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_ 김경미

2016. 6. 13. 16:20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 t9t9.com>




수첩



                                         김경미




도장을 어디에 두었는지 계약서를 어디다 두었는지 


구름을 어디다 띄웠는지 유리창을 어디다 달았는지 


적어놓지 않으면 다 잊어버린다


손바닥에 적기를 잊어버려 

연인도 바다도 다 그냥 지나쳤다 

발꿈치에라도 적었어야 했는데 새 구두가 

약국도 그냥 지나쳤다 


시간도 적는 걸 잊자 한 달 내내 

양파가 짓물렀다 

토끼똥이 한가득씩 어깨로 쏟아졌다 


때론 살아 있다는 것도 깜박 잊어버려 

살지 않기도 한다


다만 슬픔만은 어디에 적어두지 않아도 

목공소 같은 몇만 번의 저녁과 

갓 낳은 계란 같은 

눈물 자국을 

어디에도 남기고 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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