 것이 축복이다. 참 감사하다.




 

반응형

'책과 글, 그리고 시 > 시에 울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_황인숙  (0) 2014.03.29
난, 시를 분석하지 않는다. 다만 읽을 뿐이다.  (0) 2013.03.20
깊은 물_도종환  (0) 2012.10.27
첫날밤_마종기  (0) 2012.09.11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0) 2012.05.17

솔로이스트_친구들이 그립습니다.

2012. 5. 11. 12:11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타인과의 관계를 발전할 수 있는 토대는 서로간의 믿음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믿음’이란 인간 자체에 대한 확신이라 생각한다. 한 사람의 현재상황이나 능력에 상관없이 그의 행보를 끝까지 지켜봐주며 같이 발맞추어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가령, 노숙자나 정신질환자라도 말이다.

 #1

 영화 '솔로이스트'에서 LA타임즈 로페즈 기자는 노숙자 나테니얼을 좋은 칼럼대상으로 다가간다. 그의 우여곡절의 삶이 기자의 시선을 끈 것이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노력으로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했지만, 정신적인 혼란으로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노숙자 생활을 하는 그 속사정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다가 인생의 교차점에 들어선다.

 처음 만났을 때 나테니얼은 로페즈가 내민 손을 잡지 못했다. 자신의 허름한 차림에 대해서 사과하면서 부끄러워 뒷걸음질 쳤다.

"I apologize for my appearance. I've had a few setbacks." (내 옷차림 사과할게요. 좀 사연이 많아요)

 

#2

 로페즈는 특종기사를 쓰기 위해 나테니얼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기자로서 그의 부서져버린 음악에 대한 기억들을 회복시켜주려 노력한다. 그 노력이 '나테니얼'의 마음을 차츰 열게 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서로간의 믿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 맺어진 조건적인 것이었다. 기자 로페즈는 특종이 필요했고, 음악 천재 나테니얼은 친구가 필요했다. 로페즈에 대한 지나친 나테니얼의 기대는 로페즈를 자신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집착은 관계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그러면서 나테니얼의 정신질환은 더욱 악화된다. 어긋난 관계회복을 위해 로페즈는 정식으로 나테니얼에게 정신질환 치료를 권유한다. ‘정신질환’이라는 진실이 구체적인 언어로 그들 사이에 거론되었고, 그 ‘진실’은 나테니얼을 거북하게 만들었다. 나테니얼의 치부를 대 놓고 건드린 셈이다. 치부가 드러난 것에 화가 난 나테니얼은 로페즈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치닫고 만다. 결국, 둘은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다시 각자의 길로 가게 된다.  

#3

         처음에 먼저 다가갔듯이, 다시 손을 내민 사람 역시 로페즈였다.

         그 손을 '나테니얼' 거부하지 않는다. 진정한 친구의 맞잡음이다.

                  "I am honored to be your friend"(당신의 친구가 돼서 영광이예요)

악수를 하면서 로페즈가 나테니얼에게 건넨 말이다. 이제 로페즈에게 노숙자 '나테니얼'은 없다. 아직 세상을 등졌지만 힘겹게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인간 '나테니얼'만 존재할 뿐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나테니얼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그대로이지만 다행인 것은, 옆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그를 돕는 기자, 아니 친구 로페즈가 있다는 것이다.

 너와 나의 경계선이 더욱 더 명확해지는 요즘,  멀리 떠나 간 내 친구들이 그립다.   

 

 

 

 

 

 

 

 

 

 

 

 

공감하셨다면, 아래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과 소통 & 공유 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

탄자니아 선교 간증문

2012. 5. 8. 19:02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무익한 종의 고백

 

선교는 누가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특별한 몇몇 사람들만 선교를 하는 것일까요? 아님 똑똑한 사람이 선교를 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이 선교를 하는 것일까요? 선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자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종이 시킨 일을 하고 있는데 주인이 그에게 사례 하겠느냐?”며 종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 하십니다. 당연히 종의 역할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주인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탄자니아 선교를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고, 제 호칭을 스스로 ‘무익한 종’이라 불렀습니다. 맡은바 역할을 감당하면서 하나님과 발 맞추어 함께 걷는 법도 배우고 싶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과 동행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고자 탄자니아로 떠났습니다. 머리로는 ‘동행’이란 두 글자를 떠올렸지만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갓난아이가 걸음마가 익숙해질 때까지 자주 넘어지듯이,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머릿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의식적인 노력 없이 그 분의 뜻을 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건축사역이 시작되면서 건축현장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제게 맡겨진 잡일들을 담당하면서 마음속에 불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들 듯 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 이런 잡일 하러 탄자니아에 온 것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대답은 않으시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나를 섬기면서 살라 하면 그리 할 수 있겠니?저 또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질문을 계속 던지셨고, 하나님의 따뜻한 손으로 제 지친 마음을 만지시던 날, 전 거실땅바닥에 무릎 꿇어 그리하겠다면서 그저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교현장도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예수님처럼 모든 이들을 포용하면 좋겠지만, 저 또한 본성이 악한 사람인지라 맘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현지인들에게 불만을 표하면서 언성을 높였던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제가 감당치 못할 만한 일들이 밀려왔을 때, 그 일을 맞닥뜨려야 하는 고단함이 싫어서 한 발짝 물러서서 방관한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제멋대로인 저를 나무라지 아니하시고 그 넓은 마음으로 그저 지켜 봐주셨습니다. 1년의 사역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지 못했던 부분들 때문에 마음 한 켠이 많이 무겁습니다. 특히, 제가 맡겨주신 영혼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울 뿐 입니다. 요즘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써 일하고 계신 탄자니아 선교사님들을 자꾸 떠오르게 하십니다. 그분들의 사역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제 삶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선교 1년은 하나님의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탄자니아에서의 실질적인 선교는 끝났지만 제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상명령을 위해 다시 힘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반응형

권리 되찾기

2012. 4. 30. 15:4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2년만에 돌아온 대학교정은 낯설다. 저마다 무리지어 다니는 곳곳에서 홀로 다시 교정을 걷고 있다. 밥도 혼자 먹은지 3달이 넘었다. 뭐, 그리, 나쁘진 않다. 견딜만 하다.

 내가 애용하는 과학도서관 4층에 화장실이 있다. 각층마다 다 있긴 하다. 그런데 대변을 볼 수 있는 4곳중 한 곳은 누수로 사용을 금지 시켜놨고, 또 다른 한 곳은 손잡이가 고장나서 사용할 수가 없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두 곳 뿐이다. 식사시간 전후로 화장실에 대변을 보려는 학생들이 몰리면 화장실 두칸은 턱없이 부족하다.


 

 4월 초순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내 옆에 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도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이야기 중에 고장난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친구 1 왈: 어제 똥 누러 왔는데 4층에 사람 다 차서 3층갔는데, 또 다 차서 2층, 1층까지 내려갔다 아이가.

친구 2 왈: 나도 그런 적 많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왜 저학생들이 1층까지 내려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고장난 두칸을 1달 반이 넘도록 그대로 방치했던 학교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리고 1층까지 내려가야 하는 불편을 그냥 감수하고 있는 공대생들의 태도에 할말이 없었다. 자신들이 누려야 하는 권리를 잃어버렸는데,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학교 어느 부서에 전화해서 고쳐달라고 하면 될까?' 머리를 스치는 한 곳이 있었다. 총학생회를 통해 학교에 내 의사를 전달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홈페이지를 통해 총학 연락처를 찾아냈고, 바로 전화해서 4층 화장실 수리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수리 요청한 것을 깜박잊은 채 1주일이 지나갔다. 그리고서 다시 화장실의 고장난 두칸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 안 고쳐졌잖아!', 순간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바로 총학에 전화를 걸어 따질까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얻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성적인 글로 건의 하기로 했다. 아래는 내가 올린 전문의 일부다.    



4층 제 3열람실 화장실 


현재 과학도서관 4층 남자 화장실에 대변을 볼 수 있는 4곳중 한 곳은 누수로 사용금지 시켜놨고, 또 한 곳은 문 손잡이가 고장나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4층 제 3열람실 총 인원수가 505명인데, 공대생중에 남학생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300명이상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식사시간 전후로 화장실에 학생들이 몰리게 되면 대변을 볼 수 있는 곳을 사용하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대변 한 번 볼려고 4층에서 3층, 3층에서 2층, 2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지난주에 전화상으로 건의를 드렸었는데 아무조치가 없어서 글로 올립니다. 빠른 조치 부탁드립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있으나 일단 이것만 적도록 하겠습니다. 총학생회에서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소홀히 듣지 말아주시고, 학생으로서의 권리를 당당하게 찾을 수있도록 저희를 대변하며 학교측에 의사를 전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낮에 글을 올리고 저녁에 홈피에 다시 들어가서 확인했다. '집행위원장'이란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내 건의글에 여러 댓글을 달았다. 건의사항에 대해 빠른 조치하겠다는 것이었다. 글투를 봐서는 나름 차분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났다. 그 날 저녁, 문고리가 고장났던 화장실 한 칸은 수리 되어 있었다. 잃어버린 권리를 다시 되찾았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에, 혼자 수리된 문고리를 보고 한참 서 있었다. 시험기간이 다가와서 누수에 대한 것은 시험끝나고 고쳐준다고 했는데 두고 볼일이다.

 공대생들은 학생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는 데 적극적이지 못한 것 같다. 아니, 아예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알고도 모른체 할 수도 있다.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난 마지막 1년동안 공대생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 볼 참이다. 조금 번거롭겠지만 말이다. 



 

공감하신다면, 아래 손가락 표시를 눌러주세요.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공유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

'삶을 살아내다 > 일상(日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py writer 되다, 카피를 쓰다  (0) 2012.07.19
무지막지한.  (0) 2012.06.19
의식 개선을 위한 배너 설치  (0) 2012.05.13
New shoes_Nike Cortez  (0) 2012.05.12
Brand-new glasses_ULTEM  (2) 2012.05.12

'보이는 손'의 개입이 필요하다

2012. 4. 30. 14:58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관계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소비자의 수요에 대한 공급은 기업들이 담당한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상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기업들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유발시켜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의 상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시장경제는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는 집권초기에 경제성장를 목표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대기업들은 신규 설립과 인수합병을 하면서 거대한 자본을 확보해나갔다. 현재 그 자본을 가지고 골목시장까지 점령해 나가고 있다. 문구점, 동네 빵집과 커피점은 물론 심지어 떡볶이, 순대까지, 대기업 계열사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골목 시장에서 영세업자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호텔신라가 운영해오다 최근 사업철수를 발표한 베이커리 카페 '아티제' 청계광장점 모습

 또한 대기업은 수요독점을 기반으로 하청 중소기업들에게 납품단가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중소기업들 간에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하청기업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대기업과 거래를 하는 것이다.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현상과 독과점은 한국경제의 가장 극적인 시장실패이다. 제 시장경제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길 것이 아니라 '보이는 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첫째,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규제는 정부가 특정 분야에 대해 확장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확보해놓은 거대한 자본이 있기 때문에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점포를 확장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자들은 처지가 다르다. 일정기간 동안의 판매 매출을 통해 기술을 개발할 것이냐 아니면 점포를 확장할 것인가 등을 결정할 것이다.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영세업자들이 경쟁하는 것은 권투에서 라이트급과 헤비급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대기업의 점포 확장 개수를 제한하거나 빵집이나 문구점 같은 특정 분야에 대해 진입하지 못하도록 법적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현실에게 점점 커져만 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문제는 실제적인 제도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공정거래 위워회 등 정부기관의 독점 제소권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의 확대, 조사방해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처벌 강화 등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가 중소기업에게만 적용되는 저금리 대출 정책을 마련해줌으로써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정부의 개입을 통한 양극화 해소 정책의 핵심은 중소기업이 스스로 이룩한 정당한 성과를 공정한 거래를 통해 중소기업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대기업 수요독점에 따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와 경제력 집중현상은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대기업들이 수출을 주도하면서 이끌어 온 한국경제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정부는 단기적인 관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들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할 거이다. 그리고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과 수요독점을 규제함과 동시에 중소기업과 영세업자들이 대기업과 동등한 조건에서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반응형
반응형

L'Étranger by kangsy85

Notices

Search

Category

First scene (1189)
프로필 (19)
삶을 살아내다 (407)
산업단지 (13)
도시재생 (4)
토목직 7급 수리수문학 (8)
토목직 7급 토질역학 (8)
자료공유 (106)
편집 프로그램 (8)
신앙 (285)
책과 글, 그리고 시 (252)
초대장 배포 (55)

Statistics

  • Total :
  • Today :
  • Yesterday :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Recent Trackbacks

Copyright © Nothing, Everything _ Soli Deo Gloria All Rights Reserved | JB All In One Version 0.1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