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7. 13:1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당신이라는 세상
박 준
술잔에 입도 한번 못 대고 당신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 많
은 술을 왜 혼자 마셔야 하는지 몰라 한다. 이렇게 많은 술
을 마실 때면 나는 자식을 잃은 내 부모를 버리고 형제가
없는 목사의 딸을 버리고 삼치 같은 생선을 잘 발라먹지
못하는 친구를 버린다 버리고 나서 생각한다
나는 빈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여백이 고맙다고, 청파에는
골목이 많고 골목이 많아 가로등도 많고 가로등이 많아 밤
도 많다고, 조선낫 조선무 조선간장 조선대파처럼 조선이
들어가는 이름치고 만만한 것은 하나 없다고, 북방의 굿
에는 옷(衣)이 들고 남쪽의 굿에는 노래가 든다고
생각한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
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버릴 생각한 하는 것도 능사가 아
라는 생각도 한다
술이 깬다 그래도 당신은 나를 버리지 못한다 술이 깨고
나서 처음 바라본 당신의 얼굴이 온통 내 세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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