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9. 16:03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지난 목요일부터 왼쪽 눈썹 옆에 조그마한 두드러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포진으로만 생각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의 두통과 함께 얼굴 한쪽 면이 화끈거렸다. 인터넷에 증상을 검색해보니 대상포진의 초기 증상과 비슷해 보였다. 대상포진은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생긴다는 네이버 글에 덜컥 겁이 났다. 퇴근하고 급히 마취통증의학과 병원을 방문했다. 늦은 시간이라 병원은 한산했고 환자는 나 혼자였다.
의사 선생님은 내 증상을 보고 현재로선 띠 모양의 포진이 아니라서 대상포진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대상포진의 가능성이 있으니 예방 차원에서 치료를 잘 해보자고 나를 안심시켰다. 주된 치료은 근육 주사 치료였다. 주사를 맞기 전에 근육을 풀어주기 위한 초음파 치료와 물리 치료를 병행했다. 물리치료사가 몸의 근육을 풀어주면서 목 근육이 일반 사람보다 매우 딱딱하다고 말했다. 손가락으로 근육을 누르는데 근육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등과 목 근육이 많이 경직되어 있으며 몸 전체 근육의 긴장도가 높다고 말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물리치료사의 말에 나는 궁금했다. 왜 내 근육은 평상시에도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것일까.
지나간 세월을 떠올렸다. 제대하고 나서 인생의 올바른 방향을 찾던 시절, 삶의 여러 부분에서 경직되어 있던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실수가 잦았던 스무살 청년의 때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실수를 할 때마다 자책하면서 말과 행동을 점검했고, 다시 실수하지 않을 때까지 스스로 몰아 붙였다. 스무살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 그 불안감이 엄습해 잠 못드는 날이 많았다. 스스로 내 삶을 지키지 않으면 이대로 무너져 버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마음 저변에 깔려있었다. 불확실한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나를 항상 긴장하게 하지 않았을까. 긴장하면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청춘의 삶이 안쓰러웠다.
이제는 몸에 힘을 빼는 연습도 조금씩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확실했던 20대와 고되었던 30대를 지나 불혹(不惑)의 40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적절한 에너지의 안배가 중요하다. 모든 곳에 에너지를 쓸 수도 없다. 평소에 힘을 좀 빼고 살아야 다시 힘을 줘야할 때 힘차게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그동안 각박한 삶을 사느라 몸에 온 힘을 주고 살아온 나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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