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1)

2020. 2. 29. 18:13 삶을 살아내다/하나님의 섭리(攝理)

 

#1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 : 71

 

 

고등학교 3학년 수능 100일 전 순간의 혈기로 일으킨 싸움이 내 인생을 나락으로 끌고 갈지, 그때는 꿈에도 생각지 못 했다. 친구와 싸워서 많이 맞았고 코뼈가 두 동강 났다. 부러진 뼈로 인해 한쪽 콧구멍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기 힘들었다. 코막힘이 두통으로 이어지는 것은 다반사였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참기 힘든 건 수치심이었다.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흠씬 두들겨 맞았는데 어떻게 수능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었겠는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하기까지 약 4년간 한 번의 실수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았다. 내가 저지른 사건이기에 그에 관한 결과도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임에 짓눌린 인생은 가벼울 수 없다. 인생에 대한 불만과 패배감, 그리고 상대적 열등감이 자주 나를 감정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 

 

상황을 회피하지는 않았다.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고 내가 서 있던 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다만, 인생의 사건을 해석할 지혜는 없었으니 인생에 대한 회의나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러한가'란 질문으로 시작하여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결국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비관주의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니 어찌 인생이 즐거울 수 있었겠는가. 더 불행한 것은 의지할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이러다가 무슨 일을 저지를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생길 즈음, 내가 믿고 있는 신을 생각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붙잡아 보기로 했다. 

 

학교 앞에 있던 교회에 찾아가 날마다 오후 10시부터 1시간씩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소연할 곳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기도의 내용은 오직 하나였다. "나를 도와달라, 제발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 고집스럽게 한 달 동안 부르짖기만 했었다. 기도의 방법이나 기도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부르짖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아 33:2-3

 

 

무식하게 부르짖기만 했으나,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인생의 모든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어주셨고, 괜찮다고 하면서 나를 심적으로 위로해주셨다. 감정적인 부분이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무너진 마음이 회복되고 나서 지난날의 잘못은 이제 더는 내게 상처가 되지 않았다. 다만, 하나의 흉터로 남아서 내게 그런 사건이 있었음을 알려줄 뿐 감정을 동요시키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시켜주셨을 뿐만 아니라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제적 방안들을 생각나게 하시고 결단할 수 있는 의지도 허락하셨다. 결국, 부모님께 도움을 청했고 수술비 지원을 받아 수술을 진행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여전했다. 수술하고 나서도 육체적 고통이 계속 남아 있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오랜 세월 나를 괴롭혔던 육체적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지나온 시절을 생각하면서 던지는 질문이 있다. "만약 내가 고등학교 3학년때 싸워서 친구에게 맞지 않았더라면, 과연 나는 하나님은 절실하게 찾았을까?" 이 사건이 아니었으면 나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의 원하는 길을 따라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지난 고통의 시간 동안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만한 지혜는 없었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내 인생이 이끌어 오셨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는 못하나, 하나님은 나를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신다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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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근본적인 밑바탕 - 은혜의식

2016. 10. 26. 23:36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대학원 시절, 논문의 주제를 전개할 수 없을 때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했다. 하지만 나의 간구에 하나님은 아주 오랫 동안 침묵하셨고, 스스로 발버둥쳐야 겠다는 내안의 오기가 생겼다. 하나님은 그 문제는 개입하시지 않는다고 단정지었고, 버림받은 자로서 아침마다 절규했다. 그 시간들속에서 창조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했지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믿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신자로서 이신론의 입장을 취하면서 삶을 살아갈때 가장 위함한 것 같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매일마다 부어주시는 은혜를 깨달을수도, 깨달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인생은 고통이다'는 전제하에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그저 받아들이며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분리하고 각자의 아픔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자부한다. 왜냐면 고통과 아픔은 철저히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타인과 나의 분리는 고독한 자아를 더욱 애처롭게 바라보는 원천이며, 고통속에서 나 자신을 스스로 껴안으며 자위하는 것이 삶의 최선인 것이다. 



하지만 신자로서 분명하게 깨달아야 하는 것은, 신자의 근본적인 밑바탕은 철저한 은혜의식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구원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은 그저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해진 것을 믿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예수그리스도처럼 여겨진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고로,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여부가 아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근원적인 복을 생각하라. 그 복은 재력이 아니며, 권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 복이 얼마나 복되고 감격할 일인지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러하기에 진짜 구원받은 자라면, 참된 신자라면, 인생의 굴곡과 어려움에 상관없이 그분의 은혜에 온전히 감사하여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이 우리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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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제목 (8.12)

2015. 8. 12. 17:00 신앙/감사(感謝)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당연시 여기며 그 일들을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이끄시는 그분의 섭리를 이해하기란 어렵다. 분명히,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며, 우리의 모든 삶에 개입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삶의 우연' 따위란 없다고 본다. 고로, 의식적으로 우리의 삶의 곳곳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은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하나의 좋은 습관인듯하다.

 


  

1. 석사학위 과정을 거치면서 대학원생들이 겪는 고충과 어려움을 알게 하심에.

2. 대구에 있는 목사님과 지체들을 만나 교제를 나누게 하심에  

3. 말씀 수련회를 통해 마가복음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게 하심에

4. 쉬는 시간을 통해 주님의 교회 지체들과 교제하게 하심에

5. 좋은 책을 누나에게 선물할 수 있게 하심에

6. 재정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하심에

7. 교수님께 논문을 드릴 수게 있게 하심에

8. 블로그를 좀 더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게 하심에

9.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심에

10. 나의 부족함을 더욱 깨닫게 하심에

11. 지체들과 교제할 수 있는 의지와 마음을 주심에

12. 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을 붙여주시고, 도와주심에

13. 조카가 무럭무럭 잘 자라게 하심에

14. 어른들에게 먼저 연락하여 안부를 물을 수 있게 하심에

15.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책을 통해 나의 세계관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하심에

16. 더욱 기도해야겠다는 마음과 의지를 허락하심에

17. 일의 운선순위를 따지고 행동할 수 있게 하심에

18. 박사님께서 맡기신 일에 대한 기한을 정하고, 기한에 맞게 마치게 하심에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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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 그리고 삶

2015. 6. 15. 01:05 신앙/말씀 묵상(默想)




상황이 내가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갈 때, 나는 얼마나 불안해하고 안달해하는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면, 마땅히 그분의 섭리를 바라보면 평정심을 가져야 할 터인데, 주어진 상황앞에서 불평과 불만들만 내뱉으면 발발 동동 구르고 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정말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면, 정말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있다면, 말씀으로 살아내야 한다. 믿는바를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내가 믿는다고 하는 그 어떤 것은, 실제로 내가 믿고 있는 않는다는 반증이 될터이니 말이다. 믿음이 행항과 함께 일한다는, 그리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여 진다는 야고보서 말씀처럼 우리는 믿는 바를 눈에 보이는 삶의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제발 내가 믿는바를 삶으로 드러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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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7-28문답

2015. 3. 9. 10:30 신앙/말씀 묵상(默想)



제2부 우리의 구속에 관하여 

성부 하나님과 우리의 창조에 관하여 

제10주일







27문: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


답: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각주:1]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잎새와 풀, 비와 가뭄[각주:2],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별, 부와 가난, 

참으로 이 모든 것이[각주:3]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합니다.[각주:4]




 


28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로써 여전히 보존하심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우리는 어떠한 역경에서도 인내하고,[각주:5] 

      형통할 때에 감사하며,[각주:6] 

    또한 장래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여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확신합니다.[각주:7] 

모든 피조물이 완전히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므로 

그의 뜻을 거슬러 일어나거나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각주:8] 








  1. 시 94:9-10; 사 29:15-16; 렘 23:23-24; 겔 8:12; 마 17:27; 행 17:25-28 [본문으로]
  2. 렘 5:24; 행 14:17 [본문으로]
  3. 잠 22:2; 요 9:3 [본문으로]
  4. 잠 16:33; 마 10:29-30 [본문으로]
  5. 욥 1:21-22; 시 39: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롬 5:3-4; 약 1:3 [본문으로]
  6. 신 8:10; 살전 5:18 [본문으로]
  7. 시 55:22; 롬 5:4-5; 롬 8:38-39 [본문으로]
  8. 욥 1:12, 2:6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잠 21:1; 행 17:25-2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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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

2014. 12. 14. 22:01 삶을 살아내다



나는 지난 주 목요일(12월 4일) 석사논문 중간발표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월요일에 발표자료를 만들어서 저녁에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서 그 다음날 아침에 교수님께 발표자료를 보냈는데, 혹시 그 자료를 가지고  중간발표를 할 수 있겠냐고, 여쭤보았다. 교수님의 대답은, 석사졸업생이 거쳐야 할 과정도 안 거치고, 발표자료도 시원찮아서 발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예상하고 있었던 대답이었지만, 교수님으로부터 그 대답을 직접 들으니까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일말의 희망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감정을 추스렸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그 보잘것 없는 분노를 그저 벽을 치는, 손이 아플까봐 세게는 못치고,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아픔이 느껴지도록, 벽을 치는. 그 소심한 행동을 통해, 분노를 표출했다. 그래, 끝났구나. 



약 1시간 정도 마음의 정리를 하고, 박사님께 그만두겠다, 담담하게 말씀드렸다. 박사님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셨지만, 내 결정을 담담하게 받아주시는 것 같았다. 




"그래..." 




하지만 상황은 다시 내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날 저녁, 박사님은 교수님을 역까지 바래다 주러 나가셨고, 아마, 박사님은 안타까운 마음에 교수님께 나의 상황에 대해 진심어린 말투로 이야기 하시면서 내가 발표를 할 수 있도록 설득했던 것 같다. 교수님을 바래다 드리고 오신 박사님은,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상율아, 다음주 계획 발표 수준으로 발표하면 될 것 같아!






솔직히,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라, 당황스러웠다. 계획발표를 하라고... 그럼 결과를 중심으로 만들었던 자료를 사용하지 못한단 말인가. 연구배경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 여러가지 생각들과 감정들이 얽히면서,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한동안 멍했다. 



Anyway, 만약 그 날 내게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았었다면, 분명 나는 지금 연구실에 있는 내 것들을 다 정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주 말끔히 말이다. 나라는 사람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허나, 지금 나는 연구실에 앉아서 젼혀 다른 방향의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참, 인생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인생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사건들을 우연(coincidence)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신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만물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믿을 때 우리는, 신자는, 고민과 염려로부터,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시는 그 분의 손길을 믿으며.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라"


잠 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온전히 서리라"


19:21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가의 길을 알 수 있으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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