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9. 23:09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개꿈
- 친구 김치수의 부음을 들은 뒤
마종기
가까운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 듣고
서둘러 문상 가는 길에 길을 잃었다.
헤매 다니다가 날이 어느새 어둡고
캄캄 칠흑 같은 밤에 길도 안 보이는데
풀 죽어 내 쪽으로 오는 다른 친구를 만났다.
좋은 글을 쓰는 말수 적은 이 친구는
문상 대신 배를 타고 이민을 간단다.
그러고 보니 어깨에 가방을 지고 있다.
한밤에 더구나 비까지 내리는 이 시간에
어디로 왜 이민을 가느냐고 막아섰더니
친구들 하나 둘 죽고 돌아가며 아파서
가슴이 시려 살기가 힘들어서 간단다.
목이 답답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개꿈 속에서 개 모습으로 한숨을 쉰다.
이민 가는 친구가 사라진 어두운 쪽에서
눈에 익은 대머리 한 사람이 다가온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그리운 내 아버지다.
반가운 아버지는 나를 보자 매를 내리신다.
젋었던 날 자주 맞았던 그 대나무 담뱃대로
반가운 마음 때문인가, 매가 아프지 않다.
잘 보이지 않는 아버지 얼굴이지만
밤새도록 매를 내려주셨으면 좋겠다.
친구 하나 살리지 못하는 네가 무슨 의사냐,
이민 가려는 가까운 이를 말리지도 못하는 게
무슨 벗이고 무슨 시인이더냐.
아버지 말씀이 매보다 더 아프고 슬프다.
매를 맞아도 아프지 않고 춥기만 하다.
어느 틈에 아버지도 안 보이고 친구도 없고
여기가 어디쯤인지 생각해보아도 모르겠다.
모두가 떠난 것인가, 답답해 소리쳐본다.
귀가 없어진 것일까, 내게는 들리지 않는다.
어릴 때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
어머니는 키가 자란다고 위로해주셨는데
그게 사랑 안의 개꿈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어머니가 안 계셔서인지
요즘은 꿈을 꾸면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만나는 사람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개꿈도 많이 늙고 힘이 빠져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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