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20. 22:32 삶을 살아내다
2주 전, 잠들기 전에 갑자기 "과연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짧은 순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온 후부터 신자로서 살아온 삶은 되돌아 봤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던 것이 아니냐, 유일한 신을 말이다. 그리고 나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었던 기억이 없다. 적절한 자기 타협과 선별적인 순종만 있었을 뿐. 구원을 받기 위한 나의 의만 생각날 뿐이다. 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아찔한, 결론을 내리고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 눈을 떴다. 전날 밤 고민한 구원의 문제가 먼저 떠올랐다. 내가 구원을 못 받는다고...구원을 못 받는다고, 두려웠다, 너무나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반적인 두려움과는 또 다른 유형의 두려움이었다. 그러고서 며칠동안 혼자 있을 때 내가 왜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의 상태를 분석하였다.
문제의식 하나, "왜 내겐 사랑이 없는가"
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알고 있을 뿐, 믿지 않는다.
만약 기독교가 말하는 본질적인 내용,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고 있다면, 나는 지금처럼 팍팍한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위해 아무런 댓가없이, 자발적으로 그 목숨을 버렸다. 내가 이 사실, 하나님의 독생자를 버리면서까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했던 그 사랑과, 예수그리스도의 순종 1을, 아는 자라면, 타인에게 이렇게 무관심할 수도 냉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2
2. 진정한 회개가 없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려면, 나의 죄인됨에 대한 자각이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죄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죄를 위해 죽은 예수그리스도는, 나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존재가 된다. 그래, 예수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죽었는데, 뭐 어쩌라고, 식의 반문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죄됨을 인정하지 않고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일 가능성이 높다. 3
문제의식 둘, "왜 소망이 없는가"
1. 부활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없다.
신자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바라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소망하여, 그 나라에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세상의 삶은 잠시 지나쳐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기에 신자는 이 세상의 재물, 명예, 권력 등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세의 삶에 대한 의무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신자는 하늘 시민권을 가진자이긴 하지만, 현세의 삶을 사람으로서 사회의 책임과 역할과 의무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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