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8. 22:30 신앙/말씀 묵상(默想)
고린도후서 4장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짋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2 CORINTHIANS Chpater 4
7 But we have this tressure in jars of clay to show that this all-surpassing power is from God and not from us.
8 We are hard pressed on every sied, but not crushed; perplexed, but not in despair;
9 perscuted, but not abandoned; stuck down, but not destroyed.
10 We always carry around in our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revealed in our body.
빌립보서 4:4~7,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0) | 2022.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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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0) | 2021.09.28 |
Moses _ He chose to be mistreated (0) | 2021.08.30 |
나는 날마다 죽노라 (0) | 2021.02.03 |
The LORD is my shepherd (0) | 2020.09.15 |
2021. 9. 5. 19:1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출처 : Pinterest
"삶을 숙제가 아닌 축제로 생각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밀라논나라는 예명을 가지고 활동하는 장명숙씨가 방송에서 한 말이다. 정확한 문장을 생각나진 않지만, 요지는 삶을 즐기면서 살라는 것이다. 그 방송을 보면서 언제가 삶을 숙제로만 생각하며 살았던 나를 생각했다. 매번 무언가를 해내야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사면 고단하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삶을 숙제처럼 여기고 살고 있다.
이 시대의 현실이 나를 비롯한 젊은이들에게 삶을 숙제처럼 의식하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해서 환경만을 탓할 수만 없는 것이고 또 모든 젊은이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한번의 인생, 매일마다 주어지는 하루라는 선물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참 아쉽게 느껴졌다. 인생이 고단할 때가 많은 건 사실이다.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사회는 점점 서로에게 예민해지고, 각자 처한 상황에서 스트레스와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 그러함에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는 값지다고 생각한다. 잠에서 깨어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그 축복된 삶 가운데 맡은 바 일을 감당하며 다시 살아가는 것도 은혜이다. 일상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요즘, 이미 오랜 세월을 살아간 어른의 말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Daily Jeans_일상의 청바지 (0) | 2024.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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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5. 09:59 신앙/찬양
[유튜브 추천] 해리소리 HAERISORI _[My desire]소원-삶의작은일에도/한웅재 꿈이있는자유 CCM Cover by 해리소리_HAERI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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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소리 정보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 몇 년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하나님과 교회 지체들에게 두터운 벽을 쌓은 채 긴 영적 사춘기를 보낸 30대 청년입니다. 지난 봄 '영적 사춘기'라는 어두운 터널 속에 있는 저를 다시 찾아와 환하게 만나주신 주님을 새롭게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어서 이렇게 채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사춘기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는지라 어쩌면 찬양 고백의 수준이 너무 낮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마음에 울림이 되어 선곡 된 찬양들을 통해 가도 가도 어두운 터널 밖에 안 보이는 분들 합력하여 도대체 선을 언제 이루시나 답답하신 분들 '주님의 때 주님의 방법' 이란 말이 식상하신 분들 교회 섬기는 게 지치신 분들 교회 아싸로 주변을 맴도는 분들 마음이 삐딱한 영적 사춘기를 보내고 계신 분들에게 울림이 되는 위로의 시간이 되길 기도해봅니다. 피아노 반주는 직접 해보려 했으나, 부족한 실력인지라 친 언니가 도와주고 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투닥거리는 시간들도 있었지만, 함께 찬양하는 것이 그래도 참 감사한 것 같아요. 유튜브를 시작하기 위해 마이크 소리도 못 내던 제가 음악 믹싱과 마스터링을 세 달 넘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계나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는 편이 아니고, 새로운 세계라 너무 낯설고 어려워서 찬양이 조금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믹싱 실력도 찬양의 고백의 수준도 점점 좋아지는 것을 넓은 마음으로 함께 지켜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들 아시는 그거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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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5. 09:56 신앙/찬양
[유투브 추천] 해리소리 HAERISORI _[Day and night] 밤이나 낮이나/레베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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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5. 09:52 신앙/찬양
[유투브 추천] 해리소리 HAERISORI _[It is a blessing] 복이라/어노인팅-CCM Cover by HAERI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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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1. 23:03 책과 글, 그리고 시/좋은 문장
115쪽
A. 믿음과 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우리가 만일 우리 자신만을 돌아보고 우리가 지닌 가치만을 생각한다면 거기에는 아무 선한 희망이 남아 있지 않고, 다만 죽음과, 하나님께로부터 내던져진 채로 당하게 될 틀림없는 재앙만이 우리 것이 되고 만다.
116쪽
결과적으로 우리 영혼의 소용을 위한 것이든 육신을 위한 것이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리라는 사실, 그리고 성경이 그분에 대해 약속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 또 예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 곧 구세주이심을 의심치 아니하는 사실, 이런 사실들로 인해 우리는 설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119쪽
믿음이란 것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거나, 여러 다른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만을 향하는 것이고, 그분과 연합하는 것이고, 그분과 맺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로부터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은, 만일 많은 수의 믿음들이 있다면 하나님도 역시 많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123쪽
사람들은 때때로 믿음과 의에 대해 논의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지 이해하는 사람을 많지 못하다. 여기에 우리가 첨가시켜 생각해야 할 것은, 의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요,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의이지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의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가를 통해 우리의 것이 된다. 우리가 그것을 받았다고 말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본래 의로운 것이 아니라, 전가되어 의롭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가 얻기만 하면 전가에 의해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다는 이 사실이 이렇게 간단하고 복잡스럽지 않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159쪽
제3장 기도(주기도문 해설 포함)
올바른 기도의 첫 번째 규칙은, 우리가 자기 영광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지각을 던져버리는 것, 우리의 자기 확신을 모든 내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두렵고도 겸비한 자세로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겠다.
올바른 기도의 두 번째 규칙은, 우리가 자신의 불충분함을 진정으로 자각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와 우리 유익을 위해 정말 필요로 한다는 것을 순수하게 생각하고, 그분께 구하는 것마다 그로부터 얻기 위한 목적으로 구해야겠다는 것이다.
166쪽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그토록 크고 풍성하게 쏟아 붓는 하나님의 은택에 거의 압도당했고, 또 우리가 보는 곳마다 발견할 수 있는 그의 많고도 능력 큰 기적들에 압도당해서, 우리에게는 찬양과 감사를 위한 이유와 경우가 결코 마르는 법이 없다. 이런 일들을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하도록 하자. 왜냐하면(앞서 이미 충분하게 증거된 것처럼) 우리의 모든 소망과 부요는 하나님에 안에 놓여 있어서 우리 자신이나 또 우리가 가진 모든 소유들도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고서는 결코 번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과 또 가진 바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하나님께 맡겨야 하겠다(참고. 약 4:14-15). 그래서 우리가 결정하고 말하고 행하는 무슨 일이든지 그것을 그의 손과 뜻 아래에서, 한 마디로, 그의 도우심의 소망 아래에서 결정하고 말하고 행하도록 하자.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에게나 다른 어떤 사람에게 신뢰를 두고 스스로의 계획대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자들, 곧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또 그를 부르지도 않고 무엇인가를 맡아 시작하려고 하는 자들을 하나님에 의해서 저주받은 자들도 선포되어졌다(참고. 사 30:1; 31:1)
167쪽
바울이 다른 곳에서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은(살전 5:17~18;참고 딤전 2:1, 8), 모든 사람이 언제, 어느 때, 어떤 일에서든지 만사를 하나님으로부터 기대하고, 모든 일로 그를 찬양하면서 자기들의 소원을 하나님께 올리기를 그가 바란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우리가 그를 찬양하고 그에게 간구하도록 신뢰할 만한 이유들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신다.
172쪽
먼저, 바로 첫 문턱에서부터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사실, 곧 모든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사실과 접하게 된다. 어떤 기도든지 다른 이름으로 드리도록 명한 일이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가 은혜의 자녀로 그리스도께 합하지 못하였더라면 어느 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확신있게 부를 수 있었겠는가? 누가 그 자신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권세를 함부로 부여할 수 있었겠는가?
참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우리의 형제로 주셔서, 그에게 본래부터 속한 것들이 양자의 은혜로 우리의 것이 되게 하셨다. 우리는 이 큰 축복을 확실한 믿음으로 그저 감싸 안기만 하면 된다. 요한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다(요 1:12). 따라서 하나님은 그 자신을 우리의 아버지라 부르시고 우리에게서 그 같이 불리어지기를 뜻하셨다. 이렇게 감미로운 그의 이름으로써 그는 우리를 불신앙안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 안에서보다 더 큰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173쪽
또 우리의 죄의식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아버지 - 비록 친절하고 부드러우시긴 하나 - 를 불쾌하게 만든다고 하여 우리가 무기력하게 되지는 말도록 하자. 사람들 가운데도, 아들 자신이 자기 죄를 인정하고, 탄원하는 겸손한 자세로 그 아버지의 자비를 구하는 것보다 더 나은 변호자를 그의 아버지 앞에서 가질 수 없고, 잃어버린 아버지의 총애를 되찾아 줄 더 나은 중재자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아들의 그런 태도를 보고서 그의 아버지는 동정심을 감추지 못할 것이며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신(참고 고후 1:13) 그분은 어떻게 반응하실까?
아버지의 긍휼과 친절을 의심해서 자기를 도와줄 다른 어떤 대변자를 구하기보다는, 바로 자신이 눈물과 탄신으로 간청하는 자기의 자녀들에게 그분이 귀 기울이시지 않겠는가?(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행동을 특별하게 권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넘치는 아버지로서의 긍휼을 한 비유에서 생생히 나타내 주신다(눅 15:11-32절)
한 아들이 그 아버지를 떠나, 그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13절), 아버지에게 심히 죄를 쌓았다(18절). 그러나 아버지는 두 팔을 벌려 그를 감싸 안고, 그가 용서를 구하러 오기 전부터 그를 기다리고,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기꺼이 뛰어나가 맞으며(20절), 그를 위로하고, 자애롭게 그를 받아준다(22-24절)
340쪽
첫째, 신자의 양심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칭의에 대한 확신을 찾는데 있어서 일체의 율법적 의를 잊어버리고, 율법을 넘어서야 하며 그 범위를 능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데서 설명했듯이, 율법은 어느 누구도 의롭게 하지 못하므로, 우리가 모든 칭의에의 희망으로부터 끊어지든가 아니면 그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가 칭의를 논의할 때는, 율법에 대한 언급은 배제하고 행위에 대한 고려도 모두 버려두고 하나님의 자비만을 붙잡고, 자기 자신들로부터 눈을 돌려 그리스도말 바라보아야 한다.
341쪽
그리스도인들의 전 삶은 경건의 연습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성결을 위하여 부름받았기 때문이다(살전 4:7; 참조. 엡 1:4; 살전 4:3). 율법의 기능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본분에 대해 상기시켜서, 경건과 순결을 추구하도록 일깨우는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양심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호출 받았을 때,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무엇이라고 응답할까, 그리고 어떤 확신으로 설 것인가를 고민할 때, 거기에서 우리는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고려하지 말고 율법의 완성을 초월하신 그리스도만을 의로써 내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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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30. 19:37 신앙/말씀 묵상(默想)
히브리서 11: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다
HEBREWS 11:24~26
24 By faith Moses, when he had grown up, refused to be known as the son of Pharaoh's daughter.
25 He chose to be mistreted along with the people of God rather than to enjoy the pleasures of sin for a short time.
26 He regarded disgrace for the sake of Christ as of greater value thatn the treasures of Egypt, because he was looking ahead to his reward.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0) | 2021.0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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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0) | 2021.09.08 |
나는 날마다 죽노라 (0) | 2021.02.03 |
The LORD is my shepherd (0) | 2020.09.15 |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0) | 2020.09.05 |
2021. 8. 29. 14:55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래리에게 나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아내의 이혼 통보, 교통사고, 부정 청탁, 그리고 동생의 위법 행위. 래리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나쁜 일들의 의미를 알기 위해 랍비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지만 정작 아무런 답도 없지 못한다. 그가 믿는 하솀이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과연 그 의미를 안다고 해서 우리가 마주한 불행한 일을 더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가 원하는 의미가 아니면 어떻게 하겠는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싶어한다. '왜 내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의미와 목적을 알 수 없다. 세월이 지나면 살아온 인생의 흔적들로 그 사건의 의미를 유추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때는 맞닥들인 나쁜 일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그 일이 일어난 연유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연유를 생각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내가 그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내가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내가 그때 거기를 가지 않으면... 이러한 질문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그저 그 일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의 정신 건강에 좋다.
"Receive with simplicity everything that happen to you"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 2020) - 인간의 혈중알코올 수치가 0.05% 부족하다 (0) | 2022.0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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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하메르스회(1864-1916) (0) | 2021.10.04 |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s, 2018) - 복수극일까, 아님 화해극일까 (0) | 2019.06.15 |
2019년 문화활동 (0) | 2019.03.07 |
[유럽여행 정보] Thrill of Deception(눈속임의 재미) in Munich(뮌헨)-착시현상 (0) | 2019.01.24 |
2021. 8. 28. 22:1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출처 : JTBC 뉴스
1년의 해외 선교를 다녀와서 무기력한 상태로 몇달간 지냈다. 선교에 대한 회의와 의문만 남긴채 현실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다시 남은 대학생활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한국에 2월에 입국했고, 3월에 대학생으로서 새학기를 시작했다. 2년간 휴학하고 다시 복학하니까 대학교 동기들은 대부분 졸업하고 학교를 떠난 상황이었다. 전공공부를 하려면 동기가 있어야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는데 아는 친구들이 없으니 스스로 더 공부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년간 전공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다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감도 컸다.
두렵고 떨리는 상황에서 먼저 기도하기 시작했다. 새벽기도에 나가서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모든 두려움과 걱정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면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기도만 열심히 한다고해서 내가 해야할 공부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와서 바로 김밥 한줄을 후다닥 먹고 바로 학교 도서실로 향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오전시간을 이용해서 배워야 할 공부를 예습하고 못했던 전공 레포트를 작성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몸이 피곤했던 탓에 도서실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적도 많긴하다. 그때는 꾸준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그냥 목표였다. 4학년 1학기에 새벽기도를 하고 학교에 가는 생활 습관을 어렵게 지키냈고, 열심히 공부한 덕에 4년 대학생 기간 중 가장 좋은 학점을 얻을 수 있었다. 스스로도 놀랐지만 심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거둔 나 자신이 기특했다.
다시 캠퍼스 생활을 시작하면서 힘들때마다 마음 속으로 되뇌였던 문구가 있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이솝우화에 나오는 문장인데, 이 말의 요지는 상황을 탓하지 말고 지금 내가 처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마다 내가 맞닥뜨린 상황을 탓하지 않고 어떻게 이겨내서 앞으로 나아갈까 생각했다. 결국 이러한 태도가 내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누구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삶에서 힘든 일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 자체에 매몰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처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와 나를 딛고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다.
비극 속에서 맞이하는 한 줄기의 이파리처럼 (0) | 2023.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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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미루어두었던 일은 다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0) | 2022.09.29 |
그래, 고작 그 정도일 뿐이다 (0) | 2021.08.24 |
낡은 집에 대한 불편함도 한몫한 것 같다 (0) | 2021.08.13 |
그저 잘 살라는 마지막 선물과 같은 것이다 (0) | 2021.04.16 |
2021. 8. 24. 21:4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성난 목소리로 나를 위협했던 민원인이 다시 찾아온다는 전화를 받고나서 마음이 불안해졌다.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염려하며 내심 마음 졸이고 있었다. 지난번 민원인과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던 탓에 목소리를 높이는 민원인을 만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다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봐 지레 겁먹는다. 겁먹은 탓에 상스러운 말로나를 몰아부치는 민원인에게 굳이 맞대응하지 않는다. 근데 알량한 자존심일까. 물러서지 않고 굳이 버티고 앉아있는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아닐까'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 뭐, 어쩔 수 없는 겁쟁이인가 보다.
혼자서 불안해하는 나를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굳이 그래봤자 민원인한테 멱살 잡히기밖에 더하겠어?' 그래, 막연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그 상황이 발생하면 정신적으로 좀 힘들 수 있겠지만, 그 상황이 아주 최악은 아니다. 불안한 마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마음은 한결 편해진다. 그래, 고작 그 정도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볼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내게 해를 가한 민원인을 완전히 용서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맞대응하지 않았고 분내지 않았다. 당황해서 아무런 대응도 못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성적으로 잘 대처했다. 이번 일을 통해서도 신자로서의 삶을 조금 더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내하고 견디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십자가로 인한 고난은 아니지만, 충분히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갈 좋은 기회이긴 하다. 잘 헤쳐나가기를 스스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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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13. 22:06 신앙/찬양
[유투브 추천] 해리소리 HAERISORI _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The LORD is my shepherd)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하는 해리소리 유투버를 추천합니다.
해리소리 정보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 몇 년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하나님과 교회 지체들에게 두터운 벽을 쌓은 채 긴 영적 사춘기를 보낸 30대 청년입니다. 지난 봄 '영적 사춘기'라는 어두운 터널 속에 있는 저를 다시 찾아와 환하게 만나주신 주님을 새롭게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어서 이렇게 채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사춘기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는지라 어쩌면 찬양 고백의 수준이 너무 낮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마음에 울림이 되어 선곡 된 찬양들을 통해 가도 가도 어두운 터널 밖에 안 보이는 분들 합력하여 도대체 선을 언제 이루시나 답답하신 분들 '주님의 때 주님의 방법' 이란 말이 식상하신 분들 교회 섬기는 게 지치신 분들 교회 아싸로 주변을 맴도는 분들 마음이 삐딱한 영적 사춘기를 보내고 계신 분들에게 울림이 되는 위로의 시간이 되길 기도해봅니다. 피아노 반주는 직접 해보려 했으나, 부족한 실력인지라 친 언니가 도와주고 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투닥거리는 시간들도 있었지만, 함께 찬양하는 것이 그래도 참 감사한 것 같아요. 유튜브를 시작하기 위해 마이크 소리도 못 내던 제가 음악 믹싱과 마스터링을 세 달 넘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계나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는 편이 아니고, 새로운 세계라 너무 낯설고 어려워서 찬양이 조금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믹싱 실력도 찬양의 고백의 수준도 점점 좋아지는 것을 넓은 마음으로 함께 지켜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들 아시는 그거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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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13. 19:03 책과 글, 그리고 시/좋은 문장
6쪽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다른 훌륭한 분들과는 달리 제게는 성공의 해법이나 어른이 되는 빠른 길에 관하여 달리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버티어내는 삶의 자세가 세대와 계급을 초월해 모두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참 별거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주 가끔 숭고해질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그 버티어내는 자세로부터 나온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버티는 삶이란 웅크리고 침묵하는 삶이 아닙니다. 웅크리고 침묵해서는 어차피 오래 버티지도 못합니다.
요컨대,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자, 는 것입니다.
17쪽
그래서 또한 동시에, 나는 그녀에 대해 늘 근심하고 연민을 느꼈다. 안타깝고 슬펐다. 나는 지금도 엄마의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챙겨주려는 말들이 귀찮게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와 나 사이에 얽혀 있는 감정들이 새삼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꾸 내가 엄마를 다그치고 거꾸로 훈계조가 되는데, 이건 서로를 위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나는 이미 오래전 가족의 신화에 대해 모든 신뢰를 잃었다. 그보다 우리는 서로를 가족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는 방법을 더디게 배워왔다.
35쪽
'어두워졌다'고 평가되는 중기 이후의 작품들에서 이와 같은 화두는 더욱 본격화된다. 「두더지」에서 「시가테라」「심해어」「낮비」에 이르기까지, 후루야 미노루의 주인공들은 더 나은 인간, 공동체게 필요한 사람, 최소한 평범한 어른, 아니 평범한 어른이라는 이상향을 향해 골몰한다. 혹자들은 후루야 미노루의 근작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한 남자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진 여자에게 구제되는 이야기의 동어반복이라고 비판한다. 확실히 그런 혐의가 있다. 다만 후루야 미노루가 방점을 찍는 건 그녀에게 구제되는 그, 가 아니다. 이것은 주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책임지는 행동의 필요성을 깨달으면서 스스로를 구제하는 나, 의 이야기다.
37쪽
그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어른이란, 바로 그런 과오들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책임이다. 그것을 짊어지지 않고 도망가려는 자들 때문에 상처받았던 주인공이다. <중략>
서두를 반복하자면, 인간은 그러니까 어차피 과거를 생각할때마다 조금씩 죽는 것이다. 그 과거의 크기에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좌절하지도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짊어질 수 있는 꼭 그만큼씩을 가지고 살아나가면, 그것이 평범한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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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13. 16:42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버스를 오랜시간 탔기 때문일까. 경주 집에 도착했을 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3개월만에 부모님을 뵈었지만 내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아버지는 저녁식사를 하고 계셨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반찬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큰 방에 앉은 뒤 계속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부모님과 별 대화도 하지 않고 바닥에 누워서 TV 화면만 응시했다.
경주 집에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내 방이 없다. 주로 어머니가 계시는 방에서 쉬긴하는데 뭔가 편안하지는 않다. 낡은 집에 대한 불편함도 한몫한 것 같다. 몇해전 돈을 보태줄테니 좀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라고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냈으나, 그날 대화는 결국 내 결혼 이야기로 점철되었다. 부모님 걱정하지 말고 나부터 먼저 결혼하라는 것이다. 그 뒤로는 이사에 대해 한번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몇개월 전 아버지는 갑자기 전화오셔서 무작정 몇백만원을 빌려달라고 말씀하셨다. 돈의 용도를 물었으나 아버지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고 돈이 있으면 빨리 빌려달라고 재촉하였다. 자다 일어난 탓에 돈의 용도와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고, 피곤해지기 싫어서 아버지에게 돈을 보냈다. 며칠 뒤 안 것이지만 결국 그 돈은 아무 쓸모 없는 데 사용되었다. 아버지가 돈을 어디에 쓰는 지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고 돈을 빌려준 내가 어머니와 누나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웃긴(?) 상황도 발생했다. 그 뒤로 아버지에게 그 돈에 대해 묻지 않았다.
집이란 본래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본가를 떠난 지 오래된 탓인지 경주에 가면 언제나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내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다가 집 근처 바닷가에 바람을 쐬러 외출했다. 밖에 나와서 책을 읽고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지만, 몇시간동안 연락되지 않는 엄마와 외출하기 전에 본 아버지의 굽은 등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예민한 탓일까, 부모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것일까. 자꾸 쓸데없는 질문이 떠오르지만, 답이 없는 질문은 결국 머리만 아프게 할뿐이다. 본가에서 지낸 며칠동안 불만과 짜증만 가득 쌓인채 결국 개운하지 않은 감정만 남기고 다시 떠나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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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13. 16:09 책과 글, 그리고 시/좋은 문장
17쪽
대학을 흔히 '상아탑'이라고 부릅니다. 상아탑은 '현실과 거리를 둔 정신적 행동의 장소'라는 뜻입니다. 현실과 거리를 둔다는 것은 현실을 다루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현실을 다루기 위해 거리를 둔다는 의미입니다. 거리를 둬야 현실을 객관적으로 대상화해서 응시할 수 있으니까요.
25쪽
프랑스의 철학자 미셜 푸코는 "텍스트란 작가 개인이 아니다. 사회의 힘에 의해 써지는 사회적 작업니다"라고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저명한 문화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텍스트가 세계 속에, 세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두 글쓰기의 사회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38쪽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그에 대해 글을 쓰면 필연적으로 사건이 벌어진 당시 상황을 '대상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사회적 맥락에 대해서도 탐구하게 됩니다. 대상화란 쉽게 말해 '떨어뜨려 놓고 보기'입니다. 자신에게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고통과 상황을 떨어뜨려 놓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대상화가 사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만들어 냅니다.
39쪽
지적 도약을 이루면, 고통이 일정 부분 줄어듭니다. 고통이 자기 성장의 땔깜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란 어찌 보면 정신적으로 성장할 것이냐, 고통 속에서 죽어 갈 것이냐 하는 중대 기로, 즉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절체절명의 상태에 놓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정신적 성장을 요구합니다. 정신적으로 성장해야만 견디면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그 정신적 성장에 도움을 줍니다. 그것을 치유라고 부를 수 있다면, 글쓰기는 자기 치유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스스로 치유하는 것입니다.
42쪽
글은 기본적으로 자기 정신의 표현입니다. 글만큼 자기 정신을 표현하는 최적의 도구는 없습니다. 독일을 철학자 니체는 독서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나를 다른 사람의 혼속을 거닐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바꿔 보면, 글을 쓰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내 혼 속을 거닐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글쓰기는 한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48쪽
글을 쓰다 보면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기 위상이 강화됩니다. 개인적 자아에서 사회적 자아로 진화합니다. 글쓰기가 사회 참여를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발표한 글이 사회에 일정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도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의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53쪽
글쓰기와 독서의 관계는 파고 들어가면 좀 묘합니다. 열혈 독자중에서 필자가 나오는 것은 맞지만, 반대로 글을 쓰려고 마음먹으면 더 많은 독서를 하게 된다는 것과 맞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려면 많은 지식과 참고문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글을 쓰면 책을 안 읽던 사람도 읽게 되고, 책을 읽던 사람은 더 많은 책을 보게 됩니다. 글쓰기와 독서는 상호 되먹임 관계에 있습니다. 글쓰기가 독서를 부추기고, 독서를 통해 아는 게 많아지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더 생깁니다.
69쪽
메모는 '깊이 읽기'의 시작이면서 글쓰기의 시작입니다. 저는 글쓰기 강의를 할 때면 "메모를 하면 글을 쓰고, 메모를 안 하면 글을 못 쓴다"고 단언합니다. 거의 모든 작가는 메모광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메모를 습관해해야 합니다. 메모의 내용이 결국 글이 되기 때문입니다.
79쪽
자료와 메모가 충분하면 머리를 쥐어짤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쓸 것들이 생각나니까요. 충분한 자료와 메모는 인문적 글쓰기에서 논리와 근거를, 문학적 글쓰기에서는 상상력을 제공해 줍니다. 소설 같은 것을 쓸 때도 자료와 메모가 충분하면, 스토리가 저절도 생각납니다. 글을 쓰고 싶은 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제까지 읽은책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부터 정리해 보세요.
81쪽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내 생각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내 생각을 잘 알아야, 남에게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밑줄 그은 내용을 컴퓨터로 정리하면, 내 생각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밑줄 그은 내용은 대부분 자신이 동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내용을 컴퓨터 파일에 모아 놓으면, 자신이 어떤 내용에 주로 동의하는지 확실해집니다.
83쪽
정리하자면,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부분을 컴퓨터로 정리해놓으면 글감이 생기고, 자기 철학이 확고해지며, 놀리와 근거가 치밀해집니다. 또한 문장력이 좋아지고 어휘량도 늘어납니다. 어떤가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가 거의 해결되지 않나요?
[좋은 문장] 기독교 강요 _ 존 칼빈 (0) | 2021.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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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 당신이 오해하는 하나님의 사랑 _ 조너선 리먼 (0) | 2021.08.02 |
[좋은 문장]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GETTING MORE)_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0) | 2021.06.03 |
[좋은 문장]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_ 박경철 (0) | 2021.03.28 |
2021. 8. 11. 16:16 신앙/찬양
[유투브 추천] 해리소리 HAERISORI _ 우물가의 여인처럼(Fill my cup, Lord)/CCM Cover by HAERISORI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하는 해리소리 유투버를 추천합니다.
해리소리 정보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 몇 년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하나님과 교회 지체들에게 두터운 벽을 쌓은 채 긴 영적 사춘기를 보낸 30대 청년입니다. 지난 봄 '영적 사춘기'라는 어두운 터널 속에 있는 저를 다시 찾아와 환하게 만나주신 주님을 새롭게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어서 이렇게 채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사춘기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는지라 어쩌면 찬양 고백의 수준이 너무 낮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마음에 울림이 되어 선곡 된 찬양들을 통해 가도 가도 어두운 터널 밖에 안 보이는 분들 합력하여 도대체 선을 언제 이루시나 답답하신 분들 '주님의 때 주님의 방법' 이란 말이 식상하신 분들 교회 섬기는 게 지치신 분들 교회 아싸로 주변을 맴도는 분들 마음이 삐딱한 영적 사춘기를 보내고 계신 분들에게 울림이 되는 위로의 시간이 되길 기도해봅니다. 피아노 반주는 직접 해보려 했으나, 부족한 실력인지라 친 언니가 도와주고 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투닥거리는 시간들도 있었지만, 함께 찬양하는 것이 그래도 참 감사한 것 같아요. 유튜브를 시작하기 위해 마이크 소리도 못 내던 제가 음악 믹싱과 마스터링을 세 달 넘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계나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는 편이 아니고, 새로운 세계라 너무 낯설고 어려워서 찬양이 조금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믹싱 실력도 찬양의 고백의 수준도 점점 좋아지는 것을 넓은 마음으로 함께 지켜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들 아시는 그거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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