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16. 13:01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환절기
박 준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
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보면 살 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
도를 백도라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
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
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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