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을 생각한다

2024. 12. 24. 13:15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최근 정우성의 혼외자 사건이 대중의 큰 관심사였다. 배우 정우성에 대한 호감도가 컷던 탓에 논란이 된 사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혼외자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언론 보도가 발표된 후 정우성은 문가비가 낳은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밝히면서 양육에 대한 책임을 다 지겠다고 말했다. 그 후 청룡영화상에 참석할지를 놓고 고심하던 그는 결국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청룡영화제에 얼굴을 드러낸 정우성은 수상 소감 자리에서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다하겠다”전사(戰士)처럼 아주 결연한 태도로 해명했다. 더 웃긴 것은, 시답지도 않은 해명에 박수를 쳐주는 동종업계 연예인들의 행태다. 추잡한 짓거리에 대한 옹호인지, 아니면 본인들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며 저렇게라도 책임지겠다는 모습 자체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지, 뭐 알순 없다만, 참 지랄맞은 상황이었다.  
 
 근데 굳이 영화인들의 잔치인 청룡영화제 수상 소감 자리에서 그 논란에 대한 해명을 했어야 하는가? 또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양육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 뻔한 소리를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하려고 했는가? 지금까지 대중에게 보여준 정우성의 활동을 생각했을 때 그의 행동이 의아할 수밖에 없다. 
 
 정우성은 과거 유엔 난민기구 친선대사로 꾸준한 홍보와 기부활동을 이어가며 개념있는 연예인의 면모를 보여줬다.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여론에 대해서도 난민을 옹호하며 그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대중들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의식 있다”, 혹은 “소신 있다”고 판단하며 칭찬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묻고 싶다. 과연 난민을 옹호하던 정우성의 모습은 진짜였을까 아니면 가짜였을까?

 
 전쟁 난민들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벌어진 내전 또는 전쟁으로 인해 자국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자국의 보호 밖에 존재하는 자들이다. 정우성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근데 그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성관계를 맺었고, 그로 인해 아이가 태어났으나 결혼은 하지 않겠으며 아이에 대한 책임만 지겠다고 말했다. 혼외자인 아이는 정우성이 법적 절차를 거친다면 부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혼외자는 법적 권리 및 보호를 가지지 못한다. 전쟁 난민의 보호받을 권리를 옹호하는 자가 자신의 자녀에 대한 권리를 올바르게 옹호하지 않는다면, 그자체가 모순이다. 그는 결혼하지 않고서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을 다 지겠다고 말한다. 미혼모의 비율이 높아지고 낙태가 성행하는 이 시대의 흐름에 정우성을 두둔하는 자들이 있긴 하지만, 과연 이 행태가 옳은지 물어야 한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대중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연예인의 이미지는 여론과 방송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 실제 그 사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병헌도 파렴치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으나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논란을 극복하며 재기했다. 과연 정우성도 혼외자 사건 논란을 연기로 극복해서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뭐, 재기한다면 대중들은 다시 그 혼외자 사건의 정우성을 까맣게 잊게 될테니 말이다. 이제 나도 이병헌을 이지연, 다희 사건의 파렴치한 이병헌으로만 치부하지 않는다. "이병헌은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잖아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아이러니하다. 
 
 
 
 

 

반응형

이병헌과 삼성을 생각한다.

2015. 12. 31. 23:30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출처: iamkorean.com



이병헌이 배우로서의 실력과 공인으로서 책임져야 할 도덕성의 문제를 어떻게 연관지어 생각해야 하는가. 파렴치한 인간이었던 '이병헌'은 내부자들을 통해 연기로서 다시 한번 인정을 받으면서, 배우 이병헌으로 탈바꿈했다. 네이버에서 이병헌의 연관검색어는 내부자들과 관련된 단어로 거의 바꼈고, 구글(Google) 이미지에서 이병헌을 검색하면 이병헌과 다희, 그리고 이지연을 함께 볼 수 없다. 이병헌은 이미지 변신에 보란듯이 성공했다. 배우가 연로 승부해야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나, 공인으로서의 도덕성과 배우로서의 연기를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출처: calfocus.com



이병헌을 보면서 삼성을 생각했다. 삼성은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성이 결여된 여러가지 사건들과 연루되어 있다. 특히, 삼성반도체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백혈병 사태에 대하여 방관하며 문제를 회피하려고만 한다. 2007년 삼성업체 노동자가 죽었을 때 삼성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 공화국의 일원임을 고백한다. 삼성 제품은 타사에 비해 가성비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a/s 체계도 잘 되어있어서, 제품을 고를때 고민없이 삼성을 선택한다. 기업의 도덕성과 그 기업 제품의 우수성은 별개이어야 한다는 논리하에 말이다.

 
 



삼성의 도덕성을 비난하긴 하지만, 그 파렴치한 행위가 나의 권리와 행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면 나는 행동하지 않는다. 행동이 없는 지식은 죽은 것인데 말이다. 사회에서 개인을 먼저 분리하고, 그 다음 기업에서 도덕성과 그 기업이 만들어낸 제품을 따로 떼어 생각한다. 그리하며 삼성의 제품을 고르는 것은 사회의 악을 저지르는 한 기업의 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개인의 기호에 따라 하나의 상품을 구매한 것 뿐이다, 라는 결론을 맺게된다.



그러하다면, 나는 이병헌이 열연한 내부자들을 볼 것인가, 2015년이 저물어가는 마지막 날에 다시 묻고 있다.  






모순: 창과 방패



반응형
반응형

L'Étranger by kangsy85

Search

Category

First scene (1250)
프로필 (19)
일상의 관심사 (56)
삶을 살아내다 (395)
책과 글, 그리고 시 (259)
산업단지 (13)
도시재생 (4)
토목직 7급 수리수문학 (8)
토목직 7급 토질역학 (8)
자료공유 (88)
편집 프로그램 (9)
신앙 (286)
초대장 배포 (55)

Statistics

  • Total :
  • Today :
  • Yesterday :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Recent Trackbacks

Copyright © Nothing, Everything _ Soli Deo Gloria All Rights Reserved | JB All In One Version 0.1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