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 11:34 책과 글, 그리고 시/좋은 문장
서론
17쪽
"매체가 곧 메시지다"(The medium is message)
20쪽
단지 '교회'가 복음의 당연한 결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메시지의 당연한 결과는 특별하고 구별된 형태의 교회이다. 등록 교인 제도와 권징은 인위적으로 세워진 구조가 아니다. 이 둘은 새 언약의 은혜 위에 더해진 법률적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부터 그리고 회개와 믿음으로 이끄는 복음의 부르심으로부터 유기적, 필연적으로 도출된 것이다. 지역교회 교인의 권리를 상실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선한 일을 하거나, 이웃을 사랑하거나, 가난한 자들을 돌보거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도록 부름받은 부르심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참된 신자라면 지역교회에 헌신해야 한다. 이는 마치 참된 신자가 선한 일을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누군가 지역교회에 등록하거나 헌신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의로운 삶을 거부하는 자이다. 이런 행위는 믿음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22쪽
교회론은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타락해버림으로 말미암아 죄책감에 빠진 인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삶과 희생의 죽음과 승리의 부활, 죄인들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의, 회개와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누리는 삶 등에 관한 모든 지식을 반영해야 한다.
26쪽
교회와 세상 사이의 경계선이 흐려질 때, 사랑하고 용서하고 돌보고 거룩하며 의로운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그림 역시 모호해진다. 그러나 이 모호한 경계선은 또 다른 모호한 경계선, 즉 거룩한 창조주와 타락한 피조물 사이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과 맹신하는 사람 사시의 경계가 모호해진 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물이다. 이것은 오늘날 덜 '제도화'되고 덜 '경계화'된 지역교회의 개념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초월하시는 하나님보다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선호하고, 성자 예수보다 인간 예수를 선호하며, 거룩한 성경보다 인간저인 성경을 선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시사한다.
35쪽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옮겨가거나,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전혀 희생하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무슨 의미일까? 사랑이 가장 큰 선이며, 사랑이 용서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무엇이, 또는 누가(!) 사랑을 정의하는가?
18세기와 19세기의 낭만주의자들은 제도보다는 사랑에 의해, 외부적인 구속보다는 내적인 열정에 의해, 이론적인 추론보다는 즉흥적인 감동에 의해, 사실보다는 감정에 의해, 효율과 질서보다는 아름다움과 자유에 의해, 생기 없는 신학 서적 탐독보다는 고된 삶에서 땀 흘리며 얻은 지혜에 의해 인도받기를 원했다. 나는 이와 유사한 충동들이 포스트모던 서구사회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제도라는 단어가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
43쪽
그러나 이 책이 다루려는 것은 제도주의의 위협과 권위의 남용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의 오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 사이에 훨씬 더 만연한 오류로, 서구문화의 반제도적, 반경계적, 반윤리적, 반권위적, 세계관과 욕구들이다. 또한 이 책은 반권위적 비경계주의의 위협과 불복종의 위협에 대해 다룬다. 타락한 세상에서 이러한 논의를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지역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49쪽
어떤 저자들은 등록 교인 제도가 오늘날 더 이상 의미가 없고, 무익하며, 시대상황과 맞지 않으므로 포기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저자들은 등록 교인 제도의 배타적인 경계선이 복음을 왜곡하므로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자들 사이에 '제도주의 축소' '진정한 공동체 확장' '조직 축소 및 사랑 확대' 등의 용어들이 반복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로마가톨릭교도들과 자유주의 개신교 저자들 중에도 19세기 중반 이후에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후로는 그 수가 더 많아졌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ㅇ과 소위 탈복음주의자들도 지난 10~20년 사이에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제 "제도주의는 악하고, 사랑의 공동체는 선하다"라는 주장이 거의 주문처럼 되어버렸다.
52쪽
이 책의 논지는 매우 단순하다. 하나님이 교회를 부르셔서 경계를 긋게 하시고, 그 경계를 통해 어떤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시고, 어떤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게 하시며, 어떤 사람들이 이미 교회에 들어와 있다면 그들을 내보내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교회가 사랑이 정확히 무엇인지 세상에 드러내는 데 유익하도록 이러한 경계표를 사용하게 하셨다.
1부 잘못 정의된 사랑
64쪽
사람들은 교회를 둘러싼 경계선을 긋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여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할 때 우리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정말 성격적일까? 오늘날의 많은 작가들은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이 대체로 (1)개인주의적 이라고 평가한다. 그들은 또한 개인주의와 함께 (2)소비주의, (3)일반적인 헌신의 부재 그리고 (4)모든 절대 진리에 대한 회의주의가 찾아온다고 말한다.
[참고]
소비주의 세계관은 처음에는 상대적이었던 선-소비-을 결국 절대적인 선으로 대체한 관점이다. 소비주의는 부와 그에 수반되는 모든 것을 축적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소비를 절대화한다. 소비주의는 우리의 모든 필요는 물질적 소비로 충족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많이 소비할수록 더 많은 욕구가 채워진다. 욕구 충족이 구원의 핵심내용이기 때문에 사실상 소비주의는 세속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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