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의 사명 - 침묵 속에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다.

2013. 6. 8. 23:18 신앙/말씀 묵상(默想)



사명.

 

 

 

 분명한 진리가, 다수의 모함때문에 거짓에 가리어졌다. 그들이 조롱하는 그 모든 일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들이지만, 예수님는 아무 말로 하지 않으셨다. 그들을 정죄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능히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죄인구원'의 사명을 감당해내야 하기에 긴 침묵을 유지하셨다.

 

 

 

누가 뭐라고 지껄이든지 간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출처:http://hyukzak.tistory.com

 

 

 

 예수그리스도는 진정 '난 무익한 종이라, 나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고백하실 수 있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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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 -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013. 5. 24. 22:33 신앙/말씀 묵상(默想)

 

 

 

 

 

 

갈릴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리라.

 

마가복음 1:16~17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리라.

누가복음 5:27~28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편하고 쉬운 삶도 아니다.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말에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레위는 자신의 것을 다 내려 놓고 예수님을 따라간다.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로는 자신의 생계를 책임졌던 그물을 버렸다. 세리였던 레위는 그간 모아왔던 모든 재산을 버렸다. 어떠한 희생없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가능한가 말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자기를 철저히 부인해야 한다.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어떤 특정상황에서 한 번만 지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날마다, 우리는 십자가를 져야 한다. 나 또한 강조하고 가슴 속 깊이 되새기는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진정 삶으로 살아내기란 너무 어렵다. 하지만, 자신을 너무마 사랑하는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과 십자가는 남이 지기를 바라는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넘어지고, 깨지고, 죽을만큼 힘들어도,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 주신 그 분의 긍휼과 자비를 진정 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노력해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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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믿음 - 믿음의 대상은 누구이며, 그 내용은 무엇인가.

2013. 5. 17. 09:56 신앙/말씀 묵상(默想)

 

 구원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는 무조건 구원받을 것을 믿으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맹목적 믿음을 강조하면 비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는 비합리적인 종교로 비춰질 경향이 커진다.  더욱이 구원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에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초신자들에게 구원은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기본적 지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분명, 믿어야 할 대상이 있으며,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있다.

 

 

Q. 믿음이 대상은 누구인가.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16)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구약과 신약에 따라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분이다. 신약의 관점에서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과 똑같은 신적존재이시지만 사람의 몸으로 이땅에 오신 분이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 당하시고, 사흘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따르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이다.

 

 

 

Q. 무엇을 믿는가.

 

 기독교를 대표할 수 있는 핵심적인 두가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부활이다.

 

 

 

 # 십자가 죽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살리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4:9

 

 

 예수님십자가 죽음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며 그에 대한 심판을 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특성 중 하나인 공의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님를 내어주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부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며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롬 15: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롬 15:17  

 

 만약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별 반 다를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신 후 사흘만에 부활 하셨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썩거나 다시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 나신 것이다.

 

 

 부활에 대한 증거가 있을까.

 

 부활에 대한 증거는 바로, 빈 무덤이다. 예수님이 만약 부활하지 못했다면 분명 어딘가에 시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 아무도 예수님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숨겼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시체를 숨겼다고 가정하자. 그 제자들이 시체를 숨기고 '기독교'란 종교를 만들어 왜 평생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전하다가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단지, 기독교란 종교의 존속을 위해서일까. 아니,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 진리는 자신의 전 일생을 걸만큼 값지고 복된 것이었다.

 

 

 

 기독교는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종교이다. 못믿겠다면, 역사적 사실과 증거들을 모으고, 성경을 한 번 다 읽고 나서 다시 이야기 하자. 성경을 철저하게 읽어본다면 기독교가 진정한 구원의 길인 동시에, 이 세상의 밝힐 빛임을 분명 알 수 있을 것이다.

 

 

 

 

 믿기 힘들다면 한 번 성경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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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익한 종입니다.

2013. 4. 29. 23:45 신앙/선교(宣敎)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선교를 떠날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드렸던 고백이다. 복음전파의 명령은 하나님을 믿는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하나님 앞에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을 인정하며 고백했던 것이다.

 

 그 고백이, 지금 내 삶 가운데 드러나지 않는다. 내 의, 노력, 이성이 나를 지배한다. 누가 내 삶의 주인이란 말인가.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수직적인 주인과 종이길 원하진 않지만 내 삶을 내 것이라 착각하는 현재의 삶 가운데, 차라리 주인에 메인 종이길 원할 뿐이다. 하나님 앞에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두 손으로 내 두 눈과 귀를 가리고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변명한다. 목이 곧은 백성이라...

 

 오늘, 갑자기 가슴이 너무나 답답하다. 성령님의 탄식함이 깊게 느껴진다. 나를 보고 안타까워 하시며, 그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책망함이 아니다. 그 안타까움... 너무 깊숙히 전달해져 온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 앞에 다시 바로 서겠습니다. 무익한 종으로 주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을 첫 마음 회복시켜주시고, 약자를 위해 함께 하겠다던 그 고백을 삶으로 살아낸 용기 허락하시옵소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 갚을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고백드립니다. 내 삶 온전히 이끌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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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에 대한 단상

2013. 3. 8. 19:59 신앙/말씀 묵상(默想)

 

 

 

                              출처: http://www.rantsfromamadman.com/

 

 

 

 한 청년이 날마다 부르짖는다. "하나님. 내게 비전을 보여주십시요!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에 대해 부르짖는 건 당연하다. 허나, 그 청년은 기도의 자리에서만 열정적일 뿐, 20대 청년으로서 세상에 나아 갈 아무런 준비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듣고 비전을 보여줬다 하자. 정작 그 청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성경에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은 믿음의 조상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갑자기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다. 요셉이 단번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는가. 절대, 아니다. 그는 형들의 시샘으로 인해 애굽의 노예로 시위대장 보디발 집에 팔려갔다. 삶을 통해 그의 성실함과 하나님을 동행하심을 드러냄으로써, 보디발 집의 가정총무가 된다. 그는 그 집안의 대소사를 다 관장하게 된다. 하나의 가정을 관리하긴 했지만, 이 때부터 실제적 업무수행을 통해 애굽 총리가 되기 위한 역량들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절대, 한 순간에 애굽총리가 된 것이 아니다.  

 

 

 비전은 단답형 주관식처럼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 될 수 없다. 비전은 이야기. 삶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야기의 결말부분에 가서야 진정한 그분의 목적을 알 수 있다. 우리를 부르신 본질적인 목적은 다 같으나 어떻게 사용 하시는가는 각자의 은사와 기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배들의 경험이나 조언은 단지 주님이 나를 향한 뜻은 알아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도구로만 사용하고, 구체적인 비전을 찾아가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만 부르짖지 말고, 성경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동시에 자신의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실제적인 준비도  해야 한다. 그 분은 조용히 지켜보시다가 하나님의 때에 정확하게 당신을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을 보는 관점은 다르지만 지켜보고 쓴다는 점은 같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라. 그리고 철저히 준비하라. 그러면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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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찾은 리더쉽 _ 지도자 모세의 위대함.

2013. 3. 3. 20:28 신앙/말씀 묵상(默想)

 

 

 

 

 대한민국의 첫 여성 지도자,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전 남성들과는 다른 여성리더쉽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정부 구성원 간의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평등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며, 포용상생을 근간으로 하는 리더쉽을 발휘해주길 바랐다. 지난 5년간 전혀 소통을 찾아볼 수 없었던 이명박 정부의 독단적인 행보 때문이라 생각한다. 허나, 박근혜 정부의 밀봉인사만 놓고 보더라도, 그녀 또한 전혀 '소통'의 실마리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정부 초기부터 온갖잡음이 다 들려온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지도자의 리더쉽이 그리운 때다. 그 아쉬움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도자의 위대한 리더쉽을 통해 달래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인물로 민족의 지도자. 모세다.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위대함은 출애굽에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전 과정에서 드러난다. 원래 모세는 동족 히브리 사람이 애굽사람에게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순간적인 충동으로 인해 애굽사람을 쳐 죽일정도로, 다혈질이었다. 그리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40년 광야 생활을 허락하셨다. 모세는 광야의 삶을 통해 완악한 백성들을 품을 수 있는 온유한 성품으로 거듭난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이 지은 죄에 대해 적전인 책임을 지고 하나님앞에 나아간 사람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증거판을 받기 위해 시내산을 올라갔을 때, 백성들은 모세가 조금 늦어지는 것을 염려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신으로 규정해버렸다. 이에 하나님은 크게 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겠다 말씀하신다. 모세는 하나님께 그 노를 거두실 것을 호소하여 한 번의 위기는 넘겼다. 허나,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관영하여, 모세 또한 그저 바라볼 수만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방자한 죄로 삼천명 가량이 죽임을 당한다. 하나님의 더 큰 화가 미칠까 화여 모세는 하나님께 속죄하러 올라간다. 그는 백성들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건 협상을 시도한다.

 

 

 

 

 

출애굽기 32장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데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지워 버려 주옵소서

 

 

 

 

 

 과연 어떠한 지도자가 자신의 삶을 내 쳐버리면서,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려 할까. 난, 아직까지 모세와 같은 지도자의 위대함을 보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춥애굽을 위한 지도자로 세우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함부로 쓰시지 않는다. 하나님도 보시고 사람을 쓰신다. 다만, 사람과 차이점은 사람을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다. 히브리 동족에 대한 민족애를 보셨고, 광야 40년을 통해 낮아진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을 보셨던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받고자 하면, 스스로 겸비되어 있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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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선교 대표 후원자 세우기(중보기도, 문서관리, 재정관리)

2013. 3. 1. 18:07 신앙/선교(宣敎)

 

 

 

 

 

 

 단기선교사는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재정관리, 문서관리, 중보기도를 담당해 줄 대표 후원자를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다보면, 재정정리나 문서관리에 소홀해 지거나 미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업무분담을 통해 일의 효율을 높일 뿐 아니라 후원자들에게 선교에 간접적으로 참여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각각의 후원자가 해야 할 업무에 대하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중보기도 후원자

 

 정기적으로 선교사와 연락해서 기도가 필요한 제목들이 없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선교사가 부탁한 기도제목이 있다면 선교사 지인들과 소속 교회, 소속선교단체에 전달해서 같이 기도해주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출처: http://cfs5.blog.daum.net/

 

 

2. 문서관리자

 

 개발도상국과 같이 사회적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은 인터넷 네트워크 환경도 안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메일을 통해 문서를 직접 보내면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기도편지를 작성해서 일단 문서관리자 한 명에게만 전송합니다. 문서관리자는 단기선교사가 보내준 기도편지를 선교사 지인들에게 전달합니다. 전달할 때는 선교사 근화에 대한 간략한 코멘트를 적어 전달하는 것이 보기에 좋습니다. 소속교회 청년부 담임목사님, 청년부 선교국장, 파송단체에게는 필히 전달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청년부 담임목사님께는 직접 프린터로 출력해서 드리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소속교회 공동체 사람들도 선교사 기도편지를 볼 수 있도록 공동체 홈페이지에도 게재해야 합니다.

 

 

 참고로, 단기선교사는 최소 2달에 한 번은 기도편지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편지는 현재 선교사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 뿐 아니라 선교보고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두 가지 내용은 합해서 써야합니다. ‘~로 끝나는 글체는 다소 가벼움을 드러낼 수 있으므로 ‘~체를 쓰도록 합니다. 기도편지는 쓰는 것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는 후원자들이나 가족들에 대한 예의이므로, 귀찮더라도 정기적으로 쓰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출처: http://cfile4.uf.tistory.com

 

 

 

3. 재정 관리자

 

 매달 통장정리를 통해 입출내역을 확인하고, 단기선교사가 현지에서 주로 사용하는 통장으로 돈을 모으는 것이 좋습니다. 주로 사용하는 통장으로 돈을 입금할 때는 누구의 후원금인지 명확하게 기재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단기 선교사가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후원통장에서 사용하면 됩니다. 현금을 인출해서 사용하면 거스름돈을 처리하는데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재정관리자 재정적 여유가 있다면 선 지출하고 후원통장에서 재정관리자 계좌로 사용한 금액만큼 이체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후원재정에 관해서는 타인에서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재정에 관한 모든 문제는 선교사와 재정 관리자 사이에서 처리해야 하며, 부득이한 경우 선교적 마인드를 가진 교역자나 지인들에게 재정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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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기도편지 작성에 관하여.

2013. 2. 27. 12:41 신앙/선교(宣敎)

기도편지 1.pdf

기도편지 2.pdf

 

 

 

선교사가 정기적으로 해야할 업무 중 하나는 기도편지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기도편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교사가 처한 상황에서 필요한 기도제목들을 공유함으로써 중보기도를 받기 위함입니다. 이와 더불어 기도편지를 통해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어떻게 사역하고 생활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기적으로 기도편지를 쓴다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기도편지를 보내는 것은 선교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후원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므로 의무감을 가지고 해야할 업무입니다.   

 

 

 

 

 

 

어떻게 기도편지를 쓸것인가.

 

 

 

 

 

 

 

 

1. 기도편지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

 

  기도 편지쓰는 방법은 필자가 탄자니아 선교 1년간 써왔던 기도편지를 바탕으로 알려드림을 인지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편지의 기본적인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사역보고와 기도부탁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도편지에는 두 가지 내용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문체는 사역보고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요'보다는 '~다'로 쓰는 것이 내용의 진중함 더해준다고 생각됩니다. 기도제목은 구체적으로 적어서 기도 후원자들에게 사역지 상황을 알리는 기도가 필요함을 각인시켜야 합니다.   

 

 

 

 

 

 2. 기도편지 순서

 

  저는 일반적으로 인사말(사역지에 흥미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작성), 사역보고, 일상생활, 기도제목 순으로 작성했습니다. 임의적으로 순서를 바꿔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하셔야 할 부분은, 일상 생활에 관한 내용을 기도편지 초반부에 쓸 경우 후반부의 사역보고 부분의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일생생활에 관한 것보다는 사역보고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사역보고를 초반부에 적어야 합니다. 사역도 분류해서 보고하면 가독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는 제 기도편지의 인사말이니 참고하시며 좋을 듯 합니다.

 

 

 

 

 

 

 

 

 3. 기타

 

  기도편지에 사진을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을 넣을 때는 사진의 내용이 흐려지지 않을 만큼 사진 용량을 최대한 줄여서 문서에 삽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면 인터넷 네트워크 환경이 느린 국가에서 용량이 큰 문서를 보내려면 장시간이 걸립니다. 따라서 전송시간을 줄이기위해서는 사진 용량을 최대한으로 줄이기는 것이 좋습니다. 사진 줄이는 프로그램은 포토샵, 알집, 포토스케이프 등 있습니다.

 

 

 문서 편집 프로그램 Word로 작성해서 편집까지 다 마무리 한 다음, 최종적으로 PDF파일로 저장하는 것이 좋습니다. PDF 파일로 저장하면 문서에 포함된 글이나 사진이 고정되어 버리기 때문에 읽기에 편할 뿐더러 문서 용량도 줄어듭니다.

 

 

 

 

 

 선교사에게 기도편지를 보내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해야 할 업무임을 다시 한 번 강조드립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을 변명삼아, 기도편지작성을 미루지 마시고 최소 2달에 한 번은 후원자들에게 기도편지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선교지는 다른 어떤 곳보다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곳입니다. 기도편지를 통해 기도제목을 공유함으로써 더욱 힘 있는 사역이 되시길 바랍니다. 

 

 

 

P.S 기도편지 두개를 첨부하오니, 필요하신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상단에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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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선교 떠나기 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2013. 2. 26. 16:49 신앙/선교(宣敎)

Soli Deo Gloria

 

 

 

 

 

 선교사는 선교지에 거주하는 기간에 따라 크게 단기선교사와 장기선교사로 나뉩니다. 일정기간을 헌신해서 선교지에서 주 사역보다는 장기 선교사의 보조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단기전교사라 일컫습니다. 선교단체마다 단기선교사를 정의하는 선교기간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최소 2년 이상 사역하시는 분들을 단기선교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장기선교사는 선교 작정을 하신 후 선교지에 전적으로 삶을 헌신하신 분들입니다. 최소 한 번의 안식년은 거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2011년 2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약 1년동안 탄자니아에서 학교 행정 및 교육을 담당하는 선교사로 활동했습니다. 흔히, 전문 선교단체에서는 3개월에서 최대 1년간 선교하는 사람들을 인턴선교사라고 부릅니다. 왜냐면 1년동안 현지 적응과 현지어 습득을 하면서 동시에 사역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체적으로 인턴 선교사는 주체적으로 사역을 이끌어 가지 않습니다. 현지의 문화적 이해 없이 사역을 했을 경우,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문제만 일으킬 수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교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은 선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년중 첫 해는 현지적응과 문화이해, 그리고 현지어를 배우는데 집중하면서 조금씩 사역을 하기 시작해서 두번째 해부터 사역의 질과 양을 높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단기 선교 떠나기 전 무엇을, 어떻게 준비 해야 할까요?

 

 

 

 

 

 

 

 

 

 

1. 기도와 말씀묵상은 필수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라는 말이 가장 보편적이고 흔한 조언이지만, 가장 필요한 것들 중 하나입니다. 평상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뜻을 묻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영적 전쟁이 치열한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뜻을 분별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각자 생각한 나름대로의 행동들이 선교지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날마다 하나님앞에 잠잠히 나아가 그 뜻을 분별하며, 말씀 묵상 가운데 진리의 뜻을 발견하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한 순간에 기도의 문이 펑 뚫리고, 영적인 눈이 뜨여 말씀가운데 숨겨진 보물들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어리석은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시길 바랍니다.

 

 

 

 

2. 중보기도와 재정 후원자를 세워야 합니다.

 

 절대 선교사 혼자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보기도는 선교사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힘의 원동력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타개할 힘은 선교사 개인의 기도에 중보기도의 힘이 더해져서 생겨납니다. 따라서 중보기도 후원자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파송하는 단체에 따라서 다르지만, 어떤 선교사는 전체 사역을 개인후원만으로 감당하기도 하고, 어떤 선교사는 파송단체에서 일정금액 지원을 받고 더 필요한 재정은 개인후원으로 충당됩니다. 선교지에서 후원된 재정은 사역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 필요만 모든 부분에 사용됩니다. 개인 후원만으로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선교사는 선교를 떠나기 전에 믿음의 동역자들에게 사역내용을 충분히 설명한 다음, 후원자 결단을 요청해야 합니다.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후원여부를 물어보시지 말길 바랍니다. 직접만나서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재정 후원을 부탁하는 것이 부담되겠지만, 이 과정도 선교의 한 부분이라고 받아 들여야합니다. 그리고 재정적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니, 예비 재정 후원자를 만나러 가기전에는 기도로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두 사람간의 만남 가운데 성령님이 인도하시어 감정이 상하거나 서로 의가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3. 사역지에 맞는 실제적 준비를 해야합니다.

 

 생활과 사역에 필요한 개인적인 물품에 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물품을 준비하기 전에, 현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과 연락해서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선교사님을 조금 귀찮게 하더라도, 챙겨할 물품들이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개인적 물품을 준비할 때는 실제적 필요보다 조금 적게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 가겠다는 욕심을 가지면, 준비할 것이 끝도 없게됩니다. 준비하다가 지치게 됩니다. 따라서 나그네의 마음으로 가져가야 할지 말지 고민되는 것들은 과감히 놔두고 가면 됩니다. 사역에 필요한 물품은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여유분을 들고가면 좋습니다. 예들 들어 분필을 구하지 힘든 지역에서 판서를 해야하는 경우라면, 분필을 넉넉히 챙겨가는 것이 좋습니다. 분필 지우개도 함께 챙겨가면 더욱 좋습니다.

 

 여건과 상황이 된다면, 현지에서 사역에 필요한 언어공부를 미리 해두면 좋습니다. 1년을 헌신한 선교사라면, 현지어 습득과 문화 적응하는데 최소 2개월은 할애해야 됩니다. 만약 한국에서 언어를 배워가면, 현지 적응을 더욱 빠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 현지 상황과 필요에 따라 예방접종을 해야 합니다.

 

  사역하게 될 국가에서 요구하는 예방접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간 탄자니아는 노락색 황열병 접종 확인서가 없으면 입국자체가 안 됐습니다. 황열별 예방 접종은 필수였습니다. 현지 상황과 필요 따라 파상풍, A형간염, 장티푸스 등을 추가적으로 접종하시면 됩니다. 건강해야 사역도 활발히 할 수 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무조건 기도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 물품 준비나 언어를 배우는 것에만 집중해서 영적 훈련을 소홀이 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됩니다. 선교를 작정한 그 순간부터 선교는 시작된 것입니다. 따라서 주어진 시간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새벽기도에 나아가 하나님 뜻을 이해하고 분별해야 하며 낮에는 실제적 준비에 시간을 집중적으로 사용해야 됩니다. 올바른 시간 사용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드려지도록, 개인적 노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선교를 준비하시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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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2013. 2. 24. 20:32 신앙/기도(祈禱)

Soli Deo Gloria

 

출처: www.christianmutual.org

 

 

 

중보기도는 어떤 사람이나 단체 또는 국가를 두고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에 있어, 기목제목 당사자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엎드려 구해야 함은 두말 할 것 없습니다. 여기에 여러 사람들의 중보 기도는 개인 기도의 힘을 배가 시킵니다. 중보기도는 전투에서 후방 지원사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중도기도의 힘을 확인 할 수 있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관영(貫盈)됨을 보시고,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롯을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내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 보내졌더라 (창 20:29)

 

 

 

 아브람함을 생각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 기도한 것을 기억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어집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조카, 롯이 죄악의 땅에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로 무사히 살아나오기를 간절히 중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 간절한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이외에도 중보기도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성경구절들은 많습니다.

 

 허나, 포스팅의 목적은 저를 위한 중보기도를 요청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중보기도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제 기도제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주제별로 나누어 적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그를 방문한 크리스챤은 한 번쯤 기도제목을 보고 기도 해주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선교지에서, 또한 한국에 돌아와서 2012년 한 해동안 저를 위한 중보기도의 힘을 경험했습니다. 기도하는 동역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새삼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제 이름은 강상율이며, 대학원 석사 1기 과정에 있습니다.

 

 

 

1 비전

 

   1) 민족을 위해 금식하며 울었던 느헤미야의 눈물을 내게도 주소서

   2) 솔로몬의 지혜를 내게도 주소서

   3) 예수님의 기도의 습관을 배워 날마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4) 요셉과 같이 주님이 항상 동행하시어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소서

   5) 엘리야의 기도의 능력을 허락하소서

   6) 다윗이 아둘람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과 동거동락하며 아픔을 공유하며 이끌었던

       리더쉽을 주시옵소서

   7) 에스라의 말씀을 해석하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2 대학원

 

   1) 대학원 진학에 관한 명확한 마음과 뚜렷한 의지를 주시도록

   2) 한국 - 탄자니아 프로젝트를 통해 제 3세계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3) 논문 주제를 미래를 설계할 방향에 맞게 정할 수 있도록

   4) 하나님의 돕는 손길로써 대학원 등록금 채워주시도록

   5) 나보다 어린 선배를 잘 섬길 수 있도록

   6)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 연구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3 배우자

 

  1)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줄 아는 자매

  2) 선교에 헌신 가능한 자매

  3)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진정으로 모실 수 있는 자매

  4) 현명한 자매로 나의 어리석음과 고집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자매

  5)  사랑을 품은 자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어른들을 공경할 수 있는 자매

  6) 아름다운(호감가는) 외모를 가진 자매

  7) 자녀교육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드릴 수 있는 자매

 

 

 

4 결혼

 

  1) 결혼 축의금을 온전히 이웃을 돕는데 사용할 수 있게 하옵소서

  2) 신혼여행을 우리 부부만의 행복한 시간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5 블로그

 

   1) 블로그 글들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수 있도록

   2) 유익한 정보 공유를 통해 소통하게 하시고, 블로그의 영향력이 날로 커질 수 있도록

 

 

 

Soli Deo Gloria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로 중보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필요한 기도제목이 있으시면 아래 댓글에 성함기도제목을 남겨주시길 바란다.

저도 함께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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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나를 이끄신 하나님 말씀 & 찬양.

2013. 2. 20. 21:05 신앙/말씀 묵상(默想)

 

 

 

 29년 인생을 살면서, 삶의 길목에서 간절히 붙들었던 몇 가지 말씀들이 있다. 하나님 뜻을 묻고자 기도로 나아가면, 그 간 묵상했던 말씀 중 떠오르는 구절들이 있다. 어떤 때는 성경을 묵상하는 가운데 강하게 감동주시는 말씀들이 있다. 기도하자마자 그러한 말씀이 떠오르거나, 성경에서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하나님 뜻을 기다리다 지칠 때쯤, 말씀을 받은 적이 많았다. 받은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동은 더해지고, 말씀에 대한 확신은 더욱 커졌다. 개인 신앙사를 돌아보고자 간략하게 정리한다. 먼저, 선교지에서 내가 붙들었던 말씀과 찬양이다.

 

 

 

 

 

 

 

 

#1 동행

 

 

 

 

 

 

 

             

 

 

 

                                        "제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

 

 

 

 

 

 

 

 

 

 

 

 

 

 

 

 

 

 

 2011년 탄자니아 선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자주 물었던 질문이다.  하나님은 오랜 시간 내게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고, 일방적인 질문만 계속됐다. 그러던 중 생애 처음으로 성경일독을 하게 되면서 미가서 말씀을 읽게됐다. 그 때 6장 6~8절 말씀에서 강한 감동이 왔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이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말씀을 붙들고 근 하루동안 묵상했다. 말씀을 묵상할수록 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 동안 선교의 주체를 망각한 내가 너무 교만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내가 없어도 당신 뜻대로 선교를 성공적으로 진행 하실 수 있다. 또한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부르셔서 일하실 수 있다. 그런데, 나를 동역자로 불러 주신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기회를 내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지 않았다. 당신과 함께 걸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길 간절히 원하셨던 것이다.

 

 

 

 

 

 

 

 

 

 

 

                    

 

 

#2 섬김

 

  

 2012년 7월 중순, 탄자니아에서 어느 토요일

 다음주 월요일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아직 시험 문제를 다 출제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전기가 언제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기말고사 시험지 문제를 타이핑했다. 전기가 끊어지면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나가야 했기에, 분주히 업무를 해 나갔다. 시내까지 가는데만 30분이 걸리며, 시내 복사집에 가더라도 손님들이 많으면 20~30분 기다려야 한다. 고로, 전기가 들어오는 동안 모든 컴퓨터 작업을 마치고 프린터해야만 했다. 짜증난 어투로 하나님께 대들 듯 물었다.

 

 

 

 

 

 

 

 

 

 

 

 

 

 

 

 

 

 

 

 

 

 

 

 

 

 

 

 

 

 

 

 "하나님, 오늘 토요일인데 쉬지도 못하고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일해야 합니까?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혼자 아둥바둥거리며 하니까 많이 지칩니다..."

 

 

 

 

 

 

 

 

 

 

 

 

 

 

 

 

 

 

 

 

 

 

 

 

 

 

 

 

 

 

 

 

 

 

 

 

 

 

 

 

 

 

 

 

 

 

 

 

혼자 씩씩거리며 일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조용히 물으셨다.

 

 

"상율아, 많이 지치지...?"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상율아,

 

만약 이름도 없이 아주 낮은 자리에서 나를 섬기라 하면,

 

그리할 수 있겠니?"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횡설 수설하다, 속마음을 내비췄다.

 

 

 

 

"저... 아직 대학교 공부도 못 마쳤고, 결혼도 못했고....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하나님 섬기고 싶습니다..."

 

 

 

 

 

 

 

 

 

 

 

 

 

 

 

 

 

 

 

 

 

 

 

 

 

 

 

 

 

 

 

 

 

 

 

 

 

 

 

 

 

 

 

 

 

 

다시 물으셨다

 

 

"이름도 빛도 없이 나만 바라보며 날 섬길 수 있겠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질문이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교만을 드러나게 했고, 부끄러웠다.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웠다. 그러고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 동안 흐느꼈다. 5분쯤 흘렀을까.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하나님 아버지, 완악하고 교만한 저를 용서하시옵소서.

부르신 그 곳에서 아버지만을 섬기겠습니다.

그 어떠한 자리든지, 부르심에 감사함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2)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2)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가오리다 

이름 없이 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2)

 

 

 

 

 

 

 

 

 

 

 

 

 

 

 

 

 

 

 

 

 

 

흔히, 우리는 착각한다.

하나님이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을 좋아하실거라고.

 

 

아니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길 간절히 원하신다.

당신의 자녀된 우리를 원하신다.

 

 

다만 함께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뜻대로 행동해서 하나님보다 앞서 있거나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잠깐 서서, 천천히 숨을 고르자.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그의 발걸음에 맞춰  나아갈 준비를 하자.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곳을 함께 바라보며 그 분이 부르신 곳에서,

원하시는 대로 섬기면 된다. 

 

 

 

 

하나님과의 '동행', 이보다 더 아름답고 멋진 인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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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다.

2012. 12. 26. 16:48 신앙/기도(祈禱)

 

 

 

#1 새벽을, 깨우다.

 

 2012년을 거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새벽기도다. 종교를 떠나 이른 새벽 4:40분에 일어난다는 것은 나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며, 잠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본디 잠이 많은 사람인데, 인생의 앞 길을 열기 위해서 기도가 더욱 필요한 것 같았고,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 잠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5월 초부터 시작된 새벽녘 나 자신과의 싸움은 학기 내내 계속되었다. 특히, 추운 겨울엔 포근한 이불을 박차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지독한 게으름의 습관은 좀처럼 버리기 어려웠기에, 새벽녘 비몽사몽간 새벽기도 가야 하는 동기를 부여해야 했다. 이러한 스스로와의 긴 사투 과정을 통해 변화했다, 고 감히 말하겠다. 이젠, 무익한 종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적막한 새벽길을 투덜거리면서 걷지 않는다. 정말 감사하게도, 새벽기도는 내 삶의 일부이기에 찬양을 부르며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간다

 

 

 

 

 

 

 

 

 

 

 

 

#2 새벽기도를, 예찬하다

 

 

 새벽기도를 통해 스스로 삶의 변화를 느끼며,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만나는 많은 이들에게 새벽기도를 예찬하며, 권한다. 내가 그토록 새벽기도를 권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다.

 

  내겐 잠을 자는 시간에 대한 상한선이 있었다. 다음 날 일정에 지장받지 않을 만큼의 시간, 최소 6시간은 꼭 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했기에, 마무리 하지 못한 일 앞에서 다음 날 일정도 중요하다고 스스로 설득하며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학기에 5시 새벽기도를 다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이, 대학년 마지막 일년은 지독하게 살아야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학기를 시작했기에, 일찍 잠을 들 여유가 없었다. 밀려오는 과제와 스스로 부여한 일정량의 몫들을 마무리하면 거의 자정이거나, 자정을 넘겨야 했다. 내가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4시간 30분, 적으면 3~4시간이었다.

 

 

 

 

 

 

 

 

 

 

 

 

 

 

 

 

 

 

 

 

 

 

 

 

 

 

 

 

 

 

 

한계에 봉착했다.

 

 

 

 

 

 

 

 

 

 

 

 

 

 

 

 

 

 

 

 

 

 

 

 

 

 

 

 

 

 

 

 

 

 

 

 

 

 

 

 

 

 

 

 

 

 

 하지만 새벽기도, 공부 둘 다 포기 할 수 없었다.

 

한계를 넘어서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몸이 하나의 행동을 기억하여 하나의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21이 필요하다. 그리하며, 21일간 시간 효율성은 무시하기로 했다. 근 한달간 병든 닭처럼 조는 건 예삿일이었다. 한달이 지날 무렵, 중간고사를 준비할 때 2시간 잠을 자고 새벽기도를 가야 했다. 잠들기 전, 어떻게 2시간 자고 새벽기도를 가며, 2시간 자고서 내일 생활이 엉망이 될거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가지 말자고 되뇌며 잠들었다.

 

 

 

 

 

 

 

 

 

 

 

 

 

 

 

 

 

 

 

 

 

 

 

 

 

 

 

 

 

 

 

 

 

 

 

 

 

 

 

 

 

 

 

 

 

 

 나, 몸은 4시 40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잠에서 깼고, 짧은 시간 치열한 고민을 했다. 갈까, 말까. 한 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고, 반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옷을 챙겨입고 새벽기도를 갔다. 그 날, 하나님은 말씀 가운데 예상치 못한 은혜를 주셨고, 어느 때보다 뜨겁게 기도할 수 있었다. 또한 새벽기도 이후의 일정도 제정신으로 감당하였다. 

 

 

 

 

 

 

 

 

 

 

 

 

 

 

 

 

 

 

 

 

 

 

 

 

 

 

 

 

 

 

 

 

 

 

 

 

 

 

 

 

 

 

 

 

  그 날부로, 일정시간 잠을 자야 한다는 나만의 한계를 넘어섰다.

 

 

 

 

 

 

 

 

 

 

 

 

 

 

 

 

 

 

 

 

 

 

 

 

 

 

 

 

 

 

 

 둘째, 사용할 시간이 많아진다.  

 

  모든 사람에게 24시간은 주어지지만, 우리가 사용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자고 밥먹는 시간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잔일을 처리하는 시간을 빼면 실제 사용할 시간은 생각보다 적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시간이 많고 적음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은 잘 활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내게 절대적으로 주어지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 수록, 내가 사용하는 시간은 많아진다. 

 

 

 

 

 

 

 새벽기도를 다녀오면 오전 6시 30분에서 7시 사이다.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도서관에 도착하는 시간은 7시 30분 정도다. 첫 수업이 있다 하더라도 최소 1시간 20분 정도를 활용할 수 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직 1시간 20분을 잘 활용하진 못한다. 2013년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통해 활용해 볼 참이다.

 

 

 

 

 

 

 

 

 

 

 

 

 

 

 

 

 

 

 

 

 

 

 

 

 

 

 

 

 

 

 

 

 

 

 

 

 

 

 

 

 

 

 

 

 

 

 

 

 

 

 

 

 

 

 

 

 

 

 

 

 

 

 

 

 

 

 

 

 

 

 

 

 

 

 

 

 

 무엇보다,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명확하게 체험했다. 그 받은 은혜를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새벽녁, 간절히 부르짖었던 기도제목들 가운데 응답받는 횟수가 점점 늘어갔고, 기도할 제목들도 동시에 더 생겨났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게 되었다.

 

 


 또한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던 것이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 어떠한 육체적 한계, 능력의 한계에 대해 부딪혔을 때, 예전같으면 스스로를 비하하며 포기했겠지만 지금은 마음 속에서 한계를 극복하자는 의지오기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때때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다. 다시 해서 극복하면 되리라, 당차게 다짐한다.     

  

 

 

 

 

 

 

 

 

 

 

 

 

 

 

 

 

 

 

 

 

 

 

 

 

 

 

 

 

 

 

 

 

 

 

 

 

 

 

 

 

 

 

 

 

 

 

 

 

 

 

 

 

 

 

 

 

 

 

 

 

 

 

그리하여, 묻고 싶다.

 

 

 

 

 

 

 

 

 

 

 

 

 

 

 

 

 

 

 

 

 

 

 

 

 

 

 

 

 

 

 

 

 

 

 

 

 

 

 

 

 

 

 

 

 

 

 

 

 

 

 

 

 

 

 

 

 

 

 

 

 

 

 

 

새벽을 깨워 하루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 

 

감당할 수 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누리지 않으실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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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 갈렙

2012. 8. 6. 19:59 신앙/말씀 묵상(默想)

 

모세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각 지파별로 한 명씩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시했다.

 

 

"그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민 13:18상)"

 

 

 12명의 정탐꾼들이 사십 일 동안의 가나안을 살펴보고 돌아온다. 그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은 거주민은 삼키는 땅이며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 고 말한다. 그들은 가나안땅의 거대한 자손들을 보고 지레 겁먹고, 스스로 비하시켰다.

 

 

하지만,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생각 달랐다.

 

 

 "우리가 두루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14:7~8)"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관점은 확연하게 다르다. 그들은 가나안을 땅을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언급하지만, 여호수아과 갈렙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이야기 한다. 또한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어려움들을 보고 스스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호수와와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했다.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땅을 바라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 있었지만, 가나안 땅에 대해 악평했던 나머지 정탐꾼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음을 당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만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고난과 역경에 좌절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면 고난의 상황도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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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

2012. 7. 20. 10:48 신앙/말씀 묵상(默想)

Q.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무슨 나무에 올라갔을까?

   1. 떡갈나무               2. 돌무화과나무                3. 오동나무

 

 

 

 

 

 

 

 

 

 

 

 

 

 

 

 

 

 

 

 

 

 

 

 

정답 : 2. 돌무화과 나무

 

 

 

 

 

 

 

 

 

 

 

 

 

 

 

 

 

 

  성경을 알아가는데 문제에 따른 정답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문제를 맞춤으로써 성경상식은 늘어가겠지만 성경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성경교재들은 문제를 주고 일정한 답을 요구한다. 성경교재에 질문이 주어져 있더라도 본문을 직접 묵상함으로써 스스로 '왜'라는 의문을 품어야 하며, 그것이 신학적인 기준에 도전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의문은 가치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삭개오가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갔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할까? 본문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어떤 나무에 올라갔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삭개오가 왜 나무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나'를 생각해야 한다.

 

 

 

 

 

 

 

 

 

 

 

 

 

 

 

 

 

 

 

 

 

도대체 왜? 

 

 

 

 

 

 

 

 

 

 

 

 

 

 

 

 

 

 

 

 

 

 

1. 삭개오는 키가 작았다.

 눅 19:3에 보면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고 기록되어 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이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삭개오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높은 곳을 찾아야만 했다.

 

 

 

2, 삭개오는 세리였다.

 예수의 시대에 세리는 유대인이 외국 억압자로 여기는 로마 정부를 위해 일했기 때문에 특히 미움을 많이 받았다. 세리들은 대부분 정직하지 못했고, 세금에서 떼어낸 돈으로 자기 호주머니를 불렸다. 그들의 동포인 유대인들은 세리를 경멸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사전

 예수님 시대에 세리는 환영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날도 예수님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삭개오는 그곳에 가면 따가운 눈총과 경멸함을 받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곳에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즉, 삭개오는 육체적 약점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때문에 뽕나무위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기본적인 상식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기본적인 것을 바탕으로 시대적 상황과 본문속 인물들의 배경을 연관지어 생각함으로써 그들이 '' 그렇게 행동했는가, 말했는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은 온갖 보물이 숨겨진 탄광과 같다. 우리가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어떻게 파느냐에 따라 얻어지는 광물의 양과 질은 달라진다. 날마다 성경에서 값진 것들을 발견하면, 성경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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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2012. 7. 19. 12:34 신앙/말씀 묵상(默想)

 성경의 기록

성경은 1600년동안 40여명의 기자들에 쓰여졌다. BC 1500년에 모세가 창세기를 썼고, AD 100년에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썼다. 혹자는 욥기가 BC 2000년에 쓰여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성경전체가 쓰여진 기간은 더욱 길어지게 된다.  성경기자들은 하나님께서 직접말씀을 받아 쓰기도 했고,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전해 들어 썼다. 성경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으로...(딤후 3:16 상)"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각 권을 쓴 기자들의 성격과 특성이 성경에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공관복음(共觀) 이라 일컫어지는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은 기자들은 각각 다르지만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공통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태복음을 쓴 마태는 세리였다. 세리의 특성에서 비롯된 논리정연함과 자료의 풍부함을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느낄수 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감수성과 문학적인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성경의 해석 

하지만, 성경일 읽고 해석 할때는 자신의 지식만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정학한 이해는 어떤 사람의 지적능력보다는 영적상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벧후 1:20~21절을 보면,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인  시몬 베드로는 어부였다. 베드로가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고 설교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이 그에게 이해 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을 읽기 전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다.

 

 

성경의 주제

성경을 압축해서 하나의 단어로 만든다면, 어떤 단어가 나올까?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5:39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책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 하신 부분은 다른 색 글자로 표시되어 있다. 위의 구절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이라 성경에서 다른색으로 표시되어 있거나 더 굵은 체로 쓰여져 있을 것이다.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경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다.   

  구약은 오실 예수그리스도 대한 예언이며, 신약은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증거와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예언에 대한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모든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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