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a boy_"No man is island"

2012. 6. 19. 16:50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감독 : 크리스 웨이츠, 폴웨이츠

출연 : 휴 그랜드(윌 프리먼), 니콜라스 홀트(마커스), 토니 콜렛(피오나)

 

 영화는 TV 퀴즈쇼에서 진행자가 출연자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 '인간은 섬이 아니다' 라고 말한 사람은?”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가? 틀려도 상관없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에 포함되어 있는 문장이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주인공 ‘윌’은 모든 사람은 섬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간편하고 편리한 기계들로 인해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삶아갈 수 있으며, 바야흐로 섬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섬에서 모든 것을 지휘 감독 한다. 윌은 ‘이비자’ 섬에 살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 마커스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중학생이다.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과 옷차림 때문에 동기생들로부터 늘 놀림을 받으며, 가끔 자신도 모르게 수업시간에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마커스 엄마, 피오나, 이혼해서 혼자 애를 키우는 싱글맘, 수지, 엄마의 남자친구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 등 해체된 가족 구성원들이 많다. 감독은 현 사회에서 개인주의의 심화에 따른 관계의 단절, 가정 붕괴에 인해 가족 구성원들이 겪는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 같다.

 

  윌과 마커스가 만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 곳은 'SPAT(Single Parent Alone Together)'. 윌이 우연찮게 유부녀와 사귀게 된다. 유부녀와 사귀면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그녀와 헤어지긴 하지만 유부녀에 대한 미련은 못 버린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SPAT' 전단지를 발견하게 된다. 윌은 'Ned'라는 상상의 아들를 만들어 SPAT 모임에서 싱글 파파인 척 한다.

 

 

 

 

 운좋게 'SPAT'에서 아리따운 싱글맘 수지를 만나게 되고, 윌의 우여곡절 삶은 시작된다. 윌과 수지, 그리고 마커스가 처음 만난 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마커스 엄마가 자살시도를 한 것이다.

 

 

 

 

 

 

 

 

 

 

 

'Bang!' 

 

 

 

 

 

 

 

 

 

 

 

A new part of his life started.

 

 이 사건을 통해 마커스는 엄마가 죽으면 혼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둘은 충분치 않다는 결론은 내린다. 누군가가 필요함을 느낀다. 엄마의 남자친구로 윌이 적당하다 생각하고 윌의 삶에 끼어들게 된다. 감독은 어쩌면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과 두려움에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는 마커스의 모습을 통해 이 시대에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더욱 필요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결국, 윌과 피오나가 같이 밥을 먹는다. 이 만남을 통해 서로가 안 맞다는 사실만 명확히 알려준다. 하지만 마커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윌을 몰래 쫓아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윌은 아이가 없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빌미로 마커스는 윌의 집에 드나들게 된다. 

 

 윌과 마커스는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사이가 된다. 10대 소년과 30대 후반의 남자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영화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마커스가 장난감 손가락으로 과자를 집어 윌의 입에 집어넣어주는 장면이나 둘이 똑같은 모습으로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장면들을 보면, 둘은 십년지기 친구처럼 보인다. 억지스럽지도 않고, 과장되지도 않다.

 

그럴 즈음에 윌은 정말로 맘에 드는 여자, 레이첼을 만난다. 레이첼은 싱글맘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싱글파파인 척하면서 다가간다. 그래서 마커스를 자기 아들인 척 하면서 그녀와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마커스는 윌과 레이첼의 관계는 진실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그도 동의한다. 그래서 윌은 레이첼에게 진실을 말한다. 그 진실로 인해 사실상 둘은 갈라지게 된다.

 

 윌은 낙담하게 되고 자신의 문제에만 빠지게 되어, 남의 상황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한편, 피요나의 정신 상태는 더욱 안 좋아진다. 마커스는 악화되는 상황을 윌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윌의 집에 온다.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 하지만 윌은 무덤덤하다. 오히려 역정까지 낸다.

 

 

 "내가 누군데? 난 너의 삼촌고 아니고, 큰 형도 아니야!"

 

마커스는 순간 당황한다. 그리고 체념하 듯 말한다.

 

"그래요! 당신은 날 도울 수 없어요. 당신이 어떻게 날 돕겠어요?

당신은 맨날 TV만 보는 멍청한 사람이니까요!"

 

 

 

 

마커스도 빈정 상했다.

마커스는 윌의 태도에 상처를 받고 윌의 집을 휙 나가 버린다. 이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깨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윌은 삶이 공허해짐을 느낀다. 결국 마커스가 자신의 삶을 의미였음을 깨닫는다. 마커스도 친구가 필요했지만 ‘인간은 섬이다’라고 주장하는 윌 또한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단지, 윌은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윌과 같이 관계의 내적 공허함을 느끼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며 흥미로운 장면은 마커스가 학교 락 콘서트 무대에서 엄마를 위해 무반주로 노래하고 있을 때, 윌이 마커스를 돕기 위해 기타를 메고 무대로 들어서는 장면이다.

 

 

 

 

윌은 마커스와 함께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마커스가 노래를 끝내고 무대를 내려가려고 한다. 하지만 윌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윌은 혼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눈까지 감고서 말이다. 결국,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학생이 던진 사과를 머리에 맡고서 노래를 끝낸다.

 

 

 

 

이 장면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윌이 살고 있던 자신만의 ‘이비자’ 섬에서 완전히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는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마커스의 삶에 뛰어들었고, 그리고 기꺼이 그를 도우면서 즐겼으니 말이다.

 

 

 

 

 

 

 

 

이제 그는 섬이 아니다.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면 부끄러운 일 같은 건 절대 없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어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에 윌의 집에 마커스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모인다. 함께 모여 식사 준비를 한다. 윌은 스스로 이야기 한다.

 

 

 

“우리는 모두 섬이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부의 섬들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섬들은 바다 밑에선 서로 연결돼 있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은 한 소년의 개입으로 인해 완전 바뀌었다. 

마커스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 한다.

 

 

 

 

 

 

 

 

 

 

 

 

"No man is island."

 

 

 

 

 

 

 

 

 

 

 내가 말한 '부끄러움'은 남을 위해 내것에 대한 권리를 잠시 포기한 상태. '함께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 3자로 방관하면서 '다 알아'라고 말하는 위선자들이 많은 이 세상에, 누군가의 삶에 깊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by y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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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이스트_친구들이 그립습니다.

2012. 5. 11. 12:11 삶을 살아내다/일탈(逸脫)

 

 

타인과의 관계를 발전할 수 있는 토대는 서로간의 믿음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믿음’이란 인간 자체에 대한 확신이라 생각한다. 한 사람의 현재상황이나 능력에 상관없이 그의 행보를 끝까지 지켜봐주며 같이 발맞추어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가령, 노숙자나 정신질환자라도 말이다.

 #1

 영화 '솔로이스트'에서 LA타임즈 로페즈 기자는 노숙자 나테니얼을 좋은 칼럼대상으로 다가간다. 그의 우여곡절의 삶이 기자의 시선을 끈 것이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노력으로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했지만, 정신적인 혼란으로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노숙자 생활을 하는 그 속사정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다가 인생의 교차점에 들어선다.

 처음 만났을 때 나테니얼은 로페즈가 내민 손을 잡지 못했다. 자신의 허름한 차림에 대해서 사과하면서 부끄러워 뒷걸음질 쳤다.

"I apologize for my appearance. I've had a few setbacks." (내 옷차림 사과할게요. 좀 사연이 많아요)

 

#2

 로페즈는 특종기사를 쓰기 위해 나테니얼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기자로서 그의 부서져버린 음악에 대한 기억들을 회복시켜주려 노력한다. 그 노력이 '나테니얼'의 마음을 차츰 열게 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서로간의 믿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 맺어진 조건적인 것이었다. 기자 로페즈는 특종이 필요했고, 음악 천재 나테니얼은 친구가 필요했다. 로페즈에 대한 지나친 나테니얼의 기대는 로페즈를 자신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집착은 관계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그러면서 나테니얼의 정신질환은 더욱 악화된다. 어긋난 관계회복을 위해 로페즈는 정식으로 나테니얼에게 정신질환 치료를 권유한다. ‘정신질환’이라는 진실이 구체적인 언어로 그들 사이에 거론되었고, 그 ‘진실’은 나테니얼을 거북하게 만들었다. 나테니얼의 치부를 대 놓고 건드린 셈이다. 치부가 드러난 것에 화가 난 나테니얼은 로페즈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치닫고 만다. 결국, 둘은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다시 각자의 길로 가게 된다.  

#3

         처음에 먼저 다가갔듯이, 다시 손을 내민 사람 역시 로페즈였다.

         그 손을 '나테니얼' 거부하지 않는다. 진정한 친구의 맞잡음이다.

                  "I am honored to be your friend"(당신의 친구가 돼서 영광이예요)

악수를 하면서 로페즈가 나테니얼에게 건넨 말이다. 이제 로페즈에게 노숙자 '나테니얼'은 없다. 아직 세상을 등졌지만 힘겹게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인간 '나테니얼'만 존재할 뿐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나테니얼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그대로이지만 다행인 것은, 옆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그를 돕는 기자, 아니 친구 로페즈가 있다는 것이다.

 너와 나의 경계선이 더욱 더 명확해지는 요즘,  멀리 떠나 간 내 친구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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