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3. 20:16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나는야 세컨드 5 - 우리들의 리그
김경미
세상은 단지 두 집안으로 나뉜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박찬호-마이너리그 때는 외로웠어요 혼자
라는 생각에(마이너리그에는 사람수도 훨씬
많은데......)
마이너리그 사람들은 사소한 모욕엘수록
목숨껏 화를 낸다
요즘 시 안 쓰나봐요, 안부를 물으면, 속으로
경멸한다. 천한 것들. 밥 먹는 것 못 봤다고 요즘 통 식사
안 하시나봐요 하다니 청탁이 없다고 시인이......
......열등감만한 무기가 어디 있으랴
일 다녀보면 메이저리그의 수위 아저씨는
마이너리그의 사장님보다 더 무섭고 당당하다
미국인 선생을 위해 영어학원에서는 이름은 간다
아이 엠 톰 유 아 린다
꽃일수록 서양풍으로 처신해야 한다 그래도
마이너리그의 의자 수는 소파
메이저리그의 의자 수는 못을 위안하지만
나라가 토끼 형상이라
우리는 유난히 눈들이 빨갈까 지구는
어디나 그럴까 우리가 아무래도 유난할까
덤으로 마음도 늘 메이저로 마이너로 나뉜다
거기서는 항상 먼지가 붕새를 쪼아 죽인곤 한다
- 김경미 시집, "쉿, 나의 세컨드는" 중
마음의 뿌리가 흔들릴수록 열등감에 근거한, 알량한
자존심은 더욱 견고해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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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9. 02:4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나는야 세컨드
김경미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 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 번째,
첫 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 이 아니라 늘 다음, 인
언제나 나중, 인 홍길동 같은 서자, 인 변방, 인
부적합, 인 그러니까 결국 꼴지,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서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모두가 퍼스트가 되고 하는 싶어하는데, 세컨드라.
퍼스트가 가지는, 자신의 자리가 언젠가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 부단한 노력으로 자리를 지켜야하는 고단함, 을 생각한다면 세컨드도, 괜찮지 않을까.
세컨드라 함은 세상의 모든 것이, 모든 상황이 나만을 중심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 시대의 이기적이고 팍팍한 개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보내는,
역설적인 단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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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9. 00:2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무정함'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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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20. 21:12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들은 시를 읽지 않았다. 시에 숨겨진 비유와 대조, 은유와 같은 법칙을 발견하고 분석했으며, 한 단어에 특정 의미를 부여했다.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시를 음미하는지, 아무도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난, 단지 시는 구절에 부여된 특정한 의미들을 외워야만 이해되는 이상한 나라의 글이라 생각했다.
25살, 실연을 당하고서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때야 비로소 시가 읽혀지기 시작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내 가슴팍에 와 닿았고, 하루종일 읊조리기도 했다. 간혹 시를 읽다가 뜨거운 눈물이 뺨을 따라 흐르기도 했다. 아픔을 통해 시를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좋은 시들을 찾아다니면서 읽었다. 시를 읽으면서 몽상가 기질이 늘긴 했지만, 삶의 소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몇 주전,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내려가는 길 벽면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적혔있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이 구절이 그냥 가슴 한켠에 고이 들어왔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가슴 속 소외받는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나를 흔들었다. 하염없이 지하철 보호유리에 비쳐진 나를 바라봤다.
난, 아직도 시를 알지 못한다. 잘 이해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시를 읽는다. 왜냐고, 그냥 좋으니까. 바쁘단 핑계로 시를 읽지 않았는데, 주말에 서점 가서 시집이나 한 권 사야겠다. 서서히 다가오는 포근한 봄과 함께, 시 한편 읽으며 잠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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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7. 20:06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깊은물
도종환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술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의 시냇가 여울을
#깊어지고 싶었다.
누군가 내 삶 가운데 들어와 마구 흔들어도 중심을 잃지 않을만큼의 깊음.
#무거워지고 싶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쉬이 들썩거리지 않은 마음의 무거움.
그리하여 모든 것을 넉넉히 바라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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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1. 21:0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첫날밤
마종기
일시 귀국을 마치고 돌아온 첫날밤,
지구 반바퀴의 시차 때문이었겠지만
새벽 세시에 잠이 깨었다.
밖에는 늦봄의 빗소리 들리고
다시 잠들지 못 하는 몇 시간,
밤이 어둡고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내일 당장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이제는 그만 끝내고 싶다는,
늙어가는 내 희망을 짓눌렀다.
그랬었다, 내가 처음 외국에 도착했던
삼십 년 전 밤에도 비가 왔었다.
사정 없는 외국의 폭우가 무서워
젊은 서글픔들이 오금도 펴보지 못하고
어두운 진창 속에 던져 버려졌었다.
그렇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당신을 포기하던 첫날밤에도
나는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술을 마셨다.
시간이 타고 있는 불 속에 뛰어들어야
내 불을 끌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화상의 상처를 다 가릴 수는 없었지만
이제는 맨 마지막 장을 뒤집어야 할 때,
푸르던 희망은 창밖으로 날아가고
시차를 넘어서는 한 사내의 행방을 찾아서-
# 단돈 90만원 들고 대구로 올라갔다. 월 15만원인 첫 자취방에서 첫 날밤, 가을 스산함이 꺼질 수 없었던 외로움을 불태워 홀로 울음을 삼켰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그 때의 아픔들이 되살아나 시에서 한 동안 눈을 뗄수 없었다. 첫 날밤, 나 또한 잠들었다 깨기를 몇 번, 다시 잠들지 못하는 시간, 모든 것이 멈춘 듯 했고 그 모를 무거움이 내 몸을 짓눌렀다.
# 탄자니아, 먼 이국땅에서 사역의 고단함과 일상의 무료함이 엄습했을 때, 이 시를 꺼내들어 읊조렸다. 내일 당장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이제는 그만 끝내고 싶다는. 단어 하나 하나가 가슴팍을 쳤고, 그 울림은 날 잠 못들게 했다.
강_황인숙 (0) | 2014.0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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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17. 12:00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_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것이다.
#1 빗장을 열어 마음 한 켠 고이 내주었던 녀석에게 속내를 비췄을 때, '지금은 아니예요'란 말이 내게 정면으로 들이쳤다. 난 울지 않았다. 그저 내 서투름을 책망했었다. 섣부른 나의 행동을 몹시 후회했었다.
# 2 '거절'당했다는 현실을 직면했을 때, 난 과감히 감정의 문을 열어 젖혔다. 허나, 남자이기에 꺼이꺼이 목을 놓을 수만은 없었다. 그저 몇 방울의 눈물만 뜨겁게 흘려보냈다.
강_황인숙 (0) | 2014.0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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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물_도종환 (0) | 2012.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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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가졌는가 (0) | 2012.05.11 |
2012. 5. 11. 19:32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그대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하며
방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
"아니"라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군 시절 상명하복만이 존재하는 더러운 곳에서 지독한 고독이 날 엄습해 올 때, 모든 것들에 반기를 들며저항하고 싶었다. 고립된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평안을 얻고자 시를 읽었다.
나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내가 붙들 그 사람들은 존재하는가. 가슴 속 깊이 '가족'이란 두글자가 떠올랐다.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혼자 끙끙 앓아도 도와달라고 절대 말 못하는 자존심 강한 나를 묵묵히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는 맘 따뜻한 누나.그들이 있어 난, 행복했다. 1년의 타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아둥바둥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내게 큰 힘이 되어주는 것 또한 가족이다. 우리 가족을 만난 것이 축복이다. 참 감사하다.
강_황인숙 (0) | 2014.0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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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를 분석하지 않는다. 다만 읽을 뿐이다. (0) | 2013.03.20 |
깊은 물_도종환 (0) | 2012.10.27 |
첫날밤_마종기 (0) | 2012.09.11 |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0) | 2012.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