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firm in God's word

2014. 4. 26. 14:35 신앙/말씀 묵상(默想)



[NLT] Whenever you do, work at it with all your heart, as working for the lord 

Colossians 3:23



[NLT] Don't copy the behavior and customs of this world, but let god transform you into a new person by changing the way you think


[NIV]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Romans 12:2a



[NLT] I press on toward the goal the prize of the upward call of god in Christ Jesus.


Philippians 3:14



[NIV] He died for us so that, whether we are awake or asleep, we may live together with him. Therefore encourage one another and build each other up, just as in fact you are doing.


1 Thessalonians 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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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2014. 4. 7. 10:05 신앙/말씀 묵상(默想)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중략)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힙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 30 :1 - 6 






 아둘람 공동체의 지도자, 다윗이 한 순간에 죽일 놈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잘못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사람들을 그 상황을 잘못을 다윗에게 전가한다. 아둘람 공동체 사람들은 본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자신들의 상황이 급변하거나 위급하면 중심을 잘 잃었을 것이다.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했을까. 하지만 다윗을 좌절하지 않는다. 자신을 비난하는 그들을 꾸짖지도 않고, 그들에게 변명하지도 않는다. 하나님 여호와가 자신의 도움이시며 힘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어떻게 해야할 지 물어본다. 




  모든 어려운 상황속에서 우리는 늘 문제만 바라보다가, 그 상황에 갇히기 쉽다. 문제가 우리는 눈을 가려 우리의 도움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가 직면한 어떠한 문제보다 크다. 문제를 대하는 다윗의 자세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의지 해야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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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사명 - 침묵 속에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다.

2013. 6. 8. 23:18 신앙/말씀 묵상(默想)



사명.

 

 

 

 분명한 진리가, 다수의 모함때문에 거짓에 가리어졌다. 그들이 조롱하는 그 모든 일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들이지만, 예수님는 아무 말로 하지 않으셨다. 그들을 정죄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능히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죄인구원'의 사명을 감당해내야 하기에 긴 침묵을 유지하셨다.

 

 

 

누가 뭐라고 지껄이든지 간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출처:http://hyukzak.tistory.com

 

 

 

 예수그리스도는 진정 '난 무익한 종이라, 나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고백하실 수 있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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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 -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013. 5. 24. 22:33 신앙/말씀 묵상(默想)

 

 

 

 

 

 

갈릴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리라.

 

마가복음 1:16~17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리라.

누가복음 5:27~28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편하고 쉬운 삶도 아니다.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말에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레위는 자신의 것을 다 내려 놓고 예수님을 따라간다.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로는 자신의 생계를 책임졌던 그물을 버렸다. 세리였던 레위는 그간 모아왔던 모든 재산을 버렸다. 어떠한 희생없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가능한가 말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자기를 철저히 부인해야 한다.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어떤 특정상황에서 한 번만 지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날마다, 우리는 십자가를 져야 한다. 나 또한 강조하고 가슴 속 깊이 되새기는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진정 삶으로 살아내기란 너무 어렵다. 하지만, 자신을 너무마 사랑하는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과 십자가는 남이 지기를 바라는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넘어지고, 깨지고, 죽을만큼 힘들어도,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 주신 그 분의 긍휼과 자비를 진정 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노력해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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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믿음 - 믿음의 대상은 누구이며, 그 내용은 무엇인가.

2013. 5. 17. 09:56 신앙/말씀 묵상(默想)

 

 구원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는 무조건 구원받을 것을 믿으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맹목적 믿음을 강조하면 비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는 비합리적인 종교로 비춰질 경향이 커진다.  더욱이 구원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에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초신자들에게 구원은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기본적 지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분명, 믿어야 할 대상이 있으며,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있다.

 

 

Q. 믿음이 대상은 누구인가.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16)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구약과 신약에 따라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분이다. 신약의 관점에서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과 똑같은 신적존재이시지만 사람의 몸으로 이땅에 오신 분이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 당하시고, 사흘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따르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이다.

 

 

 

Q. 무엇을 믿는가.

 

 기독교를 대표할 수 있는 핵심적인 두가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부활이다.

 

 

 

 # 십자가 죽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살리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4:9

 

 

 예수님십자가 죽음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며 그에 대한 심판을 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특성 중 하나인 공의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님를 내어주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부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며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롬 15: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롬 15:17  

 

 만약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별 반 다를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신 후 사흘만에 부활 하셨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썩거나 다시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 나신 것이다.

 

 

 부활에 대한 증거가 있을까.

 

 부활에 대한 증거는 바로, 빈 무덤이다. 예수님이 만약 부활하지 못했다면 분명 어딘가에 시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 아무도 예수님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숨겼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시체를 숨겼다고 가정하자. 그 제자들이 시체를 숨기고 '기독교'란 종교를 만들어 왜 평생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전하다가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단지, 기독교란 종교의 존속을 위해서일까. 아니,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 진리는 자신의 전 일생을 걸만큼 값지고 복된 것이었다.

 

 

 

 기독교는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종교이다. 못믿겠다면, 역사적 사실과 증거들을 모으고, 성경을 한 번 다 읽고 나서 다시 이야기 하자. 성경을 철저하게 읽어본다면 기독교가 진정한 구원의 길인 동시에, 이 세상의 밝힐 빛임을 분명 알 수 있을 것이다.

 

 

 

 

 믿기 힘들다면 한 번 성경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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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에 대한 단상

2013. 3. 8. 19:59 신앙/말씀 묵상(默想)

 

 

 

                              출처: http://www.rantsfromamadman.com/

 

 

 

 한 청년이 날마다 부르짖는다. "하나님. 내게 비전을 보여주십시요!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에 대해 부르짖는 건 당연하다. 허나, 그 청년은 기도의 자리에서만 열정적일 뿐, 20대 청년으로서 세상에 나아 갈 아무런 준비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듣고 비전을 보여줬다 하자. 정작 그 청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성경에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은 믿음의 조상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갑자기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다. 요셉이 단번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는가. 절대, 아니다. 그는 형들의 시샘으로 인해 애굽의 노예로 시위대장 보디발 집에 팔려갔다. 삶을 통해 그의 성실함과 하나님을 동행하심을 드러냄으로써, 보디발 집의 가정총무가 된다. 그는 그 집안의 대소사를 다 관장하게 된다. 하나의 가정을 관리하긴 했지만, 이 때부터 실제적 업무수행을 통해 애굽 총리가 되기 위한 역량들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절대, 한 순간에 애굽총리가 된 것이 아니다.  

 

 

 비전은 단답형 주관식처럼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 될 수 없다. 비전은 이야기. 삶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야기의 결말부분에 가서야 진정한 그분의 목적을 알 수 있다. 우리를 부르신 본질적인 목적은 다 같으나 어떻게 사용 하시는가는 각자의 은사와 기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배들의 경험이나 조언은 단지 주님이 나를 향한 뜻은 알아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도구로만 사용하고, 구체적인 비전을 찾아가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만 부르짖지 말고, 성경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동시에 자신의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실제적인 준비도  해야 한다. 그 분은 조용히 지켜보시다가 하나님의 때에 정확하게 당신을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을 보는 관점은 다르지만 지켜보고 쓴다는 점은 같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라. 그리고 철저히 준비하라. 그러면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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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찾은 리더쉽 _ 지도자 모세의 위대함.

2013. 3. 3. 20:28 신앙/말씀 묵상(默想)

 

 

 

 

 대한민국의 첫 여성 지도자,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전 남성들과는 다른 여성리더쉽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정부 구성원 간의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평등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며, 포용상생을 근간으로 하는 리더쉽을 발휘해주길 바랐다. 지난 5년간 전혀 소통을 찾아볼 수 없었던 이명박 정부의 독단적인 행보 때문이라 생각한다. 허나, 박근혜 정부의 밀봉인사만 놓고 보더라도, 그녀 또한 전혀 '소통'의 실마리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정부 초기부터 온갖잡음이 다 들려온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지도자의 리더쉽이 그리운 때다. 그 아쉬움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도자의 위대한 리더쉽을 통해 달래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인물로 민족의 지도자. 모세다.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위대함은 출애굽에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전 과정에서 드러난다. 원래 모세는 동족 히브리 사람이 애굽사람에게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순간적인 충동으로 인해 애굽사람을 쳐 죽일정도로, 다혈질이었다. 그리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40년 광야 생활을 허락하셨다. 모세는 광야의 삶을 통해 완악한 백성들을 품을 수 있는 온유한 성품으로 거듭난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이 지은 죄에 대해 적전인 책임을 지고 하나님앞에 나아간 사람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증거판을 받기 위해 시내산을 올라갔을 때, 백성들은 모세가 조금 늦어지는 것을 염려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신으로 규정해버렸다. 이에 하나님은 크게 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겠다 말씀하신다. 모세는 하나님께 그 노를 거두실 것을 호소하여 한 번의 위기는 넘겼다. 허나,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관영하여, 모세 또한 그저 바라볼 수만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방자한 죄로 삼천명 가량이 죽임을 당한다. 하나님의 더 큰 화가 미칠까 화여 모세는 하나님께 속죄하러 올라간다. 그는 백성들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건 협상을 시도한다.

 

 

 

 

 

출애굽기 32장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데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지워 버려 주옵소서

 

 

 

 

 

 과연 어떠한 지도자가 자신의 삶을 내 쳐버리면서,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려 할까. 난, 아직까지 모세와 같은 지도자의 위대함을 보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춥애굽을 위한 지도자로 세우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함부로 쓰시지 않는다. 하나님도 보시고 사람을 쓰신다. 다만, 사람과 차이점은 사람을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다. 히브리 동족에 대한 민족애를 보셨고, 광야 40년을 통해 낮아진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을 보셨던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받고자 하면, 스스로 겸비되어 있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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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나를 이끄신 하나님 말씀 & 찬양.

2013. 2. 20. 21:05 신앙/말씀 묵상(默想)

 

 

 

 29년 인생을 살면서, 삶의 길목에서 간절히 붙들었던 몇 가지 말씀들이 있다. 하나님 뜻을 묻고자 기도로 나아가면, 그 간 묵상했던 말씀 중 떠오르는 구절들이 있다. 어떤 때는 성경을 묵상하는 가운데 강하게 감동주시는 말씀들이 있다. 기도하자마자 그러한 말씀이 떠오르거나, 성경에서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하나님 뜻을 기다리다 지칠 때쯤, 말씀을 받은 적이 많았다. 받은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동은 더해지고, 말씀에 대한 확신은 더욱 커졌다. 개인 신앙사를 돌아보고자 간략하게 정리한다. 먼저, 선교지에서 내가 붙들었던 말씀과 찬양이다.

 

 

 

 

 

 

 

 

#1 동행

 

 

 

 

 

 

 

             

 

 

 

                                        "제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

 

 

 

 

 

 

 

 

 

 

 

 

 

 

 

 

 

 

 2011년 탄자니아 선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자주 물었던 질문이다.  하나님은 오랜 시간 내게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고, 일방적인 질문만 계속됐다. 그러던 중 생애 처음으로 성경일독을 하게 되면서 미가서 말씀을 읽게됐다. 그 때 6장 6~8절 말씀에서 강한 감동이 왔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이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말씀을 붙들고 근 하루동안 묵상했다. 말씀을 묵상할수록 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 동안 선교의 주체를 망각한 내가 너무 교만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내가 없어도 당신 뜻대로 선교를 성공적으로 진행 하실 수 있다. 또한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부르셔서 일하실 수 있다. 그런데, 나를 동역자로 불러 주신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기회를 내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지 않았다. 당신과 함께 걸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길 간절히 원하셨던 것이다.

 

 

 

 

 

 

 

 

 

 

 

                    

 

 

#2 섬김

 

  

 2012년 7월 중순, 탄자니아에서 어느 토요일

 다음주 월요일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아직 시험 문제를 다 출제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전기가 언제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기말고사 시험지 문제를 타이핑했다. 전기가 끊어지면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나가야 했기에, 분주히 업무를 해 나갔다. 시내까지 가는데만 30분이 걸리며, 시내 복사집에 가더라도 손님들이 많으면 20~30분 기다려야 한다. 고로, 전기가 들어오는 동안 모든 컴퓨터 작업을 마치고 프린터해야만 했다. 짜증난 어투로 하나님께 대들 듯 물었다.

 

 

 

 

 

 

 

 

 

 

 

 

 

 

 

 

 

 

 

 

 

 

 

 

 

 

 

 

 

 

 

 "하나님, 오늘 토요일인데 쉬지도 못하고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일해야 합니까?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혼자 아둥바둥거리며 하니까 많이 지칩니다..."

 

 

 

 

 

 

 

 

 

 

 

 

 

 

 

 

 

 

 

 

 

 

 

 

 

 

 

 

 

 

 

 

 

 

 

 

 

 

 

 

 

 

 

 

 

 

 

 

혼자 씩씩거리며 일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조용히 물으셨다.

 

 

"상율아, 많이 지치지...?"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상율아,

 

만약 이름도 없이 아주 낮은 자리에서 나를 섬기라 하면,

 

그리할 수 있겠니?"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횡설 수설하다, 속마음을 내비췄다.

 

 

 

 

"저... 아직 대학교 공부도 못 마쳤고, 결혼도 못했고....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하나님 섬기고 싶습니다..."

 

 

 

 

 

 

 

 

 

 

 

 

 

 

 

 

 

 

 

 

 

 

 

 

 

 

 

 

 

 

 

 

 

 

 

 

 

 

 

 

 

 

 

 

 

 

다시 물으셨다

 

 

"이름도 빛도 없이 나만 바라보며 날 섬길 수 있겠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질문이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교만을 드러나게 했고, 부끄러웠다.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웠다. 그러고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 동안 흐느꼈다. 5분쯤 흘렀을까.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하나님 아버지, 완악하고 교만한 저를 용서하시옵소서.

부르신 그 곳에서 아버지만을 섬기겠습니다.

그 어떠한 자리든지, 부르심에 감사함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2)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2)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가오리다 

이름 없이 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2)

 

 

 

 

 

 

 

 

 

 

 

 

 

 

 

 

 

 

 

 

 

 

흔히, 우리는 착각한다.

하나님이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을 좋아하실거라고.

 

 

아니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길 간절히 원하신다.

당신의 자녀된 우리를 원하신다.

 

 

다만 함께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뜻대로 행동해서 하나님보다 앞서 있거나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잠깐 서서, 천천히 숨을 고르자.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그의 발걸음에 맞춰  나아갈 준비를 하자.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곳을 함께 바라보며 그 분이 부르신 곳에서,

원하시는 대로 섬기면 된다. 

 

 

 

 

하나님과의 '동행', 이보다 더 아름답고 멋진 인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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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 갈렙

2012. 8. 6. 19:59 신앙/말씀 묵상(默想)

 

모세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각 지파별로 한 명씩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시했다.

 

 

"그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민 13:18상)"

 

 

 12명의 정탐꾼들이 사십 일 동안의 가나안을 살펴보고 돌아온다. 그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은 거주민은 삼키는 땅이며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 고 말한다. 그들은 가나안땅의 거대한 자손들을 보고 지레 겁먹고, 스스로 비하시켰다.

 

 

하지만,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생각 달랐다.

 

 

 "우리가 두루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14:7~8)"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관점은 확연하게 다르다. 그들은 가나안을 땅을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언급하지만, 여호수아과 갈렙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이야기 한다. 또한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어려움들을 보고 스스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호수와와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했다.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땅을 바라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 있었지만, 가나안 땅에 대해 악평했던 나머지 정탐꾼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음을 당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만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고난과 역경에 좌절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면 고난의 상황도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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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

2012. 7. 20. 10:48 신앙/말씀 묵상(默想)

Q.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무슨 나무에 올라갔을까?

   1. 떡갈나무               2. 돌무화과나무                3. 오동나무

 

 

 

 

 

 

 

 

 

 

 

 

 

 

 

 

 

 

 

 

 

 

 

 

정답 : 2. 돌무화과 나무

 

 

 

 

 

 

 

 

 

 

 

 

 

 

 

 

 

 

  성경을 알아가는데 문제에 따른 정답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문제를 맞춤으로써 성경상식은 늘어가겠지만 성경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성경교재들은 문제를 주고 일정한 답을 요구한다. 성경교재에 질문이 주어져 있더라도 본문을 직접 묵상함으로써 스스로 '왜'라는 의문을 품어야 하며, 그것이 신학적인 기준에 도전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의문은 가치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삭개오가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갔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할까? 본문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어떤 나무에 올라갔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삭개오가 왜 나무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나'를 생각해야 한다.

 

 

 

 

 

 

 

 

 

 

 

 

 

 

 

 

 

 

 

 

 

도대체 왜? 

 

 

 

 

 

 

 

 

 

 

 

 

 

 

 

 

 

 

 

 

 

 

1. 삭개오는 키가 작았다.

 눅 19:3에 보면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고 기록되어 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이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삭개오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높은 곳을 찾아야만 했다.

 

 

 

2, 삭개오는 세리였다.

 예수의 시대에 세리는 유대인이 외국 억압자로 여기는 로마 정부를 위해 일했기 때문에 특히 미움을 많이 받았다. 세리들은 대부분 정직하지 못했고, 세금에서 떼어낸 돈으로 자기 호주머니를 불렸다. 그들의 동포인 유대인들은 세리를 경멸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사전

 예수님 시대에 세리는 환영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날도 예수님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삭개오는 그곳에 가면 따가운 눈총과 경멸함을 받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곳에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즉, 삭개오는 육체적 약점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때문에 뽕나무위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기본적인 상식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기본적인 것을 바탕으로 시대적 상황과 본문속 인물들의 배경을 연관지어 생각함으로써 그들이 '' 그렇게 행동했는가, 말했는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은 온갖 보물이 숨겨진 탄광과 같다. 우리가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어떻게 파느냐에 따라 얻어지는 광물의 양과 질은 달라진다. 날마다 성경에서 값진 것들을 발견하면, 성경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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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2012. 7. 19. 12:34 신앙/말씀 묵상(默想)

 성경의 기록

성경은 1600년동안 40여명의 기자들에 쓰여졌다. BC 1500년에 모세가 창세기를 썼고, AD 100년에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썼다. 혹자는 욥기가 BC 2000년에 쓰여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성경전체가 쓰여진 기간은 더욱 길어지게 된다.  성경기자들은 하나님께서 직접말씀을 받아 쓰기도 했고,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전해 들어 썼다. 성경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으로...(딤후 3:16 상)"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각 권을 쓴 기자들의 성격과 특성이 성경에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공관복음(共觀) 이라 일컫어지는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은 기자들은 각각 다르지만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공통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태복음을 쓴 마태는 세리였다. 세리의 특성에서 비롯된 논리정연함과 자료의 풍부함을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느낄수 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감수성과 문학적인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성경의 해석 

하지만, 성경일 읽고 해석 할때는 자신의 지식만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정학한 이해는 어떤 사람의 지적능력보다는 영적상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벧후 1:20~21절을 보면,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인  시몬 베드로는 어부였다. 베드로가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고 설교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이 그에게 이해 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을 읽기 전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다.

 

 

성경의 주제

성경을 압축해서 하나의 단어로 만든다면, 어떤 단어가 나올까?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5:39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책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 하신 부분은 다른 색 글자로 표시되어 있다. 위의 구절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이라 성경에서 다른색으로 표시되어 있거나 더 굵은 체로 쓰여져 있을 것이다.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경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다.   

  구약은 오실 예수그리스도 대한 예언이며, 신약은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증거와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예언에 대한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모든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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