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5. 01:29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파타고니아의 양 _ 마종기
거친 들판에 흐린 하늘 몇 개만 떠 있었어.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어보라고 했지?
그래도 굶주린 콘도르는 칼바람같이
살이 있는 양들의 눈을 빼먹고, 나는
장님이 된 양을 통채로 구워 며칠째 먹었다.
어금니 두 개뿐, 양들은 아예 윗니가 없다.
열 살이 넘으면 아랫니마저 차츰 닳아 없어지고
가시보다 드센 파타고니아 들풀을 먹을 수 없어
잇몸으로 피 흘리다 먹기를 포기하고 죽는 양들.
사랑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면, 혹시
파타고니아의 하늘은 하루쯤 환한 몸을 열어줄까?
짐승 타는 냄새로 추운 벌판은 침묵보다 살벌해지고
올려다볼 별 하나 없이 아픈 상처만 덧나고 있다.
남미의 남쪽 변경에서 만난 양들은 계속 죽기만 해서
나는 아직도 숨겨온 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무덤덤하게, 시가 잘 읽힌다.
직설적인 문구의, 그 장면들이 머리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콘도르가 양의 눈을 빼 먹는다. 그 눈이 나와 마주친다.
그런데, 살벌하지가 않다. 슬프다. 하염없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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