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자

2013. 10. 26. 21:44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법대로 하자라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 글을 쓰라.




<조건>

1. “자체에 대한 신뢰의 여부를 전제 내용으로 기술할 것.

2. “법대로 하자을 절대적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도구적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지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

3. 이때 발화자는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지, 아니면 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보일 것.

4. 글의 형식은 중수필(칼럼, 비평문 등)로 쓰되, 분량은 1,200(±150)자 내외로 할 것.



 

 고 3시절, 친구가 시비를 걸어 말다툼 끝에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홧김에 먼저 주먹을 휘두르긴 했지만, 별로 때리진 못했고, 많이 맞기만 했다. 코뼈까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집에서 내 몰골을 보고 화가 나신 부모님께서는 친구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법대로 하자고 말씀 하셨다. 법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당연히 내가 피해자가 되고, 충분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방 부모님도 법대로 해라고 당당히 맞서는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슨, 내가 먼저 주먹으로 자기 아들을 때렸기 때문에 법적으로 처리해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법에 의하면 많이 맞았다 하더라도 먼저 주먹을 휘둘렀을 경우에는 쌍방 폭행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나는 코뼈가 골절된 실제적 피해자로서 법을 통해 보상 받고 싶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 부모님께서 말한 대로 법대로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한국사회의 법 집행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법치국가이다. 법의 원칙에 따라 갖가지 문제들이 중재되거나 해결되어야 한다. 법을 통해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법적 근거 외에 다른 요소가 개입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권력과 부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인들이나 대기업 총수들이 수천억의 돈을 횡령, 탈세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다시 사회로 진출한다.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법 집행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다. 법이 국민들에게 폭력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무력(無力)한 법은 더 큰 문제다. 국민들에게 법을 준수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해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위험이 크다. 법대로 살면 손해 보는데, 누가 법을 지키겠는가?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 김명호 교수는 대 입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학내에서 징계 및 재임용 거부를 당해 퇴출당했다. 검찰부에 소송을 걸었으나 교수로 복직하지 못했다. 판결에 부당함을 느낀 김명호 교수는 법대로 하자고 검찰부와 맞섰다. 그가 법대로 하자고 한 것은 법치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국가가 법의 원칙에 근거해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패소했다. 검찰부란 권력을 상대로 한 싸움이었으니 법의 공정성이 그대로 지켰는지는 의문이다.


 법치국가에서 법대로 살면 이득을 봐야 한다. 아니,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한다. 자식들에게 법대로 살아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법의 원칙이 살아있는 사회가 구현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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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에 갇히다 - [트라우마;신체적, 정신적 충격 경험 후 발생하는 정신적 질병]

2013. 5. 22. 01:11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트라우마란

 

 트라우마는 특정적인 사건이나 사고를 통해 신제적,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아주 밀폐된 공간에 갇혀서 숨이 막혀 죽을 경험을 한 사람이 훗날, 다시 그 상황에 맞닥드리게 되면 정신적으로 상당히 불안해지면서 특이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어릴 때 눈 앞에서 목 매달고 죽은 사람을 봤다면 목을 조르는 옷을 입거나 넥타이를 매게 되면 실제적으로 숨이 막히지 않지만 정작 본인은 옷이나 넥타이가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러한 정신적 충격에 의해 생긴 트라우마에 한 번 갇히게 되면, 스스로 헤어나오기란 쉽지 않다.

 

 

 

 

 

# 트라우마에 갇히다; 싸움, 패배 그리고 부러짐. 

 

20039월 수능 100일전 전국수능모의고사가 치뤄지던 날, 1교시 언어영역을 끝마치고 흐트러진 정신을 깨우러 화장실로 갔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바라본 불투명한 거울에 그 녀석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던 녀석이었는데, 그 날 거울을 통해 자존심을 건 신경전이 벌어졌다. 신경전이 말싸움으로 이어졌다. 둘만의 싸움을 위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싸우기로 합의한 다음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도중에도 잦은 욕설과 몸싸움이 있었지만 둘 다 계단에서 싸울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마지막 계단에서 그녀석이 내 팔을 잡았고, 그 건들림이 짜증나게 느껴졌던 나는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싸움에서 선방하면 질 경우는 별로 없는데... 선방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끄러 졌는 것 같기도 하고, 엄청 맞은 것 같기도 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난 넘어져서 달려드는 녀석에게 발발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한 명의 친구가 와서 싸움을 말렸고, 코에서는 벌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두려웠다. 뜨거운 그 무언가가 내 몸을 흐르고 있을 때 패배라는 것이 사실로 다가왔다.

 

 

 

 

 

3자의 개입으로 싸움은 잠시 멈춰졌지만 아직 서로 분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피에 흥건히 젖은 흰 티셔츠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멈추지 않는 피를 찬물로 지혈했다. 그러고 나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올라간 3층 교실 앞에 그 녀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덤빌 기세였다. 아래층에서의 '패배'가 날 움츠리게 했다. '또 맞을 것 같아...그런데 여기서 물러서면 쪽팔리잖아!'

 

 

영화의 한 장면 처럼 복도 중앙에서 다시 엉켜붙어 싸웠다. 아니, 다시 난 알 수 없는 싸움에 휘말렸다. 그 때 마침 2교시 수리영역 시작 종이 울렸고, 우리는 싸움은 끝낼 수 밖에 없었다. 녀석은 꽤 멀쩡했고, 난 누가봐도 흠씬 두둘겨 맞았음을 알 수 있을 만큼 눈덩이와 코 주변이 부어 있었다.

 


싸움이 끝난 후, 교복 셔츠에 바싹 말라버린 핏자국이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내게 일깨웠고, 부러진 코뼈의 쓰라린 아픔이 몸서리치게 내게 밀려왔을 때 난 다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웠다.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내가 왜 싸웠을까?' 그러나 상황은 이미 벌어진 상태였으니, 어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코뼈의 부러짐에 대한 트라우마는 형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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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멘토(mentor)의 역할은 무엇인가.

2013. 3. 12. 19:24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출처: http://cfs14.tistory.com/

 

 

 

 

 인생의 많은 선배들이 요즘 청년들은 생각하는 이 부족하다고 한다.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 중에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인터넷스마트폰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 지식인에게 물어보면 큰 노력 들이지 않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스마트 폰이 대중에게 많이 보급되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의 무선인터넷을 이용해 터치 몇 번으로 원하는 정보를 손 쉽게 얻을 수 있다. 정보의 접근이 쉬워지고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스스로 그 정보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착각 때문에 스스로 어떤 현안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는다. 손에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만약 그 스마트폰이 사라진다면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청년들이 삶의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에도 대처하는 방법은 그리 다르지 않다. 스스로 고민해 볼 생각은 않고, 분별력 있는 멘토에게 결정권을 넘겨버린다. 그러고서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멘토에게 어떠한 문제의 해결책을 얻었다고 하자. 그러다 또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고서 바로 멘토에게 달려가서 정답을 구할 것이다. 왜냐고? 그 방법이 쉽고 편하니까. 이러한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면, 결국엔 생각할 수 없는 바보가 되고 만다.

 

 

 

 각박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멘토가 필요한 존재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멘토의 역할에 대해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멘토는 삶의 정답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점쟁이가 아니란 말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다.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이 시대 청년들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많은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그 정보를 습득해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사고력이다. 따라서, 멘토는 청년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사고하여 역경의 길들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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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다. 그래서 손길이 필요하다.

2013. 2. 23. 15:08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니면 물건이든지 간에 아름다운 것은 눈을 즐겁게 한다. 아름다운 것에 시선이 가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에 넋 놓고 있어서는 아니 되며, 아름답지 않은 것들에게 시선을 돌릴 줄도 알아야 한다 겉이 아름답다고 해서 속도 아름답다고 장담할 순 없다. 요즘 시대는 더더욱 그렇다. 겉을 까봐야 속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아름다움은 그 자체, 아름다움으로만 보아야한다. 그것이 전부인양, 신봉해서도 절대 믿어서도 아니 된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외형상 아름답지 않다. 또한 다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불완전해 보인다. 늘 소외받기 쉽다. 늘 외로울 수 있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의 사상이 관통하는 이 시대에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다수의 따돌림에, 사회적 무관심으로 더욱 움츠러 들어 있는 이들이 있다. 링컨 대통령이나 마틴 루터킹 목사님처럼, 뚜렷한 개혁의 정신을 가지고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워 불합리한 제도와 법을 바꿔서 소외된 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선사해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허나, 지금은 무리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넋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다.

 

 

 

 하나의 기억이 나를 스친다. 군 복무시절, 한창 추울 때 외박을 신청해 서울구경을 갔었다. 1박 2일의 짧은 서울구경을 마치고 복귀하러 지하철을 타러가는 길에서, 저 구석진 곳에 한명의 아저씨가 웅크려 자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얇은 겉옷가지로 추위를 감당할 수 없어 떨고 있었고, 허기져 보였다. 나는 그 곳을 떠나지 못했다. 그저 응시했다. 그 아저씨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사회에 대해 분노했고, 출처모를 눈물을 흘렸다. 단지, 그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빵과 음료수를 사서 아저씨 머리맡에 두면서 "배고플때 드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아저씨는 말할 기운도 없어보였다. 다시 쭈그려 한참을 바라보다 지하철을 떠났다.

 

 

 

 

 

 

 

 

 

 

 

 지금 나의 자리에서 약자들과 함께 하면 된다. 단지, 한 순간의 '동정'이 아닌, 함께 삶을 살아가는 한 명의 인생 동반자로서 따뜻한 손길이고 싶다. 그 손길 중 하나가 나 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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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진정성에 대하여.

2013. 2. 16. 15:59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프라이버시

개인의 사생활이나 집안의 사적인 일. 또는 그것을 남에게 간섭받지 않을 권리.

 

  삶을 살아가면서 유익한 정보와 인생의 사건들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블로그의 주된 목적이다. 현재,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보다 서평이나 일반적인 사실에 대한 글들이 많다. 간혹 사적인 사건들을 기록하긴 했지만, 공개를 목적으로 썼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블로그 방문자의 대부분은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독자가 누구냐에 따라 글의 성격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고로, 글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공개를 위한 글로 편집된다. 가령, 어려운 단어는 대중이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단어로 바뀌고, 범접하기 어려운 독특한 가치관은 이해와 접근성이 용이하게 순화된다. 요즘 고민한다.

 

 

인생 각각의 사건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자 했던 목표,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가.

 

 

 글을 씀에 있어 응당히 지켜져야 할 것은 글과 삶의 일치다. 글이 내 삶을 대변하지  못하면, 내뱉어진 글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면, 어떠한 종류의 글이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글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고백하건대, 삶의 대부분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긴 하지만 보여주기 싫은 부분은 의도적으로 가리곤 한다. 흔히, 어떠한 사실을 비틀거나 조작하는 것을 왜곡이라 한다. 더 무서운 왜곡은 사실 자체를 가려버리는 것이다.

 

 

다시 자문한다.

편집된 글로써 드러난 나는, 과연 내가 맞는가.

그렇다면 치부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나의 치부를 드러내야 블로그의 진정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나의 사실로 정의되는 치부라면, 쪽팔리긴 하지만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있다. 내 몸무게를 예로 들 수 있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20살 초반에는 52kg 전후반을 오갔다. 그 시절, 사내로서 자존심이 상당했기에 52kg이라고 정직히 말하지 않았다. 3kg을 더하여 55kg이라 말하곤 했다. 그 순간의 쪽팔림을 면하고자 말이다. 다른사람이 보기에 남자로서 55kg도 마른 것이었지만, 난 그정도는 괜찮다 생각했다. 어쨌든, 사람들앞에서는 당당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거짓을 내뱉고 나서 스스로에겐 부끄러웠고, '어떠한 경우에도 정직해야 한다'는 가치관 앞에서는 부스러졌다. 이중적 모습이 싫었다. 쪽팔림을 면하는 것과 '정직'의 가치관중 과감히 하나는 버리고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스스로 떳떳해지고자 '정직'을 택했다.

 

고백하건대, 현재 내 몸무게는 49.5kg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드러내기 힘든 몇 가지 사실들과 사건들이 있다. 다 드러나야만 진정성 있는 삶을 보여주는 블로그가 되는 것일까. 아직 잘 모르겠다. 그 동안 쌓여만 가던 생각의 편린들을 글로 풀어내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대중을 위한 것이기보다, 오롯이 나를 위한 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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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단상

2012. 11. 26. 12:08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미국의 포춘지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란 제목으로 해마다 언론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기업 순위을 평가하는 8개의 항목 중에 사회공헌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포함되어 있으며 다우존스의 지속가능성 지수(DJSI) 역시 사회공헌 실적을 높은 비중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현 사회는 기업에게 일차적 목표인 이윤추구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의 책임요구가 커지고 있다.

 

 

 

 

 

 

 

 

 

 

*참고: Fortune의 기업명성을 평가하는 요소를 8개 항목(숫자는 차례만을 나타냄)

1.   Quality of Management

2.   Quality of products and services

3.   Innovation

4.   Long-term investment value

5.   Financial soundness

6.   People management : Ability to attract, develop and keep talented people

7.   Social Responsibility

8.   Use of Corporate assets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공헌활동이 대표적이며, 그 예로는 불우이웃돕기, 재해복구 지원, 직접적인 사업으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환경오염에 대한 방안 모색과 실천 등이다. 최근 시민들을 대상으로 산업정책연구원에서 사회공헌 잘하는 기업이 어디인지 조사했다. 조사결과 유한킴벌리(13.7%), 삼성전자(9.3%), 포스코(9.3%) 순으로 나왔다. 유한킴벌리는'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유한양행의 고(故) 유일한 회장의 기업경영에 대한 신조가 사회적 환원에 대한 책임감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며,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다.

 

기업은 이익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며,

 

남은 것은 기업을 키원 준 사회에 환원한다."

 

 

 

 

 

 

 

 

 

 

 

 

 

 

 

 

 

 

 

 

 

 

 

 

 

 

 

 

 

 

 

 

 

 

 

 

 

 

 

 그러나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 해서 만족감을 얻는 감상적인 결과에만 그친다면 기업의경제적 합리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또한 감상적이며 체계적이지 못한 광범위한 사회공헌활동은 경영자의 교체, 재무적인 악화 등의 나쁜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다. 기업존립의 일차적 목표는 이윤창출, 극대화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사회적 활동을 마케팅의 일부분으로써 인식하여 그에 따른 부서를 조직하고 사회적 활동에 관한 계획을 체계적으로 수립, 실행하므로 기업의 이미지 향상과 매출상승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기업은 어떠한 자세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민간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위한 전략적 행동이어야 하나 공기업은 사회적 책임은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기업의 사회적 활동의 활성화가 되도록 앞장서서 노력해야 한다.

 뉴스보도에 따르면 공기업의 사회공헌활동비용이 복리 후생비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것으로 나타났고, 민간기업과 비교해서 사회공헌활동의 비용도 별반 차이 나이 않았다. 보도자료에 나타난 결과는 현 한국사회에서 공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아직 출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을 극복하기 위해서 공기업은 먼저 앞서서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에 힘써 민간 기업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

 

 

 

 

 

 

 

 

 공기업은 국민의 세금을 걷어 운영되고 있는 만큼, 국민의 복지와 사회발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전력은 자사와 관련된 사업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공기업 한국전력을 예로 들자면, 정부와 한국전력의 재정적 지원과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전기가 들어가지 않은 낙후된 시골에 전기를 설치해줌으로써 그 지역주민들에게 문명의 혜택주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사회에 강압적인 분위기에 못 이겨 수동적인 자세로 임할 것이라 아니라 적극적인 주체자의 모습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 사이트

1. http://www.b-mdigital.com/

2. http://www.yuhan-kimberly.co.kr/, 유한킴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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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2012. 8. 6. 17:00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복지는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20,30대 자살률 1, 출산율 최저,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 한국의 자화상이다. 10년 동안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사회 양극화 되고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불평등이 극심한 나라로 변했다. 또한 경제위기가 가족해체, 아동빈곤, 자살증가와 같은 사회위기로 이어졌다. 한국은 점점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이젠 나라 경제의 성장보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바로 복지가 그 대안이다. 정치권도 20116.2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성장이라는 의제에서 복지라는 의제로 노선을 바꿨다. ·야 정당들은 시대와 국민적 요구에 부합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복지 공약들을 내놓고 있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복지 포퓰리즘을 막겠다며 여·야당들이 내 놓은 복지공약 65개를 검토했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기획재정부는 5년간 220조에서 340조원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은 이런 공약들이 다 받아들여지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기획 재정부는 소요재원 파악에 대한 아무런 산출근거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복지=포퓰리즘이란 인식을 토대로 무턱대로 부정확한 자료를 발표해서 국민들의 혼란을 가중시켜서는 안 된다.

 

 한겨레가 실시한 2010년 조사에서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모든 국민에게 복지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좋다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72.1%였다. 세금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만 돕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22.7%에 그쳤다.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들은 현 시행하고 선별적 복지보다 보편적 복지를 더 선호하고 있다.

또한 남찬성 동아대 교수의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과 조망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 진입한 1990년대 초반 공공사회지출이 국내총생산의 3%정도였다. OECD 선진국들은 국내 총생산의 18% 이상을 복지에 투자하고 있는 것을 감안했을 때, 한국은 복지에 대한 투자가 너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복지정책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복지 지출 확대를 생각할 때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재정문제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지나치게 적은 조세수입에 있다.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 대비 복지 지출은 20097.5%OECD 평균 20.6%에 크게 못 미친다. 현 정부 들어 조세부담률은 200820.7%에서 201019.3%f 되레 줄었다. 법인·소득세율 인하 등 부자감세 조처로 연 20조에 가까운 재정수입을 돌려준 셈이다.

 복지 지출을 늘리다 보면 국가 재정지수가 나빠지고 이는 결국 경제 파탄으로 이어진다는 게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쪽은 단골논리다. <한겨례>가 국제통화기금의 2007~2011년 통계 자료를 토대로 15개 선진국을 세 유형으로 나눠 비교한 결과 보편적 복지국가의 재정이 가장 탄탄하고, 이어 보수·조합주의형, 선별적 복지 국가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편적 복지형 5개국의 평균 재정수지는 5년간 2.15%로 가장 우수 했고 보수·조합 주의형은 3.55%, 선택적 복지형 3.9%이다.

(*재정 수지는 정부 수입에서 지출을 뺀 금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값으로 한나라의 재정 건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값이다. 대체도 재정지수가 4%를 넘어서면 금융시장에서 요주의 국가로 지목해 투자를 꺼린다.)

 

 따라서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로 제안될 수 있다. 먼저, 부자감세를 철회해서 연간 20조원의 수입을 도로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 부유층에게 세 부담을 증가시키고,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신구간 신설하여 조세수입을 늘려야 한다.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분야에 치중되었던 예산을 주여 복지예산을 늘린다면 보편적 복지는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사회에 점점 넓게 드리워지는 사회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 앞에서 정치권은 복지정책을 왜 해야 하나를 논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 복지정책을 실현해서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 주는냐가 관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편적 복지를 통한 안전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국민들을 사회적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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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이다.

2012. 7. 2. 14:44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프랑스의 문학 사회학자 로베스 에스카르피는 번역은 반역이다라고 말했다. 한 언어로 표현된 글이 다른 언어로 제대로 번역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나타내는 말이다. 번역가가 원문의 모든 단어를 직역한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번역했다고 할 수 없다. 원천 언어[각주:1]를 목표 언어[각주:2]로 바꾸었을 뿐 원문 저자의 의도와 생각이 제대로 번역됐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완벽한 번역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번역가가 직역에만 너무 집중하게 되면 원문 저자의 의도와 표현방법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독일 언어학자 훔볼트는 원문에 충실하려고 하면 할수록 궁극적으로 원문에서 점점 벗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번역본에서 원문 저자의 의도와 중심사상이 독자에게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되는가’ 이다.

 원천언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언어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자자체가 전부가 아니다. 한 언어는 한 나라의 문화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를 옮기는 일이다.

“Man does not live by bread alone"는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bread’라는 단어는 개역개정판에서는 으로,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모세나 예수그리스도 살았던 지역에서는 'bread'는 그들의 주식이었다. 그러므로 이 ‘bread’를 단지 이나 으로 번역하게 되면 원문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렇듯 번역가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의미전달에 실패하게 된다. 좋은 번역을 위해서는 원천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문화적 요소들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언어마다 각각의 문법이 있다. 번역할 때는 목표 언어의 문법을 적용해야 한다. 가령 한국어에서는 상황에 따라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격에 따라 동사 형태가 달라지는 라틴어 계열의 언어를 제외하고는 주어가 생략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I don’t think that it will rain tomorrow”의 문장을 번역하면, “내일은 비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해로 번역해 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국어에서는 라는 주어를 잘 생략하기 때문이다.

 번역본은 번역가가 다른 언어로 해석한 하나의 글이다. 번역가가 원문의 틀을 벗어나 번역해서는 안 되지만, 허용되는 일정한 틀 안에서 쉽게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렵게 번역해서 독자들의 가독성을 떨어뜨린다면, 좋은 번역본이라고 할 수 없다. 불필요한 수식어 사용을 자제하고, 적절한 접속어를 사용해서 문장 간 연결이 자연스럽도록 해야 한다. 글을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번역가가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글 쓰는 실력도 밑바탕이 돼야 한다.

 

 번역가는 원문의 저자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언어의 밑바탕에 깔린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뛰어난 글 실력으로 번역해도, 번역본이 원문의 핵심을 잃어버렸다면 번역본으로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번역가가 원문 저자의 의도를 고스란히 번역본에 담는다면, 번역본의 독자도 원문의 독자가 누리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김욱동(2007), 번역인가 반역인가, 문학수첩

 

2. 이종인(2009), 번역은 글쓰기다, 즐거운 상상

 

 

 

 

  1. 원문의 언어 [본문으로]
  2. 번역본의 언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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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선교 간증문

2012. 5. 8. 19:02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무익한 종의 고백

 

선교는 누가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특별한 몇몇 사람들만 선교를 하는 것일까요? 아님 똑똑한 사람이 선교를 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이 선교를 하는 것일까요? 선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자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종이 시킨 일을 하고 있는데 주인이 그에게 사례 하겠느냐?”며 종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 하십니다. 당연히 종의 역할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주인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탄자니아 선교를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고, 제 호칭을 스스로 ‘무익한 종’이라 불렀습니다. 맡은바 역할을 감당하면서 하나님과 발 맞추어 함께 걷는 법도 배우고 싶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과 동행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고자 탄자니아로 떠났습니다. 머리로는 ‘동행’이란 두 글자를 떠올렸지만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갓난아이가 걸음마가 익숙해질 때까지 자주 넘어지듯이,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머릿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의식적인 노력 없이 그 분의 뜻을 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건축사역이 시작되면서 건축현장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제게 맡겨진 잡일들을 담당하면서 마음속에 불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들 듯 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 이런 잡일 하러 탄자니아에 온 것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대답은 않으시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나를 섬기면서 살라 하면 그리 할 수 있겠니?저 또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질문을 계속 던지셨고, 하나님의 따뜻한 손으로 제 지친 마음을 만지시던 날, 전 거실땅바닥에 무릎 꿇어 그리하겠다면서 그저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교현장도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예수님처럼 모든 이들을 포용하면 좋겠지만, 저 또한 본성이 악한 사람인지라 맘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현지인들에게 불만을 표하면서 언성을 높였던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제가 감당치 못할 만한 일들이 밀려왔을 때, 그 일을 맞닥뜨려야 하는 고단함이 싫어서 한 발짝 물러서서 방관한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제멋대로인 저를 나무라지 아니하시고 그 넓은 마음으로 그저 지켜 봐주셨습니다. 1년의 사역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지 못했던 부분들 때문에 마음 한 켠이 많이 무겁습니다. 특히, 제가 맡겨주신 영혼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울 뿐 입니다. 요즘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써 일하고 계신 탄자니아 선교사님들을 자꾸 떠오르게 하십니다. 그분들의 사역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제 삶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선교 1년은 하나님의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탄자니아에서의 실질적인 선교는 끝났지만 제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상명령을 위해 다시 힘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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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손'의 개입이 필요하다

2012. 4. 30. 14:58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관계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소비자의 수요에 대한 공급은 기업들이 담당한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상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기업들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유발시켜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의 상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시장경제는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는 집권초기에 경제성장를 목표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대기업들은 신규 설립과 인수합병을 하면서 거대한 자본을 확보해나갔다. 현재 그 자본을 가지고 골목시장까지 점령해 나가고 있다. 문구점, 동네 빵집과 커피점은 물론 심지어 떡볶이, 순대까지, 대기업 계열사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골목 시장에서 영세업자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호텔신라가 운영해오다 최근 사업철수를 발표한 베이커리 카페 '아티제' 청계광장점 모습

 또한 대기업은 수요독점을 기반으로 하청 중소기업들에게 납품단가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중소기업들 간에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하청기업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대기업과 거래를 하는 것이다.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현상과 독과점은 한국경제의 가장 극적인 시장실패이다. 제 시장경제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길 것이 아니라 '보이는 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첫째,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규제는 정부가 특정 분야에 대해 확장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확보해놓은 거대한 자본이 있기 때문에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점포를 확장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자들은 처지가 다르다. 일정기간 동안의 판매 매출을 통해 기술을 개발할 것이냐 아니면 점포를 확장할 것인가 등을 결정할 것이다.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영세업자들이 경쟁하는 것은 권투에서 라이트급과 헤비급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대기업의 점포 확장 개수를 제한하거나 빵집이나 문구점 같은 특정 분야에 대해 진입하지 못하도록 법적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현실에게 점점 커져만 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문제는 실제적인 제도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공정거래 위워회 등 정부기관의 독점 제소권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의 확대, 조사방해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처벌 강화 등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가 중소기업에게만 적용되는 저금리 대출 정책을 마련해줌으로써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정부의 개입을 통한 양극화 해소 정책의 핵심은 중소기업이 스스로 이룩한 정당한 성과를 공정한 거래를 통해 중소기업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대기업 수요독점에 따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와 경제력 집중현상은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대기업들이 수출을 주도하면서 이끌어 온 한국경제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정부는 단기적인 관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들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할 거이다. 그리고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과 수요독점을 규제함과 동시에 중소기업과 영세업자들이 대기업과 동등한 조건에서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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