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_ 팀 켈러

2020. 3. 26. 22:09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팀 켈러 지음 / 최종훈 옮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초기에는 중국과 몇몇 나라의 문제로 국한되는 듯했지만,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인들을 불안과 두려움으로 내몰고 있다. 과학과 기술로 인해 인간의 삶은 진보했지만, 백신 하나도 개발하지 못한 상황에서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현 상황은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절실히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이처럼 뿌리 깊은 “내면의 욕구”가 있으므로, 어떤 문화든 구성원들이 고난에 맞서게 돕든가, 아니면 신뢰를 잃어버릴 위험을 감수하든가 양단간에 선택을 해야 한다.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는 고통의 문제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고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기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고난은 어느 시대나 존재했고, 그 시대마다 세계 위대한 사상가들과 신앙가들은 고난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왜냐면 고난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은 여러 가지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윤리적 관점에서 고난은 인생에 대한 그릇된 행실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하게 살면 고난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자기 초월적 관점에서 고난은 이룰 수 없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본다. 고난에서 해방되려면 이 세상과 덧없는 물질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자기초월적인 관점으로 고난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종교가 불교다. 또 다른 관점은 숙명론적인 관점이다. 고난은 운명이기 때문에 거를 수도 없다. 고난이란 절망적인 운명에 맞서 물러남 없이 당당하게 싸우는 것은 미덕이자 영광이다. 마지막으로 세속적인 관점에서 고난은 우연의 산물이다. 고난을 통해 제각기 삶의 의미를 창출함과 동시에 고난을 통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고난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는 세속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문구이다.

 

죄 없는 하나님의 희생만이 무고한 이들에게 끝도 없이 쏟아지는 고문을 정당화한다. 신이 당하는 비참한 시련만이 인간의 고뇌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의 관점에서 고난은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삶의 한 부분이다(p. 53). 고난의 의미와 목적이 있긴 하지만, 고난을 당하는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면 고난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고난을 제대로 이해하기 필요한 기독교 네 가지 교리를 믿어야 한다고 설명하다. 첫째, 전능하시고 인격적인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이다. 둘째,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발적인 고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성취한 사역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 사실은 고난이 죄의 결과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르게 잡아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난을 다 받으신 후 죽음을 이기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역사적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고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와 더불어 고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유익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첫째, 고난을 견디어 이겨낸 경험은 다른 고난을 이겨내는 근간이 될 수 있다. 둘째, 고난을 통해 주위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질 수 있다. 셋째, 고난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와 철학을 바꿀 수 있다. 고난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진정으로 슬퍼하지만, 소망 가운데 깊이 잠깁니다.” 
- 키프리아누스 -

 

 다만,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들이 무수히 많다. 고난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또한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자인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다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차원이기는 하지만 개미가 인간의 생각을 엿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고난을 해석할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께 더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하기에 고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건히 믿고 의지한다면 신자의 믿음은 분명히 성장할 수 있다. 신자라면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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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늦은걸까요?

2018. 3. 24. 16:37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34살, 여러 사람들이 결혼할 나이라면서 여자친구는 있느냐고 물어본다. 여자친구가 없다고 하면 부지런히 소개팅을 하란다. 늦어도 올해만나서 1년 정도 사귀고 35살에는 결혼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걱정아닌 걱정을 한다. 


인생을 돌아보면 중요한 지점마다 또래보다 상대적으로 늦었다. 29살, 대학교를 졸업했고, 31살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33살에 신입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열등감때문에 위축될 때도 많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삶의 여러 순간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특히 중요한 순간마다 신앙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쉽지 않은 결정을 하기도 했다. 



"옳다고 믿는 것에 제 목숨을 걸겁니다."


영화 헝거(Hunger, 2008)의 주인공이 단식을 하기 전에 했던 말이다.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려면 희생은 불가피하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쳤던 삶의 한 지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2009년, 아프리카 1년의 삶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때, 200만원 가량의 선교비가 통장에 남아있었다. 선교지원비는 성도들의 헌금에서 나온 것이므로 나의 만족을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때문에 현지에서도 선교비를 사용해야 했을 때 '정말 돈을 써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대면하면서 선교비를 최소한으로 사용했다. 그러다보니 선교비 전용 통장에 선교비가 쌓여갔고,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통장 잔고가 약 200만원이었다. 한국에 돌아왔을때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선교비를 사용하지 않았다. 선교비는 마땅히 선교 그 자체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선교비를 사용하지 않았고 전액을 선교목적으로 헌금했다. 헌금을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모든 재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때가 되면 경제적으로 상황을 열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른 삶의 경험들도 있지만,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할 댓가가 있다는 것이다. 


아아...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다. 신념대로 살아온 한 남자의 늦깍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회의 기준으로 보자면, 상대적으로 여러 것들이 늦었지만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만의 삶을 살기위해 인생이 늦춰진 것도 아니고, 신념에 따른 선택을 하다보니 지금 이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매순간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믿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볼뿐이다. 늦었지만, 늦지않게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주실 하나님을 의지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나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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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다시 하면 돼!

2017. 11. 15. 00:0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최종면접이 끝나고 기분은 후련했다. 조바심내며 며칠을 준비했던 면접이 끝났다는 해방감때문에 후련한 감정이 먼저 밀려온듯하다. 후련한 감정은 잠시였고, 면접의 긴장이 한순간 풀리면서 피로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집으로 오는 광역버스안에서 다른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잠에 취했다. 버스 종착역에서 잠이 깼다.



면접에 대한 아쉬움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외로움에 지쳐 다시 잠들었다. 3시간을 잤을까, 잠에서 깼을 때  방 안은 그 어느때보다 적막했다.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괜찮아, 다시 하면 되잖아!' 어설픈 이해는 위선이라고 단언했는데, 나는 그 어설픈 위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었는지, 아니면 마음이 약해진건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정신이 다시 돌아온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거다. 과거에 매여 있을 필요 없다. No pain, no gain. 거저 없는 것은 없다. 지금의 시간들이 성장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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