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부르는 이름 _ 박 준

2018. 6. 23. 16:01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 http://www.10x10.co.kr>


여름에 부르는 이름 



                              박 



방에서 독재()했다

기침은 내가 억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방식이었다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팔리지 않는 광어를 

아예 관상용으로 키우던 술집이 있었다


그 집 광어 이름하고 

내 이름이 같았다 


대단한 사실은 아니지만

나는 나와 같은 이름의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벽면에서 난류를 

찾아내는 동안 주름이 늘었다


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여름에도 연애를 해야 한다


여름에도 별안간 어깨를 만져봐야 하고 

여름에도 라면을 끓여야 하고

여름에도 두통을 앓아야 하고

여름에도 잠을 자야 한다


잠, 

잠을 끌어당긴다 

선풍기 날개가 돈다


약풍과 수면장애 

강풍과 악몽 사이에서 


오래된 잠버릇이

당신의 궁금한 이름을 엎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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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_ 박 준

2018. 6. 16. 13:01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환절기 



                                     박  준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

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보면 살 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

도를 백도라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

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

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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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_ 박 준

2018. 6. 9. 09:03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눈을 감고 



                     박  준



눈을 감고 앓다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저는 한 번 잃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새이령 같은 

높은 고개들의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을 가진 도시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러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의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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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반달 _ 박 준

2018. 6. 2. 01:19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인천 반달 



                                박  준



혼자 앓는 열이 

적막했다


나와 수간(手簡)

길게 놓던 사람이 있었다


인천에서 양말 앞코의 

재봉 일을 하고 있는데


손이 달처럼 자주 붓는 것이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바람에 떠는 우리 집 철문 소리와 

당신의 재봉틀 소리가 

아주 비슷할 거라 적어 보냈다


학교를 졸업하면 

인천에 한번

놀러가보고 싶다고도 적었다


후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에 

흰 양말 몇 켤레를 접어 보내오고 

연락이 끊어졌


그때부터 눈에

반달이 자주 비쳤다


반은 희고 

반은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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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_ 박 준

2018. 5. 1. 23:19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  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로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가다 며칠은 먹

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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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x you _ Coldplay

2018. 4. 23. 20:52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Fix you 


                                          Coldplay



When you try your best but you don't succeed

When you get what you want but not what you need

When you feel so tired but you can't sleep 

Stuck in reverse


And the tears come streaming down your face

When you lose something you can't replace

When you love someone but it goes to waste

Could it be worse?


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And I will try to fix you 


And high up above or down below

When you're too in love to let it go 

But if you never try you'll never know

Just what you're worth


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And I will try to fix you 


Tears stream down your face 

when you lose something you cannot replace

Tears stream down your face

And I


Tears stream down your face

I promise you I will learn from my mistakes

Tears stream down your face

And I


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And I will try to fix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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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세상 _ 박 준

2018. 4. 7. 13:1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당신이라는 세상



                                         박 준



술잔에 입도 한번 못 대고 당신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 많

은 술을 왜 혼자 마셔야 하는지 몰라 한다. 이렇게 많은 술

을 마실 때면 나는 자식을 잃은 내 부모를 버리고 형제가 

없는 목사의 딸을 버리고 삼치 같은 생선을 잘 발라먹지

못하는 친구를 버린다 버리고 나서 생각한다



나는 빈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여백이 고맙다고, 청파에는 

골목이 많고 골목이 많아 가로등도 많고 가로등이 많아 밤

도 많다고, 조선낫 조선무 조선간장 조선대파처럼 조선이 

들어가는 이름치고 만만한 것은 하나 없다고, 북방의 굿

에는 옷()이 들고 남쪽의 굿에는 노래가 든다고



생각한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

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버릴 생각한 하는 것도 능사가 아

라는 생각도 한다



술이 깬다 그래도 당신은 나를 버리지 못한다 술이 깨고

나서 처음 바라본 당신의 얼굴이 온통 내 세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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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남한강 _ 박 준

2018. 3. 25. 17:53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문병

―남한강  



                                박 준



당신의 눈빛은 

나를 잘 헐게 만든다


아무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해서 수면(水面)은

새의 발자국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래된 물길들이 

산허리를 베는 저녁


강 건너 마을에 

불빛이 마른 몸을 기댄다


미열을 앓는

당신의 머리맡에는 


금방 앉았다 간다 하던 사람이 

사나흘씩 머물다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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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다 _ 박 준

2018. 3. 24. 19:48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박  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는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의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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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무의 말 _ 나희덕

2018. 3. 20. 21:37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어떤 나무의 말 


                               나희덕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 피우지는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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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부족한 저녁 _ 나희덕

2018. 3. 19. 22:06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무언가 부족한 저녁


                                            나희덕



여기에 앉아보고 저기에 앉아본다

컵에 물을 따르기도 하고 술을 따르기도 한다



누구와 있든 어디에 있든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저녁이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 저녁이다



저녁에 대한 이 욕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교차로에서, 시장에서, 골목길에서, 도서관에서, 동물원에서 

오래오래 서 있고 싶은 저녁이다



빛이 들어왔으면,

좀더 빛이 들어왔으면, 그러나 

남아 있는 음지만이 선명해지는 저녁이다



간절한 허기를 지닌다 한들

너무 밝은 자유는 허락받지 못한 영혼들이 

파닥거리며 모여드는 저녁이다



시멘트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검은 나방들, 

나방들이 날아오를 때마다 

눅눅한 날개 아래 붉은 겨드랑이가 보이는 저녁이다 



무언가, 아직 오지 않은 것, 

덤불 속에서 낯선 열매가 익어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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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독서목록

2018. 2. 1. 22:39 책과 글, 그리고 시/독서 목록

 

 

 

1월

1. 팀 켈러, 『팀 켈러의 일과 영성』, 최종훈 역, 두란노. 

2. 마틴 로이드 존스,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김은진 역, 지평서원. 

3. 존 파이퍼,  『믿음으로 사는 즐거움』, 차성구 역, 좋은씨앗. 

 

2월

1. 고영석, 신영준, 『일취월장』, 로크미디어.

2. 최유리, 『고군분투 책 일기』, 위즈플래닛.

3. A. W. 토저, 『믿음에 타협은 없다』, 이용복 역, 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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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침묵을 즐기는가.

2018. 1. 29. 22:58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어릴때부터 몸이 야위었다. 명절때마다 어른들은 '왜 그렇게 말랐느냐'며 '밥 먹었냐'보다 더 식상한 인사말을 건넸다. 대꾸는 하지 않고 멋쩍게 웃기만 했다. 마른게, 뭐, 대수라고, 어른들은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것일까, 어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마른 몸은 그대로였다. 마른 몸이 싫었다. 마른 몸 때문에 사람 자체도 가볍게보였다. 그때부터인가보다. 말을 줄이고, 언어의 무게를 생각했던 때가 말이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가벼운 언어는 쉽사리 무거워지지 않았다. 불쑥 튀어나오는 쓰레기 같은 언어들이 나를 표현할 뿐이었다. 언어의 무게를 생각할 단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입을 더 굳게 다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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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間隙)

2017. 11. 4. 00:30 책과 글, 그리고 시/시를 쓰다

 

 

 

간극(間隙)

                                                                                                                                                          강상율 


 

 우리의 간극이 커질수록, 당신에 대한 기억도 그 간극의 크기만큼 소멸됩니다. 당신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내가 자꾸 뒷걸음치고 있으니 우리의 간극은 점점 더 커질 것 같습니다. 당신이든 아니면 나든 둘중에 하나라도 그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간극속에서 당신의 기억들이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지워질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아니라고 해도, 나는 그렇습니다. 아마 당신은 어제의 나를 말하고, 나는 오늘의 나를 이야기하는 다름에서 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확연히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내겐 흔한 일이니, 다만, 놀라지 마시길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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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의 죽음, 그리고 한국시리즈.

2017. 11. 1. 23:33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기아는 두산을 7대 6으로 이겼고, 그들은 통합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날 배우 김주혁은 운전 중 심장질환이 발생하여 앞차와 몇 번 추돌한 후 도로를 이탈하여 벽면을 향해 돌진했고 차는 전복되었다. 손 써볼 틈도 없이 김주혁은 4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아직 정확한 사망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한 명의 인생이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때, 우리는 한국시리즈에 열광했다. 김주혁이 네이버 검색순위 1위를 차지하였을 때, 2위는 한국시리즈 5차전 9회에서 송구 실책을 저질렀던 김주형이었다. 김주형의 송구 실책으로 5차전의 결과는 뒤집힐 수 있었다. 그러하다. 인생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내일의 인생을 알 수 없다면, 아니, 단 1분 후의 인생도 알 수 없다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지금도, 아직도, 계속하고 있어야 하는지 묻게 된다.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이 정말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인지 더욱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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