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이야기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019. 2. 15. 18:01 삶을 살아내다/상담

[열한 번째 이야기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입니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품고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교회를 떠나려고 마음먹었을 때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 내게도 존재했다. 그 말을 고스란히 가슴에 품고 사건을 터트렸는데, 결국 그 말이 문제가 되었다. 상담을 통해 가슴 속에 맺힌 것을 말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상담을 받으러 가면서 오늘 상담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가벼운 마음으로 열한 번째 상담을 시작했다. 먼저 최근 마음이 불편했던 일부터 이야기했다. 교회를 떠나려고 했을 때 자주 만났던 부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편한 마음이 든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날은 주일 설교 끝난 후 점심시간이었고, 부목사님은 설교 들은 소감에 대해 자세하게 물으셨다. 최선은 아니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선에서 성심성의껏 말했다. 그런데 목사님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를 원하셨다. 그때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굳이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자발성이 결여된 것이다. 나는 그 불편함이 지난 사건 때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선생님께 설명했다. 선생님은 말하기 싫은 불편함은 트라우마와는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트라우마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때문에 발생한 정신적 외상이다. 지난번 사건은 정신적 충격이라할만큼 큰 사건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단지 그 상황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다고 설명해주셨다. 

 

 

  다음에 나눈 이야기는 최근에 교회를 떠난 지체에 관한 것이었다. 교회 안에서 제도와 교리 때문에 힘들어하던 지체 한 명이 몇 주전 교회를 떠났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때문에 다시 교회를 떠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두려우냐고 내게 되물었다.

 

'무엇이 그리 두려웠던 것일까'

 

  교회를 떠나는 것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다만, 목사님과 다시 교회를 떠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맞닥 드려야  고독함과 그로 말미암은 정신적 에너지의 소모가 싫었다. 교회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고독함이다. 문제를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문제의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결과가 불확실하다. 성향상 불확실한 것을 언급하는 걸 꺼린다. 둘째, 부정적인 이야기를 언급해서 지체들에게 정신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의 태도에 관해 말씀하셨다.

 

 

"목사님과 대화할 때 많이 긴장하고 경직되는군요"

 

 

  선생님은 정서적 불만을 숨긴 채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만을 이야기하려고 하니까 경직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혹여나 말을 잘못했다가 숨겨 놓은 정서적 불만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걸 다 설명하고 설득시킬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단순하게 생각해서, 교회가 싫거나 자신의 배우자를 찾지 못하면 그냥 떠나면 되는 것이다. 굳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선생님의 조언이었다. 근데 사건을 일으킨 그때 교회의 특성상 상황을 단순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경직될 수밖에 없덨다고 하는게 맞는 말일게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다음 주제는 나의 극단적인 행동이다. 심리학에서 반동형성이란 용어가 있다.한쪽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극단적으로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평상시 행동이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장난을 치거나 아니면 진지해지거나. 장난을 치다가 다른 사람이 받아주지 않거나 장난이 실패하면 갑자기 내 행동을 되돌아본다. 실수를 찾거나 고칠 부분을 찾으면서 점점 장난을 덜 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진지해진다. 행동이 돌변하는 시작점은 "장난을 받아주지 않은 사람에 대한 반감"이다. 나한테 장난이 상대방을 판단하는 하나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성인에게 올바른 행동만은 아니다. 장난치다가 실수해도 "그럴 수 있지", "실수할 수도 있지"라며 스스로 스스로 풀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장난을 받아주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어나가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실망에 관한 기준도 다시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러 상황에서 의지와 노력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눈 주제는 학습된 성향 "ISTJ"에 관한 것이다. 내 주위에 친한 사람들은 나와 반대성향인 사람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들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잘 지낸다. 여기서, 나의 성향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선생님의 가정은 내가 선천적으로 ISFP이었을 수 있으나, 후천적으로 또는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하여 TJ(T : thinking, J : Judging)을 개발시켰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도 동의하는 측면이 있다. 왜냐면 학창시절부터 시나 소설을 좋아했고 제도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했다. 선생님은 MBTI에 대한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MBTI에서 융이 말한 것은 무의식의 나를 끌어내어 내재된 성향을 계발하여 융합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무의식의 나는 ISTJ가 강한 내가 "FP" 성향을 추구하는 무의식의 나를 말하는 것이다. 성향과 상관없이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자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성향이 아니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과 내가 친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기 때문에 내가 호감이 갔고, 자주 교제하면서 관계가 발전한 것이다. 결국,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좋은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고 할 수 있다.

 

 

  권위에 관한 반감 때문에 시작한 상담이 열한 번의 만남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상담을 통해 마속에 쌓인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찾아냈으니 정말 다행이다.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은 해결의 시작일뿐이다. 상황을 인지하고 감정을 이해한 다음, 적극 감정을 표현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내게 주어진 인생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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