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14. 22:01 삶을 살아내다
나는 지난 주 목요일(12월 4일)이 석사논문 중간발표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월요일에 발표자료를 만들어서 저녁에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서 그 다음날 아침에 교수님께 발표자료를 보냈는데, 혹시 그 자료를 가지고 중간발표를 할 수 있겠냐고, 여쭤보았다. 교수님의 대답은, 석사졸업생이 거쳐야 할 과정도 안 거치고, 발표자료도 시원찮아서 발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예상하고 있었던 대답이었지만, 교수님으로부터 그 대답을 직접 들으니까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일말의 희망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감정을 추스렸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그 보잘것 없는 분노를 그저 벽을 치는, 손이 아플까봐 세게는 못치고,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아픔이 느껴지도록, 벽을 치는. 그 소심한 행동을 통해, 분노를 표출했다. 그래, 끝났구나.
약 1시간 정도 마음의 정리를 하고, 박사님께 그만두겠다, 담담하게 말씀드렸다. 박사님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셨지만, 내 결정을 담담하게 받아주시는 것 같았다.
"그래..."
하지만 상황은 다시 내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날 저녁, 박사님은 교수님을 역까지 바래다 주러 나가셨고, 아마, 박사님은 안타까운 마음에 교수님께 나의 상황에 대해 진심어린 말투로 이야기 하시면서 내가 발표를 할 수 있도록 설득했던 것 같다. 교수님을 바래다 드리고 오신 박사님은,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상율아, 다음주 계획 발표 수준으로 발표하면 될 것 같아! "
솔직히,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라, 당황스러웠다. 계획발표를 하라고... 그럼 결과를 중심으로 만들었던 자료를 사용하지 못한단 말인가. 연구배경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 여러가지 생각들과 감정들이 얽히면서,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한동안 멍했다.
Anyway, 만약 그 날 내게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았었다면, 분명 나는 지금 연구실에 있는 내 것들을 다 정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주 말끔히 말이다. 나라는 사람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허나, 지금 나는 연구실에 앉아서 젼혀 다른 방향의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참, 인생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인생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사건들을 우연(coincidence)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신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만물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믿을 때 우리는, 신자는, 고민과 염려로부터,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시는 그 분의 손길을 믿으며.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라"
잠 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온전히 서리라"
19:21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가의 길을 알 수 있으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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