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문화활동

2019. 3. 7. 13:16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1. 외국영화

로마(Roma, 2018) _ 알폰소 쿠아론

★★★★   서로의 아픔을 함께 극복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

 

가버나움(Capernaum, 2018) _ 나딘 라바키

★★★★ 내 부모를 고소한다!

 

콜드 체이싱(Cold Pursuit, 2019) _ 한스 페터 몰란트

★★★   코엔 형제 작품의 아류작 같지만 또 다른 신선함을 선사하는 영화

 

그린 북(Green Book, 2018) _ 피터 패럴리

★★★☆   식상하지만 소소한 감동을 주는 영화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 2018) _ 요르고스 란티모스

★★★ 연기, 음악, 색감, 세가지 조화가 적절히 어우러진 요르고스 란티모스만의 걸작

 

2. 한국영화

악인전(The Gangster, The Cop, The Devil, 2019) _ 이원태

★★★ 킬링타임용으로 주연들의 연기와 액션은 볼만함. 다만 김규리가 중간중간에 팍팍 재를 뿌림.

 

3. 다운로드 영화

비우티풀(Biutiful, 2010) _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 삶이 지리멸렬하더라도,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an , 2006) _ 알폰소 쿠아론

★★★★☆ 전쟁터에서 테오가 군인들 사이로 어린아이를 안고 나올 때 느끼는 전율!

 

머니볼(Moneyball, 2011) _ 베넷 밀러

★★★★ 익숙한 플롯, 익숙하지 않은 결말, 그러나 브래드 피트는 진리다!

 

미성년(Another Child, 2018) _ 김윤석

★★★★ 김윤석 배우의 섬세한 연출, 신인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중년 배우들의 내공, 어디 하나 나무랄데 없다. 꼭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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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연구원 시절

2019. 3. 4. 09:35 삶을 살아내다/당신과 함께

 

 

 

2014년, 쓸데없이 바빴던 대학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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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몹시도 따가웠던 아프리카

2019. 2. 28. 14:03 삶을 살아내다/당신과 함께

 

 

 

 

햇볕이 몹시 따가웠던 아프리카에서 1년. 사역을 마칠 즈음 방향을 잃고 헤맸다. 떠날 때 품었던 희망의 끈을 놓은 채 한국 땅을 밟았다. 1년간 잃어버린 것이 많았다. 허나, 잃어버린 것이 많았기에 다시 채우기 위해 발버둥쳤다.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아픈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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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했던 봄날의 기억

2019. 2. 27. 10:30 삶을 살아내다/당신과 함께

 

 

 2년 6개월간 대학원에서 지리멸렬한 날들을 보냈다. 공부하고 먹고 자고, 다시 공부하고 먹고 자고.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었던 시간들. 혼자였다면 포기했을 수도 있다. 함께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았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주면서 나와 아픔을 같이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문득 그들과 함께했던 나른한 봄 날이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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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이야기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019. 2. 15. 18:01 삶을 살아내다/상담

[열한 번째 이야기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입니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품고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교회를 떠나려고 마음먹었을 때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 내게도 존재했다. 그 말을 고스란히 가슴에 품고 사건을 터트렸는데, 결국 그 말이 문제가 되었다. 상담을 통해 가슴 속에 맺힌 것을 말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상담을 받으러 가면서 오늘 상담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가벼운 마음으로 열한 번째 상담을 시작했다. 먼저 최근 마음이 불편했던 일부터 이야기했다. 교회를 떠나려고 했을 때 자주 만났던 부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편한 마음이 든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날은 주일 설교 끝난 후 점심시간이었고, 부목사님은 설교 들은 소감에 대해 자세하게 물으셨다. 최선은 아니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선에서 성심성의껏 말했다. 그런데 목사님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를 원하셨다. 그때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굳이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자발성이 결여된 것이다. 나는 그 불편함이 지난 사건 때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선생님께 설명했다. 선생님은 말하기 싫은 불편함은 트라우마와는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트라우마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때문에 발생한 정신적 외상이다. 지난번 사건은 정신적 충격이라할만큼 큰 사건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단지 그 상황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다고 설명해주셨다. 

 

 

  다음에 나눈 이야기는 최근에 교회를 떠난 지체에 관한 것이었다. 교회 안에서 제도와 교리 때문에 힘들어하던 지체 한 명이 몇 주전 교회를 떠났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때문에 다시 교회를 떠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두려우냐고 내게 되물었다.

 

'무엇이 그리 두려웠던 것일까'

 

  교회를 떠나는 것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다만, 목사님과 다시 교회를 떠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맞닥 드려야  고독함과 그로 말미암은 정신적 에너지의 소모가 싫었다. 교회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고독함이다. 문제를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문제의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결과가 불확실하다. 성향상 불확실한 것을 언급하는 걸 꺼린다. 둘째, 부정적인 이야기를 언급해서 지체들에게 정신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의 태도에 관해 말씀하셨다.

 

 

"목사님과 대화할 때 많이 긴장하고 경직되는군요"

 

 

  선생님은 정서적 불만을 숨긴 채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만을 이야기하려고 하니까 경직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혹여나 말을 잘못했다가 숨겨 놓은 정서적 불만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걸 다 설명하고 설득시킬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단순하게 생각해서, 교회가 싫거나 자신의 배우자를 찾지 못하면 그냥 떠나면 되는 것이다. 굳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선생님의 조언이었다. 근데 사건을 일으킨 그때 교회의 특성상 상황을 단순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경직될 수밖에 없덨다고 하는게 맞는 말일게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다음 주제는 나의 극단적인 행동이다. 심리학에서 반동형성이란 용어가 있다.한쪽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극단적으로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평상시 행동이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장난을 치거나 아니면 진지해지거나. 장난을 치다가 다른 사람이 받아주지 않거나 장난이 실패하면 갑자기 내 행동을 되돌아본다. 실수를 찾거나 고칠 부분을 찾으면서 점점 장난을 덜 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진지해진다. 행동이 돌변하는 시작점은 "장난을 받아주지 않은 사람에 대한 반감"이다. 나한테 장난이 상대방을 판단하는 하나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성인에게 올바른 행동만은 아니다. 장난치다가 실수해도 "그럴 수 있지", "실수할 수도 있지"라며 스스로 스스로 풀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장난을 받아주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어나가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실망에 관한 기준도 다시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러 상황에서 의지와 노력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눈 주제는 학습된 성향 "ISTJ"에 관한 것이다. 내 주위에 친한 사람들은 나와 반대성향인 사람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들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잘 지낸다. 여기서, 나의 성향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선생님의 가정은 내가 선천적으로 ISFP이었을 수 있으나, 후천적으로 또는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하여 TJ(T : thinking, J : Judging)을 개발시켰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도 동의하는 측면이 있다. 왜냐면 학창시절부터 시나 소설을 좋아했고 제도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했다. 선생님은 MBTI에 대한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MBTI에서 융이 말한 것은 무의식의 나를 끌어내어 내재된 성향을 계발하여 융합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무의식의 나는 ISTJ가 강한 내가 "FP" 성향을 추구하는 무의식의 나를 말하는 것이다. 성향과 상관없이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자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성향이 아니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과 내가 친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기 때문에 내가 호감이 갔고, 자주 교제하면서 관계가 발전한 것이다. 결국,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좋은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고 할 수 있다.

 

 

  권위에 관한 반감 때문에 시작한 상담이 열한 번의 만남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상담을 통해 마속에 쌓인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찾아냈으니 정말 다행이다.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은 해결의 시작일뿐이다. 상황을 인지하고 감정을 이해한 다음, 적극 감정을 표현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내게 주어진 인생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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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이야기 - 왜 무시당하는 것에 민감한가요?

2019. 2. 11. 16:24 삶을 살아내다/상담

[열 번째 이야기 - 왜 무시당하는 것에 민감한가요?]

 

 

 

  독일 여행을 갔다 온 후 며칠간 시차에 적응하지 못했다. 열 번째 상담이 예약된 그날도 밤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 잠깐만 누워있자고 눈을 감은 것이 화근이었다. 눈을 떠보니 시계는 오후 12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정신없이 센터까지 달려갔다. 허겁지겁 상담실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지만 정신은 멍한 상태였다. '난 어디에 있는가.....' 상담 1시간 중 벌써 20분을 까먹은 상태였다. 여하튼, 오랜만에 다시 선생님을 만났다. 오랜 시간의 틈을 채우기 위해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난 멍한 상태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독일 여행은 잘 다녀왔어요?" 

 

 

  선생님께서 여행으로 화제를 돌리셨다. 굳이 여행 이야기를 해야 되나 싶었으나 여행을 통해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맨 처음 꺼낸 이야기는 독일 공항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독일에서 출국 심사 때 가방에 금속 물품이 감지되어 관세 직원은 나를 줄 옆으로 나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다음 관세 직원이 가방뿐 아니라 내 몸을 검색하기 위해 영어로 무언가를 지시했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관세 직원은 무례하게 행동하면서 명령조로 영어로 지시했다. 그때 그 관세직원에게 "당신은 무례하다"고 말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생각지 못했던 질문을 하셨다.

 

 

"무시에 대해 민감하시나 봐요. 여행 첫 이야기가 '무시'에 대한 거니까요.

지난번에도 무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무시를 당하신 경험이 많으신가 봐요?"

 


  선생님의 질문에 지난 세월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일반 상식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부모님은 그것도 모르느냐며 핀잔을 주신 적많았다. 부모님은 핀잔을 주었으나 질문에 대한 자세한 답변은 해주지 않으셨다. 맞고 틀림에 대한 지적만 받았을 뿐 왜 그런지에 대한 이해 과정이 없는 성장 과정은 나의 상황을 잘 설명하지 않는 것과 맞닿아 있는듯했다. 아무튼, 가정과 학교에서 받은 무시에 대한 아픈 기억들이 있기에 내가 '무시'라는 주제에 민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일상적인 무시 외에 다른 특별한 경험을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독일 여행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독일은 보수적이고 원칙을 중시하는 나라인 것 같다면서 몇 가지 예를 말씀드렸다. 미술관에서 아이들이 떠들면 바로 가서 제재하는 것, 건널목 빨간 불일 때 사람들이 알아서 신호를 지키는 것 등등. 그리고 유럽 사람들 성향상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으며, 첫 유럽 여행지였던 독일은 내게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말씀드렸다. 테이블 중간에 놓인 시계는 우리의 상담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이번 상담은 여기까지 하자고 말씀하셨다.

 

  대화하면서 이제 상담 자체를 끝내도 되겠다는 스스로 확신이 점점 강해졌다. 상담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고 나도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담이 끝났다고 해서 감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담이 끝나도 내 안의 나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감정의 문제를 지속해서 해결해야 한다. 내게 주어진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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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일지('18.09.01.~'19.02.10.)

2019. 2. 11. 13:44 삶을 살아내다/상담

[상담 일지]

 

 

 

 회 차

일 자 

내 용 

 1

 '18.09.01.

 - 나는 왜 교회를 떠나려고 했는가

 - 권위에 대한 반감

 2

 '18.09.29

 - 나는 언제 화가 나는가

 3

 '18.10.06.

기록없음

 4

 '18.10.13.

 - 나는 왜 감정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가

 -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

 -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세요"

 5

 '18.11.03.

 - 극단적인 나(본능과 당위사이)

 - 관계를 끊고 달아나는 나

 - 정회원의 문제와 나의 불만

 - 선생님의 충고 "친절하세요"

 6

 '18.11.17.

 - 친절함에 대한 권유

 - 인간 관계를 경시하는 이유

 -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가오면 물러선 경우)

 7

 '18.12.01.

 - 화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경우

 - 나는 왜 친절하지 않은가

 - 장난을 많이 치는 나

 - 매정함

 - 관계에 접근하는 태도

 8

 '18.12.08.

 - 갈등에 대한 두려움

 - 자존심에 대한 문제

 - 교회에 대한 정서적 불만

 - 공동체에 한발짝 들어가는 방법

 -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

 9

 '18.12.15.

 - 권위에 대한 반감 해결방안

 - 세가지 자아(Super Ego, Ego, Id)

10

 '19.01.05.

 - 여행이야기(무시 당한 사례)

 - 나는 왜 무시에 민감한가

 11 

(종결)

 '19.02.10. 

 

 - 목사님에 대한 불편함,

 - 지체가 교회를 떠난 일, 

 - 나는 왜 어른을 만나면 경직되는가

 - 학습된 성향(ISTJ) : 나는 왜 반대성향의 사람들이 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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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이야기 - 권위에 대한 반감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2019. 2. 11. 12:56 삶을 살아내다/상담

[아홉 번째 이야기  - 권위에 대한 반감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선생님을 만난 지 3달이 지났다. 매주 만난 것은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밀도 높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이해 기반을 마련하였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었다. 상담의 목적이 감정의 해결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문제를 끝맺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왜 그런지 알았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선생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권위에 대한 반감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선생님의 대답을 요약하면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상황인지, 해결방안 요구 및 강구, 부정적 이미지 대체. 첫째, 내가 처한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권위를 가진 사람과 감정이 쉽게 민감해질 수 있는 주제를 다루거나 권위자가 나쁜 어른의 모습으로 행동할 때 나의 감정상태가 달라진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해야 한다. 예를 들면 '권위자가 나한테 부당한 지시를 내려서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저 주제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감정이 불편하구나' 등과 같이 나의 감정상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해결책을 요구하거나 마련해야 한다. 만약 강압적 지시를 내리는 권위자의 모습에 화가 났다면, 그 지시에 대한 설명과정을 요구해서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음으로써 "지시"에 대한 이해를 해야하는 것이다. 셋째, 권위자(어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권위에 대한 반감은 어릴 적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정서 발달에 영향을 끼친 부정적인 경험이나 충격은 원시적 뇌에 저장되기 때문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질 뿐이다. 따라서 권위자(또는 어른)을 만나거나 대할 때 상대방이 내가 생각하는 나쁜 어른과 다르다는 것을 매번 확인시켜줘야 한다. 즉, 부정적으로 인식된 어른에 대한 정서 기억을 어른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으로 대체하라는 것이다. 수많은 경험의 축적을 통해 기억을 바꿀 수 있기때문에 단시간 내에 권위에 대한 반감을 해결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제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세 가지 자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자아는 크게 세 가지로 도덕적 자아(ego), 본능적 자아(Id), 중재적 자아(Super ego)로 나뉜다고 말씀하셨다. 도덕적 자아는 신념과 가치관에 따른 의지적인 것이며, 본능적 자아는 욕구 그대로 반응하려는 것이고, 중재적 자아는 도덕적 자아와 본능적 자아 사이에서 중재하는 실재적 존재, 즉 행동하는 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도덕적 자아가 상대적으로 발달했다. 20대 중반에 신앙을 가지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한 보상(트라우마 치유)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가치관을 따라 살기로 작정했다. 왜냐면 신앙을 갖기 이전에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존재론적으로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삶을 움직이는 강력한 원동력은 종교적 가치관과 신념이었다. 인간 본연의 욕구는 억누른 채 종교적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의 당위만을 따지며 살아왔다. 근본적인 욕구를 비롯한 다양한 욕구들을 억눌렀다. 내 안에 거대한 도덕적 자아 아래 움츠 본능적 자아를 가진 괴물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중재적 자아, 즉 행동하는 존재로서 도덕적 자아에 관한 이야기를 덜 듣고 본능적 자아에 대한 요구에 귀 기울이면서 본능적 자아와 도덕적 자아 사이의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문제 또한 단시간 내에 해결될 사항이 아니다.

 

 

  오랜 세월 뒤틀린 감정을  내버려두었다.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감정을 하찮게 여기거나 무시했다. 외면한 감정들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차곡차곡 쌓였다. 이제 스스로 그 감정들을 어루만져야 한다. 그게 곧 내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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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목표 설정

2019. 2. 7. 10:27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2019년 목표 설정]

 

 

 

 

나는 목표지향적 인간이라 매번 계획을 세워야한다. 으하하하

 


1. 체중 증가

년 6월까지 58kg(2월 : 55, 3월 56, 4월 57, 5월 58)

- 주 4회 운동(월, 화, 목, 토) 

*현재기준(2019.02.07.) 54kg

 

2. 여자친구 만들기

소개팅 분기별 1회 +@

 

3. 블로그 운영

일 방문자 500명

- 포스팅 월 4회(1주 1포스팅 실천) 

 

4. 저축

목표 금액 : 900만원/연(75만원/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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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정보] Thrill of Deception(눈속임의 재미) in Munich(뮌헨)-착시현상

2019. 1. 24. 10:26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유럽여행 정보] Thrill of Deception(눈속임의 재미) in Munich(뮌헨) - 착시 현상

 

 

 독일 뮌헨에서 진행중인 "Thrill of Deception" 전시회에서는 예술가의 다양한 접근법과 기술을 통해서 우리의 눈과 뇌를 속이는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로 인식과 관련된 착시 현상, 눈속임과 관련된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 시각적 즐거움을 더해준다.

 

1. Perception(인식)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 관찰 기관은 눈이지만 최종적 인식 기관은 뇌다. 먼저 눈을 통해 시각적 정보를 입수하고, 뇌는 눈으로부터 전달된 정보를 바탕으로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 입력된 정보가 기존의 경험이나 기억 중에서 비슷하거나 같은 것이 있다면 뇌는 빠르게 그 정보를 현재의 정보와 연결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입력된 시각적 정보와 사물의 크기, 형태, 빛깔 등의 객관적 성질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 뇌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 이 현상을 '착시'라고 한다.[각주:1] 예를 들면 아래의 그림에서 수평선은 길이는 같다. 하지만 수평선 양 옆의 대각선으로 인한 간격으로 인해 우리의 뇌는 두 수평선의 길이가 다르다고 인식하게 된다.

 

 

아래는 전시회에서 인식과 관련된 착시의 작품 중 하나이다. 2차원의 타일을 길이, 빛깔, 크기 등의 회화적 기법을 사용하여 3차원을 형태로 보이게 만든 것이다.

 

HANS PETER REUTER, Tile Room without Object No.110, 1976.

 

 

2. Deceving the eyes(눈속임 그림)

 

 눈속임 기법은 물체의 명암, 질감, 양감 등의 회화적 기법을 통해 철저한 사실적 묘사를 함으로써 그림을 실물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17세기에 많은 네델란드 화가들이 진품과 가품사이의 혼란을 야기시키기 위해 주로 사용하였다. 당시 시민들에게 눈속임 작품이 환영받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사실적 묘사에 의한 착각이 마술적인 효과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Cornelis Gijsbrechts(1630-1683)이 눈속임 그림의 대표적인 화가이다.[각주:2]

 

 

 

Cornelis Gijsbrechts, Trompe-l’œil with Studio Wall and Vanitas Still Life, 1668.

 

Charles Meurer, A Doughboy's Equipment, 1921.

 

Luis-leopold Boilly, Portrait of a Man with Broken Glass, 19세기경.

 

Thomas Demand, Glass(l+ll), 2002

 

 


 

Thrill of Deception 전시회의 다양한 미술품을 보면서 시각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김종화.(2018.5.). [과학을 읽다]1.착시, 0.1초의 비밀.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8052416354749704 [본문으로]
  2. 네이버 지식백과. 트롱프뢰유(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53834&cid=40942&categoryId=3305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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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흔적 -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2019. 1. 14. 14:07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 http://www.dotomari.com/618

 

 

어제 지인 부부를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들의 근본적인 연결 고리는 기독교이었다. 만남의 시작은 그랬다. 그런데 어제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대부분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다루는 주제이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주제의 흐름을 바꾸고 싶었지만, 결국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의 관심사가 나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기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아니 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신자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관한 모든 행위를 그만두고 신자로서만 살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살 용기도 없다. 집도 돈도 다 포기하고 예수님만 따를 용기가 없다.

 

신자는 분명히 자신만을 위해 사는 존재는 아니다. 자신의 삶의 규모를 정하고 삶의 올바른 방향성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삶를 위해 100의 100을 다 쓰는 것은 불신자와 다를바 없는 삶이다.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되돌아보고 있다. 최근에는 여행준비에 정신을 뺏겨 다른 것에 신경쓰지 못했고, 그전에는 또 다른 것들로 인해 정신이 팔려 있었다. 대부분이 다 나를 위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근데 여기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방향인가"란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이분법적인 사고이다. A가 아니면 B라는 논리 구조로 생각하게 되면 결국 또 율법적인 행위의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성경에 근거하되,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 타당한 근거들을 마련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사고하고 올바른 방향성을 생각하는 것이 옳다. 다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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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ROMA, 2018) - 진정한 사랑은 희생과 진심에서 비롯된다

2019. 1. 12. 17:17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로마(ROMA, 2018) - 진정한 사랑은 희생과 진심에서 비롯된다


감독 : 알폰소 쿠아론, 주연 : 얄리차 아파리시오, 마리나 데 타비라



 영화는 물로 바닥청소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상은 여유롭고 평화롭지만, 그 삶 가운데 가정의 불화가 존재하며 시대의 혼란은 가중된다. 영화는 1970년대 멕시코 시티내 로마지역을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삶의 거친 파도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고 꿋꿋이 헤쳐나아간 여자들의 흔적이다. 파도에 휩쓸려 바다속으로 빠져 허우적거리는 파코와 소피를 구하러 풍파속으로 뛰쳐 들어간 클레오의 나아감은 위태롭지만 위대하다. 아이들을 구한 클레오와 울먹거리는 아이들을 힘껏 껴안는 소피아는 남성를 대체하는 시대의 가장이었다. 남자들은 다 형편없다. 가족들을 버려두고 바람을 피는 안토니오, 클레오를 임신시켜 놓고 도망가버린 페르민. 남자들은 다 터무니없이 형편없었다. 그러했기에 여성들이 더욱 빛났던 영화이다. 


영화을 보면서 생각난 것들이 있었다. 



1. 개똥


 영화 초반에 주차장에 개똥이 널려 있다. 안토니오 차를 주차시키려고 할 때 똥은 자꾸 거슬리기만한다. 안토니오가 집을 장기간 떠나려고 할 때 똥에 미끄러질뻔 한다. 소피아가 술에 취해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올 때 여전히 개똥은 널려있다. 

Q. 영화 감독이 개똥을 통해 관객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2. 동병상련


"누가 뭐라고해도, 우린 늘 혼자야"

- 영화 속 소피아 대사중에서


 소피아는 남편 안토니아에게 버림받았다. 클레오도 발가벗은 채로 무술을 선보이던 페르민에게 버림받았다. 소피아가 클레오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소피아는 클레오를 해고시키지 않았다. 클레오와 함께 병원에 가서 클레오가 임신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 소피아가 매번 클레오에게 다정하게 대해준 것은 아니지만, 분명 소피아는 클레오에게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는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클레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둘은 함께 있었기에 역경속에서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경험의 공유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3. 결국, 진정한 사랑은 희생과 진심에서 비롯된다

 

 파코와 소피는 바다 얕은 곳에서 놀라는 엄마 소피아의 말을 듣지않고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은 점점 파도에 휩쓸려 바다 더 깊은 곳으로 밀려 떠내려간다. 클레오는 파코와 소피에게 시선을 두면서 페페를 돌보기위해 육지로 나온다. 육지에서 조금 더 나왔을 때 클레오의 시선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 클레오는 다급하게 바다로 뛰어든다. 어쩌나... 그녀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파도는 거세고 점점 물은 깊어져만 간다. 그러나 클레오는 파고와 소피를 구하기 위해서 점점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클레오는 거친 파도를 꿋꿋히 헤쳐나가 죽을뻔한 파코와 소피를 구한다. 하마터면 모두 다 죽을뻔했다. 그렇다. 희생없는 사랑은 없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영화가 끝난 후 한참동안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클레오가 바다에서 아이들을 구해 육지로 나와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소피아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뛰어나온다. 그때 클레오는 그동안 속앓이만 해왔던 이야기를 소피아와 아이들에게 털어놓는다. 


"전 아이가  태어나지 않길 원했어요"


그 말을 하고서 클레오는 서글프게 운다. 소피아는 클레오와 네 아이들을 함께 안으면서 진심어린 위로를 건넨다. 아이들도 클레오를 뜨겁에 안는다.


"우리는 널 정말 사랑한단다, 클레오"





한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이야기, 잔잔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전해주어 추운 날씨에 마음만은 따뜻하기만 했다. 올 한해 늘 마음은 따뜻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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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이야기 - "정서적 불만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2018. 12. 19. 10:08 삶을 살아내다/상담

[여덟 번째 이야기 - "정서적 불만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처음에 계획했던 세달간 만남의 중간 지점을 넘어섰다. 선생님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졌고, 나의 이야기를 편하게 터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선생님은 이야기의 주제를 정해놓지 않으신다. 나도 마찬가지다. 여러가지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내안에 뒤틀려 있는 감정을 찾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번 '싸움닭'인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갈등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적인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대부분 내 주장을 고집하다 결국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틀어지기 일쑤였다. 나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물러날 때도 있다. 근데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면 물러남은 관계를 끊겠다는 간접적인 표현이다. 특히 잘못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서먹서먹한 관계를 견딘다. 모르는 사람보다 더 못한 관계가 되는건 시간 문제였다. 오랜세월 많은 사람을 잃었다.

 

갈등을 잘 해결하지 못했다는 경험이 갈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이되었다고 생각한다. 갈등이 발생하면 본능적으로 위축된다. 학습된 두려움은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경험의 학습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한 긍정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해 기존의 인식를 대체하는 것이다. 성공의 경험이 실패의 경험을 무마시키는 것이다.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친절'이 다시 필요한 것이다. 하하하.

 

상담을 시작하게된 주제와 관련하여 정서적 불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내세웠던 두가지 명분 아래 잠재된 정서적 불만이 존재했다. 공동체안에서 나의 반려자를 찾지 못했다는 것과 많은 일에 눌려 지쳐 있었다는 것. 교회공동체가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믿음이 약화된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한 측면도 인정하지만 상황에 의해 발생한 내재된 정서적 불만도 해결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성경 말씀을 더 봐", "기도를 더 해봐"라는 막연한 해결책은 정서적 불만을 해소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선생님께서는 정서적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하고 기본적인 욕구를 총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도 된다는 말 자체가 큰 위안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공동체와 나 사이에 심리적 간격이 발생했고, 이 간격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이야기했다. 선생님께서는 일적인 모임말고 사적인 만남이나 나눔을 통해 현재의 삶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면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관계의 시작은 서로에 대한 이해다.

 

많은 언어 가운데 나는 피곤하지 않다. 이것이 상담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말하는 것이 편하지 않은 내가 자발적으로 말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어쩌면 하나의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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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이야기 - 제가 변화된 지점이 있는건가요?

2018. 12. 10. 15:10 삶을 살아내다/상담

[일곱 번째 이야기 - 제가 변화된 지점이 있는건가요?]

 

 

 

 

 

선생님께서 상담의 목적은 문제의 답을 얻는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상담은 하나의 시작점이지 끝이 아니다. 상담을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배경을 이해하면서 나를 좀 더 이해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지만, 상담을 통해 내가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으니 타자인 선생님께 변화된 지점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야 상담을 더 진행할 수 있는 나의 명분이 생길 것 같았다. 내 행동의 시작점은 '명분'이라는 것이 대화를 통해서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명백해진다.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처음 봤을 때의 저와 지금의 저 사이에 변화된 지점이 있을까요?"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렸다. "변화된 지점이라... 자신을 더 이해했다는 것이 변화의 지점이 아닐까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 감정의 근거를 더 발견하지 않았을까요?" 동의하는 지점이기는 하나, 나에 대한 이해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어떤 면에서 좋을까, 되묻게 된다.

 

상담을 받으면서 실제적으로 드러난 긍정적인 효과는 있었다. 제3자인 선생님과 나 사이에  비밀이 보장되기때문에 나는 거리낌없이 편하게 말할 수 있다. 본디 대화가 편한 사람이 아니다. 말보다는 글이 편하고, 글보다는 침묵하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다. 그러함에도 의지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는 이유는 묵혀 두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한사이라도 말의 경중을 따지고 뒤로 자주 물러서는 습관이 있는 나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속시원히 말할 수 없는 나의 언어들이 있으니 말이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싸움닭인 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나, 층간소음때문에 윗집 아주머니랑 대판  싸운 일. 둘, 스피치 학원 후기 때문에 원장이랑 언성을 높인 일. 셋, 민원인과 잘잘못을 따지느라 또 대판 싸운 일. 참 많이 싸운다는 생각을 했다. 지는 것을 싫어하고 무조건 이기려고 드는 공격적인 성격탓이다. 좀 이해해주면 좋으련만. 뒤로 물러서는 법을 잘 모른다. 잠시 물러서도 물러서는 것이 아니다. 다시 치고 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나는 꽤 공격적이다. 왜 물러서지 않을까. 자존심이 세기도 하지만 타인에 대한 관용의 마음이 부족해서이기도 하다. 왜 그럼 나는 타인에 대한 여유가 없을까. 왜, 도대체 왜...

 

매정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몇주전 교회의 지체가 새로운 사역지가 떠나 교회를 떠났다. 꽤 오랜 시간 같이 있었던터라 정이 들만도했다. 그런데 지체가 떠나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무덤덤했다. 떠날 사람은 떠나야되지 않는가. 이번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 1년 사역을 마치고 남겨진 사람들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올때도 그랬고, 2년 6개월간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학교를 떠날 때도 다름없었다. 선생님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동의아닌 동의를 할수밖에 없었다. 왜 사람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을까. 그 대답을 하자면 지난번 만남때 이야기했던 '아버지'의 주제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나의 성격과 행동의 기반을 알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 행동양태가 여러가지 남아있다. 인간의 성격과 습관들이 단 하나의 사건을 통해 형성되지는 않는다. 한번의 중대한 사건, 그리고 비슷한 유형의 사건의 반복. 그러면서 어떠한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특정한 감정 또는 행동이 습관화 될 수 있다. 그러기에 나를 계속 살펴야한다. 어떤 것이 나를 쉽게 상처받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무엇이 나로 하여금 화나게 하는지. 선생님은 조력자일뿐,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집요하게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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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이야기 - 이제 그만할까요?

2018. 11. 17. 22:02 삶을 살아내다/상담

[여섯 번째 이야기 - 이제 그만할까요?]


 

 

 

지난 다섯번의 만남에서 해야할 이야기를 거의 다 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만남이 끝날 즈음에 할말이 없어 머뭇거리던 선생님의 어색한 웃음도 떠올랐다. 그만해도 되겠다는, 아니 이젠 그만해도 되는 명분이 생겼다. 진전시킬 이야기가 없으니 선생님을 만나야 할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다시 선생님과 마주했다. 잠깐의 침묵이 우리 사이에 대화의 소재가 고갈됐음을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켜주었다. "우리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선생님은 대화를 이끌어야 가야할 주체이지 않은가. 대화를 시도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그렇죠. 우리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요?" 되레 물었다. 해야할 이야기가 대부분 끝났다는 생각들이 대화할 의지를 꺽었다. 

 

선생님은 지난번 만남때 언급되었던 '친절함'에 대해 다시 말씀하셨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상태와 상황을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하라는 것이 선생님의 요구였다. 관계에서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타인의 대한 배려라고 강조하셨다. 아무말 없이 입을 닫아버리거나 관계를 거리를 두면 상대방은 당황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동의했지만, '굳이 내가 왜 나를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야 하는가'라는 반문과 불편한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성향상 감정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도 하겠지만, 선생님이 친절하게 행동하라고 하니까 그 말을 따르기 싫은 것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본래 나는 친절하지 않기도 했다.

 

갑자기 내가 관계를 중요시 하지 않는 이유가 불현듯 떠올랐다. 대화의 주제를 갑자기 바꿨다. "나는 왜 인간관계를 경시하는지, 왜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지" 어릴적 아버지는 나에게 "친구 다 소용없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근데 아버지의 삶을 지켜보면서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간접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했다. 그 일로 인해 어머니와 자주 싸우던 모습이 생생하다. 친구 보증때문에 친구와의 통화에서 언성을 높이시며 벌겋게 달아오른 아버지의 얼굴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렇다. 경험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선생님은 주로 듣고, 나는 나의 삶을 이야기한다. 선생님과 대화할 때 이야기의 맥락은 없다. 생각나는대로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 이야기한다. 왜냐면 정보의 축적이 선생님이 나를 더 올바르게 파악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1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고나서 좀 더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선생님은 다음주 공동 의회에서 사고치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나는 멋적게 웃으며 인사했다.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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