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1. 21:33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갔다.
저희들끼리 자라고 저희들끼리
날아다니다가 짝을 찾아
여러 모양의 열매를 맺었다.
그 후에는 방문 두드리는 소리를
가끔 들었다. 들리다 말다 한 소리는
바람에 쓸려가는 낙엽들이었다.
모두가 필요 없다며 버린 인연들.
어느 날 저녁부터는 주위가 작아지고
흥얼거리는 박자인지, 누가 오는 건지
밤새도록 속삭이는 음성이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밤과 눈을 부지런히 섞고 있었다.
보이는 게 다 흐렸지만 고백하자면
그것이 바로 내 질긴 평생이었다.
그래도 끝이 흰색이라는 게 좋았다.
체세포에 묻은 인내는 무게만 있는 건지
한 발 두 발 걷는 것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참는 법을 몰라 헤매던 날들을 떠났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차가운 후회들이 모여 눈이 되었겠지,
맨몸을 감는 겨울밤이 오히려 정답다.
겨울의 끝은 저만치에 오고 있지만
그 뒤에 오는 날들은 누구의 진정인가,
숨이 끝나도 한동안 귀는 열려 있다지.
나이 든 후부터 자라난 힘든 물음들이
다 되살아나 내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 안에 나를 부르는 정든 목소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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