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일 _ 김사인

2016. 7. 7. 22:29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 thewritingant.wordpress.com>




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것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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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_ 김경미

2016. 6. 18. 21:2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Source : www.toonvectors.com> 




냉장고 



                        김경미




1. 


어느 날 문을 열자 

뜨거움 속에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열쇠가 눈에 띈다 


입이 얼어붙은 열쇠였다 



2. 


다음 날 

또 열쇠를 잊고 

불같이 화를 냈다 


곧 후회했지만

이미 수치가 재앙이 된 뒤였다



3. 


신선한 달걀에게도 끝내 곰팡이를 선사하는 힘

생선을 새까만 까마귀로 바꾸는 힘 


항상 날짜를 읽어내는 힘 


문을 열어 열쇠와 머리를 함께 집어넣고 


차가운 짓을 그만할지 

뜨거운 짓을 그만할지 의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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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_ 김경미

2016. 6. 13. 16:20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 t9t9.com>




수첩



                                         김경미




도장을 어디에 두었는지 계약서를 어디다 두었는지 


구름을 어디다 띄웠는지 유리창을 어디다 달았는지 


적어놓지 않으면 다 잊어버린다


손바닥에 적기를 잊어버려 

연인도 바다도 다 그냥 지나쳤다 

발꿈치에라도 적었어야 했는데 새 구두가 

약국도 그냥 지나쳤다 


시간도 적는 걸 잊자 한 달 내내 

양파가 짓물렀다 

토끼똥이 한가득씩 어깨로 쏟아졌다 


때론 살아 있다는 것도 깜박 잊어버려 

살지 않기도 한다


다만 슬픔만은 어디에 적어두지 않아도 

목공소 같은 몇만 번의 저녁과 

갓 낳은 계란 같은 

눈물 자국을 

어디에도 남기고 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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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6. 21:18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kr.freeimages.com






서 있는 종이 



                                        마종기 




한밤에 잠자다 어둠 속에서 불현듯

화려한 시 몇 줄이 나를 흔들어 깨워

불도 켜지 않은 채 침상 종이에 썼던 글. 

아침에 잠 깨어 밤새운 종이를 보니 

설친 글자 하나 보이지 않는 백지였네. 

죽어버린 볼펜이 억울해 눈여겨보아도

희마한 분홍색만 흩어진 자국으로 보인다. 



그래, 이렇게 연한 색을 어디서 본 적이 있지. 

그게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던 때였나, 

열심히 보면 피가 조금 밴 부끄러움의 색, 

내가 더 살기로 한 곳에서 맴돌고 있던 색, 

비굴한 계절이 말 걸어오면 주춤거리며

나도 모르게 중얼대다가 남아 있던 색. 

그 색깔 번져 있는 온몸 투신의 시 한 줄, 

어딘지도 모르고 입술 터진 길을 헤맨다. 



빈 종이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겠다. 

머리에도 가슴에도 쓰고 남은 자리에도 

무심히 지나간 이에게도 말해주어야겠다.

아무리 눌러 써도 이해되지 않는 종이에 

숨어서 밤새워 응시하며 서 있는 종이에 

얄팍한 의심 겨우 지탱해주는 녹슨 시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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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바다 _ 마종기

2016. 6. 1. 22:3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myblueday.tistory.com





알렉산드리아의 바다 



                                  마종기 




단 하루뿐이었다. 

지중해의 가벼운 물이 나를 둘러싸고 

해안에 기댄 호텔로 안내한 저녁, 

빛바랜 천 년 소음이 먼지에 젖어 

눅눅한 도시가 절반 정도만 보였다. 

나이 들수록 오래 생각하지 말라고

너무 길면 걷기가 힘들어진다고 

그 여왕은 해변을 걸으며 말해주었지.



잠을 잘 자야 잊는 힘도 생긴다. 

모래 위에 남겨둔 운명은 밀물이 지우고 

수줍게 고개 숙인 해안의 석양도 

잔잔하게 번지는 핏빛의 소식이 될 뿐, 

외로운 자만이 쉽게 털고 떠날 수 있다. 



지중해는 그 옛날부터 기다렸지만

이번에 만난 도시와 바다 사이에는 

불투명한 역사가 쓰레기 되어 병들고 

낡은 돌층계에서는 노래가 갈라지고 

호텔의 틈새 그림자만 마른 인사를 한다. 



목요일 그 하루저녁만이었다. 

늦더위와 파도 소리와 그 앞을 지나는

이집트의 허름만 중년들만 살아 있고 

기원전의 등대나 지진으로 무너진 도서관은 

역사의 구석에서 무거운 짐을 챙긴다. 

추억인 양 한숨 쉬는 먼 알렉산드리아, 

아직도 답신은 도착하지 않고 

그해의 밤도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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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심장 _ 마종기

2016. 5. 28. 23:4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www.pixelstalk.net




봄날의 심장



                           마종기 




어느 해였지?

갑자기 여러 개의 봄이 한꺼번에 찾아와 

정신 나간 나무들 어쩔 줄 몰라 기절하고 

평생 숨겨온 비밀까지 모조리 털어내어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과 라일락, 

서둘러 피어나는 소리에 동네가 들썩이고 

지나가던 바람까지 돌아보면 웃던 날. 

그런 계절에는 죽고사는 소식조차 

한 송이 지는 꽃같이 가볍고 어리석구나. 



그래도 오너라, 속상하게 지나간 날들아, 

어리석고 투명한 저녁이 비에 젖는다. 

이런 날에는 서로 따뜻하게 비벼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눈이 떠지고 피가 다시 돈다. 

제발 꽃이 잠든 저녁처럼 침착하여라.

우리의 생은 어차피 변형된 기적의 연속들, 

어느 해였지?

준비 없이 떠나는 숨 가쁜 봄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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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사막 2 _ 마종기

2016. 5. 28. 22:46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brunch.co.kr 






고비사막 2



                             마종기 



왜 그런지 멀어지기만 한다. 

떨어져 있는 우리 사이가 사막이 되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작게 보인다. 



모든 것을 감싸 안아주는

늙고 나른한 모래언덕들이 

허리 굽어 쇠잔한 걸음걸이까지 

부르럽게 안아준다. 내가 

사막에서 무너지며 네게 기댄다. 



초면인데도 옆에 마주 서서 

사막의 남은 온기를 잠옷으로 준다. 

몸의 구석구석이 벌써 포근하게 졸린다. 

자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고비 사막을 덮고 긴 잠에 든다. 



견고한 형식은 마을로 가버리고 

만져도 확실하게 쥐여지지 않는 땅, 

공기까지 가벼워 마음 편히 만날 수가 없다. 

서쪽에는 끝없이 큰 노을이 퍼져 있어 

아무리 기다려도 밤이 오지 않는다. 



주위를 돌아보니 뭐가 그리 바쁜지 

모두들 말없이 떠나고 말았다. 

가고 또 사라지기만 하는 고비 사막에서는 

누구나 혼자라는 것 어차피 알게 되는구나. 

하늘은 끊어지지 않아 춥기만 하고

별은 너무 많아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

이러다 죽으라는 말이 환청으로 들린다. 

고개 들어 무작정 멀리 바라보니 

그래도 살아가라는 말이 또 뒤쫓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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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회복 _ 마종기

2016. 5. 9. 18:11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www.online-instagram.com

 

 

 

 

 

국적 회복

 

 

                                마종기

 

 

 

1

 

그해에 나는 처음으로 젊었었다.

계절이 갑자기 끝나버린 그 여름,

군가도 더위에 녹아버리고 말았다.

동기 군의관들이 힘들게 면회 와서

감방에서 나보다 먼저 울었다.

내게 다시는시원한 날이 안 올 듯

한여름에 겨울옷을 놓고 갔다.

 

 

숨어 사는 쓰레기 소각장에서

남은 시도 다 태우고 풋정도 함께

끝없는 연기로 태웠다. 냄새까지 감춘

연기가 억울하다고 내게 속삭였다.

그 초라함과 삼켜도 안 넘아가는 모욕을

차가운 침묵의 태연한 재로 만들고

가볍고 이승의 바깥으로 나를 버렸다.

미련을 남기지 않는 고결한 변신,

나도 그쪽으로 가리라 각오했었다

입술을 깨물며 맛도 색깔도 변한 피를 삼켰다.

 

 

 

2

 

내가 미워했던 고국이여,

잘못했다. 긴 햇수가 지나도

계속 억울하고 서러웠다 .

치욕의 주먹이 미칠 것 같은

머리와 목덜미를 치고

내 앞길에 대못을 박았다.

더 이상은 선택이 없었다.

 

 

그 사이에 내가 늙고

기다려주리라는 꿈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어도

한 묶음의 세월이 지나도

산과 강이 옷을 벗어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서 흘러갔다.

가다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믿었다.

물고기는 물고기끼리

낙타는 낙타끼리

나비는 나비끼리

그리고 사람은 사람끼리

언젠가는 서로 화해한다.

그 따뜻한 속내만을 믿었다.

누구에게도 손 내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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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이 푸르다 _ 김경미

2016. 5. 5. 22:09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www.sopoongp.com

 

 

 

뒤뜰이 푸르다

 

 

                                     김경미

 

 

 

그건 참 다른 일

 

 

앞마당 나무들이 봄빛에

새파래지는 건

봄이니 당연한 일

봄은 앞이고 앞마당은 앞이고 햇빛도

앞에다 다 쓰니 당연한데

 

 

햇빛들 한 번도 거기까지 돌아와보지 않았을

뒷그늘이 어느 날 갑자기

흰빛을 키운 건

검은 그늘이 저 혼자 색깔을 연마해

갑자기 초록을 내 뿜는 건

 

 

아무리 봄이어도 참 다른 일

 

 

뒤뜰이 앞이 됐더라 누군가 중얼대는 건

그 자수성가 구경하려 갑자기 몰려가

녹슨 문을 떠니는 건

 

 

아무리 봄이어도

참 다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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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toonpool.com

 

 

 

귀향

 

 

                                  마종기

 

 

 

1

 

돌아왔구나, 하고 친구가 말했다.

오래도록 나가서 떠돌며 살더니

이 일 저 일 털어내고 맨손으로

돌아왔구나, 하고 나를 잡아준다.

그런데 나는 정말 돌아온 것일까.

나 살던 동네도 모습 찾기 힘들고

알던 사람들 목소리 들리지 않는다.

 

 

 

2

 

그날은 저녁부터 밤새 비가 내렸다.

소름 끼치게 혼자 있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체질인 것을 알았다.

어떻게 남보다 많이 젖지도 않고

속내의 나를 모두 보일 수 있으랴.

그날은 떠난 날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숨쉬는

신선하고 정결한 단어를 찾으려고

방향도 정하지 못한 채 낚싯줄을 던졌다.

 

 

 

3

 

알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너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 며칠 왠지 밤잠을 설쳤을 뿐이다.

얼굴과 머리는 늙어 낙엽으로 날리지만

한 평 침대에 누운 저 꽃 잠 깨기 전에

재갈 물린 세월아, 모두 잘 가거라, 잘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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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를 꿈꾸며 _ 마종기

2016. 4. 30. 14:3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 brunch.co.kr




헤밍웨이를 꿈꾸며 



                                                  마종기 



그랬지. 나는 늘 떠나고 싶었다. 가난도 무질서도 

싫었고 무리지어 고함치는 획일성도 싫었다. 떠나

고 또 떠나다 보니 여기에 서 있다. 낡고 빈 바닷가, 

잡음의 파도 소리를 보내고 산티아고 노인을 기다리

고 싶다. 남은 생명을 한 판에 다 걸고 집채만 한 고

기를 잡았던 헤밍웨이의 어부를 만나고 싶다. 그 쿠

바 나라 노인은 나를 기다리며 감추어둔 회심의 

소를 그때 보여줄 것이다. 해변에 눕는다. 해변이 

천히 그림자를 옮기면서 나를 치며 가라고 할 때까

지 계획 없이 떠나니던 내 생을 후회하지 않겠다. 

가 무리를 떠나온 것은 비열해서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 아직도 말할 수 있다. 노을이 키웨스

트 해변에 피를 흘리고 흘려 모든 바다가 다시 무서

워질 때까지, 그리고 그 바다의 자식들이 몰려나와 

신나는 한 판 춤을 즐길 때까지.



마흔두 개의 섬을 연결한 마흔두 개의 다리를 건

너며 차를 달려 네 시간 만에 도착한 섬. 어느 다리

는 길이가 30리 정도까지 되어 가늘게 흔들리며 

망 바다에 떠 있어 어지러웠지만, 헤밍웨이는 야자

수밖에 없는 그 마지막 섬에 프랑스 미녀를 데려와 

넷째 부인으로 살림을 차리고 말술을 마셨다. 그 중

간에는 사람 열 배 크기의 상어를 잡고 거대 다랑어

를 잡고 아프리카에 가서는 사자와 표범과 코뿔소를 

피투성이로 죽이고 종국에는 그 총으로 더 늙기 전

에 미리 죽어버린 남자. 그가 쓴 통 크고 시야 넓은

은유의 글을 읽다가 나도 통 큰시를 꿈꾸며 모든 의

심과 열등감을 밟고 방을 뛰쳐나온다. 갈 곳은 없지

만 눈은 크게 뜨고 아직은 갈기 사나운 수사자를 꿈

꾸며, 가슴을 펴고 바다같이 넓은 시를 꿈꾸며, 다시 

한 번 키웨스트의 헤밍웨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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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 평원 _ 마종기

2016. 4. 23. 12:13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 mlbpark.donga.com 






몬태나 평원



                            마종기



모두 너를 모른다고 돌아갔지. 

그렇게 사철을 열심히 살면서도 

큰 눈으로 한번 웃지도 않고 

억울하다 소리쳐 울지도 않으니 

누가 거칠어진 네 속을 알아볼 수 있겠니. 



헤어져본 사람만은 안다. 

수척한 겨울, 눈보라 치는 이마에 

억새밭이 얼어서 떨고 있는 의미를 

그 넓은 소리 지평선까지 갔다 오는 동안

참기만 하면서 포기하는 네 나이의 고행. 



그래 울어야 한다, 별들의 얼굴아, 

북부 몬태나 주에서는 얼마나 어렵게 

하늘과 땅이 만나 몸 녹이다가

새벽녘 되어서야 아쉽게 헤어지는지.

그리워해본 사람만은 안다. 

이방의 평원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인생이 얼마나 작고 쓰고 한없이 얇은지를, 

겨울 새벽이 얼마나 곱고 뼈아픈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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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21. 22:07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파도의 말 2



                                 마종기 




답답해 바다에 나왔다. 

서글픔으로 감싸인 연약한 해안을 

파도가 대신해 몸 풀어준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다. 

해방된 빈 배도 떠나고 

시들어가는 바다의 파도만 남았다. 

해안을 조심해 걸으며 

작은 파도를 하나씩 줍는다. 

한기와 체념으로 말라버린

바다의 말을 줍는다. 



내 파도여, 

말하는 바다의 잎이여, 

이렇게 쉽게 사는 것이 

죄는 짓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파도의 여러 음성은 내내 

이승의 아쉬움을 말하고 있지만 

저녁은 우리 사이를 막고 덮어서 

내게 오던 파도가 

돌아서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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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_ 마종기

2016. 4. 21. 10:27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kr.clipart.me

 

 

 

도마뱀

 

 

                                                    마종기

 

 

  내가 사는 외국의 동네에는 도마뱀이 많이 산다.

10센티 정도의 길이가 동작 재빠르고 눈치도 빠르다.

가끔은 죽은 듯 오래 움직이지 않는 재주도 있다.

영리한 이 도마뱀을 잡으면 잡힌 부분을 스스로 쉽게

끊어버리고 도망간다. 짧게 꼬리는 잡으면 그 꼬리를 버리고,

길게 잡아도 몸의 반쯤만 한 꼬리까리 포기하고 도망쳐버린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꼬리 잘린 도마뱀을 본 적이 없다.

그런 도마뱀은 숨어서만 사는 것일까.

아니면 요술같이 새 꼬리가 금세 자라나는 것일까.

 

 

  내가 도마뱀의 끊어진 꼬리를 두 개나 가지게 된 날 밤,

나는 내 머리가 없는 것을 알았다.

처음 가졌던, 내 아버지가 주신 머리가 없는 것을 알았다.

고국의 친구가 그랬을까, 하느님같이 큰 손이 그랬을까.

머리를 잘 세워 생각을 옳게 고쳐주려고 내 머리를 잡았던 것인가.

나는 귀찮은 참견이 싫어 내 머리를 끊어주고 도망치고 말았던가.

머리 없는 몸뚱이와 사지만으로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숨어사는 도마뱀. 가끔은 내 머리가 그리워진다.

잘려나간 내 머리는 지금쯤,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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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_ 마종기

2016. 4. 19. 12:0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brunch.co.kr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마종기

 

 

오랫동안 별을 싫어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지

너무나 멀리 있는 현실의 바깥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안쓰러움이 싫었다

 

 

외로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북부 산맥의 높은

한밤에 만난 별들은 밝고 크고 수려했다

손이 담길 것 같이 가까운 은하수 속에서 편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 맑은 별들의 숨소리도 정다웠다

 

 

사람만이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별을 볼 수 있었던 옛날에는 아무데서나

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더 이상 별을 믿지 않고

희망에서도 등을 돌리고 산다

 

 

그 여름 얼마 동안 밤새껏

착하고 신기한 별밭을 보다가 나는 문득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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